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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628화 (628/846)

628화

해설진까지 승산을 논하기 힘들었던 경기.

투두두―!

예상을 180도 뒤집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오정환의 테란이 진격한다.

<지금 테란 병력 수에 깜짝 놀라서! 뒤도 안 보고 도망가고 있어요!>

<이거 초―비상입니다! 막을 병력 아직 안 갖춰졌거든요?>

―이걸 오정환이?

―와……

―일반인이 프로한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꾸라지 개처발리네

가시적인 병력 구성은커녕 인구 수 차이부터가 현저하다.

아직 3가스도 챙기지 못한 저그는 숨이 턱 막힌다.

타당, 탕!

타당, 탕!

본진 뮤짤.

상대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마저도 너무.

슈우웅~!

슈우웅~!

손쉽게 막힌다.

생산된 골리앗들이 터렛 이상의 사거리에서 미사일을 쏜다.

뮤짤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안 그래도 몇 마리 안 되는 수.

벌레라도 쫓듯이 별 수고 없이 몰아내 버린다.

<이거 회군 못 시킵니다. 본진에서 막아야 돼요!>

<마린이 아니고 골리앗이라서…… 견제가 안 됩니다.>

―저그전 메카닉이라니

―저거 왜 통하냐?

―뮤탈 수만 많았어도 달랐을 거 같은데

―뭔데 골리앗 ㅋㅋㅋ

오정환이 승기를 잡은 이유.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병력의 구성이다.

<저그전 메카닉은 거의……, 없죠?>

<메카닉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레이트 메카닉이라고 바이오닉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는데, 아주 거침이 없습니다 오정환 선수!>

해설들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저그전은 바이오닉, 토스전은 메카닉이라는 공식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이를 벗어난 판단을 하면 구멍이 만들어진다.

프로 선수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증명된 결과다.

'뭐지?'

김승원 해설도 어리둥절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데이터 안에서는 이런 흐름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나름대로 준프로인 철꾸라지가 속수무책 휘둘린다.

사각! 사각! 사각!

얼핏 그렇게 보인다.

스타크래프트는 언제 어느 때 뒤집힐지 모르기 때문에 e스포츠가 될 수 있었다.

<이거 그냥 러커 아니죠? 스탑 러커 같은데요!>

<철꾸라지 선수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점 때문에 메카닉이 안 쓰이기도 하는 거거든요?>

메카닉은 병력이 무겁다.

단순히 무게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갖추기도 어렵고, 전진 속도도 느린 편이다.

뮤짤을 통해 조금 늦췄다.

스탑 러커라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다.

다소의 재미만 봐도 메카닉은 흔들리게 돼있는데.

따랑땅~ 땅땅♪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스캔을 뿌리며 징검다리식 전진을 하고 있다.

들켜버린 러커떼가 수줍게 일어서 도망친다.

퍼엉!

퍼엉!

저그의 앞마당에 진을 친다.

시즈 탱크가 자리를 잡는다.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포격은 카운트 다운이다.

―진짜 ㅈ됐는데?

―테란 병력 너무 많다

―아모른직다……

―싸먹으면 모름

저그 유저라면 PTSD가 오는 상황이다.

밸런스를 발가락으로 조정했나 싶은 사거리.

저 가증스러운 탱크에 의해 성큰이 파괴되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저글링, 히드라가 움직인다.

타당, 탕!

사선에서는 뮤탈이 덮친다.

그보다 더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사각! 사각! 사각!

배후에서 들어오는 러커.

땅을 파고 들어가 한 방을 노린다.

후두둑!

후두둑!

그리고 그것은 성공한다.

저글링, 히드라, 뮤탈이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기 때문이다.

<골리앗이! 골리앗이 안 죽어요~!>

<공방 1업 업그레이드 차이까지 나고 있고 이건 테란이 질 수가 없는 싸움인데요?>

―한타 대박 잘했는데

―메카닉이라 안 죽엌ㅋㅋㅋㅋㅋㅋㅋㅋ

―개단단하네

―무슨 토스 보는 거 같눜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병력 차.

