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에어컨을 너무 오래 켰다.
'…….'
아니, 그 때문이 아닐 것이다.
등이 차가워진 걸 뒤늦게서야 눈치챘다.
흠뻑 젖을 만큼 나버린 식은땀.
기화가 되며 체온을 뺏어가고 있다.
"미드 여기서 쇼부 봐야 될 것 같은데."
<무조건 잡아야 돼…….>
눈코 뜰 새 없을 만큼 바쁘다.
무력만이 아닌, 머리로 게임을 하는 도인디는 더더욱이다.
'여기서 제압을 하고 드래곤으로 물 흐르듯 이을 수 있다면.'
라인전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게임 스코어 1 대 3.
지구가 종말을 할 정도로 불리하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1, 2세트는 유리했다.
그토록 유리했음에도 패배한 것이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게임을 이끌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푸슝!
타, 탕!
최소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라인을 거세게 압박해오고 있는 루시얀.
'조금 더. 조금만 더.'
자신이 먼저 스킬을 쓰는 건 좋지 않다.
갑자기 뜬금 킬각을 잡아올 수 있다.
아니, 눈치만 채도 문제다.
여기서 루시얀을 끊어서 흐름을 되찾아와야 한다.
하아!
리심도 사생결단을 내린다.
피지컬과 판단력을 응축하여 최고의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미니언에 음파를 맞히고 날아간다.
그리고 와드 방호로 코앞까지 접근하며.
이~ 쿠우!
루시얀은 바로 대쉬를 쓰지만 자신이 쓴 건 점멸이다.
뒤통수를 걷어차는데 성공한다.
'됐다!'
도인디는 쾌재를 지르며 호응한다.
너무나도 완벽한 각.
비록 말리긴 했어도 산드라다.
6레벨부터 엄청난 누킹 능력을 자랑한다.
꽈득!
파아앙!
스턴부터 박는다.
간발의 차이로 루시얀이 점멸을 쓴다.
치지직……!
하지만 점화.
2 대 1의 상황이다.
상대는 수세에 몰렸다.
타, 탕!
푸슝!
발악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도인디는 점멸을 쓰며 스킬 쿨을 돌린다.
꽈득!
그것이 연거푸 맞지 않는다.
상대의 이동 속도가 조금 빨라져 있다.
몰락검.
이동 속도를 빼앗겼다.
스킬을 피하며 카이팅을 해온다.
파바바바밧!
당황한 도인디는 궁극기를 박고 빼려고 한다.
절묘하게 걸린 탈진 탓에 그마저도.
―적이 학살 중입니다!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잡기는커녕 역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아!
인섹킥의 과정에서 진입기가 모두 빠진 리심.
멀뚱멀뚱 구경하다 음파를 날려본다.
혹시 몰라 날려본 수준.
루시얀은 대쉬로 쓱 피하며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인디야!>
"……네, 형님."
<바텀 안 오고 뭐 하냐 죽겠다 진짜!>
?죽었는데ㅋㅋ
?브론즈5의 맵리
?귓구멍이 틀어 막히셨나요?
?나가 뒤지십시오 형님
어떻게든 게임을 끌고 나갈 발판.
그것이 푹 꺼졌거니와, 로밍 한 번 가지 않은 바텀 상황은 뻔하다.
'하.'
미드는 더 이상 맞파밍도 힘들다.
방금 전과 같은 각을 만들기 위해 코스트를 소비했다.
CS를 포기하거나 정글 동선을 끌어 쓰는 등.
차곡차곡 쌓여서 감당하지 못할 지경으로 커졌다.
<인디야!!>
"왜 그러십니까."
<바텀 왜 안 오는 건데. 어?? 미드 언제 그렇게 죽었어? 미드 차이 허벌나게 나네, X부레 거~!>
머리로 게임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피지컬 유저는 키보드 하나 작살 내면 그 자리에서 풀리지만.
'…….'
뇌지컬 유저는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터진다.
자신이 이 버러지팀을 데리고 이기기 위해 해온 노력.
저 버러지의 수장 새끼는 이해력 자체가 딸린다.
저런 두뇌로 어떻게 BJ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희가 바텀에 얼마나 더 투자를 해요?"
<뭐어?>
"스노우볼도 더 굴릴 수 있는 건데 말을 해도 와드도 안 처박고 그랩도 안 처맞으니까 굴러갈 수가 없는 거잖아요!"
