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화
도심 외곽 지역.
끼익―!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밤이었다면 여기가 맞나? 싶었겠지만 백야라서 훤히 보인다.
'꽤 좋더라고.'
외관은 허름하다.
아무래도 불법 건축물.
제대로 된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내부에 거의 올인을 해놨다.
재벌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별장을 지어 놓은 것이다.
"마중 나왔어?"
"네."
"추운데 안에서 기다리지."
"……."
그래서 가격이 꽤 합리적이다.
백만 원 정도면 며칠 동안 전세로 빌릴 수 있다.
"혹시."
"응?"
"안 오시면 무서워요."
"하, 귀엽네."
서툰 한국어.
어제 만난 아나스타샤라는 아이다.
처음부터 3박 4일을 빌릴 계획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원래 현지에는 현지의 애인을 만드는 게.'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이다.
러시아 밤의 찬 바람에 식어버린 피부를 꼬옥 안는다.
그리고 입을 맞춘다.
술을 안 마신 상태에서 음미를 해보니 확실히 맛이 다른 게 느껴진다.
"샤워했어?"
"네."
"맛있겠네."
"맛있어요. 제 몸."
몸 단장을 한 듯 은은한 비누 냄새를 풍긴다.
마음 같아서는 한 발 바로 빼고 싶다.
'밤은 기니까.'
조급할 필요 없다.
이곳은 러시아.
돈만 있으면 정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사람 불렀어."
"네?"
"아나스타냐가 능욕당하는 걸 보고 싶어서."
"능욕?"
"창피한 거."
매끈한 허벅지를 타고 모험을 한다.
길들인 보람이 있다.
아직 완전한 건 아니지만 시간 문제일 것이다.
"싫어?"
"이유가……, 뭐에요."
"내가 보고 싶으니까. 좋아하거든."
"그, 그런. 아!"
몸을 꿈틀댄다.
조금 집요하게 공략하자 얽혀오는 혀에 점점 여유가 없어진다.
역치가 높다.
조금만 장난을 쳐도 몸이 반응한다.
피부가 바르르 떨리며 호흡이 가빠진다.
"존나 밝히네."
"아, 아, 아……."
"싫으면 말고."
"아니에요. 할게요. 오빠 말."
"그래, 그래야지."
예의도 발라진다.
처음 만났을 때 온갖 고고한 척을 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뭐, 그럴 만은 해.'
예쁜 여자를 떠받들어주는 건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대학생.
콧대가 가장 높을 시기다.
그런 여자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쾌감이 엄청나다.
끼익―!
잠깐 노는 사이에 도착한다.
오늘의 여흥을 시작해줄 사람들.
"어?"
"왜."
"아니……, 여자일 줄은 몰랐어요."
"뭘 생각한 거야?"
"?"
마사지사다.
출장 마사지도 돈만 내면 꼬박꼬박 해주는 모양이다.
'야한 쪽 마사지 말고.'
글자 그대로 본연의 의미다.
별장 내부에 시설이 있다.
누워서 받으면 된다.
"아! 아! 아앙♡"
한 번 간 상태.
요란한 신음 소리를 내며 마사지를 받고 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한 잔 빤다.
'술맛 좋네.'
역시 안주거리가 있어야 술이 잘 넘어간다.
라키야.
동유럽 발칸 반도에 기원을 둔 전통주다.
제주도에서 귤로 브랜디를 만들었듯, 다른 과일로 만들어진 브랜디도 많다.
자두, 포도, 복숭아, 살구, 사과, 배, 체리, 무화과, 모과 등이 사용된다.
'고급술은 아니지.'
제주도처럼 1년 숙성을 7만 원에 파는 미친 짓을 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보통 그런 짓을 하면 싸대기를 맞기 때문이다.
가격도 싸고, 유명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저평가된 술을 마시는 재미가 있다.
음식으로 따지면 숨은 맛집 찾아다니는 느낌.
"어때?"
"기분……, 좋아요?"
"느껴?"
"아! 몰라요. 이상해. 기분……."
실패도 있지만, 가끔씩 당첨을 찾을 때의 희열이 끝내준다.
싼 가격에 좋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사온 술을 한 잔씩 음미하며 관람한다.
아나스타샤가 마사지사에게 능욕당하는 광경.
'마사지라는 게 참 부끄럽지.'
남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있다.
특등석에서 보고 있자니 즐겁다.
점점 예뻐지고 있는 여자를 내가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어제 기분이 어땠어?"
"좋았어요."
"처음이었는데?"
"몸도, 정신도 대단히 충만해서……."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온다.
단순히 첫 경험 상대에 대한 미련이면 귀찮아질 수 있다.
'좋지, 좋아.'
만족스러웠던 듯 감상을 늘어놓는다.
하나하나 물어보며 상기시키자 반응이 신선해서 좋다.
"안 아팠어?"
"아팠어요. 생각보다."
"안 아플 줄 알았어?"
"아니요. 그게 사이즈가……."
아시아 남자.
작을 거라는 편견이 있다.
그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애들이 간혹 있지.'
본인이 자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꽃뱀이라고 부른다.
혹은 신데렐라 콤플렉스.
남자 잘 만나서 팔자 펴고 싶다.
기왕 순결을 바칠 거면 돈 잘 버는 남자한테.
"인생 날로 먹고 싶었어?"
"날로? 아! 죄송합니다."
"큰 건 싫었어?"
"아팠어요. 좋았어요……."
실행으로 옮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의지는 하고 싶지만, 노리개가 되는 건 싫었던 것이다.
