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돈슨의 유저 농락.
사실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다.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의심 자체는 옛날부터 나왔다.
하지만 세로 드립처럼 확실하지 않고, 밝혀져도 시간이 흐른 뒤다.
그러다 보니 유야무야 묻히게 된다.
내가 작정을 해버린 시점에서 있을 수가 없는 미래다.
─메이플패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와 개소름 돋네 ㄷㄷ
"진짜 제가 웬만하면 이런 억측하고 싶지 않았는데 좀 심했더라고요."
―체리피커가 그런 뜻이었어??
―ㅁㅊ
―킹리적 갓심 할 만하지
―돈슨이 진짜 미쳤구나
어제 이뤄진 단풍잎스토리 패치.
업데이트 사항을 시청자들과 보고 있다.
얼핏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어의 나열들 말이다.
단풍잎스토리 1.0.597 업데이트〕
신규 이벤트― 「개와 돼지의 시간」
신규 스킬― 「핑크린의 쇼타임」
신규 업적― 「성실한 체리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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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럴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지나치게 끼워 맞추는 것은 과몰입이다.
그것이 변명의 여지를 만든다.
직원들도 그 점을 알고서 악용한다.
자신들은 일부러 한 게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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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게임 '개와 돼지의 시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확인 버튼을 누르면 이동합니다.
「확인」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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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친화적이고, 그런 일이 드물고, 타이밍도 억박자라면 우연일 수 있다.
그런데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메세지를 숨겨 놓는다면.
─사회선생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개돼지는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ㅋㅋ
"조금 선 넘긴 했죠."
―조금?
―이건 나도 보자마자 움찔 했음
―진짜 식겁하네
―역으로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나하나 발굴하여 찾아낸다.
그 심각성을 시청자들도 인지하게 만든다.
「핑크린의 쇼타임」
관객이 원한 적 없는 마술쇼가 진행 중이다
새로 추가된 이벤트 버프.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근데 스킬 설명은 필요한 문구만 직관적으로 서술해 놓거든.'
지금까지는 패치 방식이 그러했다.
무슨 잡템처럼 스토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갑자기 기존 방식에서 바꾼 이유?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추리력만렙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돈슨 간 거 비꼰 거 아님?
"그럴 수도 있겠죠."
―원한 적 없는 마술쇼ㅋㅋㅋㅋㅋㅋㅋ
―이분이 파프리카 최고의 마술사 맞죠??
―디테일 보소
―직장이 사라지는 마술 부려주고 싶네 ㅇㅇ;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우연히 그날따라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마지막 패치도 찾아본다.
[일일 퀘스트] 성실한 체리 피커
1000일 동안 일일 퀘스트를 완료할 시 주는 업적의 타이틀.
체리 피킹은 한국으로 따지면 이케아 연필거지/코스트코 양파거지 같은 느낌의 단어다.
"영어로 대충 쓴다고 모르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닌데. 옛날처럼 스워드소드 이런 거 안 먹히거든요."
―스워드소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스가르드 아시는구나!
―체리피커 첨 듣는 말이라 구글에서 찾아보고 왔는데 소름―몰랐으면 받고 좋아할 뻔
이러한 패치들.
출시 당시에는 의외로 눈치채지 못했다.
대충 봤거나, 영어 속어를 잘 몰랐거나 그 이전에.
'게임사가 설마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겠냐고.'
게임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개발자뿐만이 아니다.
게이머들도 자신이 하는 게임을 사랑한다.
무슨 게임을 하는지로 논쟁이 붙은 경험.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씩은 있다.
자부심을 가진다는 소리다.
그것을 근본부터 뭉개뜨린 것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돈슨이 병크를 터트린 책임에서 직원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메리카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로 만에 하나 우연이면 어떡함?
"글쎄요. 제가 돈슨 회장님께 가서 사과 드리면 될까요?"
―회장님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
―철천지 원수 아님?
