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56화 (556/846)

556화

사람마다 맞는 컨셉이 있는 법이다.

'뜨려고 발악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있다.

컨설턴트로서 본인이 원한다면 신경 써주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 사람 많으니까 손 잡고 가자."

"손이요?"

"여기 엄청 무서운 동네야."

"네! 꼭 잡을게요!"

물론 Give&Take.

무료 노동은 지양하는 편이다.

대가는 확실히 받는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긴 한데.'

손이 엄청 작다.

피부도 보들보들하다.

손가락이 가늘어서 무슨 애새끼처럼 느껴진다.

가는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닌다.

인파가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어디 가는 거예요?"

"장비 사러."

"관우, 유비, 장비!"

"안 맞춰줘도 돼."

"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었지만 데이트도 할 겸 밖에 나왔다.

선의의 거짓말이니 괜찮을 것이다.

딸랑♪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기도 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주인 아저씨가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해준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선제요."

용산 상가.

정상과는 거리가 먼 상인들이 득실댄다.

서울 가서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 는 속담은 아마 이 근방에서 유래됐을 것이다.

"이거랑요."

"이거 구하기 힘든 건데……."

"이것도."

"하나밖에 안 남아서~."

"그리고 이 마이크까지 해서."

"요즘 국내에 잘 안 들어오는 것만 고르네. 학생 돈이 좀 있나 봐?"

처음 가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구체적으로는 자유시장 1서버의 토벤머리 장사꾼과 거래하는 느낌이다.

"요즘 해외 배송 잘되는데요."

"그럼 인터넷으로 사든가!"

"그럴까요?"

"잠깐! 잠깐! 얼마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거래도 많이 해보면 익숙해진다.

메이플스토리만 해도 하루이틀 해본 몸이 아니다.

'전통시장에 그런 곳이 좀 많아.'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 힘든 물품들이 특히 그러하다.

판매자 입장이나, 소비자 입장이나 아쉬운 측면이 있다.

그런 물품들을 탈세해서 판다.

이곳보다 더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대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상인이 갑이 되는 구조다.

용산을 제외해도 몇 곳 있다.

수산물 시장, 주류 시장 기타 등등.

컴퓨터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분명 그러했지만.

"다 살 테니 35만 원 해주세요."

"다른데 알아봐 다른데! 어딜 날로 처먹으려고."

"현찰로 할 테니 34만."

"아, 아니 잠깐. 정도 없이 그걸 또 깎으려고……. 잠깐만 기다려봐!"

더 이상 날로 처먹을 수 없는 시장이 형성된다.

소비자도 마음만 먹으면 원가에 물건을 구할 수 있다.

주인 아저씨가 툴툴거리며 계산대로 간다.

대략적인 가격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협상이다.

"34만 원이나 돼요?"

"직구 하면 좀 더 비쌀 거야."

"아~ 이래서 컴퓨터는 용산에서 산다고 그러는 거구나."

"그건 아니고."

"?"

본래라면 당연히 더 비싸게 판다.

벼룩의 간도 기꺼이 빼먹을 족속들이니 말이다.

'내가 알고 있다는 티를 팍팍 냈으니까.'

하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좋게 좋게 넘어간다.

괜히 원한을 샀다가 신고당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돈 있지?"

"네, 카드 있어요!"

"아가씨 여기 카드 안 받아~"

"네? 왜요?"

"오빠가 낼 테니까 이따가 현금 인출기에서 뽑아서 줘."

"네……."

원가에서 탈세한 가격을 빼 최종 가격을 산출했다.

인터넷 구입보다 10% 이상은 저렴할 것이다.

'물론 내가 사는 거면 탈세하지 않았겠지만.'

돈도 못 버는 학생이 세금까지 째깍째깍 내라고 하면 억울하다.

안 그래도 인생 난이도 헬로 사는 세대다.

나중에 돈 잘 벌어서 더 내면 된다.

지갑에서 신사임당 일곱 장을 꺼내 건네준다.

그걸 또 다 받으려고 하는 걸 간신히 1만 원 건네받는다.

가격만 알면 좋은 구석도 있다.

바로 가져올 수 있으니, 당장 필요한 경우에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그래픽 카드 사러 왔는데요."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이거 20만 원에 될까요!"

