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화
서울특별시 상암동.
"자~ 다음 지원자분."
JT빙신의 본사가 위치해있다.
비정상회담팀의 신규 패널 면접이 진행 중이다.
G12의 자리가 한 명 비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아르헨티나에서 온 산티아고입니다!"
"네. 자리에 앉으세요."
"……."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시청률이 반토막 났다고는 하지만 지원자는 줄을 서있다.
'흠, 비주얼이 별론데.'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이다.
케이블 예능 기준으로는 3%만 나와도 엄청나다.
지상파로 따지면 10%에 달하는 시청률.
하물며 외국인들에게는 동아줄과 같다.
"자신이 비정상인회담에 출연하면 어떤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겠습니다!"
"지금도 진행 분위기가 시끌벅적한데."
"그럼 다른 멤버가 말을 못 하는데요?"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
외국인이 나오는 예능 프로.
비정상인회담 이후 주목받고 있고, 제법 늘긴 했지만 여전히 적다.
그나마도 비정상인회담 출신이 주를 이룬다.
이 프로그램을 나와야 다른 곳에서도 인정해준다.
"다음 질문."
"네!"
"자신의 나라에 대해 시청자들이 어떤 매력을 느낄 거라 보시나요."
"아르헨티나 하면 축구죠. 메시! 마라도나! 모르는 사람 있나요?"
"마라 뭐? 탕?"
"아몰랑!"
"그래서 본인은 축구를 얼마나 잘하시는데요."
"그냥 어느 정도 할 줄 아는데……."
그렇기 때문에 수준 높은 외국인들도 많이 지원하고 있다.
어중간한 사람을 뽑아줄 이유가 없다.
"비주얼도 하타치고."
"축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랑 학력도 평범하네요."
"끝이에요?"
"나가보세요."
갑의 입장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면접관을 맡고 있는 작가진.
지원자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니들 생긴 거나 신경 쓰고 살아라 갓뎀!"
"뭐 이 새끼야?"
프로그램의 흥행.
한 패널이 하드 캐리하는 구조도 아니고, 기존에 명성이 있는 패널도 있을 리가 없다.
즉, 작가진의 입김이 엄청나게 세다.
자신들의 말이 법이나 다름없다.
'니 새끼는 평생 나가리야.'
'못생긴 놈이 깝쳐.'
실무를 쥐고 있는 권력자.
인기 프로그램 비정상인회담의 패널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PD가 아니니 책임을 질 것도 없다.
책임 없는 쾌락.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다.
"안녕하쎄요 레이디들. 저는 영국에서 온 신사 윌리엄 브루스 해리에요~"
""꺄아~!""
권력을 쥐고 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새로운 패널을 입맛대로 섭외하는 것이 가능하다.
'영국 좋지. 선진국이고, 잘 생겼고♡'
"엄마 나 거기 떨려!'
'뽑아주면 혹시 나랑……, 막 이래.'
물론 명분이 받쳐줘야 한다.
회사의 일.
직원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무슨 일 하고 계세요?"
"무역업 하고 이써요."
""무역업~!""
"한국과 영국 잇는 일. 비정상인회담에서도 하고 시퍼요."
""꺄아~!""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대상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신들의 보고에 달렸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긴 한데……."
"요즘 다 한국어를 잘해서 오히려 신선하지 않을까?"
"맞아! 맞아!"
시청자들의 반응(일부)이라는 핑계도 있다.
커뮤니티에서도 분명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잘생기고, 커리어 좋고, 자신 같은 여성에게도 호의적인 패널을 원한다.
외국인 남성으로 대리만족을 얻고 싶다.
"안녕하세요. 우크라이나에서 온 사비나입니다."
그럴 수가 없는 대상.
다음 지원자를 본 작가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공공의 적과도 같다.
"모델을 하고 있다고요?"
"네. 저에게 맡겨주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시 속옷 모델 같은 건 한 적 없죠?"
"설마~"
"직업상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응해야 할 때가 있어서……."
"천박한 일은 곤란한데~"
"모델 일은 천박하지 않아요."
비정상인회담은 딱히 남자 패널만 뽑는다는 규정은 없다.
실제로 일일 게스트로 여성 패널을 가끔씩 섭외한다.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말대꾸 따박따박하는 것 봐. 싸가지 없는 년.'
'응 절대 안 뽑아~'
하지만 고정 패널로 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들의 마음에도, 커뮤니티에서도 절대적인 적으로 규정한다.
"한국 연예인들도 무명 시절에 속옷 모델 하는 경우가 있고……."
"지금 한국 비하하시는 건가요?"
"네? 그쪽에서 먼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예요?"
"참나, 우릴 훈계하려 드네."
"제 말은 선입견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건데;"
감히 예쁘다.
학력도 쓸데없이 좋고, 몸짓 손짓 하나하나가 남자들을 홀리려는 걸로 느껴진다.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간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통과시키지 않을 테니까.
끼익!
다음 참가자가 들어온다.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면접의 결과가 정해진다.
'이 년도 서류 보니까 모델일 하네.'
'넌 벌써 탈락이야.'
'아까 그 년보다 더 예쁜 것 봐~ 남자 꼬시려고 한국 왔지?'
참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를 패널로 뽑고 싶지 않은데.
"안녕하세요! 저번에 한번 뵀었는데……."
"언제?"
"아, 일일 비정상 미팅 때."
"됐고, 본인 소개나 해보세요. 들어볼 것도 없긴 하지만."
"네?"
"러시아 여자라니 너무 흔하잖아. 요즘 지천에 널린 게 모델이고~"
그러한 사실.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어째서 인종 차별급의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랬지.'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이지만, 집단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다.
때문에 비위를 맞춘다면 집단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속옷 모델은?"
"한 적이 없습니다."