<뭐 이 새끼야! 형이랑 한번 해보자고오?!">
?도인디 터졌네
?자폭 ON
?근데 ㄹㅇ 빡칠 만하긴 함ㅋㅋ
?싸워라! 싸워라!
팀원이 조금만 잘했으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팀탓으로 귀결된다.
평소였다면 한 번 꾹 참고, 저 새끼 지능 수준 감안해서 넘겼을 일.
자신도 아부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저 새끼가 상대팀 혜지만큼만 했어도.'
자신의 오더가 더 빛을 발했을 것이다.
짤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도 많아졌다.
승승장구하던 흐름이 막힌 이유.
바텀 라인의 구멍 때문이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팡우만 아니었어도 최소한 해볼 만한 경기였다.
도인디로선 원망이 안 들 수가 없지만.
'아니, 이 새끼가 주인을 물어?'
팡우로서는 팡우 나름의 생각이 있다.
지능 이전에 관점부터가 다르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자신의 방송을 흥행시킬 계기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꼰대스러운 생각.
따라서 어른인 자신한테 대드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가 또박또박 말대답을!>
"나잇값을 했으면 제가 이렇게 말을 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국민학굨ㅋㅋㅋㅋㅋㅋ
?그 시절……
?돈고가 말랐나 보네
?싸워라! 싸워라!
초상집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었다.
* * *
멸망전 4강.
『승리』
세 번째 세트의 승리를 거둔다.
5전 3선승제의 승리 조건이 채워진다.
<결승 진출 축하드립니다!>
"벌써 결승이에요?"
?컷
?참가팀이 6팀이라
?지렸다……
?멸망전은 오정환한테 껌이지 ㅋㅋ
결승전의 조건도 말이다.
나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지만.
<상대인 팡우팀도 여기까지 올라온 드라마가 만만치 않았던 팀이었거든요?>
"조기종영 했다 쳐야죠."
세간의 관심은 대단했다.
내가 아닌 상대팀이 일으킨 일.
'큰 이슈긴 했어.'
롤판의 인기가 많아진 만큼, 빛이 강해진 만큼 어둠도 짙어지는 법이다.
다크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
솔로랭크 1위.
아마추어 1인자.
화려한 타이틀을 들고 있는 그가 광탈을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대사건.
하지만 미래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우연이랄 것도 없었다.
"아마추어들 노는 대회에 제가 눈치 없이 끼어든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와~ 정말 클라스 제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오정환 선수는 사실 LCK 뛰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죠.>
?클래스는 영원하다……
?캬
?아모모 쇈 버프하면 클끼리 복귀 거눙?
?얼밤 살려줘
아무리 조기축구를 잘한다고 해봤자, 진짜 축구장에 서면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는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다.
롤이라는 e스포츠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역의 경우도 있는데.'
프로라고 아마추어 대회를 반드시 캐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의 경우 이런 무대가 익숙하기도 하고, 뛰어야 할 동기도 확실한 편이다.
<오정환 님 입장에서는 결승전이 그렇게 긴장되거나 하지 않으시겠어요?>
"사실 그렇죠."
<<오~!>>
"다른 게 아니라 제가 LCK에 도전하기 전에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해본 적이 있다 보니.>
<아~ 러너리그도 우승하셨었죠!>
오히려 이쪽이 홈스테이지에 가깝다.
아마추어 애들 뛰어노는 꼬라지는 익숙하기 짝이 없다.
'도인디는 조금 예외긴 했는데.'
재능이라는 것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드러나기 마련이다.
위협적인 상대였던 것도 사실.
다크급의 팀을 꾸리고 나왔다고 고전을 했을 수 있다.
같은 체급이라면 절대 질래야 질 수가 없다.
<이러면 러너리그, LCK에 이어…….>
<이 라인에 LCK가 끼면 어색한 데요?>
<아무튼! 멸망전까지 3관왕을 노리시고 계십니다.>
"아, 네."
<상대팀으로 씨지맥팀 혹은 크하하팀이 올라오게 될 거란 말이에요~>
결승전도 말이다.
A조에서는 우리가 이겼다.
B조에서는 씨지맥팀 혹은 크하하팀이 올라온다.
어느 쪽이 돼도 이길 것 같다는 기분만 든다.
