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45화 (645/846)

645화

<술잘알>

유명세.

굉장히 골치 아픈 이야기다.

'유명해진다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날파리들이 득실거린다.

조그만 행동도 큰 여파를 낳을 수 있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만 거머리 떼가 들러붙기도 한다.

"우리 농민들 150명이 출자를 했어요."

"여기 주변 귤 농가?"

"네! 마을에 있는 농가들이."

"그럼 주주분들이 다 농민분들이신 거예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서늘한 창고.

수십 통의 오크통이 즐비하게 늘어 서있다.

통 안에는 귤로 만든 브랜디가 숙성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술을 만드는 것이다.

"제가 이걸 시작한 동기는 마을 이장이었는데 하도 밀감 값이 안 좋아서……."

구구절절한 사정까지 있다.

귤주 대표님이 증류소를 열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늘여 놓으신다.

육지는 몰라도 제주도에서는 귤이 흔하다.

해가 갈수록 귤값은 떨어지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귤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귤을 이용한 술을 생각해보았다.

"근데 술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아요?"

"크흠!"

"그건 괜찮습니다."

"어? 혹시 술을 만들어 보셨나."

"우리 공장장이 J 소주 회사에서 30년 동안 근무를 했어서."

"J라고 하면 설마 그!"

"이슬 맞습니다."

""오오~!""

스토리.

커리어.

"진짜 100% 농민분들이 합심해서 만들고 있는 거네요?"

"우리 농가들이 출자했는데 농민들이 돈이 없다 보니까 저도 4억을 자부담했는데도 최소한의 돈밖에 모으지 못했어요."

"법정부담금!"

"맞습니다 선생님."

"사업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창업을 하기 위해 내야 하는 최소 비용이라는 게 있어유."

그리고 감동.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타깝다는 심정이 들끓게 만든다.

"그걸 다 냈어요! 돈이 없어요. 운영을 하려니까……."

"아~"

"빚으로 시작한 거죠! 사업을 시작했는데 운영을 위해 투자받을 곳이 전무하고, 더 이상 사업을 하기가 막막합니다요."

출연진도 말이다.

대표님과 농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분위기가 침체된다.

"사실은 저 서울에 올라가서 선생님께 부탁드리려고 했어요. 손 빌면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잘 버티셨어요."

성격 좋은 천종원 선생님이 사로잡힌다.

아니, 누구라도 혹할 만한 이야기.

"저희가 이 귤 브랜디를 2차례의 정제 과정과 냉동, 여과를 통해 뽑아내고."

"와 그렇게 세심하게!"

"여기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을 시켜서 내보내거든요."

"오~!"

"정말 정성 그 자체로 만드네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든 술들이 안 팔리고 쌓이기만 해서 문제죠~"

한숨을 푹 쉬신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나도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소비를 늘려야 제주 귤도 살고 농민들도 살 텐데요."

"그렇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해서 병원도 갔다 왔어요."

"아이고, 내가 마음이 다 아프다."

포옹으로 위로를 대신한다.

대표님을 꼭 끌어안는다.

그건 그거고.

'별로 감흥은 없어.'

주류 업계에서는 굉장히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의 증류소가 그러하다.

왜냐?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주류 사업이라는 게 초기 투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근데 감성적인 부분은 빼고, 사업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사업적인 관점?"

"네."

"오, 좋지! 나는 관심이 좀 많이 가네. 사업가라서."

"……."

천종원 선생님의 동의를 받고 카메라를 독차지한다.

음식이 아닌 술에 대해서는 나도 좀 할 말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주는.'

자세하게 털어놓으면 전통주 협회에서 엄청난 항의가 올 것이다.

아니, 통편집이 될 수도 있다.

최대한 필터링을 거친다.

확실하게 사실인 부분만 짚고 넘어간다.

"요식업에서 수년 동안 적자가 난다면 엄청난 위기죠."

