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화
이해 관계가 없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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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부장의 증권 시황』
돈슨 버티신 분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보세요.
대충 좋은 기업 사서 물린 다음에 생업에 종사하시면 돼요.
이 기간 버티신 분들만 먹는 거예요.
여튼 다들 마음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이렇게 올라서 다행입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자 다음 증권사 레포트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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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
TV를 켜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왕 부장은 익히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이다.
'왕반꿀 매매법은 인정이지.'
유명 애널리스트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에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와 반비례로 악명 또한 높다.
추천해주는 주식마다 망한다.
버리면 오히려 올라간다.
최근 돈슨의 주식은 공매도의 타깃이었다고 한다.
주가가 25%나 급락하여 지하실을 헤메고 있었다.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면서 추천.
그를 추종하는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매수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만약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한참은 더 물려야 했겠지.'
사태가 장기화되며 곤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잦다 보니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염라대왕이라 불린다.
그것이 조기에 종결되었다.
돈슨 사장이 나를 총애한 이유.
주가의 상승에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부자 인맥.
그것도 게임사의 대표이사쯤 되면 방송에도 큰 도움이 된다.
딩동♪
커피 한 잔으로 아침잠을 깨고 있던 와중.
갑작스레 초인종이 울린다.
건방진 후배가 찾아왔다.
"하이루♡"
"그래."
"응?"
"들어와."
'오빠 텐션이 좀 낮네요?"
일전에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집 구경을 시켜주기로 말이다.
"오빠 학교 난리 난 거 알아요?"
"그래."
"과에서도 맨날 오빠 얘기뿐인데."
"그렇구나."
약속은 약속이다.
자신이 뱉은 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뭐, 그럴 수 있지.'
정체를 숨기고 다녔던 것.
그게 뭐 별 의미가 있나 싶지만,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사실 유명인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인지도라는 것은 주위에서 보는 시선에 불과하니까.
"오빠 딸 쳤어요?"
"뭐?"
"현자 타임인 것 같아서."
"……."
자기 객관화는 인플루언서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자칫 잘못하면 도취하거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렇게 별일 아니라니까.'
난리가 날 수 있다.
그런 난리도 한두세네 번 겪어보면 그러려니 한다.
일일이 반응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빠 자……."
"맛있는 거 시켜 먹거나 아니면 뭐 하나 만들어줄 테니 그거 먹고 돌아가."
"?"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대응하면 된다.
자고 일어났더니 카톡이 잔뜩 쌓여 있다고 놀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오빠."
"왜."
"그게 끝이에요?"
"그럼 뭐.
"귀여운~ 후배가 왔는데~"
여자도 말이다.
무슨 새내기 대학생도 아니고 발정이 날 시기는 직작에 지났다.
'많이 먹기도 했고.'
BJ 데뷔에 욕심도 없다.
더 탐구를 해봤자 생산성이 있지 않다.
그냥 귀여운 후배다.
"시시해."
"뭘 원한 건데."
"인기BJ의 두 얼굴 보고 싶단 말이에요~!"
"이게 평소 모습이야."
긴장을 반쯤 놓고 다닌다.
방송 중에 빠릿하게 서있다 보면, 평소에는 여유가 고파지기 마련이다.
토독, 톡!
배민으로 적당히 맛있는 음식을 시킨다.
배부르게 먹고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써준다.
"저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요."
"그래."
"오빠 보여주고 싶어서 현상해서 가지고 왔는데♡"
"그렇구나."
한창 먹을 때다.
남기면 내가 밥 반찬으로 먹으면 되니까 여러 가지 추가한다.
딩동♪
단골이라 그런지 빠르게 도착한다.
근처 중국집.
우리 봄이가 있었을 때는 장사가 잘됐는데 요즘은 잘 살고 있나 모르겠다.
"가리는 거 있어?"
"아뇨……."
"먹어."
"먹긴 할 건데."
"젓가락 까 그럼."
