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46화 (546/846)

546화

그도 그럴 게 대학원생이다.

'다시 다니는 것도 어색해 죽겠는데.'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원생이 어디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서은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샤락

책을 읽고 있다.

등나무가 우거진 정자에 앉아있는 여름의 모습이 보인다.

'진짜 그림 같네.'

사진을 찍으면 그 자체가 값어치를 가질 것 같다.

사진 작가를 날로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빙 돌아 접근한다.

멀리서 얼핏 보자 전공 서적이다.

글씨가 꽈배기인 걸로 미루어봐 원서.

'아니, 모국어려나.'

여름이한테는 그럴 것이다.

혼자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시기하는 애들 때문에 말미암았다.

"헤이, 프린세스~?"

"?"

"왕자가 왔소."

"……."

고생이 많은 여름을 위로해준다.

살며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손등에 입을 맞춘다.

"쩡환."

"네, 공주."

"Are you crazy?"

"……."

이벤트가 조금 과했던 모양이다.

서양 여자답게 독립 경향이 강해서 공주님 취급을 싫어한다.

"You are being silly. 바보다!"

"너무 반가워서 그랬어."

"나도다! 반갑다!"

그녀의 웃음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다.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으며 반가운 리액션을 보인다.

여름에게는 최대의 의사 표현일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답게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Seriously?"

"레알 팩트."

"Oh my god……. Why? 왜?"

"여름이 하도 안 만나줘서, 보고 싶어서 복학했지."

"No잼~"

"……."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여름도 한국에서 생활한 지 한두 해가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졌다.

방금도 손을 허락 없이 만졌는데 쏘아보는 선에서 그쳤다.

'외국인들이 그래서 한국이 좋다고 하더라고.'

한국이 여행 만족도는 그럭저럭이지만, 살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하거나 열광까지 한다.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다이나믹하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북한이 도발하고, 일본이 망언하고, 중국이 우겨대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재밌을 수 있다.

사건이 끊이지 않고 터지니까.

시간의 흐름이 빠른 나라에서 살다 보면 영향도 짙게 받게 된다.

"잘 지냈어?"

"그렇다! 그렇다!"

"정말? 고민은 없고?"

"Um……, no problem!"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서은이 수집해준 배경을 듣고 나니 원인이 짐작이 간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 보니.'

흔히 있는 이야기다.

너무 예뻐버리면, 눈에 띄면 도리어 안 좋은 측면이 많다.

남자애들은 잘해주려고 하고, 여자애들은 그래서 더 싫어한다.

연구실 내에서의 고립.

여름의 마음이 아직도 닫혀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 내가 도움을 주려고 한다.

"아니다! 아니다!"

"맞다. 맞다."

"Stop being nosy! 바보. 바보."

"너만 사랑하는 바보."

조금 오지랖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서양권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니 말이다.

하지만 but 여기는 한국이다.

오지랖이 생활화된 나라.

옛날에는 옆집 숟가락 수도 알았을 정도다.

"진짜 간단하고 쉽다니까? 일단 들어나 봐."

"쩡환 싫다. 밉다."

"요지는 간단해 논쟁거리를 없애면 돼."

그녀에게 밉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아픔을 딛고서라도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다.

'악역은 익듁하니까.'

남자들은 그녀에게 사심을 가진다.

여자들은 비교되고,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견제한다.

그 해결법.

의외로 간단하다.

아주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된다.

"Are you kidding me?"

"진지해."

"OK. OK. I undertand. 이해한다. 하지만 안 된다."

사귀는 남자가 있으면 된다.

그러면 남자들은 포기할 테고, 여자들은 견제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의 완벽한 계획을 들은 여름이 당황해한다.

납득은 가지만 자신은 절대 실행할 수 없다고.

"안 될 게 뭐 있어."

"우리집 그렇다. 혼인 전에 Never!"

"더 이상은 Naver."

여름의 고향은 유타주.

몰몬교의 발상지답게 보수 그 자체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으로서 공감하지.'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금기시되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사사로이 어울릴 수 있느냐?

"요즘은 전남친, 전전남친, 전전전남친 기본이야."

"No! No! No! What the hell!"

"그걸 하라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가짜로 사귀는 척 해보라는 거지."

"Um……."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고민하는 듯한 기색도 보인다.

그도 그럴 게.

'불편을 겪는 건 자신이니까.'

당사자는 결국 그녀다.

이대로 있으면 가시방석이다.

친구를 사귀고 말고를 떠나서 불편하다.

고민을 안고 갈 이유가 있을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녀에게는 있었다.

"거짓말 못한다."

"응?"

"남자 없다. 가짜 boyfriend 못 만든다."

거짓말도 쳐본 사람이나 칠 수 있는 법이다.

몰몬교 신자이자 트럼프 지지자로서 남을 속여본 적이 없다.

'맞아. 황럼프가 주가는 잘 올려줬지.'

미국에서 유타주 사람.

고리타분한 순둥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글자 그대로 착하긴 하지만 답답하게 산다.

남친이 있는 척.

그 자체를 못 하겠다.

만약에 한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

"내가 있잖아."

"What? What?"

"내가 남친 대행을 해주는 거지. 남들한테 남친 소개할 때 나라고 하면 돼."

"??"

착하다는 이유 하나로 손해 보고 산다.

그런 여름을 도와주고 싶다.

순수한 호의가 사무친다.

"나 싫어? 나는 안 돼?"

"No! No! Just……, 진지한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나?"

"내가 사귀는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름이 난처하다고 하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고민하는 눈치.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없었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그녀의 성격을 감안하면 십중팔구 그러하다.

"정말 해결된다?"

