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화
TV 속의 TV.
<얼마 전에 약속을 잘 지켜서 전국을 훈훈하게 만든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요?>
<정말 키다리 아저씨예요! 키가 일단 크시거든요~>
한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주제는 다른 TV 프로그램에 대해서였다.
<바로 S그룹의 박진용 회장님입니다.>
<아~!>
<그런데 왜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리는 걸까요?>
<전화 한 통으로 존속 위기에 몰렸던 전통주 업체를 살려냈거든요!>
흔한 일은 아니다.
방송사가 같으면 띄워주는 느낌이고, 방송사가 다르면 그 자체만으로도 걸림돌이 된다.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
불편해질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하는 편이지만.
<먹을 수는 있는데 모양만 나쁜 거죠?>
<맞습니다. 하지만 시장 정책상 일반 소비자에게는 판매할 수가 없고. 그렇게 버려지는 귤들이 매년 수만 톤이라고 해요.>
<<아아~~!>>
다른 기업에게 잘 보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송의 밑소스를 깔아주는 관객들의 아쉽다는 탄성.
잠시 뜸을 들인 MC가 말을 잇는다.
<작년에 귤 농사가 평작이었어요.>
<평작이요?>
<신세대 용어로 평타를 쳤다고 하죠. 잘되지도 않았고, 안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
「신세대 용어 모르는 옛날 세대」
<그런데도 버려진 못난이 귤이 수만 톤이었고, 팔리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정말 산처럼 쌓인다고 해요.>
<맛있는데!>
<그 맛있는 걸 다 버려요?>
<그런 상황에서 S그룹의 박진용 회장이 한 팔 걷어붙였다는 거죠~!>
이슈가 된 내용.
국내의 한 유명 유통업체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CBS― 「재드래곤은 졌다…… 용블리 박진용, 통 큰 FLEX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MBG― 「박진용 완판 시켰다…… SNS서 소개한 전통주 품절 대란」
연합뉴스― 「오정환, 둘마트 박진용 회장과 친분. 어떻게?」
둘마트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형 할인점이다.
아니, 이용해보지 않았다면 간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한국 유통업계의 큰손.
그런 대기업의 오너가 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다.
<귤도 포도처럼 증류해 술을 만들 수 있는데, 전통주 업체와 협력해 생산 기지를 확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맛있겠다…….>
<그런데 비싸지 않나요?>
<맞아! 맞아!>
<일반 소비자들이 선뜻 살 만한 가격이 아니었죠. 노브랜드로 유명한 박진용 회장이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개선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오오~!!>>
보통은 출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에 대한 시샘.
매스컴에 나선다는 사실 자체가 리스크를 가진다.
기존의 관례를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파급력은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이었다.
"PD님. 파이트진로와 꼴데 주류사업부에서 광고 미팅 요청 왔습니다."
"……."
"정관우 PD님?"
방송에서 전통주를 조명하고, 그것이 이슈가 된 것.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다.
정관우 PD도 마음이 내켜서 한 게 아니다.
오정환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제주도편의 방송 분량은 오정환이 캐리했다.
천종원의 설명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주가 바뀐 거지?'
자신도 PD다.
방송이 어색할 정도로 억지 편집을 하진 않는다.
하물며 갑(甲).
방송사에게 있어 기업은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이다.
방송사 수익의 대부분은 광고에서 온다.
그 광고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앞뒤 시간 광고 30초 분량과 프로그램 내 PPL도 부탁드립니다."
"그걸 전부요?"
"하하, 이사님께서 천종원 씨의 열렬한 팬이라서. 천종원 씨가 우리 한국 주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한국 소주 업계와 맥주 업계.
한국인들이 맛없는 술을 마시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편의점 행사를 견제하고, 정치권에는 막대한 로비를 퍼붓는다.
점유율을 유지할 목적으로 말이다.
"저희 파이트진로 제품도 PPL 꼭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영광인데 저희가 꼴데 주류 PPL 예정이 있어서……."
"상관없습니다. 겹치지 않는 상품으로 할 테니까요."
주세법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기형적인 주세법은 국내 주류 업계에 엄청난 특혜를 안겨주고 있다.
해외 업체는 세금 문제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한다.
편의점 맥주가 유행을 타고 있긴 하지만 맥주뿐이다.
'전통주 같은 쓸데없는 짓만 안 해도.'
증류주 시장은 소주가 독점을 하고 있다.
주세법이 근본적으로 개정되지 않는 이상 깨지지 않는다.
경쟁 상대가 있다면 전통주뿐.
세금 문제에서 유일하게 자유롭다.
통신 판매라는 히든 카드까지 가졌다.
심지어 정부에서 여러가지 지원도 해준다.
지금 당장은 가소로워도, 물 만난 물고기가 되는 순간 까다로워질 수 있다.
「이 형 실화냐?」
「죽이게 FRESH한 모델이 온다!」
그 이상의 이슈로 덮어버린다.
주류 업계는 거액을 투자해 스타 셰프와 광고를 찍는다.
이종격투기 ― 「자본주의에 패배한 스타 셰프 ㄷㄷ」
樂 SOCCER ― 「고든 램지도 인정하는 한국 맥주……jpg」
도탁스(DOTAX) ― 「국뽕주의) 미슐랭 셰프가 인정한 한맥ㅋㅋㅋㅋㅋ」
세간에서 난리가 날 만도 하다.
한국 맥주.
