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49화 (549/846)

549화

어찌저찌 잘된 모양이다.

'잘될 수밖에 없지. 누구 작품인데.'

보라판.

일반인 시점에서는 이해가 안 간다.

쟤네는 대체 왜 화를 내는지, 방송에 왜 저렇게 몰입하는지.

정공법으로 부딪히면 절대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본질적인 이유 자체가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거야 그냥.'

누군가를 욕한다.

정의를 구현한다.

그런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게 아니다.

재미를 찾을 뿐이다.

BJ는 광대.

누가 되었든 자신들의 심심함을 달래주기만 하면 된다.

자극에 절어진 뇌는 어지간한 걸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이제 저한테 욕 안 해요."

"예쁘다고 들으니까 좋아?"

"에헤헹."

다른 장난감을 쥐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진다.

해결법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재밌는 걸 던져주면 돼.'

정치인들도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자신의 비리나 사건·사고를 덮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이슈를 터트리는 것이다.

정치인 ○○○의 비리를 묻기 위해 연예계 폭로한 거 아니냐?

21세기에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진짜 이상한 놈들 많더라."

"맞아요."

"마음 고생 심했지."

"조금요……."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

행동 원리만 생각하면 말이다.

세 살 먹은 애새끼를 상대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세 살이 가장 말 안 들을 때긴 하지.'

미운 3살.

청개구리처럼 부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반대로만 행동하며 속을 썩인다.

그런 지랄 맞은 시기를 평생을 사는 부류도 있다.

일반인들 시점에서 이해가 안 갈 만도 하다.

하지만 애들 달래는 게 그렇듯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나로서는 예상 패턴이 뻔하게 그려진다.

"다행이네."

"정말 힘들었는데 선배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다행이야."

"아, 아 잠깐만요 선배……."

그렇기에 친 사고이기도 하다.

다른 사고를 위한 포석.

소영을 꼭 감싸 안는다.

'존나 조그맣네.'

머리 하나만큼 작은 키.

앉은 상태에서도 품에 쏙 들어온다.

당황해하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서, 선배 누가 봐요……."

"미안. 너무 기뻐서."

셔츠 너머로 따듯한 입김이 느껴진다.

꼼지락대는 손가락과 무언가 부드러운 움직임.

귀여운 반응을 잠시 즐기고 팔에서 힘을 뺀다.

다시 본 소영의 볼은 붉게 상기돼있다.

"혹시 고소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정말?"

"네, 악의로 그러신 게 아닌 걸 아니까……."

머리카락을 만지며 굉장히 쑥스러워한다.

대놓고 처녀스러운 반응이다.

'당연히 싫어 안 하지.'

남자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 말이 남자를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성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관심 없는 척할 뿐.

그리고 잘 모를 뿐.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와 닿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소영이 냄새 좋다."

"아, 아 그러니까 저……."

"의자 좀 당길게. 춥다."

등나무 정자.

일자 벤치를 엉덩이 하나 거리만큼 좁힌다.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사랑은 호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나이대에서는'

그 사람의 배경이나, 수입이나, 장래를 따져가며 만나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외모에 비중이 있지만 그것이 또 전부는 아니다.

그냥 편한 사이.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빠르며 확실한 방법이다.

"애청자들은 뭐래?"

"엄청 예뻤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에헹."

"화장빨이잖아."

"그, 그렇기는 한데요 아."

"잠깐만 각도 잡으려고 그래."

얼굴을 만질 수 있는 권리도 얻었다.

젖살이 전혀 빠지지 않아서 찹쌀떡처럼 부드럽다.

'이렇게 만지다 보면.'

심적인 저항감도 서서히 무뎌진다.

가장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다.

살살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또 변신해야지."

"변신까지는 아니거든요!"

"아니야?"

"에헤헹."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타인이 자신을 만진다는 건 상당한 거부감이 동반되는 일이다.

'미용실을 갈 때만 해도.'

처음 가는 미용실은 괜시리 긴장된다.

하지만 단골이 되면 잠이 솔솔 올 정도로 손길이 편안하다.

