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화
당연히 잘하고 싶다.
'…….'
의진맨은 꿈이 있다.
LCK에서 프로로 성공해, 운식당을 차려서 노후까지 든든하게 대비한다.
그 첫 단추로서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다시 챌린저를 찍었다.
「전진하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탑 차이가 난다.
'나도 딜 챔프로 캐리 좀 해보려고 했는데.'
네네톤을 할 때는 그럭저럭 대응이 가능했다.
아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상당히 잘했다.
그래서 고집을 부려 잡은 나이즈.
연거푸 죽으며 게임 흐름에서 완전히 이탈됐다.
"두꺼비 털리고 있는 것 같아."
<네~!>
―탑 차이
―그냥 운식당 차리자
―상대는 정글에서 먹방 찍는데 우리 탑은 뭐 하누?
―CS 야무지게 먹어야쥐이~!
자신 때문에 아군의 피해가 무지막지하다.
눈에 보이는 정글몹은 물론, 눈에 안 보이는 시야와 합류는 그 이상이다.
'답이 없네.'
솔로랭크에서도 나이즈는 한 번 죽으면 계속 죽는다.
대회가 되자 그 단점이 훨씬 더 발목을 붙잡는다.
팀이 불리해지지 않도록 덜 죽어야 한다.
최대한 실수를 줄여야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가 않다.
리스크가 있는 플레이를 지양하게 된다.
더 소극적이게 되고, 그만큼 아군의 짐은 무거워진다.
크롸라라라―!
진행되는 용 한타.
솔직하게 이길 가망성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자신은 사실상 없는 사람이다.
못 큰 나이즈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속박 한 번 걸어주기.
리워크 이전의 초기.
스킬이 전부 타겟팅인 대신 사거리가 짧다.
원딜러랑 같은 포지션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상대 버프 빠졌어. 이니시 본다.>
"어?"
의미 불명의 콜이 들린다.
헤일의 W, 랄라의 EW 등이 빠졌다.
'그걸 굳이 오디오에 채워야 하나?'
중요도 낮은 콜은 하지 마라.
다름 아닌 오정환이 했던 소리다.
곱씹으면 곱씹어볼수록 납득이 간다.
솔로랭크에서 아군이 핑 한 번만 잘못 찍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대회라고 다를 리 있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해가 안 간다.
궁극기도 아니고 일반 스킬 좀 뺀 게 뭐가 대수인지.
「보호하세요.」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기다림이랄 것도 없었다.
모리아나가 궁극기를 쓴다.
호롱!
콰드득!
헤일이 불꽃 싸다구를 날리려고 하고, 적의 본대는 원호를 위해 달려오고 있을 때.
―와
―이걸 각을 봤다고??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존야가 있었구나
공을 거둬들이는 움직임.
서로 적당히 기싸움 하다 빠진다고 생각했던 순간이다.
모리아나가 앞점멸을 썼다.
먼저 사용해둔 궁극기의 선딜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며.
「파괴하세요.」
띠이잉……!
아름답게 그려진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 얹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챠륵!
앞점멸 속박.
못 큰 나이즈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 나이즈
R ― 필사적인 주문
나이즈가 주문 흡혈 효과를 얻고 모든 스킬이 50% 광역 피해를 입힙니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나이즈는 단 하나의 전제하에 입롤 수준의 폭딜을 넣을 수 있다.
좁은 공간에 적들이 뭉쳐진 상황.
챠자장!
치직!
나이즈의 주문이 적들 사이를 튕긴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광역 피해의 효과를 가진다.
「커져라~♬」
「불멸의 존재다!」
랄라와 헤일이 궁극기를 쓰지만 상관없다.
당황한 적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다시 뭉치게 된다.
1 대 1이라면 간지러울 수준의 딜이 2배는 강력하게 박힌다.
「시궁창 맛 좀 봐라!」
코물쥐의 카이팅도 말이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원딜러도 프리딜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조냐 상태에서 깨어난 모리아나가 공을 굴린다.
적들을 느리게 만들며 아군은 빨라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얼떨결에 킬까지 먹게 된다.
아예 사이즈도 안 나올 거라 생각했던 한타가 대승이라는 결과로 끝이 난다.
