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화
<다시 찾은 막걸리집>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었다.
<여기 대표 메뉴가 떡볶이, 우삼겹샐러드면, 돌솥알밥 외 30가지.>
<30가지라고요?>
<헐!>
골목식당에는 수많은 빌런들이 출연한다.
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솔루션을 방해한다.
―전형적인 이세계물. jpg
1. 만능 주인공
2. 수준 낮은 이세계 주민
3. 박사급 지식
4. 예쁜 여자 동료
5. 추임새 넣는 남자 동료
6. 매화 새로운 빌런
"천종원의 골목식당"
└수준 낮은 이세계 주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흥미진진하더라
└예쁜 여자 동료 ㅇㅈ
└김정주 추임새 넣고 있었누
하지만 주인공.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여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다.
천종원이 핑거 스냅을 튕긴다.
따악!
그 효과음과 함께 30가지 메뉴 중 절반이 사라진다.
따악!
한 번 더 튕기자 또 절반이 사라진다.
보다 못한 단골 손님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제, 제발 골뱅이무침만은…….>
<흐흐, 어림 없어유.>
그럼에도 천종원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다.
또 한 번 튕기자 살아남은 메뉴는 고작 세 가지뿐.
〔예능 갤러리〕
―역시 뿌노스!
―그냥 제목 바꿔라 뿌노스의 키친 나이트메어로 ㅋㅋㅋㅋㅋ―단골 손님 불쌍 ㅠㅠㅠ―메뉴 줄이는 이유가 뭐임?
―근데 횟집에서 잡메뉴 많으면 신뢰도 확 줄음
―3연속 핑거 스냅 ㄷㄷ
―단골좌 골뱅이 한 번만 해주자
―오늘도 어김없이 메뉴판 작살 내는구나
.
.
.
맛과 가격뿐만 아니라 회전율, 재고관리, 품질안정화 등까지 고려해 최선의 판단을 내린다.
음식점 운영에 관해서는 최고의 스페셜리스트임이 분명하다.
'뿌가 그놈이 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천종원이 아무리 요식업계에서 뼈가 굵어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적인 존재는 아니다.
이따금 실수를 한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저격한다.
일본인 맛칼럼니스트 교이쿠상은 천종원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교이쿠상」
1일 전。
#천종원#빠가#칙쇼
[골목식당 막걸리 토론 캡처. jpg]
여러분, 설탕 요리법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 대표가 또 자신만의 공상 조리법을 내놓았습니다 막걸리는 수돗물로 빚으면 안 되고 좋은 물을 써야 한다?
현장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죠
맛칼럼니스트로서 전국 양조장의 막걸리를 마셔본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인이신데 한국 막걸리도 잘 아시네요―이분 화요미식회에 나오는 분이잖아!
―내 골뱅이무침 없앴어요 ㅠ
―교이쿠상님 팩트체크 날카롭네요 ㄷㄷ
2014년부터 불어 닥친 먹방 열풍.
그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다.
화요미식회, 생활의 달인, 알쓸신잡 등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이름을 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교이쿠상이 천종원을 시기하는 이유다.
그만 없었다면 한국 요식업계의 최고 전문가는 자신이 됐을 테니까.
'저급 음식점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어딜.'
90년도부터 한국에서 맛칼럼니스트 활동을 해왔다.
경력도 더 길고, 방송 촬영 경험도 더 많다.
그런 자신을 제치고 대세가 된 것.
교이쿠상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시청자 게시판〕
―교이쿠 센세가 한 말씀하셨네요
―방송이라고 인위적인 대립 구도 만든 게 아닌가요?
―수돗물 써도 상관 없다고 합니다 ㅋㅋㅋ
―골뱅이무침 내놔……
.
.
.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진다.
최근 급상승하고 있는 천종원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도 있다.
유명 맛칼럼니스트 교이쿠상의 저격에 힘입어 하고 싶던 말들을 늘어놓는다.
'봐봐. 너를 추종하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우민들뿐이잖아?'
그 광경.
교이쿠상은 흡족하게 바라본다.
자신의 저격이 보기 좋게 통하며 천종원의 신뢰성을 깎고 있다.