"오빠 혹시 어디 세게 부딪힌 적 있어요? 거기라든가."
"……."
사소한 오해가 있는 모양이다.
누가 보면 내가 여자에 환장한 불한당일 줄 알겠다.
"저 허벌 만들어주신다 했잖아요."
"요즘은 도구가 좋아서 혼자서도 돼."
"오빠가 해줘야 전남친 엿 먹일 수 있는데요."
"친구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
"아아아~~!"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지 모르겠다.
사람 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르는 건데.
'헐거운 게 취향일 수도 있는 거고.'
뭐든지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
우리 왕 부장님처럼 된다고 생각해야, 안될 것 같은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아앙~ 절 빨리 허벌 만들어줘야 오빠 계획도 도와주죠."
"계획?"
"한국대 조교 계획 같은 거 있지 않았어요?"
"……."
"반반한 년들 전부 오빠 노예로 만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엄청난 전복 계획을 수립한 적은 없다.
출산율에는 지대한 공헌을 하여 현정부에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리스크가 조금 지나쳐 보인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니까요?"
"또 뭐가."
"서은 언니도 오빠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고요."
"……."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죠? 팍팍 늘려가자구요~!"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줄 뿐이다.
오해받는다면 슬픈 일.
소라의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묘사돼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
소라의 배 위에 손을 올린다.
쏙 들어가 있다는 게 표면만 만져도 느껴진다.
깐풍기와 유산슬을 삼킬 때마다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그래, 여기는 음식물을 넣는 곳이지.'
요즘 애들이 발육이 좋아서 어른 같아 보이긴 해도, 속은 정말 여리기 짝이 없다.
직접 써봐서 잘 알고 있다.
"대체 뭘 원하는데."
"개목줄 같은 것도 매고, 알몸 산책 같은 것도 하고 여러 가지 해줄 줄 알았단 말이에요~"
"허허, 그런 걸 할 리가 없잖아."
"그건 좀 심한가? 아무튼~!"
어처구니없는 생떼를 부려온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이해는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너무 앞서갈 필요 없다.
귀여운 후배다.
바람직한 대학 생활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 일환으로 일탈에 어울려주고 있었던 거지, 다른 의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어?"
"……네."
"그래, 또 밥 먹으러 와. 오늘은 오빠가 좀 쉬고 싶어서 시켜 먹었는데, 다음에는 나가서 사줄게. 산책도 하고."
"……."
음식이 입에 맞는지 불평을 하면서도 잘 먹는다.
배가 엄청 고팠나 보다.
사주는 입장에서 흐뭇하다.
후식으로 커피도 한 잔 내려준다.
후배에게 밥도 먹이고, 다른 것도 먹이고 선배로서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오빠."
"응?"
"저 진짜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단 말이에요."
"왜? 아직 배고파? 더 시켜줘?"
"아니~ 여기요."
그럼에도 칭얼댄다.
집에 보내려고 하니 자꾸 달라붙어서 난리다.
자신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물론 몸매 관리도 중요하긴 한데.'
심신은 하나와 같아서 몸매가 착해지면, 성격도 착해지기 마련이다.
무거우신 분들이 불만이 많은 이유가 있다.
"여기로 하고 싶어서."
"응?"
"냄새 나거나 하면 깨잖아요. 그래서 금식하고 물만 먹었어요."
"크흠!"
"저 처음인데♡"
부탁을 거절 못 하는 나의 착한 성격이 원망스럽다.
후배의 소중한 경험이 잘못되지 않도록 인도해주는 것도 선배의 책무일지 모른다.
'그래, 나중에 떡상 할지도 모르고.'
나도 애널리스트가 돼보고자 한다.
* * *
한국대.
"진짜로?"
"와……."
"완전 소름 아님?
"여기서 아는 사람 정말 아무도 없었어?"
소문이 퍼지는 데는 며칠이라는 시간도 과분하다.