호감과 익숙함.

두 가지를 기반으로 천천히 쌓아나간다.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닦아뒀으니 시간문제다.

"또 해주실 거예요?"

"어떨까."

"해주셔야 되는데 안 해주면 저 캠 못 켜는데;;"

"응?"

"저 화장 안 하고 나타나면 엄청 실망할 거 아니에요."

첫 단추를 꿰었기 때문이다.

캠 데뷔.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족쇄가 채워진다.

'기대치가 확 높아졌을 거 아니야?'

듀라한.

그런 컨셉인 것도 모르고 그냥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는 요지는 간단하다.

못생겼으니까 얼굴을 안 까겠지.

실제 일어난 여러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예외는 있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라는 기대가 싹튼다.

그것에 해당된다면.

"가끔 정도는 해줄게."

"정말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학식 사드려요?"

"학식은 좀 싸고. 화장품 값이 얼만데."

"아, 그렇네……."

반대급부로 뜨는 것도 가능하다.

어디까지나 계기.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180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

'내가 컨설팅 해주면.'

거의 확실히 띄울 수 있다.

갑자기 인기BJ가 된다는 감당 못 할 상황에 처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냥 상상.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강요할 만큼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머리를 쓰다듬는다.

"좀 더 맛있는 거 사줘."

"저 사드릴 수 있어요! 별풍선 많이 받았어요 이번에."

"그래?"

"에헤헹."

"맛있는 거 꼭 먹고 싶네."

"?"

얘가 워낙 순수해서 양심이 찔릴 지경이다.

착한 아이에게 너무 못된 장난을 치고 싶진 않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서두르면 될 것도 안 된다.

머리를 타고 볼까지 스르르 미끄러진 손을 뗀다.

"아!"

"응?"

"오빠 저 다음 강의 곧이에요."

"그래? 오빠는 공강이야."

"저 가볼게요. 이따 문학관에서 봐요~!"

"잘 가."

아직 설익었다.

* * *

BJ여름으로부터 촉발된 사태.

〔개인 방송 갤러리〕

―똘이<<얘 호감이면 개추 [5] +5

―저 얼굴로 왜 여캠 안 하고 듀라한 하고 있던 거냐 [10] +7―한국대는 대체 어떤 곳일까……

―한국대 오정환이 다니던 곳 아니었나? [2]

이제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타오르고 있다.

심심풀이 샌드백 정도로 여겼던 듀라한 BJ가.

―저 얼굴로 왜 여캠 안 하고 듀라한 하고 있던 거냐

[BJ똘이 화면 캡처. jpg]

캠 키면 큰손들이 줄을 서겠는데

└존나 멀쩡하게 예쁨 ㅋㅋ

└애초에 별창 아니고 그냥 하꼬인데 갠방갤이 좌표 찍고 지랄한 겈ㅋㅋㅋㅋㅋㅋㅋ└얼굴 깐 계기도 웃김└갠방갤이 발굴했다 ㅇㅈ?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던 것이다.

개인 방송 갤러리의 예상과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듀라한을 놀리는 이유.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까닭.

어차피 못생겼을 거라는 전제가 깔린다.

―똘이<<얘 호감이면 개추

[BJ똘이 화면 캡처. jpg]

이 얼굴로 별창 안 하는 이 시대 마지막 탈김치

└급호감됨

└요즘 갠방갤픽이지

└때려도 암말 못하는 게 졸귀임

└여캠들 성깔이라 비교되네

아무리 악질적인 시청자라도 사람이다.

행동 원리가 전제돼있지 않으면 말을 하는데 가책을 느낀다.

못생긴 년이 이쁜 척하면서 돈을 번다고?

속고 있는 시청자들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저지른 일이다.

그것이 완전히 뒤집혔다.

알고 보니 예쁜 년이었다.

미안해서라도 잘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여름좌 오피셜 떴는데?

[BJ여름 방송국 공지사항. jpg]

똘이랑 친구 맞대

└본인 등판하게 만드네

└얘는 그냥 순수하게 걱정돼서 한 말이었음

└대단하다 ㅈ방갤!