숫자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압도한다.

김승원 해설이 놀랍다는 어조로 말을 잇는다.

<어째서 메카닉을 꺼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네!>

<사실 방금 같은 상황에서 러커 점사 다 해주면서 본진에서 유닛 생산까지 하는 건 프로들도 힘들어하는 플레이거든요?>

바이오닉은 몸이 종잇장이다.

러커 한두 마리가 스치기만 해도 부대 단위로 갈려나간다.

반대로 컨트롤을 해주면 엄청난 화력으로 사기성을 내뿜는다.

테란이 고수의 종족인 이유.

투두두―!

퍼엉! 퍼엉!

그에 반해 메카닉.

러커 몇 마리쯤 가뿐하게 무시한다.

컨트롤이 딱히 수고스러운 측면이 없다.

<운용 난이도 면에서 차이가 있겠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오정환 선수가 여러모로 영리한 플레이를 보여줬고, 그것이 게임을 끝내는 데까지 왔습니다. 더 이상 변수가 없어요.>

―GG 왜 안 침?

―메카닉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어디까지 바라본 거냐 오정환!

―자존심 때문에 GG 못 치는 중ㅋㅋㅋㅋㅋㅋㅋ

그대로 밀고 올라간다.

저그에게 남겨진 한 수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다 보고 있다.

'…….'

글자 글대로 자존심이다.

이미 컨트롤을 포기한 지 오래다.

철꾸라지는 넋 놓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이걸 지네

―봐준 거지? 봐준 거지? 봐준 거지? 봐준 거지? 봐준 거지?

―우리 철통령님이 이럴 리가 없습네다 ㅠㅠ

―오정환 일반인 아니었음?

―어케 프로 했누 야발련ㄴ아!

―주작이라고 말해줘……

―진짜 너무 실망인데

―스타로도 처발리면 아 ㅋㅋ

이기려고 작정을 했다.

그것이 역으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냥 12앞 스타트 할걸. 전진 2병영 아닌 이상 웬만하면 막을 수 있는데.'

후회가 사무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상대의 강력한 한 방.

메카닉이든 바이오닉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병력이 한참은 모자라다.

9드론을 한 부작용이다.

돈이 모이는 속도가 느린데 일꾼 피해까지 심각했다.

「The hive cluster is under attack. (군락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뮤탈 견제를 못한 것도, 교전을 진 것도 그래서다.

단순하게 물량이 딸린다.

다시 한다면 이길 자신이 있다.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철꾸라지 님이 게임에서 나갔습니다.

일말의 자존심.

일명 노GG 선언이다.

철꾸라지도 알고 있다.

―노GG??

―쿨찐 에반데 ㅋㅋ

―철하다 추꾸라지야

―아니 미친놈아 GG는 쳐야지 ㅋㅋㅋ

지금의 상황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굉장히 많은 것이 걸린 무대라는 사실 말이다.

'쿨찐짓이라도 해야지.'

이건 다 '방송'이었다.

일부러 져준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설렁설렁했다.

그런 티를 팍팍 내면 철빡이들이 분위기를 맞춰주지 않을까?

낙관적인 착오였다.

─철꾸라지의검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이걸 못 받아 처먹네

─족구개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나가 뒤지십시오 형님

─철꾸레쓰비값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일반인이 한 잡빌드에 털리는 것도 참 레전드다

여론이 굉장히 좋지 않다.

철꾸라지에게 가장 친화적인 팬덤마저 등을 돌렸다.

〔철빡이 단톡방〕

「아 현탐 제대로 오네」

「이쯤 되면 인간 상성 아니냐? ㅋㅋ」

「아무리 그래도 스타크래프트에서 처발리는 건 실드 못 쳐주지」

「ㅇㅇ」

「오정환이 잘한 것도 있지만 철꾸 이 새끼 존나 대충 함」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진짜」

「탈빡 한다 ㅂㅂ」

철빡이69호 님이 나갔습니다

나는철빡 님이 나갔습니다

대깨철 님이 나갔습니다

팬덤이 BJ를 밀어주는 이유.

