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시계는 돌아가기 마련이다.
"잘 지냈어?"
"네, 정환 씨도요?"
"나야 뭐……, 그럭저럭이지."
내가 없어도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풍잎스토리는 언제나 문제점투성이인 모양이다.
'이게 참 난감한 문제이긴 해.'
한쪽의 시각에서만 바라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부자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있다.
"정환 씨."
"왜."
"오랜만인데 어때요? 저 속옷도 예쁜 거 입고 왔는데."
민하 말이다.
장연수와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확률 조작 사태가 어찌저찌 수습된 덕이다.
목이 잘리는 것을 면하며 총괄 디렉터 자리를 해먹고 있다.
썸 같은 관계도 이어나가고 있다.
"됐어."
"네?"
"내가 그럴 기분이 아니야. 용건만 간단히 해."
"아……, 네."
그렇다고 안 쓸 이유는 없지만 나라고 매일 해재끼는 게 아니다.
최근의 상황이 어떠한지.
대략적인 보고를 듣는다.
'그럴 시기인가.'
단풍잎스토리는 진짜 오래된 게임이다.
그래픽이 너무 캐주얼해서 가끔 잊게 되는데, 거의 웬만한 애들보다 나이가 많다.
프로게이머로 따지면 쵸비와 두 살 차이고, 클로저와 동갑이다.
걔네들이 응애~! 할 때 타락파워전사는 만렙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돈슨 내부에서도 인지를 아예 안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아닌데?"
"약간 벌집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섣불리 손을 못 대고 있다고 해요. 알아들으시겠어요?"
"음."
하물며 온라인 게임 초창기.
게임을 인터넷으로 한다고??
업계의 변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됐던 시기다.
그래픽 엔진도, 코딩도 굉장히 구식일 수밖에 없다.
이걸 아무리 뜯어 고치고 염병을 해도 반드시 문제는 생긴다.
'돈슨의 패치 방향도.'
질보다 양.
겉포장을 화려하게 두르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가 쌓이는 속도가 배가 된다.
2중·3중으로 포장한 택배를 뜯다 보면 열이 뻗친다.
코딩도 마찬가지의 측면이 있어서 열어보려면 골치가 좀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까 다시 덮고, 재포장하고, 그 위에 또 쌓고 하는 것이 10년 넘게 지속된 거지.'
그렇다고 못 할 정도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한 세대 전이었다면 정말로 심각했을지 모른다.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와우 등.
고전 게임들이 리마스터 만든다고 몇 년씩 쏟아붓는 이유다.
현대인이라고 고대 언어가 이해되는 게 아니듯, 옛날 게임이라고 프로그래밍이 간단하지 않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다행이다.
"인력이 확충되긴 했는데 기존 패치 방향을 맞추기에도 아슬아슬하다고……."
돈슨도 게임을 오래 서비스해온 만큼 노하우가 있다.
칼을 빼들 때는 확실하게 빼든다.
대표적으로 바람의 나라.
그래픽을 한 차례 갈아엎은 적이 있다.
소위 말하는 구버전 이야기가 이때 생긴다.
'근데 그걸 진짜 미루고 미루다가 불가피할 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해.'
당시에도 불만이 많았다.
아니, 우리는 구버전 그래픽이 좋은데?
유저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코딩 편의성을 위해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 미루기 때문이다.
방청소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당연히 힘들다.
썩은 장판까지 뜯어낼 일이 생긴다.
시리우스 여제 무한 회복, 확률 조작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오버플로 문제와 누더기 코딩.
미리미리 유저들의 요구를 수용했으면 그런 사태가 터졌을까?
"회사 분위기는 어때?"
"꿈의 직장이죠."
"꿈의 직장?"
"엣헴! 우리 회사 이래 봬도 복지 좋거든요~"
회사의 잘못도 있다.
인원 좀 넉넉하게 보충해주던가.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돈슨급의 회사가, 한국에서 모르는 게이머 없는 게임사가 막장이 되는 데는 이유 한두 개로는 부족하다.
