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52화 (652/846)

652화

러시아.

"오빠 여기 완전 외국 사람들 뿐이에요!"

"여기선 우리가 외국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봄이 신났어

―헐 한국인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애를 가지고……

공항에 도착한 봄이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낸다.

아직 건물 안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한 것이다.

여기저기 파닥파닥 돌아다닌다.

이내 무서움을 느꼈는지 돌아온다.

아무래도 너무 귀엽다.

'우리 봄이의 귀여움은 글로벌 레벨이지.'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 끌 만하다.

이렇게 귀여운 생물이 있다니?

미국에 마릴린 먼로, 영국에 오드리 헵번, 일본에 거유키쨩이 있다면 한국에는 봄이가 있다.

"봄이 러시아까지 왔는데 뭐 하고 싶어."

"외람되지만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어째서 외람됐는데?"

"후우, 저도 제가 이렇게 식욕이 왕성한 줄 몰랐어요."

ㅋㅋ

나름대로 체통을 지키고 있었다.

16시간이 넘어가는 긴 비행 시간.

먹을 수 있었던 건 오직 기내식과 간식뿐이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5000개 감사합니다!

봄이 맛있는 것 좀 사줘요~

"봄이방 회장님 5천 개 감사합니다. 우리 봄이 맛있는 거 먹여야죠."

"삼촌 오빠 너무 고마워요!"

―정말 감사한 표정

―삼촌팬님 봄이 개챙겨줌ㅋㅋㅋ

―아 풀떼기 ㄲㅂ

―러시아 음식은 뭐가 맛있지?

그 기내식이 빈약하다.

기압 때문에 양도 조금 주고, 맛도 내기가 힘들다.

그만큼 후각과 미각도 둔해진다.

그래서 어찌저찌 버텼지만 땅에 내리자 장이 다시 활발히 활동한다.

폭식의 봄이를 더 이상 억제할 수가 없다.

"ты хочешь взять такси?"

한국에서는 말이다.

별안간 들려오는 낯선 외국어에 봄이가 얼어붙는다.

'그거네.'

나라고 러시아어를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행지의 공항에서 겪는 일은 대부분 비슷하다.

"No thanks. We are going to use Yandex Taxi."

"No! No! Cheap! Cheap!“

―뭔가 싸다는데?

―택시 아저씬가 봐

―갑자기 말 걸어오네 ㄷㄷ

―봄이 얼음

짐 들어준다고 접근하거나, 택시 타라고 권유하는 등.

여행자들 호구 뜯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문화인가?

착각하기 쉽지만 당연히 아니다.

방금 전 아저씨가 몰고 온 택시.

"저게 택시인 걸까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ㅋㅋ

봄이가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낡아 보이는 차량에 택시라 생각되는 표식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야매 영업하는 거지.'

우리나라처럼 사회 시스템이 구축돼있고, 준법 인식이 있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강도로 돌변만 안 해도 다행인 수준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공항에서 영업할 정도면 직원들에게 눈도장이 찍혀있다.

가격 외의 사고는 여기서는 안 일어난다.

"봄이야."

"봄이에요……."

"약간 위험하지만 싼 택시 탈래, 아니면 조금 비싸도 안전한 택시 탈래?"

"저 오늘은 사치를 부리고 싶은 기분이에요."

ㅋㅋ

넋이 나간 봄이의 표정이 볼 만하다.

그토록 여행이 가고 싶다던 모험 정신이 도착한 지 30분 만에 꺼졌다.

'나 혼자였으면 흥정해서 탔을 수도 있는데.'

방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기 때문에 가는 길 내내 자는 척도 할 수 없는 점만 빼면 괜찮다.

어차피 택시 승차감이라는 게 그거 그거니 말이다.

끼익―!

조금 비싼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봄이의 경계심이 Max에 차올랐다.

가는 길 내내 손을 꼭 붙잡는다.

"사람들이 다 너무 커요."

"그래."

"저만 작은 것 같아서 서운해요."

"그렇구나.“

―러시아니까

―서운하대 ㅋㅋ

―혼자 왔으면 어쩔 뻔했어?

―정환이가 말린 이유가 있네

물론 혼자는 안 왔을 것이다.

친구들이랑 왔겠지만 잔뜩 쫄아서 움츠러들었을 것은 눈에 선하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여행 가면 안 돼.'

