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96화 (696/846)

696화

<맛없슐랭>

""하하하하!""

연회장의 분위기.

좋은 술과 음식에 힘입어 달아오르고 있다.

꿀꺽!

결정적인 건 식후주.

로얄샬루트 38년은 어디 가서 흔히 맛볼 수 있는 술이 아니다.

"정말 사치스런 맛이구만."

"목넘김이 예술이야. 독한 술일 텐데 어떻게 이리 술술 넘어가지?"

"38년이잖아 38년!"

"다음에 면세점에 보이면 한 병 얻어와야겠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

시간을 마신다.

혹은 돈은 마신다, 라는 표현을 쓴다.

값비싼 술은 그만큼의 만족도를 준다.

심적으로 말이다.

내가 이 정도 마시는 사람이다.

어디 가서 이런 거 마셨다고 자랑할 수 있다.

'어리석은 놈들.'

그러한 연회장의 분위기.

윤청호는 혀를 차고 있다.

사람들이 술이 아니라 돈에 취해있다.

비싼 술은 분명 맛있다.

하지만 맛있기 위해서 비싸진 것이지, 사치를 위해서 비싸진 것은 아니다.

오늘 준비한 모든 음식도 마찬가지다.

마리아주를 위해 하나의 식재료가 중심이 된 심플한 것만 준비했다.

음료 또한.

한국의 식수는 맑고 깨끗하다.

석회 성분이 섞인 유럽의 물과는 성격이 180도 다르다.

그 나라의 술은 그 나라의 식재료와 페어링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에 수입되는 석회수 중 가장 싸고 대중적인 것이 에비앙과 페리에였다.

양주를 마신 후 입가심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단 한 사람을 빼놓고 말이다.

뽀옹!

술을 딴다.

회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로얄샬루트 38년의 다음은 무엇인지?

"블랑톤?"

"아, 그 10만 원짜리 술……."

"순서가 바뀌었으면 모르는데 워낙 비싼 걸 마시고 난 다음이라."

"비교가 되겠네요."

""하하하!""

술의 값어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저들의 주는 술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뽀옹!

직원이 샷잔에 술을 채운다.

손님 몇몇이 마지못해하는 느낌으로 잔을 가져다 입에 댄다.

"콜록!"

"콜록! 콜록!"

"뭐, 뭐야 이거?"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온다.

65도의 도수.

그냥 마시기에는 조금 독한 술이다.

"술이 조금 독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온더락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으며 자신도 즐긴다.

구태여 표현하진 않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특별한 버번이다.

'더 맛있군.'

그런 특별한 녀석 중에서도 더욱 맛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물어본다.

"이 맛있는 위스키를 선물해주신 분."

"아, 네 전무님."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술을 선물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오정환.

들어본 바는 있다.

최근 예능계에서 깨나 유명세를 떨친다.

그런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방송 생활을 한 자신은 수없이 봐왔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잘 해나갈까지.'

애당초 관점이 다르다.

방송 관계자.

지금의 대세가 아닌, 앞으로의 대세를 봐야 한다.

그 정도의 통찰력도 없이 해나갈 업계가 아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남자는 믿을 만해 보인다.

"전무님의 양해를 받아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좀 잡아보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블랑톤은 10만 원 안쪽으로 구할 수 있는 선물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녀석이죠."

기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똑부러지게, 타인의 자존심을 긁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방송에서도 보여준 술에 대한 스토리텔링.

'1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지.'

소주에 빨간 뚜껑이 있듯 마찬가지다.

같은 제품군도 더 상위 라인업으로 세분화된다.

블랑톤의 SFTB(Straight From the Barrel).

영어 그대로 배럴(오크통)에서 바로 병에 담은 위스키다.

아무것도 섞지도, 타지도 않은 채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특별한 맛을 설명할 수가 없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버번 마시는 사람이 맛이나 아냐?"

""하하하!""

"그런 미국 농담이 있을 정도였죠. 마셔보신 분들은 느끼셨잖아요? 혀가 타들어가듯이 맵고 알싸한 맛."

