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화
대학교 MT.
현실을 깨닫게 되는 분기점이다.
'대학교 생활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구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멋있다고 생각하던 동기, 예쁘장하던 과탑의 추한 면모 말이다.
"아~~~! 머리 깨질 것 같애……."
"죽겄다."
리조트의 프론트.
잠에서 깬 신입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척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숙취에 아주 쪄들어있다.
남학생들은 아저씨가 되어있고, 여학생들은 헝클어진 머리가 달라붙어 처녀귀신이 되어있다.
'진짜 처녀인지는 몰라도.'
조절이 안 되는 신입생인 것은 확실하다.
아니, 조절이 잘되는 3·4학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분위기가 좋다.
안주는 더더더 좋다.
간단한 반주에서 끝나는 게 아닌 2차, 3차를 달리게 된다.
"아으아~~~!!"
"남자들 닥쳐. 울리잖아."
"너도 닥쳐어……."
밤새도록 퍼마신 결과.
귀찮게 예상을 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될 거란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선배들이 가지는 어드밴티지가 좀 있지.'
MT에서 커플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들 죽 쑤고 있을 때 정상적인 모습만 보여도 선녀 효과.
보글보글!
그 이상도 못 할 것이 없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프론트에 있는 좀비들을 떼거지로 불러 모은다.
"어, 어……."
"선배~ 그거 뭐예요?"
채민네 그룹.
채 깨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냄비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다 알면서 말이다.
'해장 라면은 못 참지.'
영양학적으로는 단 음식이나 기름진 게 좋다고는 하지만 그건 해외 기준이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국물이다.
"와 라면!"
"라면 진짜 먹고 싶었는데……."
"혹시 저희 것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헤헤."
"귀여운 후배들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짱! 아, 머리 아파……."
땡기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숙취를 느껴본 신입생들도 DNA에 새겨진 내용이다.
보글보글!
바비큐장에 있는 부루스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있는 대로 가져다 물을 끓인다.
미리 준비해둔 특별 소스와 함께 끓인다.
이럴까 봐 많이 만들어두었다.
'그냥 빼박이지.'
힘들 때 잘해주고, 의식하게 만드는 순간 끝이다.
우정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할 나이대다.
하물며 주위 남학생들.
MT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봤는데 그렇지 않았던 선배?
소위 말하는 환상이 생긴다.
입만 잘 털면서 열에 한 여섯 정도는 넘어온다.
"진짜 살 것 같다……."
"라면 국물이 포션이야 포션!"
"선배님 저희가 너무 취해 가지고 죄송합니다."
"괜찮아 하하."
착한 척 연기만 잘하면 된다.
뭐 하려고 하지 마! 너 오늘 보여줄 것 없어!
김정균 감독식 연애 방식을 채택한다.
후루룩~!
내가 보여줄 건 오직 라면.
나의 먹방 노하우를 녹여냈다.
그렇게 대단한 짓은 안 했지만 원래 요리는 간단함의 미학이다.
"아 너무 맛있다."
"숙취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맛있는데?"
"인정!"
"선배 이거 어떻게 끓인 거에요~?"
라면은 땡기는 맛에, 자극적인 맛에 먹는다.
맵고 짜고 칼칼한 맛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나의 걸작이다.
"저기……."
지나가던 개도 그 진가를 알아본 모양이다.
어제 그 클레임남.
자신을 만호라고 소개했던 학생과 일행이 말을 건다.
한 손으로 머리를 쥐고 있다.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안 물어봐도 비디오다.
남학생의 사연은 사양이다.
"너희도 먹을래?"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아량을 베푸는 편이 낫기도 하다.
집단 생활.
한 명에게 내려진 평가는 나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지.'
원한은 길게 끌고 가지 않는 편이 낫다.
나는 다른 것을 낳기에도 바쁜 몸이다.
탁! 탁! 탁!
나의 요리 작품.
대파와 마늘을 송송 썬다.
그리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치직……!!
볶는다.
식용우에 대파와 마늘의 매운맛이 배어난다.
고춧가루를 넣어 자극적인 맛을 더한다.
'그리고 마법의 하얀 가루.'
음식의 맛을 획기적으로 좋게 만드는 현대 과학의 이기를 첨가한다.
이 특별 소스를 넣으면 어지간하면 맛있다.
"선배님."
"응?"
