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먹방 본좌>
2박 3일.
금요일에 출발하는 빡빡한 스케줄상 체감 시간은 더 짧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
"옳지."
"……."
"서은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한다니까."
그래서 불렀기도 하다.
봉고차 안.
서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제할 일을 하고 있다.
쭈웁!
쭈우웁~!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살짝 깰 정도.
한나절이 넘게 참았다 보니 꽤 나온다.
그대로 여운을 맛보며 좀 더 쓴다.
'확실히 이건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지.'
기특하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꿀꺽!
음미하더니 맛있게 삼킨다.
행복해서 죽으려고 하는 표정이다.
"바로 나갈 거니까 자일리톨이라도 씹어."
"멍♡"
"빨리."
물론 물이나 빼자고 나온 게 아니다.
서은과 함께 시내의 거리를 탐색한다.
'음, 좋아.'
재미를 좀 보면서.
강원도의 시골 거리.
아재나 할아버지들이 알아볼 리는 만무하다.
"잠깐, 길 좀 여쭐 수 있을까요?"
"엉? 여행 온기야?
"네, 혹시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는 정육점 있나 해서요. 가능하면 가성비 좋은 곳으로."
"오메……."
서은의 살덩이를 꽉 잡는다.
부드럽고 쫄깃한 고기의 질감을 표현한다.
'뭐, 봐봤자 안 서겠지만.'
그럴 나이.
하지만 흥미는 있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열심히 가르쳐주신다.
서은의 심장이 겁나 두근댄다.
야플은 내성이 아직인 듯싶다.
"싫었어?"
"아♡ 저는 오빠 거니까."
"그래, 스트레스 좀 풀게."
이참에 단련 시켜준다.
시장을 조금 돌아다니자 대충 어떤 동네인지 알 것 같다.
'그냥 시골 장터지.'
그래도 강원도.
한국의 농산물과 축산물은 거의 대부분 이곳이 원산지다.
알아볼 눈만 있다면 좋은 가격에 가져갈 수 있다.
정육점을 찾아본다.
┌──────┐
│개비싼 한우집│
└──────┘
물론 더럽게 비싸다.
기본적인 가격 책정이 근본부터 맛탱이가 가있다.
'가성비 못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지.'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다.
일본의 와규, 미국의 블랙앵거스처럼 한국의 한우도 나름의 경쟁력이 있다.
일본의 와규가 지방.
미국의 블랙앵거스가 살코기.
한국의 한우는 딱 그 중간에 위치한다.
'와규가 버터 먹는 느낌이고, 블랙앵거스가 퍽퍽살이라면, 한우는 밸런스가 있어서 맛있다는 견해도 있더라고.'
밸런스라는 게 가장 어렵긴 하지만,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최고급의 한우는 해외의 고급 소고기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다.
"맛있겠다."
"잡숴봐! 얼마 안 혀~"
"얼만데요?"
"콩팥 한쪽만 떼주면 뎌~"
이걸 한창 때인 애들한테 먹이면 한 집안 살림이 진짜로 거덜 나서 문제지.
K? 소고기답게 가성비와는 담을 쌓았다.
'내 돈을 쓴다면 안 될 것도 없긴 하지.'
후배들을 위해 한턱 낸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것이 옳은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
한두 푼이 아닌 걸 대체 왜 쏘지?
먹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괜한 돈지랄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추억으로 남지 않는다.
고생이라는 것도 조금은 해봐야 한다.
청춘의 한 페이지가 텅 비어지게 된다.
"저 카드 있는데요."
"닥쳐."
"아♡"
수중에 있는 돈은 30만 원.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을 먹이기엔 너무 부족하다.
내가 무슨 예수님도 아니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순 없다.
기껏해야 삼겹살이나 목살이다.
'그런 거 먹으면 폼이 안 살잖아.'
야외 바비큐다.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왕이면 맛있고 기름진 걸 먹고 싶다.
싸면서, 맛있고, 기름진 것.
그런 걸 원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난이도가 다소 높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건 또 아니다
"육우 있어요?"
"있지~! 근데 여기까지 와서 육우 먹을 텨?"
"인원이 좀 많아서."
