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94화 (594/846)

594화

3킬 먹은 페이커보다 위협적이려면 몇 킬을 먹어야 할까?

'존나 어처구니없는 질문일 수 있는데.'

진지하게 곱씹어볼수록 의외로 어렵다.

날고 기는 선수들을 다 꺼내봤자 3킬 정도 먹었다고 큰 의미가 부여되진 않는다.

굳이 따지면 전성기 우지.

그 외에 쵸비, 쇼메, 캡스 등이 있기는 하겠지만, 혼자 게임을 끝낼 것 같다는 패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캐리력'은 원피스의 패왕색 패기에 비견되는 특별한 능력이다.

재능 있는 선수가 숱한 경험을 거쳐야 비로소 흉내라도 낼 수 있다.

그런 선수가 없는 팀은 플레이 방향성이 완전히 제한된다.

스노우볼을 굴리기 위해 피똥을 싸야 한다.

소위 말하는 아프리카 프릭스 해버린다.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그에 반해 있는 팀.

후반에 가는 것이 전혀 부담이 없다.

진행되는 한타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소리다.

뚜루룽~♬

슈욱!

풀리츠크랭크가 신나게 달려와 그랩을 날린다.

스킬샷은 피하는 쪽이 잘하는 걸까?

'적어도 방금은 그런 것 같아.'

궤적이 너무 뻔해서 맞기도 힘들었다.

물반 고기반의 대치 상황에서 잘도 못 뽑는다.

촤아앙!

어차피 진짜는 블러디미르.

랄라의 버프를 달고 빠르게 달려 들어온다.

「보호하세요.」

그 진입각을 짐작하고 있었다.

한 발 뺀 위치에서 네네톤에게 실드를 걸어준다.

'아직.'

네네톤이 궁극기를 켜고 앞라인을 잡는다.

조급하게 갈 이유가 하나 없다.

"빨려들지 마. 블러디부터."

<나 살았어!>

―코물쥐 딜 해……

―ㅈ됐는데

―모리아나 궁 안 씀?

―R―준비됨 R―준비됨 R―준비됨 R―준비됨 R―준비됨

한타는 3분할로 나눠서 살펴야 한다.

머릿속에서 그린 구도.

실제 행해지는 구도.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한타는 5 대 5의 싸움이다.

특별히 잘 큰 게 아닌 이상 개인이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격적인 선수는 적에게 잘린다.

안정적인 선수는 플레이메이킹을 못한다.

던지지 않고, 한타까지 잘하는 게 '캐리력'.

상반된 두 가지를 완벽히 해내는 것은 글자 그대로 입롤의 영역이다.

「파괴하세요.」

톡!

이를 인지한 채 재해석한다.

이 한타가 이기는 그림으로 흘러가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블러디를 두들겨 패며 압박감을 심어준다.

너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시에 적에게는 진입각을 열어준다.

블러디의 궁극기에 양념이 되어있기 때문에.

「커져라~♬」

한타를 지속할수록 자신들이 유리하다.

그러한 착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바로 지금.'

랄라가 궁극기를 거는 아슬아슬한 사거리.

그 지점의 넓은 공간이 찌그러진다.

호롱!

콰드득!

어슬렁거리던 풀리츠크랭크를 포함한 세 명의 적이 휩쓸린다.

에어본과 동시에 공을 굴려 풀콤보를 먹인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풀리츠크랭크와 랄라가 즉사.

커져라를 받은 블러디미르는 살긴 했지만 산 게 아니다.

―오정환이 다 하네

―싸버렸다……

―의심 ㄴ

―와 ㅅㅂ 3인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조냐와 웅덩이가 빠졌다.

2스택을 쌓은 평타와 공으로 마무리하며 다음 대상을 노린다.

─트리플 킬!

케이클린.

프리딜을 잡게 만들어줄 앞라인이 분쇄됐다.

카이팅을 열심히 쳐봤자.

탈캉―!

「방출하세요.」

점멸로 투망을 뛰어넘으며 QW를 먹인다.

뒤늦게 맞점멸을 쓰지만 느려진 시점에서 죽은 목숨이다.

"용 챙기고 한 명 바텀."

<네!>

"나머지는 정비하고 역바론 봐야 돼."