65도의 독주임에도 맛은 확연하게 느껴지고, 스파이시하면서 부드러운 이중성을 갖췄다.

한마디로 말해서 밸런스가 엄청나다.

'그래서 있는 게 등급이고.'

미국식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진 위스키.

버번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싸구려 술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스몰 배치, 싱글 배럴 등의 기준이 생기며 차별성이 부여됐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꿀꺽!

조금이라도 치우쳐졌다간 단순히 독한 술이었을 것이다.

SFTB라는 한우로 따지면 1++등급이 가능케 만들었다.

수많은 오크통 중에서 가장 맛있는 오크통을 골랐다.

본래의 기준대로라면 최상위의 등급이어야 하지만.

"50만 개의 오크통 중에서 선택받은 소수에게 SFTB라는 등급이 허락됩니다. 이것은 그중에서도……."

세상은 넓고 미식가는 많다.

술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은 1++ 이상의 등급도 있는 것이다.

오정환이 선물한 블랑톤이 가진 비밀이다.

연회장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독하긴 한데 확실히 인상이 있어."

"잊을 수가 없는 맛이야."

"본고장 마파두부를 먹는 것 같은 중독성인데?"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비싼 술을 선물한 것과 피장파장이다.

귀하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반응이 바뀌는 저들처럼.

"조금 외람된 말이고, 주제넘은 말이지만 저는 윤청호 전무님의 업무도 이 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청호가 감동을 받았던 건 선택이다.

비싼 버번이라면 조지 티 스택이나, 패피 반 윙클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고 많은 버번 중에서 블랑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녀석을 고른 건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CBS의 예능이 이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전무님의 선구안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 흔한 블랑톤 중에서 최고의 블랑톤으로 회자되는 El Cerrito Liquor의 스토어픽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방송 업계에서 옥석을 가려낸 전무님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술이라고 감히 생각하였습니다."

스토어픽.

술 가게의 주인이 주류 회사에서 오크통째로 대량 구입한 술이다.

해당 가게에서 골랐다고 하여 'Store Pick'이라 불린다.

수준 높은 가게 주인의 입맛은 애주가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1++등급의 블랑톤 중에서 가장 맛있는 블랑톤을 골라낸 것이다.

짝! 짝짝짝!

짝짝짝짝!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한 비음주자도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애써서 준비한 선물이라는 사실은 와닿는다.

"젊은 친구가 제법이네."

"방송에서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 수준인데?"

"확실히……, 생각하는 것도 깊고 믿고 맡길 만한 친구야."

방송 관계자들에게 말이다.

윤청호 전무의 생신연에 참석한 사람들.

자신의 업계에서 뼈가 굵은 전문가들뿐이다.

'…….'

그런 이들에게 돈만 많이 쓴 팔푼이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

김종인은 달아오른 분위기가 식기 전에 서둘러 줄행랑을 친다.

* * *

"사실 나는 비싼 술 선물을 좋아하지 않네."

윤청호 전무.

그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술 선물은 굉장히 일반적이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대개 좋아한다.

한국에서 소모되는 선물용 양주만 해도 매년 수십만 병이다.

"이런 로얄살루트, 발렌타인……. 좋은 술이지만 몇 병씩 쟁여둘 이유는 없지. 창의성 없는 것들이 숙성 연수만 높여서 가지고 오더군."

하지만 그것은 돈을 대신한 물체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술 선물이라고 볼 수 없다.

애주가로서는 안타깝다.

술의 가치도 모른 채 돈다발을 주고받듯 선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로얄샬루트 38년은 꽤 호평이었죠."

"크킄……, 녀석들은 참돔으로 끓인 매운탕에 감동한 것에 불과해. 참돔의 진짜 맛은 알지도 못한 채."

"혹은 다금바리로 만든 생선까스?"

"정확한 비유네."

풀템 아펠리오스를 코물쥐가 플레이하는 것처럼, 낭비라고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잘 아는 입장일수록 더욱 그럴 수 있다.

'한마디로 어중간한 거 선물하지 마라. 거슬리니까, 라는 거잖아.'

애주가들의 술 선물이 까탈스러운 이유.