"이니시 미쳤다."
<쟤네가 자신감이 너무 있더라고.>
"진짜 뭘 보고 들어간……."
<바텀 빨리. 다 탄다.>
―모리아나 점멸궁이 지렸음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개쿨
―아직 이긴 거 아님
―ㄹㅇ 이제 동점인데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한 이니시각이었다.
버프가 다 빠진 상대는 반격은커녕 도주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놀라운 건 아군이 너무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말렸던 자신이 딜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찰칵!
나이즈는 한 번 말리면 밑도 끝도 없이 말리는 챔피언이다.
하지만 복구가 쉬운 챔피언이기도 하다.
킬을 먹는다는 전제하.
그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여눈을 대악마의 지팡이로 업그레이드한다.
하도 말려있다 보니 여눈 스택이 다 차있다.
구입하자마자 대악마의 포옹으로 진화한다.
'이 정도 나오면 할 만한데?.'
여눈 상위템은 가성비가 굉장히 좋다.
나이즈는 로아와 세라프만 나와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는다.
「전진하라!」
사이드 라인.
헤일을 상대로도 이제 꿀릴 것이 없다.
그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했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든다.
치직!
챠륵!
국민 콤보를 날려준다.
QWERQ평Q.
3분 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데미지에 깜짝 놀란 헤일이 궁극기를 쓴다.
'이겼다! 잡았다!'
대악마의 포옹으로 한 턴 버텨낼 수 있다.
2코어 타이밍의 나이즈는 1 대 1은 반드시 씹어 먹는다.
─의진맨님이 학살 중입니다!
따라가서 속박.
이어진 반콤보로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들뜰 때가 아니다.
자신이 잘해서 잡은 것이 아니다.
한 번 더 죽으면 자신을 풀어준 아군을 볼 면목이 없다.
"쭉 빼면 살 것 같애."
<오~ 솔로킬!>
<네이스!>
―의진맨! 의진맨! 의진맨! 의진맨! 의진맨!
―나이즈 다 복구됐네
―네이스형 원딜러
―이거 거의 역전 왔다 ㅋㅋ
미니맵을 보고 침착하게 도주 루트를 정한다.
귀환을 하면서 아군의 움직임과 동선을 살핀다.
평소의 컨디션으로 되돌아왔다.
전황도 전황이지만 게임을 하는 것이 편해졌다.
'이런 건가?'
만약 한타에서 모리아나가 무쌍을 찍고 이겼다고 한들.
자신을 포함한 아군은 그냥 그랬을 것이다.
아니, 더 힘들어진다.
말린 상황에서 아군의 템포에 맞추다 보면 실수가 나오기 쉽다.
사이드 관리하다가 죽기 일쑤.
"이거 내가 주도권 있으니까 나한테 2명 이상 오면 바론 치면 될 거 같은데?"
<같은데?>
"바론 쳐! 1 대 1은 내가 무조건 이겨."
자신이 찾고 있던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 기분이다.
* * *
두 번째 세트.
<라인전 단계에서 빌빌대던 그 나이즈 맞나요?>
<진급 누락된 줄 알았던 나이즈가 별 달고 왔습니다. 이 정도면 대장군은 아니어도 원스타까진 쳐주거든요.>
―진급 누락 ㅋㅋ
―ㄹㅇ 개망했었는데
―그 찐따 같던 나이즈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첫 번째 세트 이상으로 불리했다.
게임의 승기가 사실상 넘어갔다고 봐도 되는 수준.
「가자고, 어서!」
나이즈가 특히 심각했다.
인생이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챠륵!
치직!
챠자장!
궁극기를 켜고 빠르게 달려가 헤일에게 한 콤보 먹인다.
광역 데미지가 미니언 사이에 퍼진다.
―오오
―헤일 궁 빠짐ㅋㅋㅋㅋ
―저거 개사기네
―데미지가 중첩이 되는구나 ㄷㄷ
엄청난 폭딜.
나이즈의 존재감에 이목이 집중된다.
<나이즈가 초반부터 계속 괴롭힘을 당해서 힘들었잖아요?>
<저는 숨은 MVP라고 해보고 있습니다.>
<숨은 MVP!>
클끼리도 침을 튀기며 칭찬한다.
