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60화 (660/846)

660화

봄이가 굉장히 시무룩하다.

─봄이의발바닥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 표정 ㅋㅋ

"봄이 시무룩해."

"시무룩해요."

"시무룩 시무룩해."

"저는 지금 시무룩 그 자체예요.“

―아앙

―진짜 개귀요미 ㅋㅋ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그러는 거야?

―괜찮아! 운동 열심히 하고 다시 오면 돼

ㅋㅋ

봄이는 시무룩하다.

왜냐하면 시무룩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신지로의 명언처럼 굉장히 심플한 상태 이상이다.

'표정에 다 드러나는 게 정말 귀엽지.'

하지만 나로서는 빨리 귀국하고 싶다.

밤낮으로 일을 했더니 허리가 버텨주지 못할 지경이다.

"마지막 날을 하얗게 불태워야지."

"소녀는 준비가 된 거예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ㅋㅋ

아무래도 섭섭하다.

3박 4일이면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사람이라는 게 더 놀고 싶은 법이다.

그러니까 더 신나게 놀면 된다.

봄이가 그 선글라스를 낀다.

텐션을 올리겠다는 신호다.

"봄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 빠빠빠 빠빠빠~!“

―신났어

―다 쳐다 봨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는 한국의 K팝을 얕보지 마라

―좋아하는데?

봄이와 신나게 관광을 떠난다.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전, 그리고 스몰렌스크 성당까지 투어를 마친다.

여행객 티를 잔뜩 내며 다니다 보니 주위 시선이 팍팍 꽂힌다.

우리 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 스타성이 있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이 같아도, 실제로 별로 없어도, 정말로 없는 건 아니다.

아마 있을 것이다.

실제로 눈치코치가 좀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이 연약한 생물이 살아남은 비법.

"ты хочешь есть?"

"먹고 싶어요."

러시아 아저씨와 눈으로 대화하고 있다.

이심전심이라고 점심이 먹고 싶은 모양이다.

'점심은 나가서 먹어야지.'

길거리 음식.

러시아식 또띠아 샤우르마였다.

우리 봄이가 침을 질질 흘릴 만도 하다.

서걱!

콧구멍까지 벌렁벌렁 하고 있다.

거대한 고깃덩이.

꼬치에 끼워진 케밥에서 적당량을 도려낸다.

그리고 피자만 한 또띠아 위에 고기와 야채, 그리고 소스까지 듬뿍 뿌린다.

나머지는 잘 싸기만 하면 된다.

치이익……!

아니, 안 끝난다.

와플처럼 누르는 기계로 굽는다.

이윽고 맛없을 수가 없는 음식이 나온다.

"와, 이거 맛있다!"

"너무 맛있어요."

"이거 한 끼 식사도 되겠는걸?"

"아니에요. 간식이에요.“

―진짜 푸짐하네

―사이즈 ㅁㅊ

―봄이 필사적이야

―저건 성인 남자도 배부르겠는데 ㅋㅋㅋ

거의 바게트빵만 하다.

속이 튼실해서 한 입 베어 물자 벌써부터 포만감이 차오른다.

'치즈까지 넣으면 대박일 것 같은데?'

우리 봄이가 식사하고 갈 수도 있다.

지금도 두 볼따구가 터질 만큼 가득 넣었다.

꿀꺽! 꿀꺽!

러시아식 식혜 크바스도 마신다.

호밀빵을 발효시켜 만든 전통 음료수다.

"봄이야."

"봄이에요~"

"맛있어?"

"맛있어요~"

1도 정도의 도수가 있어 알딸딸하다.

봄이에게 딱 맞는 술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홀짝이고 있다.

맛은 맛있는 맥콜맛이다.

─펩시콜라제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음료수를 먹고 취하넼ㅋㅋㅋㅋㅋ

"저 하나도 취하지 않았어요!"

―취한 사람 특) 안 취했다고 함

―그 버릇 ㅋㅋ

―봄이 볼 빨개

―술 개약하누

다른 의미로 시무룩해진다.