"고기 남은 거 있는데……, 넣을까요?"
"아니, 라면에 잡다한 거 넣는 거 아니야."
"네……."
별 지랄 안 해도 말이다.
라면에 오만 가지를 넣는 한국의 전통.
겉보기에는 훌륭해도, 성공적인 예시는 손에 꼽는다.
'라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야.'
굳이 별다른 거 안 넣어도 맛있다.
조미료만 조금 추가하면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다.
"맞지! 맞지!"
"선배 진짜 맛잘알이다. 감동했어요~!"
"어제도 엄청났고."
라면을 먹고 숙취가 깬 여자 그룹.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찬양 일색이다.
나로서는 기분이 좋다.
""…….""
만호와 그 일행들로서는 똥 씹은 표정이다.
쌤통이긴 하지만 괜한 원한이 생길 수 있다.
'이 나이대 남자애들 중에 똥존심에 모든 것을 건 애들이 있어서.'
목숨 걸고 가오 잡는 일이 흔하다.
적당히 자존심을 세워줄 겸 대파를 길게 채썬다.
"고명 좀 얹을 사람?"
"고명이요?"
"별건 아니고 대파 얹어서 먹으면 맛있거든."
"저요! 저요!"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요 선배님~!"
흐르는 물에 헹궈서 라면 위에 얹는다.
씹는 맛을 더해주고, 상쾌한 매운맛도 있어서 괜찮다.
'라면이랑 대파는 그냥 뭐 찰떡궁합이지.'
자극에 자극을 더했으니 당연하다.
자극적이라서 무리해서 먹으면 피똥 싼다는 단점은 있다.
"와 이거 존나 맛있다!"
"대파가 아삭아삭 씹히는데 미쳤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만호네 그룹이 아주 맛있게 먹어 치운다.
큰 냄비 몇 개에 라면 국물만 세팅해두고, 면은 알아서 끓어 먹게 냅둔다.
"선배님 저희도 먹고 싶은데요."
"그래? 근데 술 안 깬 애들은 무리해서 먹지 마."
"왜요?"
"결국 파잖아. 빈 속에 먹으면 배 아파."
"아~."
"계란 넣을래?"
"계란은 괜찮을 것 같아요!"
"저도요!"
주의사항은 여자 그룹에만 전달해준다.
* * *
쿨렁! 쿨렁! 쿨렁!
물이 호쾌하게 내려간다.
화장실 변기가 힘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오…….'
만호는 벌써 세 번째 일을 보고 있다.
안 그래도 숙취로 뒤집혀진 뱃속에 라면을 집어 넣은 탓.
그것도 두 그릇을 대파 고명까지 듬뿍 얹혀서 말이다.
술술 넘어가다 보니 채하는 줄도 몰랐다.
'진짜 죽다 살았네.'
간신히 뱃속을 진정시킨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기운이 쏙 빠졌다.
하지만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먹고 싶다고 한 건 자신의 선택이니까.
오히려 배려를 받았다.
괜히 뻘쭘해서 도와주려고 하다가 비웃음을 당했다.
뒤에서 낄낄대던 여자 그룹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도와준 것이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너무 잘못 봤어.'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인배.
그냥 가만히만 뒀어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 그냥 이것저것 알바 하고, 자취하다 보니 익은 잡기술이야."
"무슨 잡기술이에요~ 완전 셰프던데."
""맞아! 맞아!""
프론트로 나오니 떠들썩하다.
승우 선배가 그 여자 그룹에게 둘러 쌓여있다.
척 봐도 인기가 많아 보인다.
'그럴 만하지.
자신도 맛있게 먹었다.
그토록 뻘쭘한 상황에서 두 그릇이나 먹은 건 순수하게 맛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은 그냥 좋을 것이다.
저비용으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승우 선배 덕분에 진짜 살았어요. 우리끼리 있었으면 줬됐을 듯?"
"나 생활력 좋은 남자가 취향인데."
""모래~!""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참패.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능력도 그렇고, 인성도 그렇고 어느 모로 봐도 상대가 안 된다.
이 정도로 털리니 도리어 속이 시원하다.
'속도 어느 정도 비웠고.'
저 형도 쿨한 성격인 듯하다.
괜히 신경 써서 남은 1박 2일 분위기 망치는 것도 멍청한 일이다.
"선배~"
"응?"
"선배 왜 마스크 쓰고 있어요?"
