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44화 (644/846)

644화

제주도.

꾸웨에엑~!

명물인 조랑말이 울부짖는다.

자신의 강력함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제주도 느낌 확 사네요!"

"선생님은 제주 자주 오세요?"

"사업 차 많이 오쥬~"

'천종원의 로컬푸드'는 글자 그대로 전국의 특산 음식을 찾으러 다닌다.

이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역 음식 소개.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예쁜 인터뷰어 뽑아서 얼굴 마담과 리액션 담당만 시켰을 것이다.

"이번에 제주도에 호텔을 하나 짓고 있는데."

"와 호텔!"

"역시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알아야 사업을 할 수 있는 거쥬."

훨씬 심도 깊게 다룬다.

시청자들이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갖고, 소비하게 만들겠다.

의도는 좋지만 한 끗만 삐끗하면 오보가 될 수 있다.

민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분이다.

투둑!

길가에 세워져 있는 트럭.

박스가 수십 상자나 쌓여있다.

윤세용이 내용물을 하나 슬쩍 든다.

"귤 맛있겠다. 제주도 하면 역시 귤이지!"

"못 먹는 거예유."

"어? 왜요."

"이렇게 작은 귤은 상품성이 없는 거거든. 파치라고 해서 못 써."

"혹시 낑깡 아니에요?"

"야 이……."

조금 큰 금귤로 보일 만큼 사이즈가 작다.

그 외에도 너무 큰 귤, 지저분한 귤 등이 담겨있다.

파치 = 깨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

제주도에서 팔지 못하는 귤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그러고 보니까."

"응?"

"겨울에 트럭 장사들이 귤을 상자째 쌓아 놓고 엄청 싸게 팔았는데 이렇게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 나쁜 장사꾼들도 있지."

"진짜? 나 싸게 팔길래 좋아했는데!"

"싼 귤값의 비밀을 알아버려서 씁쓸하네요."

오정환이 센스 있게 끼어들어 분량을 뽑아낸다.

한국의 귤 소비자라면 한 번씩은 당해본 부분.

"찍을까요?"

"다 찍어."

"네……."

"편집하고 말고는 걔네들 일이지."

촬영 감독 박상혁도 씁쓸한 기분이다.

가장 가까이서 촬영하고 있기에 알고 있다.

'썩 괜찮은 친구인데.'

자신의 권한 내에서 신경 써주고는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뿐이다.

아무리 좋은 방송 소스라도 편집이 되면 끝.

그래도 방금 것은 꽤 쓸만하다.

십중팔구 쓰일 것이다.

방송 촬영을 이어나간다.

"그래도 저 맛있게 먹었는데……."

"먹어도 돼유."

"네? 방금 선생님이 안 된다고."

"법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맛에는 이상이 없어, 없어."

어리둥절하는 윤세용을 위해 천종원이 설명한다.

시장 정책상 파치귤을 팔지 못하게 했다.

이 많은 귤은 폐기 처분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몰래 팔려는 얌체 상인들이 생기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못 먹는 걸 파는 건 아니었네."

"이게 과일로 팔 수 없을 뿐이지 가공용으로는 판매가 돼유."

"주스 같은 거요?"

"그렇지! 정환이가 눈치가 빨라."

이러한 귤농가의 사정.

어설픈 전문 지식으로는 화만 돋울 수 있다.

전문+실전 지식을 갖춘 천종원만이 진행 가능하다.

제주도의 첫 번째 미션.

매년 수만 톤씩 버려지는 파치귤을 일부라도 구제해보자는 것이다.

위이이이잉~!

1차는 가공.

대형 믹서기에 껍질을 깐 파치귤을 넣고 돌린다.

순식간에 주스가 완성된다.

"이대로 마시기만 해도 맛있겠는데요?"

"그러면 심심하쥬~"

그리고 채에 거른다.

정말 주스가 되어버린 액체에 좋아하는 설탕을 듬뿍 붓고 거품기로 휘휘 젓는다.

"젤라틴을 넣으면 푸딩이 되는 거예유."

"선생님 시중에 파는 것처럼 생귤로 포인트를 줘도 괜찮을까요?"