"밑져야 본전인데 안 할 이유도 없잖아."

"Um…… 알았다. 알았다. 해보겠다. I'll try it."

예쁜 미간에 주름이 지어진다.

그 정도로 심각한 고민인 것이다.

'이게 뭐 별거라고.'

거짓말.

뭐든지 처음이 가장 어렵다.

한 번만 해보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오를 일도 머지않을 것이다.

"그럼 커플링 하나 맞출까?"

"Why? Why?"

"증거가 있어야지. 한 번 보여주기만 하면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거든."

"Oh……. Good idea!"

기정사실은 하나둘 만들어가면 되는 일이다.

활짝 웃는 여름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찔리듯 아프다.

'여하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나의 애인이 된 여름의 손을 꼬옥 잡는다.

여기까지는 허락했으니 별일 없을 것이다.

"쩡환! 쩡환!"

"낭군."

"낭군!"

"왜애?"

"쩡환 유명하다. 친구들 안다."

"오승우라고 해 그럼."

"씅우! 씅우!"

혀 짧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주위 여자들이 여름을 시기하는 이유가 이해는 된다.

'나야 좋지.'

부드러운 손을 어루만지며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보통 여자들은 10초를 채 못 마주치는데 여름은 그런 게 없다.

이것이 연인 간의 교감이라는 것도 모르는 듯한 반응이다.

그건 그거대로 즐길 거리라 재미있다.

"이따 강의 끝나면 다시 올게."

"알았다! 알았다!"

"그때 같이 커플링 맞추러 가자. 응?"

"OK~!"

인형 같은 외모에도 순진한 반응이다.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다.

여름의 첫 번째 남자친구로서 말이다.

시대는 변화를 거부하는 자를 거부한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일 수는 없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일단 가볍게 뽀뽀부터 크흠.'

안달이 살짝 난다.

원래 손 다음은 뽀뽀가 국룰인 법이다.

욕심을 내볼까 고민이 일고 있던 참에.

"승우 선배!"

최근 공들이고 있는 소소한 재미가 올라온다.

* * *

등나무 정자 아래.

캠퍼스를 오다니며 보면 눈길이 가는 장소다.

나무줄기가 너무 예쁘게 우거졌다.

건축물인 정자와 조화를 이룬다.

시간이 만들어낸 마술이다.

신입생인 소영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학교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정자 하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응?'

그 정자에 누군가 앉아있다.

여름도 아닌데 굳이 이 시기에?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얼굴이 낯익다.

최근에 안면을 튼 선배.

딱 한 명밖에 없다 보니 틀릴 리가 없다.

승우 선배가 정자에 앉아있다.

"선배!"

자신도 모르게 인사를 하고 만다.

그 말고는 딱히 할 사람이 없다 보니 괜히 반갑다.

조금 빨라진 걸음걸이로 다가가던 차.

소영은 눈치채고 만다.

옆자리에 누가 앉아있다.

"어,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님……."

"응? 아~ 인사해. 학과 후배."

이질적이라 오히려 눈치채지 못했다.

금발의 미녀.

척 봐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란 건 알겠다.

딱히 드문 일도 아니다.

한국대에는 수많은 유학생이 있고, 자신도 몇몇 강의는 유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뭐야? 모델이야?'

너무 예쁘다.

조금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순간 벙이 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소영을 향해.

"안뇽!"

"?"

"대학원생이야. 딱히 나이 따지진 않겠지만 혹시나 해서."

"아~ 안녕하세요! 승우 선배 후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인사를 해온다.

웃긴 목소리로 말이다.

접근하기 힘든 인상과 달리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응?"

"두 분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

"……."

흔히 보기 힘든 사람인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싫어.'

이렇게 예쁜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게.

괜시리 심각한 자신과 달리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친구의 친구야."

"아~ 친구분."

"걔는 졸업했다고 하고, 여름은 대학원생이라 남아있지."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다.

복학생이면 최소 12학번이라는 이야기고, 같은 학번의 이성은 졸업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10학번보다 더 될 것 같긴 한데 에헹.'

먼저 물어보기가 뭣해서 아직까지 못 말하고 있다.

별일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건 눈앞의 여자.

자신을 말똥말똥 쳐다본다.

생각보다 귀엽다.

"둘이 소개할래?"

"Hi! 나는 여름이다."

"네?"

"이름이 여름이야."

"아~"

"혹시 알아?"

"아뇨, 저 신입생이라 잘 모르는데 유명한 선배님이신가요?"

"여러 의미로."

말투도 말이다.

전혀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부류일 것 같다는 실례스러운 생각이 조금 든다.

'역시 사람은 겉보기로 판단하는 게 아니구나.'

엄청 예쁜 것만 빼면 자신과 같은 사람.

이야기를 섞다 보니 점점 친밀감을 느낀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사무쳐진다.

"언니 여기 자주 있어요?'

"그렇다! 그렇다!"

"그럼 지나가다 언니 보면 인사해도 돼요?

"Why not?"

"에헹."

외국인이라니!

그것도 예쁜 사람이라니!

승우 선배 덕분에 좋은 언니를 알게 되었다.

'방송에서도 떠들 거리도 생기고.'

학교 생활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없다.

맨날 강의 듣고, 학식 먹고, 집 가고를 반복하던 일상이다.

친구가 없니?

아닌 척해도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연상이긴 하지만 두 명이나 생겼으니 이제 당당하다.

"선배 저 그럼 가볼게요~"

"잠깐만!"

"?"

"같은 강의잖아. 같이 가자."

"아~ 네, 그래요!"

"Bye Bye~"

"언니 다음에 꼭 봬요!"

대학교 생활이 조금은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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