"손님 맞을래요?"

물론 너무 심하게 깎으면 생명이 위협당할 수도 있다.

이곳이 무서운 동네라는 사실은 겁주려고만 한 소리가 아니다.

물건을 샀으니 바로 나간다.

나도 가능하면 안 오고 싶은 장소다.

소영과 데이트라는 핑계를 위해 나왔다.

"오옹~ 엄청 비싼 마이크 같아요."

"그치?"

"좋은 거예요?"

"이걸로 말하면 목소리만 들어도 뿅 갈걸?"

"에헹, 설마요~"

손을 꼭 잡고 이동한다.

보호욕을 자극해서 귀엽다.

조물딱조물딱 하며 마음껏 즐긴다.

"근데요."

"응?"

"선배 이런 거 잘 알아요?"

"크흠! 여캠들이 많이 쓰더라고."

"아, 네……."

반응도.

보통 여자들이 이런 이야기 싫어한다.

하지만 그 싫어 한다에는 보통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질투에 가까운 감정.'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시콜콜 참견하고 바가지를 긁는 것이다.

그것은 곧 관심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삐뚤어진 애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오빠가 파프리카TV에서 알바를 했었거든."

"아~!"

"무슨 생각했어?"

"네?"

"오빠가 여캠 보면서 헐떡거리고, 별풍 쏘고 그랬을까 봐?"

"그, 그런 건 아닌데……."

노골적인 표정 변화에 다 실려있다.

어린 애들은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대답해봐 듣고 있으니까~, 이러지 않는다고.'

데리고 다니기만 해도 즐겁다.

이런 풋풋함은 정말 대학교 신입생들한테나 느낄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간다.

해가 어둑어둑한 밤이 다 되었다.

필요한 물품도 중간에 사간다.

딸랑♪

편의점.

최근 자주 들리는 것 같다.

과자와 맥주, 여러 가지를 사고 계산대에 들린다.

"아, 오늘은 안 사요. 전에 쓰던 게 있어서."

"?"

이 시간대 알바와는 구면이다.

소영의 손을 움켜잡은 채 물건을 계산하고 나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녀의 자취방에 들어간다.

산뜻한 여자방 냄새가 반겨준다.

"오빠 오늘도 자고 가도 돼?"

"자고요?"

"이거 설치하면 차 끊길 것 같아서."

"돼요. 되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어차피 오빠도 자취하거든."

"아~ 괜찮아요!"

"오빠 믿어줘서 고마워."

소영을 꼭 안는다.

당황해하면서 싫어하지 않는 순박한 반응.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복수를 할 기회지.'

아작 난 엄지손가락의 원한은 반드시 달래준다.

그러기 전에 일단 본격적인 일부터 한다.

"오늘은 기본적인 것만 할 거야."

"기본이요?"

"시청자분들이 별풍선 쏴주셨잖아."

"네!"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먹는 게 전에, 사실은 방송 장비부터 업그레이드해야 돼."

"아……."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쭈뼛거린다.

나한테 사준 거 말고도 혼자 치킨도 시켜 먹고 그랬을 것이다.

'원래 다 그래.'

엥겔지수가 여유로워지면 먹고 싶은 것부터 먹게 된다.

실생활에 가장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치.

그래서 갑자기 뜬 BJ들을 반년 후에 보면 살 쪄 있다.

그것이 나쁘단 건 아니지만, 알고 보면 조금 웃기다.

"그래서 살찌면 절대 안 돼. 알겠어?"

"네, 시청자들이 저 잘되라고 주신 돈이니까."

"어우, 착해!"

"너, 너무 애 취급하지 마요!"

소영의 머리를 박박 쓰다듬는다.

이런 체형이 살까지 찌면 솜인형 같아지니까 관리를 해야 한다.

'내가 애 취급 안 하면 큰일 나는데.'

이것저것 해줄 수 있는 게 많다.

간질거리는 손으로 용산 상가에서 사온 장비부터 세팅한다.

마이크와 캠, 그리고 램카드.

대대적으로 갈아엎기에는 돈도 많이 들고, 심리적 저항감도 크다.

"오~ 진짜 방송 장비 같아요!"

"그야 진짜 방송 장비니까."

