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어른의 사정.
'그런 사정 말고.'
파프리카TV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순히 '개인 방송'이라고만 생각하면 큰물에서 놀 수가 없다.
"반년만인가?"
"대충 그쯤 된 것 같습니다."
남수길 대표.
파프리카TV의 대가리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게 대가리 하나의 의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애초에 상장 기업이니까.'
사장이 아니라 '대표 이사'다.
다른 이사진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사내에서 알력 다툼이 생긴다.
"역시 될 놈은 된다니까? 나는 정환이가 재기할 거라고 믿고 있었어."
"사장님께서 믿어주신 덕분이죠."
"그 썩을 놈의 쉐끼랑은 달라~"
업체를 퇴출하고 싶어도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이야기다.
남수길의 심정 변화는 꿰고 있다.
'사업가는 오직 돈만 봐.'
구구절절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려는 게 아니다.
사업과 사기는 한 끗 차이라는 현실을 안다.
현실은 현실.
그에 맞추지 않는다면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다.
"오해가 있을까 봐 하는 소리인데~ 철꾸라지는 내가 복귀를 시켜준 게 아니야."
"예, 뭐. 일은 사원들이 하겠죠?"
"크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선택적으로 얻을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걸 취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나에게 이득인지 골라야 한다.
'썩은 업체 쪽 파벌보다야.'
남수길 쪽이 이야기가 통할 여지가 있다.
업체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기업인.
업체는 돈을 벌어다 준다.
즉, 요지는 간단한 것이다.
"스타판이 활성화가 되면 저는 장기적으로 큰 독점 시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나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 탁월하신 사업 감각이십니다."
"크흠."
그 이상의 노다지라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그리고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밝힌다.
'사업자가 아무리 계획을 잘 수립해도.'
그것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실무자가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파프리카TV로 따지면 직원들과 BJ들.
대가리와 손발이 잘 안 맞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러했다.
파프리카TV는 스타크래프트에 진심이었다.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지만.
"어떻게 프로를 데려와도 마주작을? 철꾸라지 이 자식은 전프로라는 녀석이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어."
"스타팬들이 상당히 민감해하더라고요."
"어련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당연히 압니다만."
"아니, 크흠! 왕년에 로젠메이드 폭스라고 프로팀까지 운영해본 이력이 있어서 하는 말이지."
"와~"
성장에 한계가 있다.
틀타 아재들.
철꾸라지식 방송 진행이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방송 분위기가 너무 저질이니까.'
스타크래프트는 LoL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선수들이 가지는 포스가 스포츠 선수들과 비슷했다.
굉장히 우러러 보는 느낌.
그런데 눈썹 밀고, 소리 지르고 그러고 있으니 환상이 깨진다.
그럴 바에야 안 본다는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스타판의 성장에 한계가 있었던 원인이다.
"사장님께서 e스포츠에 그 정도로 열정이 있으셨는지 몰랐네요."
"음, 뭐…… 승부조작 사태 때도 진심으로 분노했지."
"마주작이 방송을 하게 돼서 마음이 편찮으셨겠어요?"
"참, 별의별 놈이 기어 들어오더라고. 회사 규정상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었지."
파프리카TV는 할 수밖에 없었다.
BJ들의 콘텐츠는 자율이고, 철꾸라지의 영향력도 강했기 때문이다.
'단순 수익성만 본다면 좋기도 했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나 같은 관계자들 외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생에서는 아쉬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택뱅리쌍이라는 상위 호환의 존재가 있다.
"파프리카TV가 프로 리그를 조성해준다면 스타판의 재부흥도 꿈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저는 지난 멸망전에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솔직히 나 같은 아저씨들은……, 요즘 게임 잘 모르거든."
"스타 커뮤니티에서도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그래?"
진짜 프로게이머들을 중심으로 제대로 된 장을 만든다.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돈 냄새는 귀신 같이 잘 맡을 테니까.'
실질적인 데이터가 필요했다.
^꿈^만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사업은 만만하지 않다.
멸망전의 대흥행은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남수길에게서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받는다.
"내가 진짜 우리 정환이 덕분에 회사 운영할 맛이 나."
"많고 많은 BJ 중 한 명일뿐인데요 뭘."
"아으~ 다르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놈들도 있어!"
식사를 하며 말이다.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파프리카TV는 친목질이 반드시 요구된다.
대기업BJ가 되면 주위에서 견제를 받는다.
이때 인맥이 있고 없고가 천지 차이다.
'기왕 할 거면.'
사장이 낫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하이에나들보다 깔끔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대가.
파프리카TV의 성장은 어차피 나를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참치가 참 맛이 있네요."
"그렇지~? 정환이랑 맛있는데 많이 오고 싶은데."
"다음에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BJ들은 평소에 어떤 걸 먹니?"
사실 알고 있다.
로젠메이드의 대표이사였던 것도, 거기서 한 사바리 거하게 해먹은 것도.
'그럼에도.'
파프리카TV가 e스포츠에 진심인 것도 사실이다.
방송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악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도 말이다.
* * *
파프리카TV 본사.
"이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허허, 열심히 하게."
얼핏 별 거 없는 일상.
하지만 기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홍 이사는 감지하고 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변화의 계기는 멸망전이었다.
철꾸라지가 패배하자 파벌 내에서 큰 파장이 있었다.
