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개인 방송.
성장을 하면 할수록 쉽지 않다는 건 파프리카TV가 특히 더하다.
'시스템상.'
토이치TV나 유튜브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에 반해 파프리카TV는 입에서 입이 전부다.
어느 쪽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양쪽 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한 가지 필연이 있다면.
"요즘 소영이가 많이 힘들대."
"Really?"
너무 과할 때가 있다.
BJ 본인이 소화하지 못하는 이상의 어그로가 끌려버린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맞는 말이지만, 물이 아니라 파도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Um……, OK! 말하겠다. 시청자들 plz, calm down."
"근데 알고 있었어?"
"모르겠다."
대학가의 한 수면 카페.
공강 시간을 때우기 위해 왔다.
겸사겸사 데이트도 즐기고 있다.
여름이 산뜻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소영의 상황을 전해주자 방송국에 다시 글을 올려보겠다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혹은 밀어주는 뉘앙스를 취했다면 이런 일도 없긴 했을 것이다.
의외로 그녀는 남한테 정말 관심이 없다.
연구실 내에서의 트러블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한두세네 가지는 아닌데.
"쩡환! 쩡환!"
'낭군."
"바보 낭군……."
"응?"
"해도 된다."
"뭐가?"
"Kiss!"
그냥 귀찮은 것이다.
굉장히 개인주의다.
서양 사람답게 말이다.
합리주의이기도 하다.
내가 제안한 방식.
간편하면서 효과적이라며 수용한다.
'그럼 바로.'
전자기기 살 때도 설명서는 안 읽는 법이다.
일단 된다고 했으니 바로 스위치부터 켜야지.
쪼옥!
입술과 입술을 맞댄다.
반응할 틈도 없이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포착한다.
작은 얼굴을 잡고 허리에 손을 둘러 자세를 고정시킨다.
그대로 입술의 감촉을 즐긴다.
'입술 차갑네.'
날씨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지 않다.
본인도 정말 인형처럼 반응이 없다.
그래서 더 흥분된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교대로 빨며 탐색한다.
살점이 단단하다.
말캉과 부드럽다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면서도 도톰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이다.
"해도 되는 거 맞지?"
"그렇다. Why not?"
"땡큐!"
선조치 후보고.
본인도 개의치 않는다.
가림막도 쳐져 있으니 느긋하게 즐긴다.
'진짜 인형 같네.'
성을 모르는데 무뚝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준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굉장히 샘솟는다.
입술을 하나씩 부드럽게 푼다.
침을 묻히고 압력을 주어 수분을 흡수하게 만든다.
풀린 입술에 표면적이 넓게 부딪혀 도톰한 감촉을 느낀다.
여름이 의식하게 하는 게 목표.
"Stop! Stop!"
"응?"
"It's…… to long. Why? WhY?"
"그럼 쪽 하고 끝나는 줄 알았어?"
조금 지나쳤을까.
오랜만에 당황한 여름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한 키스와 다른 모양이다.
'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적어도 혀는 넣어야 뽀뽀가 아닌 키스라고 할 수 있다.
시도를 해봤지만 가드가 꽤 단단하다.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름이 물티슈로 입술을 벅벅 닦으며 나를 째려본다.
"그래서 첫 키스는 어땠어?"
"간지럽다. 바보 같다."
"다른 감상은?"
"모르겠다. There's no point of doing this."
그래봤자 이미 볼 장은 다 봤다.
혹시나 해서 넌지시 물어봤는데 사실인 듯하다.
'감사합니다.'
원래 처음에는 별생각 없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평생 동안 말이다.
"여보~"
"바보 낭군 귀찮다."
"이렇게 사이 좋은 사진을 찍으면 의심 절대 안 받을 거 아니야."
"Um……, OK!"
기정사실도 남겨둔다.
침대 위에서 꽉 끌어안고 있는 사진.
누가 봐도 진도를 성실하게 나간 커플의 모습이다.
'평생 가보로 간직해야지~'
구글 클라우드에 저장을 마친다.