BJ를 위함도 물론 있지만, 자기 자신의 자존심 때문도 있다.

내가 누구누구팬인데!

BJ가 이겼을 때 희열이 찾아온다.

그런데 얼토당토않게 져버린 것이다.

응원할 맛이 뚝 떨어진다.

그 이전에 쪽팔리다.

오정환에게 지는 것도 한두세네 번이지.

홈 스테이지인 스타크래프트로마저 졌다.

다른 것으로는 이길 가망성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PGR22〕

─진짜 마지막까지 추하게 퇴장하네요 [71] +52

─오랜만에 스타혼이 불타오르는 경기였습니다 [88] +37─BJ라고 무시했던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29] +21─철꾸라지는 더 이상 프로 취급도 하면 안 됩니다 [35] +17.

그 이상.

이전부터 죽일 놈 취급이었다.

스타크래프트팬들은 철꾸라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다.

─진짜 마지막까지 추하게 퇴장하네요

이철만 선수가 프로 얼굴에 먹칠하는 방송을 해온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BJ라는 직업의 특성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제 3자인 제가 함부로 평가할 것은 아니라고 방관했습니다.

오늘 경기를 보니 BJ라고 다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네요?

누가 전 프로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실력의 유무를 떠나서 경기에 임하는 태도부터요

└게스파에서 기록 멸소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정환 선수가 스타 프로가 아니어서 그렇지 롤 프로 경력은 있습니다. 프로의 자세가 돼있을 만하죠 ㅎㅎ└경기력도 오정환 선수가 위던데요?

└저런 인간이 STF에 있었다니…… STF팬으로서 수치스럽네요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프로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했다 보니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스타판에서 BJ의 이미지가 나빠진 원인이기도 하다.

모든 BJ의 기준이 철꾸라지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스타혼이 불타오르는 경기였습니다

이빵호 선수……

말을 해서 뭣 하나요

소년가장 시절 전성기 모습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일꾼 두 마리 빼는 패기는 정말 이빵호가 아니라면 불가능하죠오정환 선수……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조금 무시했습니다

일반인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날빌이 아닌 운영형 빌드를 준비해온 것에 한 번 놀랐고 그것이 프로들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발상이라는 것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스타 리그는 2012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훈훈하네요 ㅎㅎ└파프리카TV에서 리그 한 번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오정환 선수의 메카닉. 물론 프로 레벨에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흥미로운 전략이었습니다 └오정환 선수 보고 BJ를 다시 보게 됐어요~

그에 반해 오정환.

스타와는 연관이 1도 없다.

누구도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경기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타팬들이 열광할 만한 임팩트를 보여준 것이다.

─BJ들이 껄렁껄렁한 게 나쁘다고 볼 건 아니죠

무한도전 멤버들이 멍청한 모습 보인다고 정말로 멍청하던가요?

정주나처럼 정말 그런 멤버가 있고

하하처럼 방송은 방송인 멤버도 있죠

철꾸라지 하나 때문에 BJ 전체를 나쁘게 볼 건 아니라고 오늘 확신했습니다 └결국 선 문제죠. 선만 지키면 유쾌한 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저도 오정환 선수는 리스펙합니다

└항상 일부만 문제인 거죠~

└무도 생각하니 정주나는 진짜……

짧다면 짧은 이벤트 매치.

하지만 2년 만에 열린 스타 리그로서 스타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다.

<파프리카TV배 제 1회 스타크래프트 멸망전! 에이스 결정전에서 오정환 선수가 철꾸라지 선수를 꺾으며~ 오정환팀이 승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와 일반인이 프로를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메카닉 판단 개지렸다 ㅋㅋㅋㅋㅋ

―일반인이 아니고 오정환이다……

파프리카TV 내부에도 말이다.

자체 콘텐츠인 만큼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봤다.

양팀의 팀장은 상징성이 있는 BJ.

후폭풍이 결코 잠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

파프리카TV 진짜 내부도 말이다.

보고를 받은 홍 이사는 어안이 벙벙하다.

사내의 알력 다툼도 한동안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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