"수년도 아니야. 1년만 나도 사업 구성을 잘못한 거지~"

"하지만 주류 사업은 최소 5년은 적자를 보는 것이 보통이에요."

"5년……?"

"적자를 보는 게 왜 보통이야?"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발효주는 그나마 덜하지만, 브랜디나 소주 같은 증류주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면 왜 하는 거야?"

"왜 하냐뇨."

"좀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는데 너무 큰 규모의 사업이잖아. 그렇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김해철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다.

돈이 많이 든다.

심지어 수년 단위다.

돈과 시간을 쏟아부을 만한 가치.

'있다는 거지.'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의 리턴이 기다리고 있다.

"혹시 한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어딘지 아세요?"

"삼성."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럼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어딘지 아세요?"

"애플? 구글? 마이크로스프트?"

"난 알지 애플이지."

"근데 왜 뜬금없이 기업을 물어보는 거야?"

"중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중국 전통주 마오타이 만드는 회사예요."

"뭐어~?"

"전통주를 만들어서 1위가 된 거야 그럼?"

우리나라의 날고 기는 반도체 회사들과 비견될 정도의 성장성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돈 많고 신뢰 두터운 사람만이 술을 만들었다.

'각 지역의 유지들.'

지역별 전통주는 그렇게 탄생한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6·25,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박살이 났다.

그걸 되살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평가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저, 저희도 그 점은 알고 있지만 당장 힘들다 보니……."

"그렇다고 완성되지 않은 술을 팔면 안 되는 거잖아요."

"……."

"공장장님은 제가 무슨 말씀 드리는지 아시죠?"

천종원 선생님이 골목식당에서 호통을 치시듯 말이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맛이 없으면 안 팔린다.

'방송으로 뜨는 것도 반짝이지.'

한국의 전통주 산업.

정부에서 엄청난 푸쉬를 해준다.

주세 혜택은 물론 통신 판매까지 허용한다.

전자는 물론 후자도 엄청난 것이다.

원래라면 유통사를 찾지 못해 쩔쩔매야 하지만 네이버 쇼핑으로 간단하게 팔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다.

술 이름만 알면 1분 만에 구입이 가능.

전통주가 팔리도록 특혜를 주고 있는데.

"아까 대표님이 1년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1년짜리 브랜디를 파실 생각이세요?

"아뇨, 저는 4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장장!"

"네, 브랜디는 사실 최저 2년이고, 시중에 나오는 건 다 4년 이상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는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맛대가리가 있는 술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합리적인 가격.'

대한민국 3대 창렬 푸드.

충무김밥, 아구찜(콩나물찜), 조X아의 베이커리도 한 수 접을 수준이다.

"1년 숙성 브랜디가 한 병에 7만 원이에요."

"……."

"이 귤 브랜디도 헤네시, 레미마틴, 모랑처럼 유명 브랜드가 될 잠재력이 있을 만큼 향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브랜디로서의 기준은 맞춰야 될 것 같아요."

"헤네시, 레미마틴은 들어봤는데 모랑은 뭐유?"

"사과로 만든 브랜디 칼바도스입니다."

"오 사과로 만든 것도 있어?"

가격 책정이 정신이 나갔다.

초―유명 글로벌 기업들이 수백 년 노하우+수십 년 숙성+엘리트 장인 삼위일체로 만든 술보다 비싸게 팔려고 한다.

'오미자 브랜디 30만 원에 파는 미친놈도 있어.'

진짜 한 놈만 걸려라다.

그에 반하면 양심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팔아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술도 음식이랑 똑같아요. 가성비가 안 좋으면 한 번쯤 재미로 사먹을 수는 있어도 꾸준히 사먹진 않아요."

"음……."

"저숙성 출시의 이유가 당장의 적자 때문이라면 저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봐요."

본전치기에 +약간.

천종원 이름값 팔아서 하려는 짓이 겨우 그것이다.