손을 살짝 엄한 위치까지 올려 위험천만한 느낌의 섹시샷도 몇 장 확보해둔다.
"근데 정말 괜찮아?"
"What?"
"처음이잖아. 나한테 줘도."
"괜찮다. 괜찮다."
"아, 나도 여름이 좋……."
"회의했다. 부모님, 친척 say 괜찮다. Kiss는 OK!"
"……."
조금 무거운 사랑이었다.
가문 대대로 트럼프를 지지하다 보니 보수적인 마인드가 뼛속 깊이 박혀있다.
가문 회의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키스 하나 가지고 이렇게 스케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맛있었으니 되었다.
골치 아픈 것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보다 당장 눈앞에 아른거리는.
"후우……, 후우……."
수면 카페.
본래의 목적대로 충실히 이용하고 있다.
무방비 상태로 곤히 자는 여름이 너무 귀엽다.
얼굴이 진짜 작다.
물론 주위에 대가리 작은 애는 봄이를 포함해 많지만, 대부분 체형까지 같이 작은 케이스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다.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
한 차례 감상을 한 후 입맛을 다신다.
'키스랑 포옹까진 괜찮잖아.'
본인에게 허락도 받은 마당이다.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배게를 넣고 어깨를 감싸 쥔다.
쭈웁!
여름의 체온과 체향을 느끼며 입술을 포갠다.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맞대고만 있는다.
'괜히 깼다가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해.'
가늘고 길게 가는 편이 단연코 좋다.
수면 시간은 1시간은 더 남았다.
쭈웁쭈웁
도톰한 입술을 마음껏 즐긴다.
집요하게 애무를 반복하자 점점 부드러워진다.
정말 맛있는 입술이 된다.
계속 사랑을 나눈다면 배우급으로 섹시해질 것 같다.
'다음 진도를 못 나가서 아쉽네.'
몰래 혀를 넣어보고 싶었지만 침투가 번번히 막힌다.
억지로 벌리다가는 잠이 깰 수 있다.
쭈웁
대신 먹이는 건 가능하다.
침을 조금씩 흘러 넣어 무조건반사를 유발시킨다.
꿀꺽
식도가 움직인다.
제대로 삼킨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여름을 꼭 하고 끌어안는다.
'반드시 내 여자 만들고 싶다.'
원래 고지식한 여자일수록 한 번 배우고 나면 부뚜막에 오르는 법이다.
공을 들여서 천천히 나아간다.
한 번 찍어 안 넘어가면 10번, 100번 시도를 해보면 된다.
복학까지 했으니 한동안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쩡환."
"잘 잤어?"
퇴실 5분을 남기고 일어난다.
기지개도 없이 기계처럼 여름이 나를 쏘아본다.
"쩡환."
"낭군."
"쩡환!"
"화났어……?"
"나 잤다. You maybe 만졌다!"
"……."
찔리는 바가 조금 있다 보니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원칙은 철저하게 지켰다.
"포옹이랑 키스만 조금 했어."
"Hmm……."
"……."
"알았다!"
"응?"
"솔직하다. 봐준다."
"괜찮아?"
"I agree to it. No problem!"
괜찮은 모양이다.
더치페이로 카페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간다.
'역시 사람은 솔직하게 살고 볼 일이지.'
굉장히 쿨하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성격이다.
"Bye, Bye~"
연구실로 떠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2세를 만들고 싶다.
'딱 안을 때 느낌이 오는데.'
굳이 선을 넘을 것도 없이 촉이 온다.
DNA에서 오는 원초적인 감각 말이다.
첫눈에 반했다의 좀 더 구체적인 버전.
본인한테 말하면 뺨 맞을 소리이니 삼간다.
"선배~ 선배~!"
맞교환을 한 이와 대면한다.
* * *
스타벅스 안.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소영은 고개를 푹 숙인다.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이마에 맺혀 물방울이 생기려고 한다.
눈가도 눈물이 맺힐 것처럼 그렁그렁하다.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그러게요."