여행지에서의 일은 다 잊어도 된다는 둥 개소리를 씨부리는 년이 꼭 한 명씩은 있다.

친구들까지 나락에 빠뜨리는 년도 말이다.

"택시에서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했어요."

"그랬어?"

"여행이라는 게 이렇게 스릴이 넘칠 줄 몰랐어요."

ㅋㅋ

우리 봄이의 순수함은 지켜줘야 한다.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은 봄이를 데리고 식당으로 간다.

"뭘 먹는 걸까요? 어떤 맛있는 게 기다리고 있을까요?"

"어떤 게 있을 것 같아?"

"제가 상상도 못 한 신기한 것이 있을 것 같아요~!“

―행복지수 ON

―먹을 건 못 참지 ㅋ

―곱배기로 달라 그래!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봄이가 주체 사상에 물들었다.

그래서 준비한 첫 번째 식사 코스이기도 하다.

「평양관」

상상도 못 한 것은 맞았다.

* * *

의외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이다.

"봄이야."

"……."

"왜 이렇게 굳었어."

"저는, 저는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오정환 이 나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 놀리는 맛이 쏠쏠한가 보네

―와 신기하긴 하다

―이런 데 와도 되는 거임?

동구권 국가에 가면 말이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꼭 하나씩은 있다.

'적어도 관광지에는.'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인이라고 못 들어가고 그런 거 없다.

오히려.

"주문하시겠습네까?"

"네, 잠깐만요."

현지 한국인들이 자주 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북한 음식이 한국 음식과 비슷하기도 하고.

'재밌잖아.'

이런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

북한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선별된 사람들이다.

즉, 비주얼이 받쳐준다.

"혹시 핸드폰 번호 가르쳐줄 수 있어요?"

"곤란합네다."

"진짜 안 돼요?"

"주문하시라요!“

―진짜 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쫓겨나……

―핸드폰은 있을까?

―다음 콘텐츠는 아오지 탄광이겠네 ㅎ

그리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간단한 농담 정도는 괜찮다.

겉으로는 딱딱한 척해도 속으로는 자본주의에 물들었다.

'다 츤데레라는 거지.'

틱틱대면서도 꼰지르지 않고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히 압박감을 느끼나 보다.

"봄이야."

"봄이에요……."

"여기 떡볶음이라고 떡볶이도 있는데 입맛이 안 당겨?"

"허엉……, 전 잘 모르겠어요."

ㅋㅋ

우리 봄이는 쭈그리가 되어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인조고기밥이랑 두부밥."

"그거면 되겠습네까?"

"침착하세요 동무."

"……."

"언감자떡, 농마국수, 농마전 하나씩 주시고 밑접시도요."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네까."

"그대의 마음이 담긴 걸로."

"일 없습네다!"

적당히 주문을 한다.

북한 풀코스.

북한 식당에 왔으니 북한 음식을 먹어봐야 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평소였다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봄이가 얼음이 되어있다.

갑작스러운 콘텐츠 진행에 긴장한 봄이를 풀어준다.

"이게 뭔 줄 알아?"

"무생채 아닐까요?"

"북한에서는 채지라고 부른데."

밑반찬.

총 세 가지가 깔려있다.

하나는 척 봐도 익숙한 채지, 다른 하나는 조금 특이한 김치다.

원가 절감을 위해 양배추로 만든 모양이다.

단순히 재료만 바뀐 것이기 때문에 놀랄 것은 없지만.

"이건 인조고기 반찬이야."

"?!"

"북한군놈들이 사람고기로 만든 거래. 사람고기."

"허엉!"

―ㄹㅇ루?

―봄이한테 왜 그랰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름이 인조고기야?

―자꾸 개소리하면 아오지요 동무

아예 다른 말씨를 사용하는 것도 있다.

속닥속닥하자 봄이가 까무러친다.

눈동자가 동공지진을 일으킨다.

'리액션 찰진 거 봐. 이게 유튜버지.'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 같은 것이다.

인조고기를 채 썰어 간을 세게 해서 볶은 진미채 느낌의 반찬이다.

꽈앙!

북한 미녀가 찾아온다.

음식이 담긴 접시와 함께 음료수 두 병을 내려놓는다.

「대동강 맥주」

북한이 남한보다 잘 만드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핵무기이고 또 하나는 맥주라는 그 전설의 술이 눈앞에 있다.