"돈값 하겠죠?"

"아까워?"

"에헹, 조금."

이 나이대에 30만 원이면 과장 조금 보태서 차값이다.

실제로 저렴한 중고차는 몇 백이면 구하니까.

투둑!

다이소제 플라스틱 캠을 뜯어낸다.

무슨 초콜릿 들어있는 장난감도 아니고.

이런 건 방송용으로 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장비빨이 존나 커.'

일부 여캠들은 화면 보정을 500배 해서 받는다.

기술력까지 더해져 신인류로 진화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필요하다.

방송을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테스트 한번 해보자."

"네!"

"앉아서 캠 켜봐."

"오옹~"

현실에서는 평범하게 잘 생기는 것도 노력을 해야 한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사람 얼굴이라는 게 분명히 잡티가 있거든.'

아무리 예쁜 사람이라도 탑 of 탑을 제외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귀여운 스타일의 여캠들은 그런 부분이 별로 없다.

다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

애니 캐릭터처럼 나오려면 문명의 이기가 필수불가결이다.

"노메이크업으로도 얼굴 귀엽게 나오잖아."

"저 화장 좀 했어요."

"그 정도는 한 것도 아니야."

"그래요?"

좋은 장비.

그리고 필터 프로그램.

×의 ×를 하면 외모가 제곱으로 상승한다.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딱 기본이다.

그냥저냥 방송할 거면 상관없지만, 소영이는 조금 특이 케이스다.

듀라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범상치 않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건 어느 분야든 어려운 일이다.

딩동♪

용산 상가에서 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간 목적 자체가 데이트 쪽에 무게가 실렸다.

"택배……? 시킨 적 없는데요."

"내가 시켰어."

"선배가요?"

"좀 더 필요한 게 있었거든."

조명.

여캠의 필수 장비다.

부피가 크고, 양이 많다 보니 퀵택배로 배송시켰다.

덜컹! 덜컹!

묵직한 박스들이 쌓인다.

그 양에 기겁한 소영의 눈이 똥그래진다.

"너, 너무 많은데요."

"이 정도는 기본이야."

"너무 많은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이 쓴다.

한두 개가 아니라, 많이 쓰면 20개 이상도 쓴다.

극심한 케이스로는 구독냥이 외치는 아주머니가 있을 것이다.

'조명을 그냥 발라.'

얼마나, 어떻게 쓰냐에 따라 자연(?)스러운 얼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훨씬 뽀샤시하면서 선명하게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방 구조를 전체적으로 갈아엎어야 한다.

일이 커지기 때문에 5개 정도로 합의 본다.

철컹! 철컹!

그조차 많다는 듯 무언가 못마땅한 눈치.

좁은 집구석에 철로 된 구조물이 달리는 것이 유쾌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번 맛보면.'

정말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세상에 예뻐지는 거 싫어하는 여자는 없는 법이다.

천장에 3개.

좌우에 하나씩.

정면에 딱 하나만 간소하게 설치를 한다.

"이게 나?"

그 효과.

눈으로 직접 본 소영의 눈이 땡그래진다.

어린 애들은 리액션이 좋아서 보는 맛이 있다.

"이제 얼굴 빵떡처럼 안 나오네."

"에헹."

"예쁘게 나오니까 좋아?"

"몰라요."

"정말 몰라?"

"에헤헹."

조그만 것에 감사할 줄 안다.

당장이라도 방송을 키고 싶은 것처럼 옴짝달싹을 못한다.

그런 소영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갑자기 눈을 감더니 쥐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는다.

'누가 해줄 줄 알고.'

반드시 먼저 해오게 만들 것이다.

발칙한 망상을 하는 얼굴을 문질문질 문지른다.

"…선배?"

"화장해야지."

"아, 화장. 네……."

"오늘은 좀 가볍게 할 거야."

"가볍게요. 네, 저 평소에도 가볍게 하는데."

"가볍다는 건 어디까지나 컨셉을 말하는 거고."

"?"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라는 게 공을 덜 들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순히 예쁜 것보다 훨씬 더 손이 가는 부분이 많다.

'그런 것까지 해야.'

듀라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상에 한없이 가까운 현실을 만든다.

나의 기본은 다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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