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여배우의 고민>
여배우.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물론 시상식에서도 항상 화제의 대상이 된다.
'죽을 것 같아.'
그 실상.
당연하게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화려한 건 겉모습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민솔아!"
"네, 매니저 오빠."
"다음 스케줄 이동해야지?"
"네……."
잘 나가는 배우는 다를 것이다.
몇 년에 하나씩 작품 내고, 공백 기간 동안은 CF 찍으면서 띵가띵가 논다.
'그게 되겠냐고.'
그렇지 못한 절대 다수.
매일매일 빠듯한 스케줄에 시달려야 한다.
아니, 그마저도 행복한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힘든 동료들도 많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복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부우웅~!
힘든 건 힘든 거다.
민솔은 촬영을 끝내고 바로 매니저의 차를 타고 이동한다.
소속사에서 요구하는 스케줄이 많다.
그것을 전부 소화해야 수익이 생긴다.
'나도 차라리 행사를 뛰고 싶은데.'
연예인에게 가장 돈이 되는 건 행사.
짧은 출연으로 목돈이 벌린다.
여배우는 직업상 애매해다.
아이돌이나 개그맨처럼 분위기 띄우는 재주는 없다.
그래서 좋다.
고고한 한 마리의 학과 같은 이미지가 자신을 배우의 길로 향하게 만들었다.
"점심 먹어야지?"
"네……."
"저번에 외식하고 와서 단백질 좀 뺐어."
어릴 때부터 목표로 삼아온 만큼 각오는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시달리다 보면 바닷가의 바위처럼 깎여나간다.
'그래서 모래로 변하는 거겠지.'
감성적인 생각에 젖어 든다.
현미밥과 찐 양배추, 우엉과 당근 볶음으로 빈속을 채워나간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은 그런 식단이다.
365일 반복되니 신물이 올라온다.
<꾸웨엑…….>
유일한 낙.
유튜브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한 소녀가 심상치 않은 비명을 울부짖는다.
「어김없이 쳇바퀴를 구르고 있는 봄이」
시끄러운 차 안에서도 자막 덕분에 보기가 편하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민솔은 생글생글 웃는다.
'몸매 유지하는 게 힘들긴 하지.'
아무리 햄스터 같은 아이라도 여자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괴상한 울음소리를 낼 정도로 열심히 운동한다.
「오늘 봄이가 먹으러 갈 음식은?」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부럽다.
자신과 달리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민솔은 탄식에 젖은 푸념을 속삭인다.
'난 새장 속에 갇힌 새인가 봐.'
배우라고 해도 조연 배우.
수입은 변변찮고, 스케줄에 자유라고는 없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낸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대성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도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확률이 낮다.
그래서 취집을 노리는 선배들이 종종 있다.
어째서 의존적인 생각을 하는지.
자신도 데뷔 초에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배우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해가 조금씩 가게 된다.
끼익?!
고민하는 사이 도착한다.
다음 스케줄.
예능 프로그램 천종원의 로컬푸드다.
배우로서는 큰마음을 먹고 하는 시도다.
활동 폭을 넓혀보고자 선택하게 되었다.
'예능은 좀 편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얕본 감이 있다.
연기처럼 감정 몰입하고, 일일이 카메라 신경 쓸 일 없잖아?
친구들과 놀듯이 편하게 하면 될 줄 알았다.
세상 사는 일이, 특히 방송 일이라는 게 쉽지 않다.
"오늘은 설탕으로 폭포를 만들어볼 거예유."
"와 설탕으로!"
천종원 선생님의 생각.
요리에 대해 어지간한 자취생보다도 못한 자신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까 나 설탕 하도 먹어서 이 상했어."
"해철이도 이제 당뇨 같은 거 조심해야지."
"에이~ 선생님 나이대는 아니에요."
""하하하하!""
멤버들도 화제 전환 속도도 빠르다.
갑자기 왜 저런 이야기가 나오나 싶을 만큼 의식의 흐름으로 휙휙 진행된다.
꿀꺽!
이 대화에 끼어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프로그램 내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조언을 구했다.
오정환의 말에 의하면 예능은 야생.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선생님 설탕이 조금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유~ 대용량 음식이잖아?"
"네."
"N분을 하면 보기보다 많지가 않은 거지."
"아하~"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정말 뻔한 질문.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의문.
'괜히 폭포처럼 쏟아붓는 게 아니었구나!'
그냥 해소한 것에 지나지 않다.
다른 멤버들처럼 특별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와 예쁘다!"
"흐흐,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에유."
"먹어봐도 돼요?"
"선생님 저희도요!"
"민솔 씨만 핥아! 남자들은 냄새 묻어."
""하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
아니,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도 조연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랬는데.'
사실 방송 작가들도 말을 했었다.
요리를 잘 모르시니까 배운다는 느낌으로 참여해라.
무시하는 듯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찮았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180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이익……!
설탕 폭포 옆에서는 고구마가 튀겨지고 있다.
기름에 푹 담궈서 아주 노릇노릇하게 말이다.
"선생님 이거 얼마나 익혀야 되는 거예요?"
"어? 5분 넘었쥬?"
"네, 대충 그 정도……."
"그럼 슬슬 빼도 돼유. 맛있게 익었네."
오정환은 말했다.
잘 모르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지만.
'열등생을 연기하라는 거지?'
배역을 연구하듯이 해봤다.
드라마 내에서도 우등생이든, 열등생이든 들어가는 노력은 똑같다.
열등생이라고 결코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야 열등생다운 연기를 할 수 있다.
"앗 뜨거! 뜨거!"
"그걸 덥석 깨물어 어떡해유!"