정글과 바텀이 약한 팀의 특성상 탑이 희생을 하고 있다.
팀의 지원 없이도 묵묵하게 버티고 있다.
한타 때도 잘해주고 사이드에서 기대 이상을 해준다.
'…….'
정작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생각은 다르지만 말이다.
도인디는 어처구니가 이렇게 없어본 적이 없다.
<나이즈 지금 전성기 타이밍이라…….>
"윗앤 떠야 되지?"
<최소.>
나이즈가 잘해서?
그렇게 보기에는 완벽히 말리고 시작했다.
진짜 잘했다면 훨씬 능동적인 플레이를 했을 것이다.
'모리아나 궁이.'
글자 그대로 슈퍼 플레이.
예상을 뛰어넘는 한 수였다.
거기서부터 흐름이 180도 바뀌고 말았다.
「파괴하세요.」
「방출하세요.」
바론 대치 상황.
지금은 잠잠하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공을 굴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 돌발적인 플레이를 해올지 모른다.
그 사실 자체가 엄청난 압박감을 심어준다.
꿀꺽!
인간이다.
컴퓨터처럼 할 수가 없다.
전산 처리 능력이 무한대가 아니거니와.
「까꿍! 숨어 있는지 몰랐지! 으하하하!」
신경이 분할된다.
평소였다면 역관광을 쳐줬을 쥐새끼 한 마리를 잠시 놓쳐 버리고 말았다.
<나 무적 썼어.>
"궁 교환한 셈이니까 다시 자리 잡고……."
그럼에도 침착하게 대응한다.
헤일의 궁극기와 버프들로 상쇄하며 한타를 이어 나가려고 했는데.
「멈추시지!」
나이즈가 멱살을 잡는다.
점멸 속박.
평소였다면 이조차 대비를 했을 것이다.
'아니, 씹!
변이를 아끼고 있었다가 역관광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꼬여버린 첫 단추의 스노우볼이 굴러가고 있다.
「커져라~♬」
궁극기가 허무하게 빠져버린다.
진영은 진작에 무너졌고, 적들이 파고드는 틈새는 점점 넓어진다.
<이거 싸워야 될 것 같은데.>
"자, 잠깐!"
이대로 있으면 패배가 확정.
조급해진 크포의 헤일이 불꽃싸다구를 날릴 준비를 한다.
잘 큰 헤일의 지속딜은 강력하다.
하이브리드로 들어가며 탱커의 방어력도 뚫어버리지만.
호롱!
콰드득!
적팀의 노림수대로다.
모리아나의 궁극기가 넓은 범위를 찌그러뜨린다.
점멸을 쓴 도인디와 달리 크포는 반응하지 못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애지중지 키운 주요 딜러가 죽었다.
한타는 더 따질 것도 없이 대패다.
아니, 게임 자체가 패배의 흐름이다.
<아, 토이치를 생각 못 했네.>
<나이즈도 너무 프리딜했어.>
"……."
팀원들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또다시 역전을 당했고, 두 번째 세트도 패배했다.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
하지만 도인디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재역전을 노리고 있다기보다는.
「보호하세요.」
「파괴하세요.」
모리아나의 움직임.
그 별거 아닌 손짓 하나에 신경이 팔렸다.
그만큼 다른 챔피언에 대한 방비가 느슨해졌다.
적들이 슈퍼 플레이할 여지가 많아졌다.
적들이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 모리아나 하나가 너무 거슬린다.
'…….'
듣기만 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
직접 경험해보니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코물쥐 같은 새끼가 잘하는 게 아니라.'
오정환이 밑그림을 만들어주고 있다.
팀원은 그 위에 색칠을 한 것에 불과하다.
미드가 저렇게 해주면 못하기도 힘들다.
그것을 자신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까득!
자신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물어 뜯는다.
이대로 있으면 패배는 확정이고, 다음 세트도 불 보듯 뻔하다.
돌파구가 필요한다.
오정환의 게임 내 영향력을 제한시킬 무언가.
떠오르는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패배』
게임의 구도를 달리 짠다.
아군을 풀어주고, 자신이 성장을 맞춰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오정환이 하고 싶은 대로 두면 안 돼.'
라인전부터 찍어 눌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