사과데이 특사로 복귀까지 시킨 BJ.
그 철꾸라지의 평판이 또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강행한 사안들에 불만을 가진 임원도 생겼다.
파벌 내 분위기가 이전 같지 않다.
그것이 일반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들 모였나?"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
"안 온 사람은 이유가 있겠지요 훠훠."
고급 중식집.
정장 차림의 머리숱 하얀 남성들이 룸을 잡고 모여있다.
홍 이사의 인맥들이다.
"남대표가?"
"저희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네요."
"그 친구가 주위 의견을 안 듣고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파프리카TV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개별로는 많은 양이 아니지만 합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걸로 수길이가 말을 들어야 할 텐데.'
기업 주식의 일정 이상 %가 있으면 최대 주주가 된다.
여차할 때 기업 운영권을 뺏어오는 게 가능하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발언권이 세진다.
회사 내의 알력 다툼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오늘 점심도 시원찮게 먹고 왔는데 기대해도 될랑가?"
"나이도 있는데 급하게 먹지 말드라고."
"내 나이가 뭐 어때서!"
""허허허!""
그러기 위한 인맥.
몇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들이다.
이해타산을 넘어서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지면 아쉬운데."
"고량주 함 당겨야지."
"그런 건 주최자가 신경 쓰는 법인데~"
물론 그런 친분이 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 나이 먹고 사업하는 인간들은 다 대접 받는 맛에 하는 것이다.
타악!
탁자 위에 올라간다.
아니, 모두가 다 눈치를 채고 있었다.
자신이 가져온 무거운 내용물.
"허~ 우리 입이 몇 개인데 겨우 한 병을."
"가만, 가만 이거 마오타이 아니야?"
"귀한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지."
중국 음식에는 중국술이 어울린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에는 반드시 거품도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이것을 개봉할 날이 올 줄은 몰랐구만.'
마오타이주.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다.
황제의 사랑을 받아온 것으로 유명해 비싸다.
「貴州茅台酒 30」
자신이 가지고 온 녀석은 30년이나 숙성된 것으로 가격도 가격이지만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술의 특성 때문.
"마오타이는 가짜가 많다던데……."
"불길하게 무슨 소리야!"
"홍 이사가 설마 우릴 속이겠어?"
"허허, 마셔보면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짝퉁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녀석에 관해서는 걱정이 없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선물을 받은 건데.'
아까운 마음도 든다.
이 정도로 비싸고 귀한 술은 자신이라고 해도 거의 없다.
하지만 아낄 자리가 아니다.
또르르
맑고 청아한 액체가 잔에 따라진다.
귀한 술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엄중해진 분위기 속에서 시음이 이루어진다.
"역시 마오타이는 이 장향이."
"기가 막히는구만."
"다음 한 잔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아껴둬야겠어~"
고량주는 꽃향 내지 파인애플향으로 굉장히 플로티하다.
마오타이는 장향이라 불리는 꼬릿한 냄새가 특징이다.
오래된 것일수록 거부감 없이 넘어간다.
30년이나 된 이 녀석은 혼자서 아껴 먹고 싶은 그런 맛이다.
"주식건 신경 써주셔야 합니다?"
"이 사람아! 우리가 언제 한 입으로 두말 하는 것 봤나?"
"술이나 한 잔 더 줘봐."
"그런데 한 사람당 두 세잔밖에 못 마시겠어 쩝쩝."
기대했던 반응이 줄을 잇는다.
홍 이사는 직원을 불러서 일반 마오타이도 두 병 시킨다.
"회동을 가지고 있어?"
"예, 그렇습니다."
그러한 홍 이사의 움직임.
남수길은 오래 전부터 우려해왔다.
'이 자식이 어디서 사사건건 간섭질을 하려고.'
로젠메이드 시절부터 한 배를 타온 사이다.
하지만 오래 지냈다고 반드시 신뢰 관계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돈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가진 바 마음이 갈리게 된다.
남수길은 사업의 확장을 노린다.
홍 이사는 업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리사욕을 챙기려 한다.
"전에 부탁했던 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남수길이라고 처음부터 올곧은 마음을 가졌던 게 아니다.
애당초 사업과 도덕은 상관 관계가 전혀 없다.
대표이사로서 회사의 얼굴을 책임지다 보니 그것이 사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확히는 돈이 된다는 걸 알았다.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셨던 게…….'
염 부장은 2년 전부터 남수길의 지시에 따라 파프리카TV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물론 그런 게 가능한 증권사를 알아본 것뿐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지금에 와서 뜻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상황을 예견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보고를 해온 건 자네도 다 뜻이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되겠지?"
"그렇습니다. 전부터 간섭이 심하셨는데, 이번 멸망전을 계기로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기업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지 크흠!"
남대표의 라인에 탈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최근 회사에서 홍 이사의 입지가 줄어든 게 느껴진다.
염 부장은 밀고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장님도 딱히 클린한 편은 아니시긴 한데.'
자신 같은 중간관리책.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쓸데없는 말은 안 하기로 입을 다문다.
'천만다행이지.'
자사주 매입.
당연하게도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다.
남수길도 단순히 불안하다는 이유로 추진했을 리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회사가 성장하리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훌륭한 BJ가 많아진다면 가능하다.
그러한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오정환에게 더욱 눈길이 쏠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