봄이의 역린이다.

절대 어린 취급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도 꿀떡꿀떡 마셨지.'

요즘은 시럽도 추가하지 않을 정도다.

정말 대견하기 그지없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빠 저 술을 마셔보고 싶어요!"

"방금 마셨잖아?"

"이건 음료수에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거예요."

ㅋㅋ

술이 간을 상하게 만들긴 한다.

우리 봄이도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날갯짓을 하고 싶다.

─스모크치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러시아 술은 보드카 아님? ㅋㅋ

"그렇죠. 물 대신 마신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니까."

"저 완전 마실 수 있어요."

―봄이 죽엌ㅋㅋㅋㅋㅋㅋ

―그거 물 아니야……

―일단 맥주부터 하자

―팩트) 진짜로 있다

실제로 보드카(Vodka)의 어원이 러시아어 물(Vоda)에서 따왔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이 물처럼 마실 만도 하다.

끼익―!

그래서인지 길거리에 펍이 많다.

눈에 띄는 가게 중에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적당히 골라 들어간다.

"봄이 각오가 됐어?"

"후후, 언제든 오는 거예요."

아직 대낮.

낮에는 레스트랑으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냥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경 끈다.

안주가 될 만한 것들을 주문한다.

여차하면 식사로 전환할 수 있는 음식들로 말이다.

와구와구!

ㅋㅋ

이미 하고 있다.

감자튀김과 양념을 바른 샤슬릭.

소스가 발린 치킨과 뭉텅 자른 구운 옥수수.

타악!

그리고 보드카.

냉동된 것을 보틀로 시켰다.

40도 이상의 술은 냉동실에 계속 넣어둬도 얼지 않는다.

─클럽에미친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보드카는 앱솔 아님?

"러시아에서는 이거 많이 마시는 걸로 알아요. 가격도 싸고 맛있거든요."

"엄청 차가워요! 와앙~“

―진짜 술집이네

―그거 장난감 아니야……

―봄이 보드카 CF 가능?

―한 잔 마시고 뻗을 예정 ㅋ

보드카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애초에 무미무취.

알콜향을 최대한 안 느끼며 청량감 있게 마시기 위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맛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봄이가 술병을 볼따구에 비비며 신기한 듯 가지고 논다.

'러시아산 보드카가 굉장히 맛있지.'

맛만 따지면 당연히 벨루가다.

너무 비싸서 그렇지.

싼 맛으로 마시는 보드카인 만큼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술이라는 게 특히 그렇다.

알고 마시는 사람들이 드물다 보니 주류 회사들도 마케팅에 올인을 한다.

앱솔루트, 그레이구스처럼 품질에 반해 가격이 비싼 경우가 허다하다.

보드카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건 대개.

「Russian Standard」

가격은 반값도 안 되고 품질은 훨씬 좋다.

벨루가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깔끔하게 넘어간다.

꼴꼴꼴

냉동을 해둬서 걸쭉하다.

우리 봄이처럼 작은 샷잔에 따라서 건네준다.

"혀 위에 담아서 입 떼지 말고 꿀꺽 해봐."

"후후, 절 너무 얕보는 거예요."

만만히 볼 만도 하다.

고작해야 한 모금 분량.

꿀꺽 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꾸웨엑……."

"못 마시겠어?"

"기분이 이상해요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나서 삼킬 때 알아봤다

―그럼 그렇지

―이제 곧 훅 감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묘하다.

그리고 내상.

목젖 부근이 따듯해지면서 간지러워진다.

'그래서 냉동으로 마시는 거긴 한데.'

상온으로 마시면 그 따듯함이 훨씬 빨리 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본인의 내장 구조를 느낄 수 있다.

"봄이 한 잔 더?"

"저 천천히 마실 거예요."

"그래."

ㅋㅋ

그 화끈한 맛에 살짝 데인 봄이가 움츠러든다.

대신 눈앞에 펼쳐진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는다.