썩 맛없다는 사실은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끝내주게 맛있어!」
「달콤하고, 매콤하고…… 이건 정말 매워!」
「개성 있는 3가지 맛 모두 FRESH한 이 맥주와 잘 어울려」
「훌륭한 맥주야!」
「죽이게 FRESH하네!」
「이모! 한 잔 더!」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미슐랭 스타를 14개나 보유한 고든 램지가 한국 맥주를 변호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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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1시간 전
고든 램지 야발련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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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까꿍 1시간 전
국뽕 치사량 ㅠㅠ
자랑스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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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1시간 전
진짜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게 맞구나 한맥이 맛있는 거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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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국팬들에게 공감대를 사지 못한다.
해외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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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 Louv 1시간 전
갑자기 Gordon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습니다.
한국 맥주? 정말? 그는 파산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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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 Martin 1시간 전
진짜 마음 Gordon: 빌어먹을 지옥. 오줌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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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er elf 1시간 전
저는 몇 개국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맥주를 사랑하지만 한국 맥주는 내가 이제까지 맛본 것 중 최악의 맥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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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미로 이슈가 된다.
한국 맥주 회사가 터트린 최악의 병크 중 하나로 말이다.
―고든 램지 한맥 광고 이상과 현실. txt
팬들이 원한 반응:
이 맥주는 하도 신선해서 갓 나온 오줌인 줄 알겠다!
고든 램지 실제 반응:
죽이게 FRESH하네!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ㅠㅠ
└죽이게 FRESH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없는 음식을 너무 먹다가 미각이 마비된 것이 아니냐?
└엄밀히 맛있다고 한 건 아니지. 그냥 “졸라 신선한데” (bloody fresh). 이런 엿같은 맥주가 있었다니 “졸라 신선한데” 그런 걸 거야
고든 램지는 독설가로 유명하다.
맛없는 음식을 피도 눈물도 없이 혹평한다.
그런 그가 한국 맥주를 빨다니?
아무리 광고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을 만도 하다.
―고든 램지가 맛알못이 맞는 이유.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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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종이 골판지를 한번 상상해보세요."
"지금 제가 입에서 씹고 있는 게 바로 그 맛이거든요."
"이건 피자가 아니에요, 실수입니다."
"이건, 이건 마치 무스의 똥맛 같네요."
『고든 램지 하와이안 피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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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황애플 피자를 맛없다고 함
└아닌데? 맛잘알인데??
└한맥 빠는 이유가 있었네 ㅉㅉ
└램지가 미슐랭 스타 10개 넘게 들고 있는 셰프라 맛을 좀 앎└응 제이미가 갑이야
커뮤니티에 비난글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조명이 되면 될수록 함께 주목받는다.
이슈의 시발점.
일부 시청자들은 오정환의 방송적 활약이 계기였다는 걸 눈치챈다.
―이거 다 오정환 스노우볼 아님?
귤 브랜디 전통주에
천종원이랑 둘마트 회장 투자하니까
한국 소맥 업계도 위기 느끼고 고든 램지로 맞대응 ㅋㅋ└아 천종원도 있었네
└스타 셰프 대 스타 셰프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뭔가 있나?
└기업들 간의 싸움은 우리가 알 수 없지……
흥행 중인 예능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못 받았던 한 사람.
오정환의 방송에 이목이 몰린다.
* * *
둘마트 회장과의 인맥.
사실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니까 가능한 거지.'
주류 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 5천 달러가 넘으면 와인, 1만 달러가 넘으면 위스키를 마신다.
세계에서 오직 한국만이 해당되지 않는다.
기형적인 주세법 때문에 비싼 술을 사 마실 수가 없다.
그러는 와중에 국민소득이 2만을 넘어 3만이 되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다.
―키친나이트메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때문에 고든 램지가 한국 맥주 찬양함 ㅠㅠ
"충격적이긴 하더라고요."
―ㄹㅇ 뭐 있나?
―큰 거 온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긴 함
―정환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박진용 회장이 적극 협조한 건 계산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주류 시장에 관심이 많다.
'그걸 막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거고.'
조 단위의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꿀 같은 시장을 기존의 적폐들이 포기하고 싶을까?
정치권에 로비를 해서라도 막으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이미지 전략도 구사한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한국 소주와 맥주가 잘 맞는다!
고든 램지 섭외도 그 일환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냄새 죽인다!」
「무엇보다 이 바삭거리는 식감이 너무 좋아!」
「조금 느끼하긴 한데…….」
「이 맥주랑 같이 먹으면 느낌함은 잡아주면서 톡 쏘고 FRESH하게 즐길 수 있지.」
「진짜 John나 맛있어!」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먹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딸자식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아 독설가 아니었냐고 ㅋㅋ
아니,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의 도가니탕이긴 했다.
'근데 그 정도로 신념이 없는 사람은 아니야.'
맛있다고 느꼈으니 맛있다고 한 것이다.
장금이가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카스꿀맛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다 한맥 맛있다고 함ㅋㅋ
"그런 관점도 있죠."
―형도 돈 받았어?
―응 국민의 80%는 한맥 지지해~
―개발팀 직원들은 안 마셔보나? 진짜 맛없는데
―고든램지는 맥주맛에 음식맛 묻히는 걸 싫어한다더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단편적인 시각에 지나지 않다.
'뭐,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있는데.'
이래 봬도 요리사 나부랭이.
전문 셰프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통하는 바가 있다.
설명은 가능하다.
그렇게 넘기는 건 지상파 스타일.
BJ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적이 없다.
방송으로 처음 주목받았다.
사건이 커지며 이슈화되고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리사들은 원래 술알못이에요."
어그로는 나의 주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