─아오오니탄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전설템 뭔뎈ㅋㅋㅋㅋㅋ

"아는 사람들은 아는 유명한 맥주죠. 그냥 발음하면 안 돼요. 대애도옹가앙~ 매액주!"

"……."

―북한 눈나 웃는데?

―웃참 실패 ㅋㅋ

―저게 뭔데

―북한 CF에 나오는 건가 보네

요즘 북한 애들답게 류머 코드가 통하는 모양이다.

본인도 어색한지 총총걸음으로 테이블 앞을 떠난다.

치익……!

병맥주를 딴다.

그리고 유리잔에 가득 따른다.

한국 맥주보다 조금 더 진한 예쁜 황금색이다.

'라거맛은 그래 봤자 라거맛이긴 한데.'

카스에도 여러 가지 오줌이 있듯이, 대동강 맥주도 여러 종류가 있어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대충 칭따오 맛이다.

둘 다 쌀이 들어갔다는 게 특징.

가볍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정말이지. 이래서 오빠랑 여행 오기가 싫었던 거예요."

ㅋㅋ

우리 봄이는 과일 단물을 빨고 있다.

그냥 주스다.

당분이 몸에 돌자 혈색이 돌아온다는 느낌이다.

우적우적!

그리고 음식을 먹는다.

두부밥과 인조고기밥.

유부초밥처럼 생겨서 모양에 거부감은 없다.

─헐레벌떡봄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 역대급으로 행복지수 낮은데?

"맛이가 없어?"

"오빠 때문에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어요!“

―투정 부리면서 잘 먹어 ㅋㅋㅋ

―봄이 불안해

―와 맛은 있어 보인다.

―간첩추

두부밥은 튀긴 두부를 반으로 갈라서 밥을 채워 넣은 것이다.

유부초밥보다 훨씬 볼륨감이 있고, 고춧가루 기반의 양념장을 발라 먹는다.

와구와구!

와구와구!

우리 봄이의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다.

안 맞는 게 있을까 하다만은 확실히 맛은 있다.

"입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먹고 살기 팍팍한 거예요."

ㅋㅋ

인조고기밥은 인조고기에 밥을 채워 놓고, 김치 마냥 빨갛게 양념장을 묻힌 것이다.

인조고기라도 고기이기 때문에 감칠맛이 있다.

타악!

다음 요리도 나온다.

언감자떡, 농마국수, 농마전.

비주얼 자체는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것들이다.

언감자떡=감자송편

농마국수=물냉면

농마전=감자전

당연히 내용물은 조금씩 다르다.

"저……."

"잘 먹을게요."

"남조선 동무는 정말로 사람을 먹습네까?"

"아, 사람이요?“

―북학식 류머인가요?

―눈나 나 진짜로 죽어

―오정환 개쪼개네

―여자는 먹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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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물이 달라도 한국 사람.

옛날에 보면 빨갱이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다.

'북한에서도 그랬을 수 있지.'

빨갱이답게 볼이 빨갛게 달아 올라있다.

나름대로 농담을 던진 걸지도 모른다.

"제가 그렇게 나쁘게 생겼어요?"

"아닙네다."

"그렇죠. 남조선 사람들 저처럼 착해요."

"추파를 던지는 남조선 동무는 처음 봤습네다."

"……."

딱딱한 분위기.

풀기 위해서 노력했던 보람이 있다.

북한 미녀가 들고 온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아수라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북한에는 함흥냉면이 없어??

"고조 남조선 간나들 상술입네다."

―간나들ㅋㅋㅋㅋㅋㅋ

―눈나 호감이네

―???: 이즈한테 일단 궁 썼어 이즈 앞으로 가

―누나 탈북해서 BJ 할래?

함흥냉면.

회를 얹은 비빔냉면을 일컫는다.

짜장면처럼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량된 것으로, 본토에는 비슷한 음식을 찾아볼 수 없다.

'면만 똑같지.'

감자나 고구마 등의 녹말로 면을 만든다.

육수를 쓴다는 점에서 한국의 물냉면과 비슷한 면이 많다.

후루룩~!

우리 봄이도 맛있게 해치우고 있다.

분위기가 풀리자 평소처럼 행복하게 먹방을 찍는다.

"또 오시라요."

러시아 여행 첫날을 보람 있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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