―살해 당한다……
―???: 여러분의 캐시값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깜지를 써내릴 시간이다.
* * *
개인 방송.
그 파급력은 실시간으로, 그것도 다이렉트로 미친다.
〔단풍잎스토리 갤러리〕
─개와 돼지의 시간 누구 아이디어냨ㅋㅋㅋㅋㅋㅋㅋ [5]
─돈슨 ㄹㅇ 빼박인 게
─총정리) 오정환 방송 요약. txt [525] +739
─성실한 체리피커 땄다 질문 받는다…… [12] +20
.
.
.
커뮤니티는 당연히 난리가 난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패치 사항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성실한 체리피커 땄다 질문 받는다……
[단풍잎스토리 캡처, jpg]
아! 내가 흑우다
└흑우 왔능가
└어케 땄누 ^^ㅣX련ㄴ아
└매일 2시간씩 해야 간신히 딸 텐데 체리피커 취급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사료 안 받을 거냐고~
패치가 된 직후에 알게 된 것이다.
유저들이 받는 충격도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과자에서 벌레가 나왔을 때.
나중에 깨달으면 기분이 더러운 정도지만, 먹던 중에 깨달으면 헛구역질이 나온다.
─개와 돼지의 시간 누구 아이디어냨ㅋㅋㅋㅋㅋㅋㅋ
만든 새끼 ㄹㅇ 개빡대가리네
이게 문제가 안 생길 줄 알았나
└능지가 X발 ㅋㅋ
└개돼지가 입버릇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글쓴이― 신빙성 있네
└평소에 유저를 개돼지로 봤으니까 저런 작명이 나오지
불이 크게 번진다.
안 그래도 불만이 타오르고 있던 와중에 연료가 끼얹어진 것이다.
"진짜 누구 아이디어냐?"
"찬기 아님?"
"저 맞습니다.
단풍잎팀의 사무실도 난리가 난다.
오정환이 직접 들이닥쳐 난리까지 피운 만큼 신경을 안 쓰기도 힘들다.
"무슨 생각으로 했냐?"
"개돼지 드립이 찰지더라고요."
"그건 맞지."
"인정!"
시각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애시당초 직원의 실수가 아니다.
한 인기 게임의 프로젝트가 얼렁뚱땅 통과될 수 있을 리 없다.
"유저들도 개돼지 드립 치면서 우리한테만 랄지야."
"그러니까 개돼지 취급 받는 거지."
"진짜로~"
당연히 회의를 거친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니 필터링이 거쳐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올 수 있는 결과물.
유저들과의 공감대가 전혀 성립돼있지 않다.
"잠깐 괜찮나?"
"예 디렉터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니, 지금 커뮤니티가 난리가 나가지고. 너희들 몰라?"
""…….""
그것과는 별개로 책임은 져야 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장연수의 등장에 직원들은 얼어붙는다.
작명으로 장난질을 치는 건 디렉터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상사의 허락을 맡고 싶지 않다.
"어, 윤팀장."
"디렉터님 오해입니다."
"오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소소한 장난이다.
선례를 남겼다가는 더 이상 못하게 될 수 있다.
그 이전에 시말서.
제재를 받을 수 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감봉과 인사 불이익에 처할지 모른다.
윤하림의 두뇌가 2+2×2를 푸는 채연 만큼 풀가동한다.
어떤 변명을 해야 먹힐지.
사실 다 계획을 짜놨다.
"도개걸윷모 아시잖아요?"
"알지."
"개와 돼지의 시간이 윷놀이 미니 게임인데 도와 개에서 따온 겁니다."
"음…….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
장난질을 하는 시점에서 말이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상정하고 있어야 더 짜릿한 법이다.
"그렇죠?"
"그것과는 별개로 오해할 만한 것도 사실이야."
"네……."
"수정하고, 업데이트 노트에 개발자 코멘트 적어서 해명해둬."