'그럴 줄 알았지.'

그래서 식사 메뉴로 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안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에.

꼴꼴꼴

오렌지 주스를 하나 시킨다.

그리고 보드카를 적당량 따라서 쓰지 않은 스푼으로 섞는다.

"저 술 마실 거예요."

"이것도 술이야. 스크루 드라이버라고 하는 칵테일."

"그럼 마실래요!"

―봄이 자존심ㅋㅋ

―봄이 다루는 법을 아네

―아 저거

―주스길만 걷자 봄이야^^

대표적인 레이디 킬러로 불리는 칵테일이다.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잘도 넘긴다.

'사실 보드카의 음용법은 이게 주류지.'

무미무취.

아무런 특징이 없다 보니 섞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소주는 싫어해도, 소맥은 먹듯이 칵테일로 마시면 맛이 있다.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보낸다.

물론 식사로서 말이다.

간식으로 이것저것 사먹으면서 공항에 도착한다.

"꾸웽~"

슬슬 취기가 도는지 알딸딸하다.

공항 의자에 앉아서 수속 시간을 기다린다.

"봄이야."

"봄이에요~"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헤헤헹……."

경비원들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줬으니 괜찮을 것이다.

잠깐 두고 화장실에 간다.

똑! 똑! 쿠웅!

인적이 드문 장소.

세 번째 칸 문을 두들긴다.

딱히 응아가 급했기 때문은 아니고.

"기억하고 있네."

"오빠!"

"목소리 낮춰. 남자 화장실이야."

다른 것이 조금 마려웠다.

정해진 박자로 두들기면 문을 열기로 사전에 말을 해놨다.

안쪽에 향수를 뿌려둔 듯 냄새가 나진 않는다.

애초에 개의치도 않는 듯.

쪼옥! 쪼오옥~

입을 맞춘다.

미처 가라앉히지 못한 콧김이 인중을 간지럽힌다.

적극적으로 혀를 얽혀온다.

내 손길을 거부하는 기색 없이 받아들인다.

"흥분했어?"

"네."

"누구 생각하면서?"

"오빠가 들어가 있는. 아, 아…… 가요."

살짝 젖은 눈망울이 겁탈하는 것 같아서 흥분감을 고조시킨다.

적당히 몸을 데우고 봉사를 받는다.

혀의 움직임이 어색하지만 정성이 배어있다.

그 짧은 시간에 교육이 잘되었다.

'아직 배울 게 많은데.'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나도 아쉽다.

어쩔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찐득하게 즐긴다.

"소리 죽여."

"네. 가요."

"몰래 하는 거니까 입 다물고 내 혀나 맛있게 빨아."

천천히 말이다.

격하지 않은 움직임.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다.

'마지막은 부드러운 인상을 남겨줘야지.'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섞이는 침이 고일 정도가 됐을 때 혀로 밀어 넣어 삼키게 한다.

꿀꺽!

내 맛을 각인시킨다.

멀뚱멀뚱하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꽈악 안는다.

"하아……, 하아……, 하아……."

입을 막은 채 가쁜 숨을 쉰다.

상당히 감흥이 있는 듯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고 있다.

그 솔직한 반응.

파트너로서 보람이 배가 된다.

한동안 여운을 가진다.

달라붙어서 떼질 생각을 안 한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잘 썼어."

"오빠, 오빠."

"왜. 응?"

"가지 마요. 나랑 있어요."

헤어지는 게 아쉬운 모양이다.

눈물을 흘리며 짧은 키스를 연거푸 반복한다.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준다.

한참 즙을 짜내고 나서야 감정이 진정된다.

"열심히 해."

"오빠."

"한국 오면 하루 종일도 먹어줄게.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사랑해요 오빠."

아직 어린 나이.

생긴 것에 비해 마음이 여리다.

상처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준다.

"오빠 여자라는 마킹이야."

"♡"

"잘 지내고 있어."

"꿀꺽."

보람찬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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