"넣어! 넣어! 씹는 맛이 있으면 좋지."

그대로 냉장고에 넣으면 완성.

아니, 1~2시간가량 재워둬야 한다.

그사이에 진짜 음식들을 만든다.

치이익……!

제주의 흑돼지.

적당히 썰어 반죽을 묻힌다.

기름에 튀기자 돼지고기 튀김이 된다.

"이거 탕수육 만드는 거죠?"

"그렇지."

"맛있겠다……."

"아 배고팠는데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이대로 먹으면 심심하쥬."

탕수육에는 소스가 필수 불가결.

탕수육 소스는 새콤달콤한 맛을 위해 과일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귤즙으로 대체한다.

서걱! 서걱!

출연진들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그 사이에 한 명만이 식칼을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선생님께서 고기 요리하셔서."

"샐러드예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하나."

"오~ 귤이 들어있네?"

"귤파티야 귤파티!"

파프리카와 양상추를 가볍게 썰고, 귤 베이스의 드레싱을 뿌렸다.

귤로 장식해 포인트까지 준다.

'그래 봤자…….'

편집이 될 것이다.

어차피 샐러드는 사이드 음식에 지나지 않고, 식탁 위를 장식하는 부속품 중 하나로 지나간다.

아무리 분야가 다르다고 업계에서 오래 일하면 느낌이 온다.

박상혁은 묵묵히 카메라 감독으로서의 일을 하고 있다.

"잘 먹겠습니다!"

"먹고서 후식으로 귤 푸딩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진짜 귤 풀코스네 풀코스."

"귤이 이렇게 쓸 데가 많은지 처음 알았어~"

출연진들이 포식을 한다.

자신들이 만든 음식.

직접 먹으면서 얼마나 맛있는지 시청자들에게 가시적으로 전달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하지만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제주도 도민들은 알고 있다.

"근데 선생님."

"어?"

"폐기되는 귤량이 너무 많아서 소스나 푸딩으로 감당이 될까요?"

"음~!"

오정환이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씨익 미소를 짓는 천종원도 짚이는 바가 있어 보인다.

'둘이 콤비가 좋은데.'

프로그램의 주연인 천종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돕고 있다.

훌륭한 방송 진행 능력이다.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활약은 편집될 것이다.

안될 수도 있지만 결국 방향성은 같다.

"샐러드 어떻게 할까요?"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시간이 지나 편집부.

받은 촬영 영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합하고 있다.

타닥, 탁!

어떻게 자르고 붙이냐에 따라 위화감 없이 오정환의 존재감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다.

'일인데 뭐 어쩔 수 없지.'

직장인 마인드.

흔히 오는 요청이다.

특정 출연자에게 분량을 몰아 달라.

출연자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상부에서 그렇게 지시했다.

자신들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귤 설명은 어떻게 할까요?"

"이건 짧게 짚고 가."

"네."

아예 통편집이 되는 케이스도 허다하다.

그에 반하면 딱히 심한 정도라고도 할 수 없는데.

"이건……, 어떡하죠?"

"왜 자꾸 물어!"

"아, 아니 진짜 이건 난감해서."

"천종원 위주로 설명 넣으면 되잖아. 누가 더 정확하겠어?"

"오정환 같은데요."

"……."

인정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 * *

천종원은 요리사, 요리 연구가이며 한 기업의 대표 이사다.

"육지에도 이미 슈퍼, 대형 마트 가리지 않고 감귤 관련 상품이 많쥬."

"저 감귤 주스 좋아해요 선생님!"

"내가 더 좋아하거든?"

그런 자신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목적.

여러 가지 있겠지만 기업 홍보에 뜻이 있음은 분명하다.

'제주도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천종원이 대표로 있는 더백 코리아의 방향성.

한 마디로 정의하면 박리다매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한다.

판매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더백 코리아는 그 중간다리 역할이다.

기존의 많고 많은 유통 과정을 확 줄인다.

거품을 빼면 소비자와 판매자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수 있다.

"기성 식품의 소비량을 늘려도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정환이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네."

한국 기업들에서는 하지 않는 일.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백코리아는 상품 이익률이 매우 낮다.