"누구 막 깨물어서 상해라도 입혔어?"
"그런 건, 그런 건 당연히 아닌데요;:"
방송을 하며 항상 즐거웠다.
어려운 일도 있었고, 힘든 일었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즐겼다.
지금과 같은 사태.
정말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제가 어떻게 했어야 되는 걸까요……."
"네가 잘못한 것 같아?"
"네."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시청자들.
자신을 따라 와준 사람들도 실망시키고, 보러 와준 사람들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러려고 BJ를 했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그런 소영의 손을 꼭 하고 잡아준다.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제 방송이니까."
"너는 하나도 잘못한 게 없어. 그냥 상황이 나빴을 뿐이야."
"선배……."
정말 힘들다.
무너질 것 같다.
승우 선배가 아니었다면 울음을 터트렸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이전에 들어줄 사람 하나 없었을 것이다.
소영에게 있어 그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고마워요.'
단순한 말이라도 위로를 들으니 감동이다.
꽉 막혔던 숨이 다시 쉬어지는 기분이다.
머릿속 구름도 조금씩 젖혀 나간다.
"선배 생각에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아 보여요?"
"일단 술 한 잔."
"?"
"아니, 하루 푹 쉬면서 기운부터 북돋자."
"어……."
"고민해서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고민하는 게 아니야."
"그, 그럴까요?"
승우 오빠의 말이 옳다.
일단 이 꿀꿀한 기분부터 어떻게 해야만 한다.
필요한 건 기분 전환.
같이 놀아줄 사람까지 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욕하는 게 아니다.
소영은 밝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럼 오늘 하루 놀까요?"
"강의는?"
"하루 정도는 에헹. 그동안 성실히 들었으니까!"
"불량 학생 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무엇보다 선배가 함께 있다.
가끔씩 짓궂지만, 중요할 때는 가장 의지가 된다.
지난번 술을 마셨을 때도 큰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는 절대 그런 실수 안 해야지.'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일에도 이불킥을 찼지만, 그 이후로도 생각날 때마다 각력을 단련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배를 방에 들였다.
냄새가 났거나, 더러워서 실망했을 수도 있다.
다시 초대할 때는 깨끗하고 산뜻한 방에 들이자고 맹세를 했는데.
'응?'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이었다.
고요한 밤.
소영은 눈을 뻐끔뻐끔 뜨며 주위를 둘러본다.
익숙한 자신의 방이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일어나려 하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가 어제 뭘……, 했더라?'
몽롱한 기분.
술을 마셨다.
승우 선배와 노래방에서 놀다가, 분위기를 타서 처음 보는 술집에 갔다.
거기서 음료수 같은 술을 마셨다.
몇 잔 마시다 보니 엄청 들떴다.
뭐라고 막 떠들다가 필름이 뚝.
'…….'
또다시 민폐를 끼친 모양이다.
안 봐도 비디오.
잔뜩 취해서 선배의 도움을 받아 집까지 왔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다 보니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킥을 하고 싶지만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에헤헹.'
기분은 풀린 것 같다.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졌다.
한숨 푹 자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
그전에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왜인지 몰라도 입안이 텁텁하다.
아마 술 때문일 것이다.
끼익!
냉장고 문을 젖힌다.
삼다수를 물컵에 따르고 꿀꺽꿀꺽 마신다.
"푸하~!"
달달하다.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이대로 침대에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응?'
냉장고 불빛.
해가 완전히 저문 어두컴컴한 밤이다 보니 유난히 밝게 빛난다.
그 불빛에 무언가가 보인다.
침대 위.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더니.
부스럭부스럭
소리까지 난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자신의 침대에 누군가가 있다.
자신이 자고 있던 바로 옆자리에 말이다.
그 누군가가 심지어 움직여서 다가온다.
"아, 아, 아아……."
소리를 지르고 싶다.
얼굴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호달달 떨고 있는 소영을 향해.
"나, 나야."
"승우 선배……?"
익숙한 목소리가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