―궁이 너무 대박이었다

―개쿨;;

―진짜 오정환은 미친 건가??

―쿼드라인데 표정이 안 변해

상대가 빨려 들어왔다.

그 시점을 인지하고, 맥을 끊어서 역으로 받아쳤다.

'그 맥 말고.'

씨지맥이 가장 많이 당하는 한타이기도 하다.

상대가 팀게임에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생기는 맹점도 있다.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미드 라인을 밀어 넣고, 바론 강가에 와드를 박은 후 귀환한다.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역바론 하나뿐이다.

<쟤네 바론 쳐요!>

"풀차징 회오리 한 번 날려."

<오 뺀다! 뺀다!>

아니나 다를까 실행에 옮겨온다.

들켜버린 시점에서 실패한 노림수가 됐지만 말이다.

'쟤네가 정교하게 움직이면.'

우리도 정교하게 움직이면 된다.

게임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며 이제는 우리 쪽에서 굴린다.

「파괴하세요.」

미드 2차 포탑.

공을 올려두고 압박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들어오지 못한다.

"포탑만, 포탑만. 쟤네 못 들어와."

―왜 못 들어옴?

―오

―2차 그냥 내주넼ㅋㅋㅋㅋㅋㅋㅋ

―미드 차이지 ㅋ

산드라 모리아나 등.

소위 공 굴리는 챔피언들이 아무리 너프를 먹어도 쓰이는 이유가 있다.

'공간을 지배하잖아.'

공간을 지배하는 자!

딱히 런닝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궁극기.

모리아나의 궁이 대박 나면 어떻게 되는지 방금 막 깨달은 참이다.

의식을 더 할 수밖에 없다.

공을 깔짝깔짝 움직이자 상대팀의 움직임은 저절로 소극적으로 변한다.

─적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팔이 짧다.

상대 조합은 수성에 취약하다.

미드 2차 포탑을 공짜로 챙겨간다.

'이런 식으로.'

캐리력이 있으면 역전과 굳히기라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상대는 재역전이 불가능하다.

꾸뤄러러럭―!

바론.

훤해진 미드 시야를 근거로 친다.

조금 늦을지언정 상대도 반응을 하겠지만.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공간을 지배하는 자!

공을 살짝 굴리는 것만으로 진입 속도를 대폭 늦출 수 있다.

휘리리리링~!

한나의 회오리까지.

어째서 유재석이 부끄러운 주문을 외치고 다녔는지 깨닫게 된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적들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론을 취하고, 한 발 빠지는 진영이 그려진다.

촤아앙!

그럼에도 무리하게 달려든다면 정해진 결과로 귀결된다.

블러디미르는 적당히 무시한다.

「보호하세요.」

「파괴하세요.」

본대를 향해 드리블.

상대는 작정을 하고 달려든다.

이전 한타의 패인을 의식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두 번째 패배도 예고된다.

자신들의 생각이 뻔하게 드러났으니 당연한 결과.

터억!

챠라랑!

앨리스의 점멸 고치와 함께 포격이 쏟아진다.

내가 순삭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 하나밖에 없었다.

띠이잉……!

조냐의 모래시계.

2.5초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신 아무 공격도 받지 않는다.

블러디의 궁극기까지 한꺼번에 상쇄한다.

달칵!

대신 풀렸을 때 집중 공격을 받는다.

케이클린이 약삭빠르게 발밑에 덫까지 깔아온다.

'이미 끝났어.'

애당초 1 대 4로 이기려는 호승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의 역할은 상대를 묶어 놓는 것.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팀이 들어가기 예쁜 각을 만드는 것이다.

블러디미르가 죽었다.

네네톤의 발이 풀린다.

쿠!

꾸드득!

점멸 e로 들어가 적 진영을 뭉개 놓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생존각이 잡히고.

「보호하세요.」

호롱!

적은 맹점이 생긴다.

깽판을 치고 있는 네테톤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고 만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트리플 킬!

적들이 한데 찌부러진다.

네네톤이 강화Q를 휘두르는 것으로 전부 저세상 행.

―ㅈ됨

―궁 X발 아트로 들어가넼ㅋㅋㅋㅋㅋㅋㅋ

―이 팀 원딜 없음?

