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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626화 (626/846)

626화

분당구 판교.

타악!

IT기업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파프리카TV도 이곳에 본사를 둔다.

'하아…….'

염 부장은 근처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일어난 스트레스에 자신도 모르게 술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단단한 원목.

내부도 조용하다 보니 유난히 크게 울린다.

반사적으로 눈치를 본다.

"드로낙 12년 한 잔 더 부탁드려요."

"네~"

종종 있는 사소한 사고.

바텐더를 올려다보자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눈치가 보여 한 잔 시킨다.

원래 더 마실 생각이긴 했지만.

'인생.'

월급쟁이의 숙명이다.

주위의 분위기부터 살피게 된다.

비싼 술을 마시는 것도 그 일환이다.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값비싼 취미 생활 말이다.

'IT업계라 활동적인 게 적어서 다행이지.'

골프라도 했다간 죽어나갔을 것이다.

술자리로 대신하고 있다.

간이 튼튼하게 태어난 것을 감사할 지경이다.

"글렌드로낙 12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나오셨네요."

"그, 그런가요?"

그런 짓을 몇 년이나 하다 보니 상류층의 세계에 섞여 들어갔다.

바텐더가 자신을 알아볼 정도다.

"선생님은 고르시는 안목이 높으시다 보니."

"제가요?"

"병입일까지 신경 쓰며 마시는 분은 드물거든요. 단순히 오래된 걸 따지는 거면 모를까."

"아……."

가장 자주 마시는 술이다.

글렌드로낙 12년.

대부분의 증류소가 엔트리급의 기준으로 잡는 12년 숙성의 평범한 위스키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글렌드로낙 증류소는 내부 사정에 의해 한동안 증류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12년 숙성 제품을 내야 했고, 그보다 더 숙성된 원액을 사용하게 되었다.

'정환이가 가르쳐준 것이긴 한데.'

바텐더라고 하면 술의 전문가.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조금 들뜨게 된다.

실제로 많은 VIP들이 좋아한다.

부자들에게는 중요한 건 돈 한두 푼이 아니다.

사치와 향락이라는 특별한 시간이다.

자신처럼 대접을 하는 사람은 이를 배운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는 전문적으로 육성을 할 정도이니 드물지도 않다.

하는 입장에서는 현탐이 씨게 온다.

"이거 비밀인데……."

"궁금하네요."

"사실 그냥 싸서 마시는 겁니다."

"그럴 수 있죠. 저도 데일리로 이만한 셰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화려한 세계.

쓰는 돈의 단위가 다르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내 월급이 하룻밤 불장난으로 사라지는데.'

술 한 병은 뭔 또 그렇게 비싼지 한 잔 받아 마실 때마다 어찌나 눈치가 보이는지 모른다.

이 황갈색 액체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비싼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렇죠. 잘 만든 위스키는 명품과도 같으니까요."

엄선된 보리를 특별한 레시피로 여러 번 증류하여, 귀한 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수십 년간 숙성시킨다.

비쌀 수밖에 없는 과정.

심지어 그중에서 분류된다.

단순히 오래 숙성됐다고 맛있는 게 아니다.

실패작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 것들은 블렌디드용으로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싸게 땡처리 되는 건가요?"

"그럼 셈이죠."

"하하……, 그거 마치 회사원들 같네요."

"?"

집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랐다.

회사에 들어가 수십 년간 업무에 매진하게 된다.

결과는 극과 극.

누구는 출세를 하지만, 다른 누구는 출세는커녕 블렌디드 땡처리도 안 되는 사직서를 써야 할지 모른다.

'하아……'

현재 그 기로에 서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이유.

이 답답한 속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

"사실 제가 중요한 선택을 하나 하게 되었는데."

"네."

"그 결과를 보기 싫어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하."

"중책이신가 봐요?"

"중책이라……, 일은 죽어라 하고 책임은 책임대로 지는 그런 직급이죠."

중간관리책.

실세.

회사 내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입지를 가졌는지 안다.

실상은 허울뿐인 것으로 윗사람들의 허드렛일을 하는 대행이다.

중간관리책도 결국은 위에 올라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라인을 잘 타면 임원 되는 거고, 못 타면 평사원으로 평생 썩는 거고.'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염 부장은 오랜 고민 끝에 주사위를 굴렸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신세 한탄을 털어 놓아 보고자 한다.

"사실 바텐더한테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그런가요?"

"어떤 만화에서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손님 뒷담 까는 바텐도 허다하거든요."

"이쪽 업계도 이쪽 업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나 보네요."

굉장히 유명한 만화.

바텐더 이미지의 절반 이상은 공헌을 했다.

「세상에는 절대로 손님을 배신해선 안 되는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 약제사. 다른 하나는 바텐더. 둘 다 처리 방법에 따라 독도, 그리고 약도 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팔고 있기 때문이죠.」

뭔가 대단한 직업인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괴리가 있다.

"적어도 저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지식한 성격이신가요?"

"아뇨, 그 만화를 보고 바텐더를 하게 돼서."

"……정말로?"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바텐더 지망생들의 동기가 되는 만화다.

현실의 척박함과 만화와는 다른 업계에 실망하여 대부분 포기한다.

'아저씨들 술 상대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겠지.'

그럼에도 항상 밝은 접객 태도.

업계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밝힌 것도 호감이다.

그 이전에 어딘가 털어 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심정이다.

"전통이 있지만 돈이 안 되는 것과, 전통은 없지만 돈이 되는 것이 있는데."

"술 이야기군요?"

"술 이야깁니다."

그래도 듣는 귀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서 털어 놓는다.

파프리카TV의 멸망전.

"약간 안 좋은 것이 섞여 있더라고요."