반대의 여론도 물론 있지만, 그들도 진실을 알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
최고의 요식업계 전문가는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2차 막걸리 회담 예고!」
「전국 유명 10종+ 사장님 2종 총 12종의 막걸리」
「천종원 vs 사장 블라인드 대결에 들어간다?!」
때마침 꼬집을 거리가 생긴다.
다음 주 예고편.
교이쿠상은 뿔테안경을 고쳐 쓰며 SNS에 추가글을 작성한다.
「교이쿠상」
3시간 전。
#천종원#빠가#칙쇼
[골목식당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 예고. jpg]
방송에서 이랬다고요? 아무리 예능이어도 이건……
저도 꽤 마셔봤지만 감별이라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신의 입'이 아니고서야 정확히 맞출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들 막걸리를 챙겨서 가져온 사람은…… 다를 수 있겠지요 ㅎㅎ―막걸리를 챙겨온 사람? 설마 ―하긴 한두 종류도 아니고 12종류는 너무 방송이죠
―천종원 띄워주려고 주작했나 봐요!
―어쩐지 TV에서 천종원만 나오더라~
의미심장한 저격 멘트와 함께 말이다.
* * *
일본의 유명 맛칼럼니스트.
교이쿠상은 여러모로 유명한 사람이다.
'근데 의외로.'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정말 능력이 Zero였다면 활동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문제는 치졸.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는 자기 의견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없고, 종종 전문 이외의 분야를 요구받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난감하네. 연락처도 없어서 왜 그러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방송인이 아닌 전문가가 저격을 하는 경우는 꽤 심심찮다.
어, 이거 아닌데?
생각난 말을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래도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인 건데.'
그것을 깼다.
의도도 다분 악의적이다.
교이쿠상은 전문성 이전에 인간성에서 대중들이 실망했던 것이다.
나처럼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을 밀어내서라도 올라가고 싶은 소인배가 종종 있다.
"뭐, 그래서 제가 온 거잖아요."
"할 수 있겠어?"
"그렇게 어려운 문젠 아니에요."
오늘 촬영장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천종원의 골목식당에 게스트로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사실 천종원 선생님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
술 관련 이슈.
사람들의 관심 외 분야다 보니 묻히는 감이 있지만,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거론된다.
〔술 갤러리〕
―까놓고 막걸리좌가 제일 억울하지
술알못 똥고집 뿌가놈과
빌런 만들기에 환장한 제작진의 희생양
술이 물맛이라는 것부터 뿌가놈이 술을 만화로 배운 술알못이라는 거 인정하는 거임수제 맥주 파는 크래프트 비어집들도 죄다 수돗물 쓰고 효모 사온다 └그냥 단 거에 환장하는 뿌가놈이 아스파탐 범벅의 시중 막걸리가 취향임└장수 막걸리 2천 원보다 못한 맛이면 도태되는 게 맞는데?
└그니까 둘의 병림픽이자너~
└딱 봐도 주작각임. 사장 바보 만들고, 뿌가 우상화하는
누구에게나 민감한 분야는 있다.
그것이 잘 아는 분야라면 과도한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화제.
막걸리집의 솔루션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술 갤러리에서는 더할 수밖에 없다.
―골목식당 막걸리집 엔딩 예상. txt
[골목토론 막걸리맛! 물인가 누룩인가. jpg]
다음 주 블라인드 테스트 하고
사장 탈탈 털면서 천종원 말 듣게 함
그럼 천종원이 마케팅으로 졸라 띄우면서 헬피엔딩
└벌써 다 봤눜ㅋㅋㅋㅋㅋㅋㅋ
└술매니아로선 좀 그렇네…… 화학조미료 떡칠인 막걸리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도전정신 넘치던 젊은이가 화학조미료맛의 막걸리를 만들게 된 거니까 └뿌가 이놈은 설탕만 넣으면 다 되는 줄 알지 ㅉㅉ└단가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음. 느린마을이 매우 예외적인 경우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정보다.
예능 방송의 특성상 편집이 자극적인 것도 한몫한다.
―천종원 vs 교이쿠상 이번엔 교이쿠상이 맞다고 본다 막걸리 12개 블라인드로 누가 맞추냐?