증류소의 신뢰를 깎아 먹을뿐더러, 큰 이윤도 내지 못한다.

'파치귤을 증류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데 그 이점을 왜 갖다 버리냐고.'

매우 안타깝게도 한국 전통주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당장 적자가 나니 비싸게 팔고, 가격이 비싸니 소비자는 외면한다.

시장 자체가 커지지 않는다.

방송으로 주목받아 봐야 반짝 인기에 불과하다.

절대 롱런이 불가능한 구조.

"나는 완전히 요식업이랑 똑같이 봤거든. 정환이가 술쪽 관련해서는 나보다 낫네!"

"과찬이십니다 선생님."

"사정이 딱하다고 하셔서 투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고를 해봐야겠어유."

"……."

실제로 더백 코리아의 제주도 사업.

회사가 성장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망한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고, 본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떠안는다.

'그게 이 술 하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유명인의 피를 빨아 먹으려고 하는 기생충들이 있다.

특히 천종원은 노리고 달려드는 기업들이 생겨날 정도다.

천종원 거리가 조성되면 작전 세력들이 땅값을 개판으로 만든다.

새 음식점을 런칭하면 카피 음식점들이 대거 세워진다.

"저는 원주는 충분히 맛있다고 느꼈어요. 가격과 숙성 연수만 기준에 맞게 조절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공장장님 의견이 중요하겠지만."

"저도 사실은 그러고 싶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유명인인 상대의 입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피해자인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이유가 있다.

'진흙탕 싸움 되면 무조건 손해니까.'

지역 상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당한다.

현지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천종원 선생님은 피해를 보는 일이 흔하다.

그러한 미래.

알고 있기 때문에 눈앞의 불의를 참을 수가 없다.

대표님도 사정이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

"매년 파치귤이 쏟아져 나오는데 생산량이 이 창고 정도면 의미가 없쥬."

"당장 농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정환이 말대로 생산 규모부터 늘립시다. 제가 투자를 할게유!"

그편이 천종원 선생님의 장사 철학에 맞기도 하다.

브랜디, 위스키, 마오타이 등.

고급 술이라고 하면 증류소가 작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커.'

그냥 도시 하나가 거대한 공장이다.

그 안에서 재료 수급하고, 물도 공급받고, 초거대 숙성 창고를 여러 개 짓는 식.

직원들도 다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국가 사업급으로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다.

"저도 한번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정환이도 투자하게?"

"제가 선생님도 아니고 투자해봤자 얼마나 되겠어요."

제주도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남아도는 게 귤이고, 남아도는 게 삼다수다.

'술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재료랑 물인데.'

그것이 갖춰져 있으니 증류소만 세우면 된다.

일반인의 금전 감각으로는 불가능하다.

뚜우― 뚜우― 뚜우―

그런 사람.

나라고 많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연이 있어서 한 분 인맥이 닿아있다.

"누구한테 전화 거는 거야?"

"이런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계셔서."

"술?"

"네. 여보세요? 저 정환입니다 회장님."

"뭐??"

"아니, 회장님?"

재작년.

LCK의 문을 두들길 때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때 흔쾌히 도움을 주셨고, 결과가 좋았다 보니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애주가들의 신 같은 분이기도 하고.'

대기업 회장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류에 진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도 하고, 사업 확장 속도도 범상치 않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테이스팅 해봤는데 맛은 정말 있어요. 회장님께서도 한 번 드셔 보시면……."

<마셔볼 게 어디 있어! 정환이 입맛이면 확실하지.>

같은 애주가로서 이야기가 통하다 보니 친분이 쌓였다.

금일 촬영 전에 연락을 드려 이해를 구했다.

"액수는 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누군데?"

"네?"

"누군지를 알아야지!"

"무슨 동호회 회장님 아니야?"

"둘마트라고 유통업 하시고 계십니다."

""…….""

우승을 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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