속까지 썩어 문드러졌다.
'우리나라 게임 업계가 옛날에는 확실히 힘들었는데.'
정부는 규제를 때린다.
시장의 규모는 한정적이다.
소위 갈아 넣는다는 우스갯소리가 거짓말이 아니었다.
2013년을 지나며 바뀌게 된다.
확률형 가챠가 생기면서 게임사의 수익률이 극대화된 것이다.
회사 덩치에 비해 돈을 엄청나게 번다.
계속 벌기 위해서는 직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IT업계 규모가 매년 커진다.
'서서히 배부른 돼지가 되는 거지.'
그중에서도 돈슨은 독보적이다.
유저들한테는 지랄 옆차기를 하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가히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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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뷰 blind」
1점대: 퇴사 추천
2점대: 평범하게 ㅈ같은 회사
3점대: 그냥 다녀
4점대: 주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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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블라인드 평점이 4점을 넘는다.
민하 씨가 짜증 난다 뭐다 하면서도 계속 다니는 이유가 있다.
"솔직히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애?"
"글쎄요. 저는 프런트 업무라……."
"대충 보기에."
"적어도 연수씨는 열심히 하니까 열심히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어장에 넣었다고?"
"헤헤."
물론 어느 회사나 임원 코스를 밟는 엘리트들은 빡셀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반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
'회사 자체가 가불기가 걸려 가지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배째라 하기가 쉬운데, 회사 입장에서는 갈구기가 어렵다.
왜?
돈슨이니까.
돈슨이 직원을 갈군다고??
돈슨이 무조건 잘못했겠네!!
여론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직원들 버르장머리가 없어지기 겁나게 쉬운 구조다.
버르장머리라는 게 으레 그렇듯 초장에 조져 놔야 한다.
"대충 알겠으니까 미팅 잡아봐."
"연수 씨랑요?"
"그럼 누구랑 잡으려고?"
"저도 잡고 싶은데."
"됐어."
"?"
그렇기에 해결법은 간단하다.
그러한 여론전을 못하게 만든다.
나에게는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 * *
악의 평범성.
수백만의 유대인 학살의 실무를 책임진 사람은 의외로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자신은 일개 공무원에 지나지 않다.
일반 업무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처리한 일이다.
딸칵!
명수는 돈슨에서 개발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3개월의 인턴 생활 이후 바로 정직원으로 승격했다.
"했어?"
"네!"
"음……, 잘했네. 정리하고 퇴근해."
"알겠습니다. 근데 선배님."
"?"
인턴을 거쳤다 보니 회사 적응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기 힘들다.
"이번 패치 있잖아요."
"어."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편하게 말해."
"과금 유도가 좀 심하지 않나요? 아니, 아니, 아니 그냥…… 커뮤니티에서 그런 이야기가 올라오길래."
자신의 업무.
게임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다.
하지만 알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그도 그럴 게 이 돈슨이라는 회사는.
'유저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다는 이미지가 있잖아.'
최대한 우회적으로 말을 해도 이 정도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가히 공공의 적이다.
자신만 해도 돈슨을 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찌저찌 돈슨에 취업하고 나서도 찔렸다.
"그렇긴 하지."
"네?"
"단풍잎스토리 과금 유도가 개쩔긴 해~"
"아, 네……."
혹시 돈슨은 악의 소굴이 아닐지.
돈만 밝히고 양심 없는 직원들이 우글거리면 어떡하지.
인턴 때만 해도 그런 고민을 달고 살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 동안 알게 된 건.
'다 알긴 아는구나.'
의외로 '평범'했던 것이다.
자신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개발자가 된 이들이다.
"건배!"
"위하여!"
""하하하!""
업무가 끝나고 술자리.
딱히 강요로 참석한 게 아니다.
직장 선배들은 굉장히 유쾌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이 과금 유도에 혈안이 된 게임이라니?