―힘 차이 ㅈㅈ

한타를 깔끔하게 터트린다.

귀환을 할 것도 없이 그대로 넥서스까지 미는 각이다.

『승리』

다소 불리하게 시작했던 게임.

훌륭한 역전승으로 1세트의 종지부를 찍는다.

─세체미오정환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이게 다크와 오정환의 차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체미 님 별풍선 만 개 감사합니다! 그래도 솔랭이었으면 제가 졌죠."

―만 개 받을 만하지 ㄹㅇ

―솔랭이었으면?

―이걸 ^맥^이네

―아 너는 솔랭이나 하라궄ㅋㅋㅋㅋㅋㅋㅋㅋ

스토리텔링도 자연스럽게 짜인다.

같은 구도에서 아무것도 못 한 못난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 그래.'

솔로랭크와 대회는 이기는 방법이 180도 다르다.

아예 다른 게임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솔로랭크는 상대 실수 받아먹기.

사람마다 승리 공식은 다르겠지만 결국 이 하나로 귀결된다.

대회 무대는 그 실수를 하지 않는 프로들이 게임을 한다.

따라서 공식부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5분 안에 볼일 보고 바로 2세트 준비해야 돼."

<네!>

<이이잉~ 기모링~!>

물론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무난하고 안정적인 플레이 스타일도 충분히 대성할 수 있다.

'그게 쿠로지.'

+캐리력.

있고 없고의 차이로 가치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갈린다.

어떤 스타일에 더하든 귀중한 능력이다.

나로서도 쉽게 흉내 내기 힘들다.

<정환 님, 저번에 말씀하신 거 말인데…….>

"하이?"

실전의 경험.

코물쥐라는 짐 덩어리.

큰 무대를 뛰면서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잘해진 것 같기는 해.'

그 말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게임을 넓게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됐고, 조급함이 사라졌다.

옛날 같았으면 코물쥐 귀싸대기 때리고 시작했을 일.

다른 돌파구가 없나 생각의 방향을 넓히게 되었다.

<방금 판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왜요, 잘하셨는데."

<그건! 그건 님이 깔아준 거 받아먹은 거잖아요!>

―뭔 일이야

―방금 네네톤 개잘했는데

―ㄹㅇ 든든했지

―둘이 뭔 일 있었음?

프로를 목표하고 있다는 의진맨.

일전에 개인적으로 물었던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닌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심심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알고서 각 본 거 아니에요?"

<그건 맞는데.>

"그럼 됐지."

<그건 너무 수동적이었잖아요.>

도저히 캐리라고 볼 수 없다.

최근 의진맨은 멸망전을 계기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운식당이 정말 맛집이었는데.'

운식당 팬으로서 아쉽기는 하지만, 한 명의 BJ로서는 발전을 응원한다.

BJ로 끝나고 싶지 않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특별함이 필요하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건 이 부분일 것이다.

"한마디로 캐리를 하고 싶은 거예요?"

<네! 캐리력을 올리고 싶어서요.>

―의진맨 노력하네 ㄷㄷ

―멋있다!

―이게 바로 싸우는 요리사인가?

―오올 블루를 찾아서……

그렇기에 착각을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알기 쉬운 캐리.

'어이, 바보도 알 수 있게 캐리해.'

어떤 금지된 만화의 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이상이다.

프로게이머라면 과정에 초점을 둬야 한다.

알기 쉽든, 알기 어렵든 마찬가지다.

캐리라는 것은 결국 결과물에 불과하다.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알맹이를 키워서 '진짜 실력'을 늘리는 것만이 해답이다.

"저도 캐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 그러니까 어떻게!>

"캐리하고 싶다는 것은 매일 캐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간단할 수가 없는 이야기다.

* * *

팡우팀.

<썅노메 거어~~!!>

―샤우팅 ON

―리액션 맛집이네

―지니까 더 웃김ㅋㅋㅋㅋㅋㅋ

―니가 왜 화를 내?

1세트를 패배하고 만다.

그렇다고 팀 분위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 이길 수 있었는데.>

<집중해서 다음 판은 이겨봅시다.>

그도 그럴 게 과정이 좋았다.

마무리를 하는 과정이 나빴을 뿐.

'…….'

도인디만이 표정이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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