초일류 소믈리에도 정답률 보장 못 하겠구만
파리의 심판이 괜히 나왔나
와인보다 더 민감한 막걸리를 12개나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이걸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있음?
└저거 12개 다 맞추라는 게 아니고 12개 중에 본인 막걸리 맞춰보라는 것일걸?
└교이쿠상도 어지간히 맛파시스트인데 천주부 팬보이들도 신성불가침 유일신앙으로 모시잖아 ㅋ└뿌가 지적 억지스러운 게 많아진 거 같다. 쌀도 직접 재배하고, 물은 지하수 쓰고, 누룩도 직접 안 만들면 안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어. 뿌다방은 그럼 커피콩 직접 재배하나?
└천종원맛은 딱 장수, 카스, 진로 카테고리임. 그 이상 가는 술맛을 바라면 안 됨
그리고 불쏘시개.
유명 맛칼럼니스트 교이쿠상이 자신의 SNS에서 일련의 화제를 꺼냈다.
안 그래도 못마땅하던 참에 잘된 것이다.
'천종원 선생님의 안티가 생기게 된 시발점격인 사건이지.'
원래 그렇다.
인기가 많은 사람은 안티도 많다.
방송에 출연하는 이상 본의치 않게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들이 이해해주는 게 아니고, 공격할 논리로 조금씩 쌓여간다.
그 첫 단추가 꿰어지게 두지 않는다.
* * *
촬영이 시작된다.
탁자 위에 12가지의 막걸리가 담긴 잔이 놓인다.
"오늘은 손님이 있어유."
"손님이요?"
"흐흐, 사장님이 자꾸 내 말을 안 들으려고 하니까 전문가 선생님을 모셔왔지."
2차 막걸리 회담.
1차 때는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빌런과의 싸움은 매회 있지만, 막걸리는 워낙 분야가 생소하다.
커뮤니티에서도 논란이 쟁쟁하다.
제작진도 그 점을 반영해 술을 잘 알 만한 게스트를 한 명 섭외했다.
"안녕하세요."
"어, 정환이! 일로 와서 앉아."
"아……."
"이러면 사장님도 불만 없을 거에유."
오정환.
유명한 BJ다.
최근에는 방송에도 자주 출연한다.
'에이, 그래 봤자'
막걸리집의 사장 김유석도 안다.
그가 술을 잘 아는 방송인이란 사실 말이다.
하지만 방송은 방송.
천종원도 TV로 볼 때는 뭐든지 아는 척척박사인 줄만 알았다.
직접 이야기해보니 모른다.
식품공학과 석사 학위까지 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한다.
"약간 블라인드 테스트 느낌이 되긴 했는데."
"네……."
"사장님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제가?"
"제가,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네, 부담 갖지 마시고 사장님이 만드신 막걸리만 골라보세요."
저는 다 할 거니까.
오정환의 끝말이 유석의 눈썹을 들썩거리게 만든다.
'이걸 다 한다고? 12개를?'
비록 골목식당에 나와 창피를 당하고 있지만, 아무런 자격도 없이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석사 졸업 후 농촌진흥청에서 전통주 연구원 생활까지 했다.
그런 자신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맞출 수 있을 리 없다.
숫자와 종류를 제한시키면 모를까, 많아도 너무 많다.
꿀꺽! 꿀꺽!
하나씩 마셔본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적어도 절반 정도는 맞추지 않을지.
"어, 어때요? 얼마나 맞췄어요?"
"네! 배틀 도중이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결과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
촬영팀의 대답.
유석은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오정환에 대한 경쟁 심리가 불타오른다.
'나도 못 맞추는데.'
직접 해보니까 알쏭달쏭하다.
분명 먹어본 맛인데 딱 이거라고 단정 지어지지 않는다.
오정환도 별반 다를 거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꿀꺽!
오정환의 테이스팅이 시작된다.
아무 말도 없이 세 종류를 연속으로 마신다.
"지평, 영탁, 느린마을."
그리고 다시 세 종류를 마신다.
방금보다 더 빠르게 답안을 제시한다.
"가평, 인생, 그리고 이건 사장님 거 같은데?"
마지막 답안.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차오른다.
'설마.'
나머지 다섯 가지도 다 맞춘 게 아닌지.
불안한 예감은 꼭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