납득을 한 장연수가 자리를 떠난다.
신입인 명수가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쉰다.
"휴~ 죽다 살았어요!"
"죽다 살아?"
"만약 들켰으면 큰일 나는 거였잖아요."
"에이."
"?"
""하하!!""
명수만 모른다.
다른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장난을 쉽게 치는 건 아니다.
'할 만하니까 치는 거지.'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놓는다.
명백한 거짓이라고 특정할 수 없게 된다.
나머지 논란에 대해서도 반론이 준비되어있다.
〔단풍잎스토리 1.0.597 업데이트 [오류 수정]〕
■? 개와 돼지의 시간
(변경 전) 개와 돼지의 시간
(변경 후) 개와 말의 시간
개발자 코멘트 : 2007년 방영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패러디한 표현이었습니다. 개와 돼지는 윷놀이의 도와 개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미니게임명을 변경합니다.
■? 핑크린의 쇼타임
(변경 전) 관객이 원한 적 없는 마술쇼가 진행 중이다.
(변경 후) 마술 도구마저 빼앗긴 몬스터들이 원하지 않았던 마술쇼가 진행 중이다.
개발자? 코멘트 :? 몬스터들로부터 마술 도구를 강제로 빌린 후 마술쇼를 열어 공격하는 신규 스킬입니다. 몬스터들이 원하지 않았던 마술쇼를 강제로 보여준다는 컨셉이었는데, 의미상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스킬 설명을 변경합니다.
■성실한 체리피커
(변경 전) 성실한 체리피커
(변경 후) 1000일의 성실함
개발자 코멘트 : 웹 상의 밈을 패러디해 업적명을 기획하였습니다.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의미를 간과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의도는 없었지만, 고객님이 느끼실 감정을 소홀히 여긴 점 반성합니다.
완벽하게 말이다.
적당히 사과까지 섞었으니 여론은 수그러들 것이다.
"지들이 멋대로 오해한 걸 알면 쪽팔려서라도 언급 안 할 걸?"
"그렇겠네요!"
"오정환 걔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새끼는~ 이제 돈슨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어야지."
어렵지도 않은 일.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운영자들의 진짜 생각을 유저들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중하게 코멘트까지 남겼다.
억지를 부린다고 해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윤하림은 웃음을 짓는다.
'니까짓 게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돈슨이나 디렉터는 엿 먹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슨에 근무하는 수많은 직원들은 이길 수 없다.
이번 사태만 마무리되면 손봐준다.
오정환이 하는 직업, 혹은 아이템에 사소한 장난을 마구마구 쳐줄 것이다.
'…….'
명수는 웃음을 지을 수 없다.
분명 공지의 내용은 그럴 듯하고, 자신이 유저여도 납득했을 것이다.
믿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운영자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유저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운영자라는 게 이런 거였나?'
운영자의 열에 아홉은 그러하다.
게이머 시절 동경하게 되어 게임 관련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상당히 드문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직업은 목표로 했다기 보다 살다 보니 되는 경우가 많다.
진실로 원했던 만큼 실망감도 크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운영자는 이런 게 아니다.
"아 벌써 5시 반이네!"
"슬슬 퇴근 준비하자~"
"아 칼퇴는 못 참지."
비록 고되고, 힘들더라도 보람이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공무원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공무원들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공무원들에게 실례일 정도다.
일은 일대로 안 하면서, 월급은 월급대로 꼬박꼬박 받아간다.
단풍잎팀에 인력이 없는 게 아니라 루팡이 너무 많다.
그로 인한 부담은 유저들이 전부 짊어진다.
이러한 실상은 자신만 안다.
자신만 입 닥치고 있으면 최소한 단풍잎이 망할 때까지는 이어질 것이다.
'…….'
꿀을 빨 수 있다.
저들과 똑같이 생각만 하면 된다.
사고 구조를 변화시키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면 마음이 편하다.
토독, 톡!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명수는 오정환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