"SNS에 노출한 사진이 많은데 보기 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성들한테 성적 대상화 된다는 거 아는지 몰라."
"남자들도 수영복 사진 올리잖아요. 여성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머, 대박."
"걸 크러쉬!"
오정환한테 들었던 이야기.
아나스타샤는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옷도 일부러 수수하고, 몸매를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입었다.
"한국에 온 계기는?"
"계기는 K―POP이었고, 아름다운 한국 여성을 동경하면서 빠져들게 되었어요."
"음~"
"맞지, 맞지. 여자들은 남자들이랑 보는 눈이 다르거든."
"혹시 좋아하는 그룹이 뭐예요?"
"마마무와 레드벨벳이요."
"오올~"
"뭘 좀 알긴 아나 봐."
대답도 그들이 원하는 것.
여초픽 아이돌이라는 게 있다.
그들과 같은 시선에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는 걸까…….'
한 가지 다행인 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마치 답안지처럼 여초 커뮤니티에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면 공부해!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한다.
그 답안지대로 행동하면 자신들의 아군이라고 믿을 것이다.
"남자친구 있어요?"
"저 아직은……."
"뭐야, 스무 살이었어?"
"애기네. 애기. 아, 실례."
"괜찮아요. 저도 어리다는 자각이 있고, 동경하는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싶어요."
"음~"
"마인드가 좋아."
물론 목표하는 바는 다르다.
여초에서도 예쁜 여자라고 무조건 싫어하진 않는다.
'저들의 열등감을 채워주는 대상이 되라고 했지.'
인간은 자신이 착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편향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때문에 반박할 논리.
예쁘다고 시기하는 게 아니라는 증거를 만들려고 한다.
여초픽 걸그룹, 배우 등이 그렇게 생긴다.
굉장히 모순되지만 이해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근데 토론하기에는 너무 어린 거 아닌가 몰라……."
"어머, 얘는."
"응?"
"저번에 나왔을 때 잘했잖아?"
"그러게, 처음 치고 느낌은 꽤 괜찮았지."
여초픽 연예인도 딱히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는 게 아니다.
제멋대로 빨아대고 있을 뿐.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오정환에게 지시받은 바가 있다.
'나이가 어리고, 잘 모르고, 당신들보다 부족하다는 티를 내라고.'
나이가 많으면 동경과 합리화의 대상.
나이가 어리면 열등감 해소와 시애미질.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후자를 서택해야 비정상인회담에 들어갈 수 있다.
'어떡하지?'
'애가 착하긴 한데……, 마음에는 드는데.'
'우리가 막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물론 현실적인 벽.
작가진의 취향을 만족한다고 끝이 아니다.
결국 자신들은 상부에 보고를 할 뿐이다.
남성 패널이라면 입맛대로 결정하고, 커뮤니티 반응도 좋다며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여성 패널은 아직까지 전례가 없다.
* * *
우리 봄이.
"꾸웨엑……."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
최근 기말고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요."
ㅋㅋ
학생인 이상 거쳐야만 하는 과정.
반드시 아파야만 청춘인 건 아니다.
'사실 유튜버로서는 상관이 없는데.'
필요하다.
마케팅의 시대.
학력은 개인을 설명하는 한 줄의 미사여구라고도 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유튜버, 스트리머, 프로게이머에게 학력은 어디다 쓸래야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의미를 가진다.
"그래도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방학인 거예요."
"러시아 또 갈 거야?"
"아니에요. 정말 가고 싶긴 하지만 괜찮아졌어요."
우리 봄이가 결코 멍청한 게 아니다.
모자란 부분이 적당히 있을 뿐이다.
학력이 방패가 되기도 하고.
'타인을 가볍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역지사지.
누군가 자신을 가볍게 단정 지으면 어금니 꽉 깨물을 사람들이,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잣대를 들이댄다.
크리에이터가 돈을 쉽게 번다는 오해.
돈을 얼마나 번다며 시기의 대상이 된다.
인기가 많아질수록 그런 공격에 휘말리기 쉽다.
"아샤가 한국에 온 거예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후후."
그런 점까지 신경 쓰고 있다.
다소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성장 포텐셜이 있는 아이다.
'아니, 이미.'
유명하다.
국내 유튜버 중에서 대형 기획사 몇 곳을 빼면 우리 봄이만 한 채널이 없을 정도다.
구독자와 조회수 이상의 파급력도 있다.
이미지도 좋고, 상업적이지도 않아서 신뢰성이 높다.
"시험 다 보고 놀 거야?"
"잔뜩 놀 거예요. 한국을 소개해줄 거예요!"
"어우, 귀여워."
"꾸웨엑!"
대가리를 깨물어주고 싶어질 만도 하다.
내가 괜히 어렸을 때부터 신경 써서 키워온 게 아니다.
'정말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것이지.'
대중 앞에 선다는 것.
큰 리스크를 가지지만,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리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혼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 봄이와 어울리는 사람도 수혜를 입는다.
"저 어른인데! 스무 살인데!"
"귀여워서 그래."
"저도 이제 섹시 컨셉을 잡을 거예요."
"어우, 진짜."
"꾸웨엑!"
ㅋㅋ
스토리텔링도 있다.
아나스타샤와 공식적으로 만남을 가진 건 러시아 여행 도중.
'봄이와도 친구가 되었지.'
성장 속도 차이가 다소 심각히 나지만 같은 나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연결 고리가 생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여론.
그리고 화제성.
아샤의 한국 데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꽈앙!
상부상조.
문을 꽝 닫고 들어간 봄이도 이미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한 애들과 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
'미리미리 많이 깨물어 놔야지.'
결국 방송도 힘의 논리로 좌우되는 곳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파프리카TV와 다르지 않다.
그러한 정치판.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홈스테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