젖소의 수컷이다.
젖소는 암컷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수컷은 고기로 쓰인다.
일반 소들처럼 도축해서 먹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거세를 해서 고기용으로 키우기 때문에 맛에는 지장이 없다.
'젖소니까.'
남자의 가슴은 쓰잘데기 없다.
쓸모 있는 것을 꽉 주무르며 가지고 논다.
"미국산 갈빗살도 있어요?"
"미국산 못 써~! 광우병 걸리면 어쩌려고 그려."
"광우병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싸게 주세요."
그리고 미국산.
가성비를 따졌을 때 가장 훌륭한 지역이다.
사육 방법이 한우와 비슷해서 맛도 비슷하다.
호주처럼 풀을 먹이는 게 아니라 똑같이 사료를 먹인다.
수입산 소 특유의 누린내가 확실히 덜한 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루머가 남아있어서.'
광우병 파동이라는 게 있었다.
미국산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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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소 릴레이 만화〕
「2030년 대한민국 멸망」? 태발
「안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강풀
「대한민국 제가 접수하겠습니다!」
? 현용민
<본 만화는 자유롭게 퍼나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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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로 밝혀지긴 했지만 워낙 큰 사건이었다.
만화나 썰로 퍼지다 보니 국민 의식이 한동안 이어졌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잔재가 있었을 정도다.
그런 바보들 덕분에 맛있는 소고기를 싸게 사먹을 수 있다.
"갈빗살 주세요."
"갈비 말이지 갈비."
"아뇨, 갈빗살이요. 늑간살."
그중에서도 특히 더 싼 부위.
삽겹살만큼 저렴하지만, 갈비답게 압도적으로 맛이 있다.
'쫄깃쫄깃하지.'
그 LA갈비의 옆에 있는 부위다.
살코기가 많고 뼈가 많은 부분.
살점을 억지로 뜯어냈다 보니 모양이 다소 안 좋고 어르신들 먹기 불편하다.
젊은 사람들이 먹기에는 오히려 좋다.
식감이 씹는 맛이 있고, 맛 자체도 훌륭하다.
육우와 갈빗살을 위주로 사갈 생각이긴 하지만.
"흐 참~ 요즘 것들은 우리 소를 안 먹어."
"비싸더라고요."
"흐 참~! 안 먹으니까 비싸지는 거제. 쯔쯧."
사장님 입장에서는 서운할 만하다.
강원도에서 정육점을 할 정도면 축산까지 병행하거나 관계자일 확률이 농후하다.
'근데 비싼 걸 뭐 어떡해.'
맛이 있는 건 맞다.
나름의 경쟁력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비싸도 좀 적당히 비싸야지.
비싼 이유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조정을 한다.
출하량을 줄이거나 담합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해해주는 것이 많이 힘들다.
"비구이용 중에."
"국거리 살 텨?"
"에, 뭐 그런 것 중에 지방도 9인 부위 어디 있어요?"
그래서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한다.
한우라고, 국산이라고, K 붙었다고 무작정 팔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구이용이 아닌 걸 구워 먹으려고요?"
"왜?"
"저야 오빠가 주시면 어떤 것이든, 어떤 것이든 먹겠지만……."
한우라고 다 비싼 게 아니다.
부위에 따라 수입소 이상으로 싼 곳도 존재한다.
'물론 구이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
살이 너무 퍽퍽하거나 기름기가 적은 등 문제가 있다.
그래서 국거리나 다짐육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개중에도 있는 것이다.
사실은 구이용에 필적한 퀄리티를 가진 고기 말이다.
"설깃살이랑 삼각살, 그리고 우둔살로 보여주세요."
"함 봐봐."
"이거랑 이걸로 담아주세요."
그도 그럴 게 소의 부위가 한두세네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많은 감이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소를 가장 많은 부위로 나눈다고 하잖아.'
일두백미(一頭百味).
35개 부위만 활용하는 서양에 비해 훨씬 미식의 민족이다!
국뽕 차오르는 이야기가 조금 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120가지를 다 안 먹는다는 것이다.
결국 팔리는 부위만 팔리게 된다.
한우 가격이 특별히 비싼 원인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더 마케팅이 되어서 프리미엄이 오지게 붙는다.