└똘이 건들지 마라 가만 안 둔다 ㅇㅅㅇ

확증까지 얹어진다.

깔래야 깔 거리가 없다.

BJ똘이의 주가가 상승하게 되는 것은 필연.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일련의 소문은 일반 커뮤니티에까지 퍼지게 된다.

이종격투기 ? 「캠 실수로 켠 듀라한 근황. jpg」

樂 SOCCER ? 「어느 날 목소리 좋은 노캠 BJ가 캠을 켰다」

도탁스(DOTAX) ? 「힘숨찐) 단순 얼굴 공개만으로도 화제가 된 BJ」

인터넷 방송 관련 화제.

이슈가 되는 것은 이제 드물지도 않다.

―BJ 똘이 사태 엄청 웃기네 ㅋㅋ

얼굴 안 까는 BJ라고 테러했는데

알고 보니 졸예라 여론 반전됐나 봄

└왜 테러함?

글쓴이? 개인 방송 갤러리가 원래 BJ 까는 곳이라고 함└얼마나 뻘쭘했을까

└심지어 한국대라던데 스펙 쩔음 ㄷㄷ

하물며 여자 이야기.

통쾌하고 훈련한 결과.

한 번쯤 관심을 가지게 될 만한 화두다.

적지 않은 크기의 관심이 쏠린다.

그녀의 방송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허니버터칩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욕해서 미안해요 똘이님!

"허니버터칩 님 100개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욕하지 말아주세요."

?말투 귀엽다

?욕하지 말아 달래 ㅋㅋ

?하지 말란다고 안 하겠냐고야~

?정박아 같은 매력이 있네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방송 시청자 수가 세 자리.

많아도 50명 아래이던 시청자 수가 배 단위로 늘어난 것이다.

'에헤헹.'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소영은 아직도 잘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은 일 같다.

시청자 수도 많아졌고, 별풍선도 전보다 많이 받는다.

무엇보다 간간히 올라오는 채팅.

?이분이 그 힘숨찐 듀라한?

?캠 좀 켜주세요!

?내 취향임 ㅇㅅㅇ

?방장님 키 157 안 되죠??

칭찬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사람들이 자신을 예쁘다고 인식하고 있다.

갑자기 인기인이 된 기분이라 내심 우쭐하다.

한 편에서는 걱정도 든다.

―존나큰손임님, 별풍선 2828개 감사합니다!

캠 좀 켜주시면 안 돼요??

"와……, 이천팔백이십팔 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캠이요??"

?리액션 뭔데

?이뻐이뻐개를 모른다고?

?저분 유명한 큰손임 ㄷㄷ

?진짜 좀 댕청하네

자신의 외모.

평소의 상태가 아닌 화장빨이다.

그것도 친한 오빠의 도움을 빌려야만 가능하다.

외모가 계속 화제가 되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님에도.

딸칵!

하게 된다.

소영도 웬만하면 지양하고 싶지만 시청자들이 원하고, 별풍선도 막 엄청나게 터졌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그녀에게는 큰돈이다.

사람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다.

?오오 졸예

?지금 스무 살임??

?와 신입생 파릇파릇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캠 유망주다!

마침 하교 전에 화장을 받았기도 하다.

캠을 키자 쏟아져 나오는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에헤헹.'

자신의 미모에 사람들이 찬양한다.

난생처음 해보는 익숙지 않은 경험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존나큰손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말 한국대에요? 이렇게 예쁜데?

"에헹, 한국대 맞아요. 예쁘면 한국대 가면 안 돼요?"

?되지

?억까 하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

?지들 인생 못 사는 놈들이 꼭 남들 인생에 참견~

?억빠 새끼들 이제 깔 거 떨어짐? ㅋㅋ

희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고양감에 취해버린다.

스스로 예쁘다고 해도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는다.

'에헤헹~'

히죽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으며 방송을 이어나간다.

시청자도 많고, 별풍선도 많이 터진다.

반응도 좋으니 할 맛이 너무 난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연결될지 소영으로서는 아직 상상할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