"야 이 화상아! 그러니까 화상을 입지!"
초보적인 실수.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할 법한 짓을 반의도적으로 저지른다.
무릇 연기란 그런 것이다.
'아프다.'
뜨거운 고구마를 입천장을 데어 가면서 먹는다.
요리 초보라는 점을, 잘 모른다는 것을 어필한다.
어설프게 했다면 독이 된다.
어색하다고, 대본 줬냐고, PD가 시키드나~ 하면서 까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확실히 자신이 있다.
연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이니 말이다.
쏴아아아아?!
천종원표 설탕 폭포가 나이아가라처럼 시원하게 쏟아진다.
튀긴 고구마의 표면을 뒤덮고 있다.
맛탕을 만드는 것이다.
이곳 전라남도 해남의 특산물을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와 저 맛탕 진짜 좋아하는데."
"흐흐."
"?"
"이게 맛탕이 아니고, 비슷한데 조금 다른 요리야."
"그런 게 있어요?"
오정환의 설명에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빠스.
중국식 맛탕이다.
부드러운 식감의 맛탕과 달리, 빠스는 사탕처럼 코팅되어 바삭거린다.
'열등생을 연기하는 거니까.'
우등생만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요리를 모르는 시청자들이 뭐가 궁금한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목표를 세워 놓으니 길이 보이는 느낌이다.
애당초 예능을 얕본 것부터가 실책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소와 같은 방송.
하지만 다른 충족감.
처음으로 제대로 예능을 찍었다는 느낌이 든다.
"민솔 씨!"
"네, 부르셨어요?"
"오늘 정말 느낌 좋으셨어요. 오늘처럼만 쭉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랬어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 한 명이 자신에게 달려와 말을 건넨다.
평소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싸가지 없게 보던 사람이다.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후후~♪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티가 날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는데.
'뭐, 기분 좋은 일 있어요?"
"……."
들키고 말았다.
왜 소리도 없이 접근하냐고 화를 내기에는 용건이 있는 사람이었다.
* * *
최근의 촬영.
로컬푸드 외에도 몇 가지 오고 있다.
"음식 하면 정환 씨 아니야?"
"먹방!"
"요즘 유튜브다 뭐다 해서 많이 보더라."
원래 한국 방송 업계가 그렇다.
인지도가 생기면 네바퀴, 약심장, 스타 골든벨 등에 출연한다.
「오정환 · 유튜버 · 특기: 요리」
이렇게 써있는 어색할 정도로 큰 뱃지를 달고 있는 그 방송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잘 나가면 오디오스타, 무한도전 등에서 불러준다.
"네, 제가 요리를 하고 있는 먹방 유튜브 구독자가 거의 300만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굉장히 영광이긴 하죠."
"300만?"
"와~ 거의 부산시 인구가 보고 있다는 거잖아!"
반드시 필요한 성장 과정이다.
네바퀴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고정이 아니라고 해도 신경 써서 토크해야 다른 곳에서도 불러준다.
'그게 쉽지 않지.'
짧은 시간에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
이야기가 조금만 루즈해도 안방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릴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숫자와 수치 등 기억에 남는 강렬한 단어의 사용이 요구된다.
"저는 거기서 전속 요리사 느낌?"
"거의 셰프네 셰프!"
"천종원 씨 같은 거야?"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일단 관심을 가져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구조다.
토크의 첫 단추를 채우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실전 고수분들이 많으신 자리에서 제가 주름을 잡아도 될지 모르겠는데."
"맞지! 맞지!"
"요리라는 게 매일 하는 거라서 주부들이 가장 잘 알고 깐깐하잖아~"
그다음은 시청자층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다.
방송을 진행하는 MC도, 시청자들도 대부분이 주부다.
"진짜 어머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제 딸아이라고 생각하고 세심하게 신경 써서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기 비결이 있다면 정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딸? 그 나이에?"
"에이~ 진짜 딸은 아니겠지."
"기저귀는 갈아주지 못했는데 코는 많이 풀어줬습니다."
""깔깔깔깔!""
아줌마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한다.
방송을 계산적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개인 방송에서는 조금 힘들지.'
실시간 방송.
그것도 적게는 3시간 많으면 10시간씩도 하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은 편집을 해서 짤막하게 나가기 때문에 내 분량만 잘하면 된다.
웬만큼은 알고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방송 촬영이 끝난다.
네바퀴는 게스트가 굉장히 많은 구조라 녹화 시간 대비 내 방송 분량이 짧다.
"응?"
"안녕하세요."
"혹시 촬영 있어?"
"네, 저 다음 촬영에 나와 가지고."
대부분이 앉아있는 시간이었다.
그조차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괜찮으면 이거 먹을래?"
"뭔데요?"
"도시락인데 저번에 보니까 완전 건강식으로 먹고 있길래."
"봐, 봤구나;"
민솔이다.
촬영도 같이 몇 번 했고, 내가 나이도 많다 보니 말을 놓게 되었다.
스테인리스로 된 보온 도시락통을 건네준다.
얼떨결에 받아 든 그녀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걱정 안 해도 칼로리 다 계산한 거거든."
"아, 네……."
"우리 봄이 먹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까 방송에서 말한?"
하지만 싫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의 고충.
이래 봬도 굉장히 잘 안다.
딸칵!
맨 윗층을 열어보더니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겉보기에는 일반 도시락이나 다름없다.
"간이 심심하긴 할 텐데 먹을 만은 할걸?"
"네! 맛있어 보여요."
"그렇게 생각되면 다행이고."
식단 관리를 하는 여자한테는 만찬일 것이다.
친분의 첫 단추도 한번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