'이런 도도한 년들이 또.'
가르쳐주는 맛이 있다.
홀딱 벗은 채 받는 전신 마사지에 피부가 점점 민감해진다.
"하고 싶어?"
"네. 당장."
"참아. 발정은 오빠가 허락했을 때."
"발정?"
슬라브계 미녀.
작은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는 엘프를 연상케 한다.
눈을 마주치면 얼어붙을 것 같은 설녀 같은 인상이 매력적이다.
"으음~! 하! 하아, 하아……."
지금은 완전히 녹아내렸다.
신음에 가까운 숨을 내쉰다.
혀를 꺼내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문질하자 애원하는 눈초리다.
"все кончено."
"뭐래?"
"끈나때여."
"그래?"
담소를 나누는 사이 마사지가 다 끝났다.
그녀의 피부는 수분기를 잔뜩 머금어 푸딩처럼 부드럽다.
향이 나는 기름 같은 걸 발랐는지 미끈미끈해 보인다.
일어서게 하자 키가 상당히 크다.
"키 몇이야?"
"175."
"다리 기네."
"네, 오빠."
밀랍 인형 같다.
꼭지를 꽉 쥔 채 침실로 들어간다.
'키가 엄청 크긴 한데.'
175.
까놓고 말해 나랑 별 차이가 안 난다.
다리가 워낙 길어서 안을 때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몸은 색기가 흘러넘친다.
가슴이 살짝 작긴 하지만 예쁘게 둥글어서 봐줄 만하다.
* * *
시트 위가 지린 것처럼 젖어있다.
별장 내부에 침대도 많고, 하루에 한 번씩 갈아주니 괜찮을 것이다.
일으켜 세운다.
반쯤 영혼이 나간 눈이다.
본능만이 남아서 애인처럼 들러붙는다.
"좀 놀까?"
"네, 해요. 오빠."
"그거 말고. 무슨 원숭이냐?"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힌다.
손수 화장까지 해주자 여배우 수준으로 부티가 붙는다.
'동양인 시각에서 그렇다는 건데.'
내가 쓸 여자니 내 취향으로 만들어도 될 것이다.
드레스를 차려 입은 허리에 손을 감는다.
"예쁘네."
"어울려요?"
"가자."
"어디든 갈게요."
택시를 불러서 나간다.
목적지는 낮에 갔던 장소.
우리 봄이가 타이타닉에 빙의했던 유람선이다.
'조금 더 큰 거.'
낮에 탔던 것이 둘러보는 용도라면, 이건 유흥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크기도 크고 내부 시설도 화려하다.
나도 영화 한 편 찍어본다.
갑판 뱃머리에서 흉내를 내본다.
아나스타샤도 무슨 짓인지 아는 눈치다.
"밤공기가 차네."
"네, 하지만 좋아요."
"좋아?"
"정말 영화 같아서."
백야 때문에 밝기는 해도 기온은 쌀쌀할 수밖에 없다.
여자를 끼고 있어야 옆구리가 안 시리다.
쪼옥!
고개를 돌린 아나스타샤의 입술을 먹으며 배를 살살 만진다.
아까 잘 써서 그런지 여전히 따듯하다.
"하고 싶어?"
"하고 싶어요."
"이따 써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
의외로 애교가 많다.
긴 다리를 내 허벅지에 감으며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맞춰온다.
'골반 쪽이 살짝 아쉽긴 한데.'
개발을 하면 커버가 되는 부위다.
"가요."
"말 잘 듣네."
"네."
"하려면 에너지 보충도 해야지."
자잘하게 자주 느끼는 타입인 모양이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내부로 들어간다.
레스토랑이 있다.
"게 좋아해?"
"네. 좋아합니다."
"나를?"
"오빠도."
호화 유람선답다.
어지간한 대형 레스토랑 수준으로 널찍해서 많은 손님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대게를 시킨다.
러시아산 대게는 크고 살이 꽉 차있어서 오면 반드시 먹으려고 했다.
'우리 봄이보다 먼저 먹게 생겼네.'
맛을 봐두는 편이 방송 진행에는 좋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요리가 서빙된다.
"술도 시킬까?"
"보드카?"
"음, 기왕 레스토랑까지 왔으니."
토마토 베이스의 수프에 대게의 다리가 졸여져 있다.
양이 좀 적어 보이지만 의외로 먹을 만하다.
'살이 엄청 많아서.'
수프에도 대게 맛이 녹아있어 고급지게 맛있다.
데이트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라는 느낌이다.
뽀옹!
꼴꼴꼴~
샴페인도 한 병 시킨다.
웨이터가 직접 코르크를 따서 샴페인 잔에 채워준다.
분위기도 있고 마리아주까지 따졌다.
대게살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간다.
"내일도 올 거예요?"
"그래야지."
"♡"
"맛있어?"
"맛있어요.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요."
샴페인을 마시며 올라가는 목이 섹시하다.
행복해하며 마시는 모습을 보니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늦긴 했는데."
"네?"
"몇 살이야? 대학교 몇 학년?"
"1학년이에요, 1학년."
"……."
그럴 만한 나이다.
서양인이다 보니 빠르게 성숙하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면 봄이랑 비슷한 연령일 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나라가 다르니, 고민도 다를 수 있지.'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야망까지 있어 보인다.
심심하지 않은 여자라면 비밀 친구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어때?"
"할게요!"
"그렇게 빨리 대답해도 돼?"
"하룻밤 꿈이 아니라 평생…… 오빠를 보고 싶어요."
러시아 친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