초대형 물류사인 코스트코와 비슷한 수준이다.

본사 마진이 적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전제다.

"기존에 없는 상품이 잘 팔리게 해야겠네요!"

"해철이도 이해했네."

"신메뉴 하나 보여주시나요?"

"세용이는 이해 못 했네."

코스트코급으로 크지 않은 더백코리아는 힘에 부친다.

기업 규모 이전에 시장 규모도 너무 작다.

글로벌 기업이 아니다.

순수 한국 기업.

땅도, 인구도 적은 국내는 선택지가 제한된다.

'각 지역의 농어민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서.'

이를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낸다.

인지도와 신뢰를 쌓아 기존에 없는 새로운 유통망을 구축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술 좋아하쥬?"

"당연히 좋아하죠!"

"한국이 술 제일 잘 마신대!"

"이 귤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오오오~!""

방송에 출연하는 주된 이유다.

따라서 그는 농어민들에게 좋은 쪽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천종원이 온다고?"

"아 그 양반? 입맛 까다로울 텐데……."

"괜찮아! 괜찮아! 적당히 속여도 몰라~"

""?""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타인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천가 네놈이 음식맛은 잘 안다고 쳐도 흐흐.'

제주도의 한 감귤 농가.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은밀하게 회담을 나누고 있다.

제주도는 매우 좁다.

건너고 건너면 다 아는 사람.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한통속이다.

"어이, 김 씨.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나만 믿으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천종원인데……."

"음식 관련해서는 귀신같이 다 맞춰!"

천종원이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

그 소식을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현지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현지인들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협조해주는 척하면서.'

'단물 쪽쪽 빨아 먹어야지.'

'어떻게 하면 더 등쳐 먹을 수 있을까?'

새로운 유통망.

돈이 되는 소식이다.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고 싶다.

하지만 최근 천종원이 유명해졌다.

섣불리 악의적인 수단을 쓰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는데.

"우리 공장장이 주류 업계에서 몇 년 일한지 알아?"

"글쎄, 육지로 나갔다가 돌아온 게 5년 되었던가."

"30년."

""?!!""

"이 바닥에서 그 사람보다 잔뼈 굵은 사람 없다 이 말이야~"

제주도 귤주 대표 김종렬.

그는 마을의 이장이기도 하다.

귤 농가들을 모아서 증류소를 만들었다.

얼마 전 귀향을 한 노인을 중심으로 말이다.

국내 유명 소주 회사에서 무려 30년을 일한 경력이 있다.

'천가놈 하나 속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천종원은 분명 성공한 요식 사업가다.

요리에 대해서는 전국은 물론 해외 요리까지 섭렵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술은 별개.

요리와 술은 비슷한 것 같아도 전혀 다르다.

아니, 오히려 요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술을 모른다.

"혼저옵서예! 우리 선생님 오셨구만."

"안녕하세요. 요리 연구가 천종원입니다."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가 이곳으로 오도록 방송사와는 이미 이야기가 마쳐졌다.

전통주 협회에서 압력을 넣었다.

협찬도 든든하게 하기로 약속했다.

꿀꺽!

그런 사실을 모르는 천종원은 주는 대로 마신다.

김종렬이 따라준 감귤 증류주.

"이거 희한한데?"

"감귤로 만든 브랜디에요. 브랜디~!"

"아~"

"브랜디면 엄청 독한 술 아니에요?"

"그래서 좀 도수가 셉니다~"

출연진은 눈치를 보며 조금씩 마신다.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맛있게 마셔야 되는 분위기다.

"대표님께서 연구를 하시며 만드신 거라고요?"

"저랑 공장장이 고생하면서 만들었습니다."

"향이 좋네유."

"시트러스라고 귤속 과일 특유의 향이에요~"

그 천종원도 끄덕끄덕하며 마시고 있다.

문외한인 출연진들은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브랜디니까 비싼 거고, 비싼 거면 좋은 술 아니야?'

'우리가 술맛을 어떻게 알아.'

음식도 그럴진대 술은 더더욱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어, 이거!"

"향이 엄청 좋죠?"

"맛대가리가 없는데요?"

""…….""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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