반대로 말하면 소외된 부위는 싸다.
국거리용.
조금씩만 타협하면 구워 먹기 괜찮은 부위들이 꽤 있다.
"어때?"
"와 마블링이……."
"여기가 어디냐면 여기 이 엉덩이야."
"아♡"
우둔살.
안심의 바로 옆에 달려있는 부위다.
육질이 부드러워서 맛은 있지만, 지방이 적다는 게 단점이다.
'그래서 국거리나 다진 고기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사람도 살이 배에 찐 사람이 있고, 엉덩이에 찐 사람이 있듯 소도 마찬가지다.
우둔에도 마블링이 괜찮게 붙은 소가 있다.
그것을 따지는 게 근내지방도.
가장 높은 9단계면 웬만한 안심살에 준한다.
당연히 차이는 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거저 수준이다.
한우라는 것은 확실히 프리미엄 시장이다.
그런 쪽이 으레 그렇듯 만족도를 10% 올리기 위해 가격을 두 배, 세 배씩 지불한다.
"마블링이 이렇게 좋은데 왜 싸게 파는 걸까요?"
"보통 고기를 살 때 부위를 보고 사니까."
국거리로 쓰일 부위가 마블링이 좋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기름기가 많으면 국물에 둥둥 뜬다.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처분하기 애매하다.
그래서 가격이 특별히 더 비싸거나 하진 않다.
"이 정도면 먹을 만하겠지?"
"네, 네!"
"그럼 야채도 사서 돌아가자."
만족도를 조금만 타협하면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육우와 갈빗살, 한우를 가득 사간다.
그리고 채소.
같이 구울 단호박, 파프리카, 감자, 마늘, 양파, 대파, 꽈리고추, 버섯, 옥수수와 쌈 싸먹을 상추 등 이것저것을 구입한다.
'사실 이런 건 준비를 해서 가는 게 맞는데.'
이제 막 신입생인 애들이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짐도 많아지고, 괜히 귀찮으니 근처 슈퍼에서 대충 사야지.
그렇게 갔다가 관광객용 비싼 물건을 덤터기 쓰고 사기 일쑤다.
내가 있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지만.
"가자."
"……."
"운전 안 해?"
"저, 저기 오빠."
몇 박스씩이나 되는 식재료.
일반 차량이 아닌 봉고차라서 실을 수 있었다.
바로 돌아가려던 차에 서은이 미적댄다.
숨이 좀 가파르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야릇한 숨소리를 내며 자신의 셔츠를 만지작거린다.
"오빠 저도, 저도 먹히고 싶어요."
고기가 하나 더 입고된다.
* * *
부우웅~!
봉고차가 온다.
만호와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간다.
'일단은 착한 척해야지.'
그래야지 효과도 있는 법이다.
악의가 없는 비평이라는 점도 강조할 수 있다.
"저희가, 저희가 짐 들게요!"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거야? 고마워!"
물론 점수를 따기 위함도 있다.
남자가 아닌 여자 쪽.
서은 선배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다.
'졸라 섹시해.'
'힘들었나 보네. 얼굴 상기된 거 봐.'
'여친 마렵다 진짜…….'
옆에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자발적으로 나서 봉고차 안의 짐을 나른다.
"운전도 서은 선배 시켰나 본데?"
"실화냐?"
"에휴, 그러게 봐봐. 꼰대 새끼라니까."
자신들은 힘들게 짐을 나르고 있는데 혼자 쉬러 간다.
안 그래도 밉상으로 보던 차에 더 밉상으로 찍힌다.
잘된 일이다.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양심의 가책이 해소된다.
만호 일행은 박스의 내용물을 개봉한다.
'응?'
무엇인지 알아야 계획을 행동에 옮기기 쉬워진다.
최대한 맛없고, 볼품없게 구워서 돈을 낭비한 걸로 몰아붙일 생각이었는데.
"삼겹살이 아닌데? 목살?"
"세상에 어떤 목살이 이렇게 생겼냐?"
"완전 스테이크용 고기네 스테이크 고기……."
승우를 향한 원망도 줄줄 흐르는 침을 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