웬만한 것에는 감흥을 못 느끼니 독특하고, 희귀하고, 스토리텔링까지 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랑톤 스토어픽은 지금까지 받아본 최고의 술 선물이었어. 어쩌면 내 인생 술이 될지도 모르지."

"아, 네……."

"비록 다 마셨지만."

"술은 마시라고 있는 거죠."

"빈 병은 소중하게 간직하겠네."

악수를 위해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느껴진다.

눈물의 똥꼬쇼로 고른 한 병이 의미가 있어서 나도 참 다행이다.

"윤 전무님이 그런 사정이……."

"그렇다고 하네요."

"비싼 술을 마다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애주가란 느낌이 나네."

"그건 아니죠."

"?"

굉장히 피로했던 연회.

그래서 피로연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파티가 끝나고 식영 형과 차를 타고 이동한다.

'비싼 술이 아니라, 비싸질 술을 좋아하는 거지.'

독특하고, 희귀하고,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것은 곧 비싸다는 뜻이다.

맛까지 있다면 더더욱.

"애초에 비싸지 않을 수가 없긴 하겠네."

"게다가 존 윅에도 나와서."

"영화?"

속칭 할리우드판 아저씨.

개의 복수를 하다 보니 '개저씨'라는 우스꽝스러운 별칭이 있다.

'그런 블랑톤의 스토어픽이니 리셀가가 100만 원은 족히 할 테고, 이제는 구할 수도 없겠지.'

2014년에 흥행한 영화다.

2014년 이전에 구해놨으니 딱히 큰돈을 들이지는 않았다.

미식가들과 마찬가지로, 애주가들도 힙스터 기질이 있다.

가치가 뛰게 될 힙한 것을 갖고 싶다.

그것을 찾아서 대령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과도 얽혀있으니 술자리에서 자랑하기도 안성맞춤이다.

"까다롭네."

"까다롭죠."

"그래서 애주가한테 술 선물하는 게 싫다고 했구나?"

"피곤해요."

스토리텔링.

술의 세계에서 굉장히 일반적인 것이다.

신의 물방울만 봐도 와인 좀 맛없다고 삐져서 이혼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 인생 술이 하나쯤 있으면 하는 게 애주가라는 생물이거든.'

술이라는 음료는 맛도 맛이지만 이미지가 중요하다.

고향 음식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사연이 얽힌 술에는 특별한 맛이 부여된다.

"하긴 그 만화 보면 별의별 게 다 와인으로 통하지."

"위스키 애호가는 그나마 덜해요. 와인 애호가는 정말 또라이들이 많아서 상종하기도 싫어요."

"그 정도야?"

굉장히 난감한 족속이다.

그만큼 친해졌을 때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원래 힙스터들이 그래.'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신의 물방울에서도 지랄염병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특히 더.

친구가 없지, 돈이 없을 나이는 아니다.

고생한 보람은 충분하다.

* * *

CBS의 새 예능.

"자~ 첫 촬영인 출연자도 있으니까 살살 갑시다."

촬영이 시작되고 있다.

방송 3사 중 유일하게 민영 방송사인 CBS는 색다른 시도를 자주 한다.

그 말인즉, 캐스팅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늘 구멍을 뚫고 올라온 출연자.

"방송 촬영은 처음이니?"

"그런 거예요."

"괜찮겠어? 힘들면 말해."

"열심히 할게요!"

서문봄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먹방.

독특하게도 느껴졌던 신조어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캐스팅되었다.

하지만 진짜는 촬영 이후고, 보이지 않는 소속사 간의 알력 다툼이 존재한다.

'윤 전무님이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지?'

그런 텃세에서 자유롭다.

보조 진행을 맡게 된 김정주.

오랜 방송 경력이 있는 그는 관계자 인맥이 두텁다.

내부 인사들이 밀어주고 있는 출연자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녀의 경력과 배경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촬영이 진행된다.

스태프들과 출연자들의 보조에 힘입어 그녀의 첫 방송 데뷔는 훌륭하게 막을 올린다.

<봄이 씨 내려와서 이것 좀 먹어봐유~>

"왜요?"

고통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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