건축디자인과 학생들은 어젯밤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나도 방송 보다가 진짜 혹시나 했는데."
"나도! 나도!"
"평소에 마스크 쓰고 다녀 가지고 꽃가루 알레르기인 줄 알았더니 와~"
그도 그럴 게 떠들썩하다.
복귀 후 첫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간의 찬사를 받고 있다.
돈슨 운영자.
싸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람쥐를 안 뿌려줘서 빡친 경험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승우 오빠 요리 잘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진짜! 진짜!"
"완전 소름 아님?
"먹방에서 하던 걸 그대로 만들어줬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지~"
이를 속 시원히 해결했다.
본래도 인기가 높던 BJ다.
한국대에서는 특히 더 각별한 존재.
같은 학교를 다니는 유명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게 된다.
그를 찾기 위해 수색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학과.
심지어 친분을 쌓았다.
떠들 만한 썰이 한두세네 개가 아니다.
"너희 학과에 오정환 있다며?"
"엣헴! 있지~"
"우리 학과 대선배야. 어딜 싸가지 없게 말을 까니 썅년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썰 좀 풀어주시옵소서."
다른 학과에 으스댈 거리가 생긴다.
어깨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그런 유명인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니.
"근데."
"웅?"
"정환 오빠랑 가장 친한 거 소영이잖아."
"그치! 그치!"
"소영이는 알았던 거 아니야?"
"헐~ 대박 사건!"
"완존 실망."
"그만해 소영이 삐져."
"농담인 거 알지 소영아?"
"……."
그중에서도 가장 친했다.
항상 둘이 붙어 다니더라.
신입생 MT에 초대하게 된 계기도 그래서였다.
그 덕분에 오정환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원래부터 친했던 둘은 무언가 커넥션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리도리
소영이 고개를 젓는다.
그녀의 성격이 소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친구가 된 이후로는 이해를 해주고 있다.
그렇구나.
몰랐구나.
별생각 없이 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
소영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정말 상상치도 못했다.
아니, 사실 잘 알지도 못했다.
자신은 제외한 BJ들.
유명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딱히 방송을 보거나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똘이의 방송국〕
―똘이네 학교 대박 뉴스 뜸ㅋㅋㅋㅋㅋㅋㅋ [7] +2
―와 오정환이랑 같은 학교였네 [3]
―? ざん酷こくな天てん使しのテ? ゼ 이 노래 정말 좋네요 ㅇㅅㅇ―똘이님 한국대신 걸로 아는데 이 소문 확인 좀요! [2]
.
.
.
승우 오빠가 유명BJ였다.
자신의 방송국에도 이야기를 퍼다 나르는 사람이 있다.
교내의 누군가가 소문을 낸 모양이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방송에 대해 너무 잘 안다.
방송 장비를 직접 설치해주기까지 했다.
여러 가지 조언도 받았다.
그대로 하니 방송이 흥했다.
시청자 수와 별풍선 수익도 배 단위로 늘었다.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방송에 빠삭한 인기BJ가 컨설팅을 했으니 흥하지 않기도 힘들다.
〔승우 선배〕
?ㅋㅋ
「선배 지금 뭐해요?」
¹
「?」
¹
「선배~」¹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그러고 보면 카톡 답장이 안 온지도 벌써 며칠 째다.
소영은 강의 시간 내내 숫자 1이 언제 사라지나 확인만 10번을 했다.
'아, 아, 아 진짜!'
놀라운 것도 놀라운 거지만 여러 가지 한 게 많다.
친구들이 알고 있는 것 외에도 사적인 시간을 많이 보냈다.
물도 빼주고 키스도 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벌게질 만한 것들.
곰곰이 생각해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에또, 리만 가설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무엇인가 하면……."
교수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을 두들겨 알아본다.
오정환이 어떤 사람인지.
'아, 아닌데.'
자신이 아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성적인 장난을 어찌나 쳤는지 모른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아랫배가 이상하게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