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화
<복귀>
쭈욱!
진한 키스를 나눈다.
'아, 샴푸 바꿨네.'
꼭 안은 채 말이다.
달달한 입술도 좋지만, 체온과 체향을 느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만족이다.
"맛있었어."
"맛있다?"
"적당히 부드럽고 침맛도 끈끈해서 좋아. 여름은 어땠어?"
"간지럽다."
"……."
여전히 무덤덤하긴 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을 애써 유지하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딱 이 설렘이 좋긴 하지.'
이 전까지는 답답하고, 더 나가면 파티 타임이다.
여름과도 슬슬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진도는 뭔지 알아?"
"모르겠다."
"내가 차근차근 알려줄 수 있는데."
"Hmm……."
미간을 찌푸린다.
이 다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은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다 상견례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런 이벤트도 각오는 하고 있다.
고지식한 아버님을 설득하는 과정도 즐거울 것이다.
"그럴 때는."
"What? What?"
"일단 만들고 가면 싸대기 한 대로 해결되거든."
"……."
"혼혈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살짝 본인에게 싸대기를 맞을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조차 여름의 것이라면 기꺼이 맞을 수 있다.
'그런 밀당이 있는 편이 더 흥분되잖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다.
여름과는 이상할 정도로 꽃길만 걸어온 것 같다.
앞으로는 사소한 트러블이라도 만들어서 밀당을 하고 싶다.
"바보다. 바보."
"나 진지해."
"You must use a condom."
"쓰면 해도 돼?"
그러한 일상.
너무 잘 받아주니 오히려 심심하다.
막상 하려고 하면 정색을 할 것이다.
'처음에는 반쯤 장난이었는데.'
희망이 보이다 보니 콜럼버스가 되고 싶다.
콜럼버스가 희망봉은 못 봤어도 아메리카는 봤듯이, 나도 진정한 아메리카를 탐미해보고 싶다.
"내가 진짜 괜찮은 호텔 봤는데. 아, 오해하지 말고! 식사하고 바로 쉬러 갈 수 있어서 좋더라."
"Um~"
"어때?"
"Umm~~"
기정사실만 만들어두면 나머지는 어떻게 수습하냐에 달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고 치기.
해외에서는 친 적이 드물어서 두근댄다.
여름의 긴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눈을 마주친다.
"쩡환."
"낭군."
"낭군 아니다. 할 말 있다."
딱히 재미만 보려는 목적도 아니다.
여름도 소기의 목적은 거두었고, 연구실 내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었다.
한국어가 이전보다 늘게 되었다.
그녀의 한국어 습득을 방해한 가장 큰 요인은 대인 관계였으니 말이다.
'어눌한 말투도 귀여웠는데.'
답답할 때.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강조한다.
잘 알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하다 보면 대개 말투가 귀여워진다.
언어이라는 것은 많이 해봐야 느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대화 상대가 한정적이었다.
대인 관계의 개선으로 달라진 것이다.
"쩡환 도움 됐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But……, 충분하다.
딱 그 정도.
나의 호의를 받아들여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내 아는 낳기가 싫은 모양이다.
"앞으로도 필요할 수 있잖아?
"괜찮다."
"나보다 더 헌신적으로 해줄 사람 없는데?"
"고맙다."
평소와 달리 차분하다.
가라앉아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성적이기 보다 성스럽다.
'…….'
마주 잡고 있는 손을 천천히 뗀다.
그녀가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쩡환."
"응."
"I like you."
"나도."
처음으로 먼저 입을 맞춰온다.
차갑다.
그녀의 체온은 원래 찬 편이었다.
내가 그녀를 덥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에게 식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친구들. 행복하면 좋겠다."
"응."
"쩡환도 그렇다."
"여름은 내가 불행해 보여?"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어딘가 측은한 눈빛.
꿰뚫어 보이는 느낌에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항상 그랬다.
나라는 인간은 비어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채움 받고 싶어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최근 과도하게 부어 들뜨긴 했지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못 당한다.
"가르쳐준다?"
"기다려. 마음의 준비."
"너의 그런 점이 싫다는데."
"한국말 잘하네."
"그렇게 말했다!"
몰입할 일이 필요할 듯하다.
* * *
대형 사건이 되는 건 필연이었다.
〔개인 방송 갤러리〕
─속보) 오정환 출소
─오정환 얘는 뭐 하다 이제 돌아오냐? [7]
─아니 ㄹㅇ 지금 상황이 웃긴 게 +1
─응 국민의 80%는 오정환 지지해~ [1] +5
.
.
.
파프리카TV 굴지의 인기BJ.
방송인으로의 영향력도 어마무시하다.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켜 자숙에 들어갔지만.
─오정환 얘는 뭐 하다 이제 돌아오냐?
철꾸라지처럼 철판 깔고 그냥 하지
└철드모트 따라가라고?
└그랬으면 그 읍읍처럼 「삭제」 됐겠누
└빛정환 연전연승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둘의 차이점이지
여론은 지극히 온건하다.
벌써 세 달 전의 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거니와, 후속 대처가 깔끔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이겼다.
자숙도 길었다.
본래 요구된 책임 이상으로 말이다.
따라서 문제될 여지가 있겠냐는 것이 대세 여론.
「김정아」
17시간 전。
#오정환#복귀
[오정환 방송국 공지. jpg]
팔로워 여러분들 들으셨나요?
BJ오정환이 복귀한다고 하네요!
「사이다막걸리」
15시간 전。
#오정환#하와와#먹방
오정환 복귀……
하와와 먹방도 다시 했으면 좋겠네요
「용젖사냥꾼」
10시간 전。
#오정환#복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BJ인데 ㅎㅎ
앞으로는 꽃길만 걷길~
.
.
.
SNS의 일반 대중들도 기대하고 있다.