"하~"
"제가 좀 실례되는 소리를 했죠?"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신입때 그 고민 다 한 번씩해."
"네……."
"그런데 있잖아 생각을 해봐."
제1 개발팀의 팀장.
윤하림이 치킨 다리를 접시에 얹어주며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신입인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일하는 직원이잖아."
"네."
"회사가 방향을 잡은 대로 하는 거고, 그거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 가지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렇군요."
"뭣하면 떠나면 그만이야~ 요즘 이직이 얼마나 쉬운데."
"아."
선배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합리화 같다는 실례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가?'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고, 자신들은 딱히 잘못이 없다.
납득이 되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남는다.
그렇다.
이 회사는 이상하다.
"이번에 또 커뮤니티 난리 난 거 봤어?"
"봤지~!"
"그러니까 인원 좀 2배로 확충해주지. 조금만 해주니까 우리도 할 수가 없잖아~!"
애사심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회사에서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도 입사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가족 같은 회사!
비꼬는 농담이지만 돈슨은 확실히 괜찮다.
연봉은 업계 최고 대우고, 복지도 비교 대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에라, 모르겠다.'
머리 아프게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
자신도 남들처럼, 선배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하면 될 것이다.
"어때, 직원들은?
"아시잖습니까."
"알긴 아는데 그래도."
"돈슨은 칼퇴인 거."
"……."
그러한 사내 문화.
장연수도 당연히 알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자신도 평사원이었다.
'그러니까 니들이 승진을 못 하지.'
돈슨의 개가 되겠다는 신념 정도는 있어야 임원 후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까지 살기 싫다.
돈슨 직원이지만, 돈슨을 욕하며, 돈슨 게임을 만든다.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
애사심은 엿 바꿔 먹은 지 오래.
"그냥 직원 더 뽑아 달라고 하죠?"
"그게 쉽나. 솔직히 나 같아도 안 뽑아."
"디렉터님도요?"
"연봉은 많지, 일은 안 하지. 회사가 무슨 복지 센터도 아니고 이보다 얼마나 더 퍼줘?"
평직원이었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안 했다.
임원급으로서 회사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면 알수록 보수적으로 굳는다.
'정직원이라는 게 뽑고 싶다고 뽑을 수 있는 거냐고.'
특히 프로그래머.
인수인계가 오래 걸린다.
설사 늘린다 하더라도 작업 효율이 나오는 건 한참 뒤의 이야기다.
그마저도 기존 직원들이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돈슨은 업무 효율이 최하위.
까놓고 말해 월급 도둑 투성이다.
"우리가 구로의 등대 마냥 갈아 넣는 것도 아닌데 야근 좀 해주면 덧나나?"
"디렉터님."
"어?"
"저 퇴근 준비 하겠습니다."
"……."
오죽 하면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돈을 원하면 엔씨, 놀고 싶으면 돈슨, 과로가 좋으면 넷마블.
'판교의 등대가 되어봐야 정신 차리지.'
옆동네 넷마블은 야근으로 회사 건물이 24시간 켜져있는 탓에 등대라고도 불린다.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지만, 잠깐 정도는 헌신을 해줘도 되는 게 아닌지.
돈 벌 때는 같이 벌고, 욕 먹을 때는 나 몰라라 한다.
회사와 직원 사이에 끼인 장연수는 죽을 맛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올 지경이다.
〔민하씨〕
「연수씨」
「정환씨한테 이야기를 들은 게 있는데요」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응!
―당연히 되지~
―답장이 좀 늦었지?
「겨우 1분인데요 ㅎㅎ」
그래도 힐링이 되는 대상이 있다.
그녀가 있어서 삶을 이어나가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적으로도 말이다.
BJ를 하고 있고, 오정환과도 아는 사이다.
자신을 대신해 의견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사정은 알겠는데 한 가지 전제가 있다고."
"전제? 어떤 일인데?"
<돈슨 본사에 초대 받고 싶다는데요?>
"……."
안 좋은 트라우마가 머릿속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