"들키면 큰일 나죠."

"예, 파장이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요구를 받았다.

철꾸라지팀이 승리하게 만들어라.

스타크래프트의 특성상 방법은 있다.

맵 노출.

유리한 맵 선정.

특정 전략이 가능한 패치 버전의 맵 사용 등.

'들킨다면 내 선에서 절대 수습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해야 한다.

홍 이사 라인에 타기 위해서는 말이다.

정말 죽도록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자를 선택했으니 이렇게 털어 놓을 수 있죠."

"좋은 선택하셨네요. 저도 술을 섞는 사람이지만, 섞인 술을 마시는 건 꺼려지니까요."

""하하!""

아니, 할 작정이었다.

홍 이사가 가진 권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샤바샤바까지 한 만큼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사장님이 직접 업무팀에 하달을 내리셔서.'

그 직전에 계기가 있었다.

이번 멸망전에 절대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게 각별히 신경 써서 진행하라.

얼핏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닦달이다.

일반 사원들은 사장님이 프로BJ들을 기대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전자는요?"

"전자?"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서요."

"그렇……, 죠."

하지만 자신은 안다.

원칙적으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사항을 사장이 직접 닦달까지 한 의미 말이다.

'업체를 달가워하지 않으시고 계시지.'

중간관리책으로서 보고를 해오며 기류를 읽고 있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점점 더 그렇게 되셨다.

홍 이사는 친업체파.

회사 권력의 두 중추가 의견을 대립한다.

그것이 표면 위에 드러날 만큼 가시화가 된 것이다.

단순히 출세나 콩고물을 보고 선택할 상황이 아니다.

라인을 탄다는 생각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을 내렸다.

「스타) 스타멸망전. 스타 멸망전 철꾸라지팀 vs 오정환팀」_ ?256, 891명 시청

이번 멸망전에 조작은 없다.

특정팀에 유리한 맵이 나왔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다.

그러한 사실을 홍 이사가 알기 전에 도망쳐 나온 것이다.

'홍 이사님 라인을 타면 출세는 확실하겠지.'

일에 선악은 없다.

자신은 시킨 대로 할 뿐이다.

월급쟁이가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면 일을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계기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좋은 쪽에 붙고 싶었다.

"전통 쪽이 인정받길 바라야겠네요?"

"전통?"

"술 말입니다."

"아, 그렇죠 술……."

정작 판단을 내리자 불안하다.

후폭풍이 어느 정도 될지 자신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

회사 내 실권자 둘이 맞붙는 것이다.

이번 멸망전에서 철꾸라지팀이 이기라도 하면.

'파프리카TV가 e스포츠 중심의 플랫폼이 되는 건 힘들겠지.'

철꾸라지가 득세하게 된다.

홍 이사의 영향력도 강해질 것이다.

자신도 모가지.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아."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부탁할게요. 가성비 좋은 걸로."

"단가는 조금 올라갑니다만, 발베니 15년 버번 캐스크 추천드립니다."

"이것도?"

"네, 숙성연수가 더 되죠."

됐고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 * *

스타판.

충분히 대성하고도 남는 대국민적 콘텐츠다.

'그런데 안 됐지.'

파프리카TV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음에도 그냥저냥 평범한 게임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장막을 들추고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다.

철꾸라지 한 마리가 신나게 흔들어 재꼈다.

저질화가 된 것이다.

진행하는 콘텐츠는 물론, 그와 연관된 前프로 선수들까지 전부 말이다.

─리오레아재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승리 시 5만 개……?

"회장님 미션 감사합니다. 미션 없으면 섭할 뻔했죠."

―5만 개 ㅓㅜㅑ

―어차피 못 먹는뎈ㅋㅋㅋㅋㅋㅋ

―안전자산 아님?

―회장님 노후 연금 땡기시누

그렇게 될 수 있는 분기점.

이 한 판에 걸린 무게가 무겁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다.

'승산이 희박하다는 것도.'

아무리 무늬만 프로, 실질적인 대회 입상 경력도 없고 그마저도 그만둔 피라미라고 해도 일반인과의 격차는 어마무시하다.

그 이후로 게임을 쉰 것도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심심하면 했던 걸로 기억한다.

방송 콘텐츠로도 자주 삼았다.

그에 반해 나는.

"제가 스타를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신데, 지난 한 달 동안 갈고 닦은 실력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달?

―한 달 X발앜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벤트전이누 ㅋㅋ

―졌다……

회귀를 하기 이전에는 종종 했다.

스타판이 활성화도 되어있었고,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은 콘텐츠다.

그것을 '한 것'으로 치기에는 프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롤과 달리 스타는 체계적인 연습의 유무가 넘사벽이다.

'나라고 모든 게임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고인물 게임은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안 나온다.

당시에는 게임이 주력 콘텐츠도 아니어서 설렁설렁했다.

철꾸라지를 이길 실력이 없다.

만에 하나의 기적을 바랄 리도 없다.

그럼에도 맞붙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SCV good to go sir! (SCV 준비 완료!)」

내가 테란이기 때문이다.

치트키를 친다면 게임을 이길 수 있다.

'상대가 뭘 할지 아는 치트키.'

모든 게임의 극한은 결국 심리전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펀치를 날려도, 언제 어느 때인지 알면 대비가 가능하다.

경기 전에 도발한 것.

이빵호가 핸디캡으로 진 것.

여기까지 쌓아 올려진 과정은 결코 의미가 없지 않다.

'스타크래프트의 미래도.'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한 고인물 게임이라고 했지만, 거기서 또 변화가 탄생하는 게 스타크래프트의 재미있는 점이다.

그것을 안다.

현시점에서 저그가 대응 불가능한 전략이 한 가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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