그의 시청자층.
인터넷 방송을 보는 일부 매니아층에 한정되지 않았다.
뭐든지 잃어봐야 소중한 줄 안다.
오정환을 대체할 만한 방송이 없었고, 특유의 콘텐츠를 다시 보고 싶다.
「박아람」
10시간 전。
#오정환#복귀
오정환 사건은 정말 억울했죠.
지나친 관심이 만든 폐해라고 할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뭐 하나 뜨면 우르르 몰려가서 빨대 꽂잖아요
―에휴, 기레기들
―재판도 무죄 떴다는데 마음 고생 많았겠네요
그리고 스토리텔링.
수박 겉 핥기로 듣고 오해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 달이라는 긴 시간은 그 공백을 메꾸기 충분했다.
오정환이 어째서 돌발 행동을 했는지.
공감대와 여론이 조성되어있다.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벼락오바마」
10시간 전。
#오정환#복귀
[오정환 사건 정리. jpg]
잘 모르고 욕하는 사람들한테 이거 보여주면 됩니다
―바로 이해 완료!
―자기 여동생이 추행 당하는데 참으면 오빠임??
―무슨 연예인 마냥 욕 먹었죠 ㅋㅋ
―BJ는 연예인이 아니야 이 사람들아……
시간이 지나자 성났던 여론도 이성을 되찾았다.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연예인은 선망의 대상.
인플루언서는 보다 대중에 가깝다.
화면 속의 멀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공유한다.
옆집의 일처럼 느껴진다.
오정환의 솔직한 입장 표명은 효과를 보고 있다.
「보라) 오정환. 할 말이 딱히 없음」_ ? 69, 739명 시청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의 행보.
한 번은 사정상 이해해준다 쳐도,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의심 받는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방송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시청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장 어딨냐고
―나와 X새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보라 찍을 때냐?
―He is comming
기대가 되기 때문도 있다.
그의 방송감.
여타 BJ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색깔을 가진다.
딸칵!
화면이 어두컴컴하다.
플라스틱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진다.
오직 한가운데만이 환하게 빛난다.
빛이 내려오고 있다.
한 남자가 보인다.
파삭!
파사삭!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
비닐봉지가 구겨지는 익숙한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시선이 집중된다.
그 검은 비닐봉투에서 고개를 들이민 하얀 무언가에 말이다.
―이거 할 줄 알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
―실망시키질 않누
―방송에 미친놈……
―15년 동안 군만두 좀 먹어보지
충신지빡이님이 채팅금지 1회가 되었습니다!
따끈따끈해 보이는 두부 한 모.
한 손으로 들어 그대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쪼개진 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마지막 한 입까지 먹는다.
그러고 나서야 밝은 조명이 켜진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오자마자 청승 떨고 앉아있네
<감사합니다. 1000개 감사합니다.>
―입꼬리 씩
―아 천 개는 못 참지 ^^
―출소 먹방 뭔데?
―앞으론 착하게 사세요!
자신의 상황에 대한 풍자.
반성을 하고 왔다는 퍼포먼스로 방송의 시작을 연다.
과정이 어찌 됐든, 사정이 어찌 했든 잘못은 잘못이다.
이에 대한 솔직한 시인이다.
─우리집강아지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자신까지 방송 소재로 쓰는 그는 도덕책……
─낚시터논개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과함께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오정환씨, 당신 죄인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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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사건의 경중을 살피지 않은 가벼운 태도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줄곧 일관된 태도를 보여온 점.
진정성면에서 의심 받을 여지가 없다.
자숙으로 보낸 세 달 간의 시간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환영 받아도 될 복귀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한 모습으로 방송 활동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했다!
―이제 방송하는 거지? 그렇지??
―이딴 걸로 세 달을 쉬네
―꿀 잘 빨고 왔으면 알지?
오정환이라는 BJ의 정체성.
평소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존 팬층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BJ는 고정 팬층이 중요하다.
그것이 탄탄하기 때문에 복귀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코코망이♪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정환 오빠 복귀 축하드려요♡
<아 서은이니? 1000개 고맙다. 단위수가 하나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크흠!>
―그 와중에 풍 밝히누
―지인풍은 ㅇㅈ이지
―코망이 1000개나 쏨?
―역시 팬카페 회장 출신 ㅋ
인맥 또한 말이다.
3개월 지났다고 천지가 격변할 리 없다.
그의 크루원들은 여전히 잘 방송을 하고 있고, 오히려 오정환이 없어진 수혜를 받기도 했다.
오정환의 팬들이 방송을 보는 것이다.
그가 없는 와중에도 끈끈한 인연을 재확인하게 된다.
철새가 되어 이곳저곳 쏘다닌 팬들은 이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
─리아네♡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옛다
─쥬아☆님, 별풍선 892개 감사합니다!
왔냐? ㅋㅋ
─코물쥐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이이잉~ 기모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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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이벤트가 펼쳐진다면 더더욱.
오정환과 친분이 있는 BJ들이 복귀를 축하한다.
고독하게 시작했던 방송의 분위기가 어느새 고조된다.
<고맙다. 고마워. 오랜만에 돌아와서 어색하고 눈치도 보였는데 이렇게 환영해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인맥 보소
―코물쥐 침투력 뭔뎈ㅋㅋㅋㅋㅋㅋ
―착하게 살고 볼 일이네
―ㄹㅇ 오정환은 받아도 되지
별풍선이 가진 오묘한 힘.
재밌어 보여서, 놀리고 싶어서, 어그로를 끌려고, 어떤 목적으로 왔든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하나다.
파프리카TV 특유의 감성에 취하듯이 젖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 모으며 한동안 파티 분위기가 계속 되리라 보이던 참에.
─장연수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정환 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ㅎㅎ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