딱히 오만이랄 것이 없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크하하 님이 다시 만나면 절대 핑크와드를 치지 않으시겠다고!>
"절대 참을 수 없는 맛있는 핑크와드를 박아보겠습니다."
?ㅋㅋ?
?핑와 성애자 ㄷㄷ
?아 핑와 막타는 못 참짘ㅋㅋㅋㅋㅋ
?핑와를 왜 치는 거야 대체……
실제로 이겼으니 말이다.
굳이 핑크와드로 잡기술을 부리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고 본다.
'그걸 위한 팀합이고.'
죽을 쒔던 스크림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단련했다.
평균 티어가 높은 팀들과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오정환 님은 팀장의 입장에서 어느 팀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그야 씨지맥팀이죠."
<어, 씨지맥팀? 의외인데요?>
?난 알겠는데
?씨지맥이 결승 오면 땡큐지
?우승을 못 하니까 ㅎㅎ
?그저 ^무^
필연적인 우승이 예고된다.
* * *
멸망전 B조.
<으악 어나더 레벨! 씨지맥팀 8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씨지맥팀 대 크하하팀의 경기는 접전이랄 것도 없었다.
클끼리 해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부르짖을 만도 하다.
<씨지맥팀이 시종일관 압도하면서 세 번째 세트까지 마무리를 지었네요.>
<멸망전에 참가한 팀들 중에서도 정말 역대급의 경기력이었습니다.>
?진짜 잘한다
?어나더 레벨!
?ㄹㅇ 초반부터 마운트 잡고 개팼음
?클끼리가 빨아주면 불안한데……
크하하팀.
원딜 중심의 후반 한타는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가불기를 자랑한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말카림이 저렇게 들이대면 원딜은 어떡해야 되냐? [3]
―3 대 떡이넼ㅋㅋㅋㅋㅋㅋㅋ
―씨지맥은 ㄹㅇ 대단하긴 한 듯 [15] +51
―진짜 프로는 프로구나
.
.
.
줄 건 주며 천천히 가는 운영도 말이다.
절도 있고 체계적인 팀플레이.
그것을 박살을 낸 것이다.
롤팬들의 반응이 뜨거울 만도 하다.
―씨지맥은 ㄹㅇ 대단하긴 한 듯
못한다 거품이다
욕먹으면서도 꾸역꾸역 성적 내는 거 보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음└게임 보는 눈이 다름└지금부터 롤갤은 대깨맥이 지배한다!
└클끼리도 어나더 레벨이라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
└얘도 천재과임
예고되는 결승전.
롤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떠들썩하다.
여론은 씨지맥팀의 완승에 기울어지고 있다.
그만큼 경기력이 엄청났다.
―멸망전 우승은 씨지맥이라고 본다
[오정환팀 vs 크하하팀 20분. jpg]
[씨지맥팀 vs 크하하팀 20분. jpg]
그냥 초반 템포부터가 다름
오정환팀이 운 좋게 한타로 역전한 케이스라면
씨지맥팀은 해설도 말했지만 시종일관 압살함
└내 말이 이거임
└경기력 반하겠더라
└오정환도 잘하는 건 맞는데 씨지맥은 현역이라 현장감이 살아있음└엄마 전 대깨맥이 될래요!
크하하팀을 상대로 훨씬 더 선전했다.
아니, 격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어나더 레벨!
클끼리 해설의 격찬이 머릿속에 스며들며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오정환 vs 씨지맥 누가 이길지에 따라 여파 클 듯
작년 스프링 우승했던 거
누구 빨이었는지 확실하게 결론 남
오정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로판 남아있는 씨지맥이 사실은 더 대단한 걸 수 있음└이거 ㄹㅇ임
└오정환은 도망간 거지
└멸망전 결승이 LCK보다 더 기대될 줄이얔ㅋㅋㅋㅋㅋ└씨지맥이 진짜 저평가다
스토리텔링.
두 팀장의 과거 인연도 조미료가 되고 있다.
이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손을 잡고 LCK 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e스포츠 역사에 획을 그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제는 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목이 모여질 수밖에 없는 요소.
결승전의 결과가 어찌 되든, 누가 우승을 차지하든 흥행은 확정이다.
롤판 팬들은 떠들썩하다.
그렇게 소문난 잔치가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