"위험해서."
"어? 뭐가요?"
"뭐가? 뭐가?"
"오빠한테 반할까 봐."
""꺄~~!!""
되는 대로 떠들어도 시끌벅적하다.
조금 이상한 점도 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터벅터벅
방으로 돌아간다.
오전까지 푹 쉬었다가 어제 못다 한 레포트를 쓸 생각인데.
"야."
계단 사이의 층계참.
3층으로 올라가던 중에 누군가 자신을 불러 세운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ㅈ같은 목소리다.
"안 춥냐?"
"남이사"
"그러게 진짜 남이사지."
전여친인 소라였다.
그녀가 벽을 등지고 서있다.
핫팬츠 아래로 쭉 뻗은 다리가.
'거슬리네.'
정말 예쁘다.
육감적인 꿀벅지와 새하얀 피부.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볼 장 다 봤다.
고등학교 시절 1년 반을 사귀었고 진도도 마지막까지 나갔다.
"선배한테 개겼다가 개털렸다며? 으이구, 쪽팔려~"
"왜 깝치냐?"
"니 빡치게 하려구~"
대학도 같은 곳을 지망할 만큼.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헤어졌고, 지금은 모르는 척 지내고 있다.
'신경 긁고 있어 X발년이.'
외모는 여전히 괜찮다.
아니, 섹시해졌다.
대학교에 올라오며 쌍꺼풀 수술도 하고, 머리도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다시 관심이 생겼다는 소리는 아니다.
헤어지게 된 건 성격 때문.
소영을 눈여겨보게 된 이유와 이어진다.
"왜 신경 건드리냐? 니 고등학교 시절 다 까발리는 수가 있어."
"나도 그럼 니 꺼추 작다는 거 다 말하고 다닌다?"
"뭐 X발? 안 작거든?!"
성격이 드세다.
입도 싸다.
온갖 데서 자신을 씹고 다녔는지 학교에서 아주 죽일 놈이 되었다.
'지가 헐렁한 거면서 지가."
나쁜 감정을 남긴 채 헤어졌다.
대학에서는 서로 손해 볼 구석이 많다 보니 입 닥치고 있다.
"박혀서 침 질질 흘리던 년이 말하는 꼬라지는."
"지금 풀발한 거야?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네."
한동안 말도 안 섞었다.
갑자기 와서 지랄이다.
스무스하게 무시하는 것이 맞는 대응이지만.
'안 작아. 안 작다고!'
어젯밤 엄청난 걸 봐버렸다.
눈앞에서 뱀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니 괜시리 신경 쓰인다.
"지금 빡쳤냐? 빡쳤어? 한 대 치겠당?"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주운 말루 하때 까라~?"
원래 사람을 빡치게 한다.
그것이 당연한 녀석이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참는다.
'소영이처럼 얌전한 여자가 백배천배 낫지.'
남자 자존심 살살 긁고, 시험하는 말 해대고.
조금 섹시하고 예쁜 것보다 성격을 봐야 한다.
"풀발했어? 응?"
"아니, 너 진짜!"
"함 뽑아줄깡?"
"……."
물론 섹시한 것도 중요하다.
틴트를 바른 예쁜 입술이 빛에 반사된다.
빨고 있는 츄파춥스가 요염하게 느껴진다.
'진심도 아니면서 X발년이…….'
어차피 놀리는 것을 안다.
헤어진 마당에 구질구질하게 굴며 약점 잡힐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천박한 장난이나 치고."
"이건 장난 아닌데."
"뭘?"
"너 그 선배 정체 알아?"
빨리 방에 가서 쉬고 싶다.
속을 한참 비운 참이고, 숙취도 다 깼다고 보기 힘들다.
뿌리치고라도 가려던 찰나.
'뭐?'
조금 의아한 것도 사실이다.
여러 가지 잡다한 지식도 알고, 요리도 지나치게 잘한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남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은데.
"난 알지롱~!"
"그래서 뭐."
"궁금하지 않냐고."
"……."
"무릎 꿇고 싹싹 빌면 가르쳐줄 수도 있는데?"
신경 쓰이게 만든다.
한순간 혹했다.
사실은 상당히 궁금하기는 하다.
'별거 있겠어.'
이 녀석의 페이스대로 놀아날 바에야 모르는 것이 낫다.
만호는 소라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애써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