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화
블라인드 테스트.
"국순당, 사장님 거, 해창."
"아, 예!"
"12가지 다 한 것 같은데 채점이 어떻게 되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술부심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술이라는 것도 사치품의 일종이라서.'
사실 별로 맛이 없는데 이미지 때문에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을 걸러야지.
어디 자랑하려고 마시는 게 아닌 이상 맛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막상 하게 되면.
"총 12가지의 막걸리."
"네."
"전부……, 정답입니다."
"그렇군요."
승률에 목을 매는 것이 게이머라는 생물이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요령이 생긴다.
"거, 거짓말!"
보기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신기할 수도 있다.
"짜고 친 거 아니에요?"
"저랑 촬영팀이요?"
"아니, 그게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거 재밌네. 갑자기 추리물이 됐는걸?"
"잠깐만요, 잠깐만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한 입만 마시고 알 수가 있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특정 출연진에게 정보를 특별히 더 제공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저는 몇 개 맞췄죠?"
"2개……, 사장님 막걸리 중에서는 1개였습니다."
"……."
막걸리집 사장님.
얼굴이 시뻘개진다.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작 논란을 제기한 것도 이해는 된다.
세간에서 교이쿠상이 불을 지피기도 했다.
"거봐요! 이건 맞출 수가 없다니까요?"
"그래요?"
"그래요가 아니라; 저는 제가 만든 막걸리니까 하나라도 맞췄지. 이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합리적 의심이 나올 수 있다.
하물며 방송.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워낙 많이 맞추기도 했고.'
한 10개쯤 가능할까?
목표를 세우고 왔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맞췄다.
사장님이 당황한 것도 이해는 된다.
"정환 씨 웃지만 말고 대답 좀;;"
"사장님이 좀 더 추리를 하고 싶은 것 같아서."
"프로그램의 신뢰가 달려있는 일이니까 진지하게 좀 부탁드릴게요."
"그렇겠죠."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와인처럼 신세계, 구세계 나누고 거기서 또 년산까지 궁리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하는 법을 모르면 정말로 무식하게 맛으로만 맞추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칸자키 유타카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사장님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들어보세요."
"흐, 흥분 안 했는데."
"알겠고요. 일단 1번."
무슨 신의 물방울처럼 말이다.
마시자마자 머릿속에 이미지 떠올라서 어떤 느낌의 술인지 알게 되는 게 아니다.
'음~ 이건 샤토 라피트 로칠드. 젊으면서 이 정도의 스케일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영광스러운 그레이트 빈티지 2009년산이군요! 할 수 없다는 거지.'
현실에서는 당연하다.
그렇다고 안 맞출 거냐?
현실인 만큼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쓰읍~
향을 맡는다.
향이 특징적인 막걸리가 분명히 있고, 여기서 2차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차는 색과 농도.'
단순히 맛만 보는 게 아니다.
1차와 2차로 비교군을 좁힌 후에 3차인 맛으로.
"이건 느린마을이죠. 질감이 꾸덕하고, 단맛과 탄산감이 적어서."
"……."
"이건 영탁. 맛이 엄청 달아서 모르기도 힘들어요."
"……."
"지평은 도수가 좀 낮아요. 5도대 막걸리 중에서 단맛이 덜한 편이죠."
확정을 짓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
굳이 비밀을 밝혀서 폼을 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데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소믈리에.
세상에는 맛을 보는 게 직업인 사람들도 있다.
일반인보다는 훨씬 뛰어난 미각과 후각, 그리고 감성을 가졌다.
그런 이들조차도 자신의 미각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설사 신의 미각을 가졌다 해도, 사람인 이상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건 탄산이 거의 없는 것 보니 캔막걸리인데. 캔막걸리는 표본이 적거든요? 아마 국순당 같아요."
"돼, 됐어요."
"그리고 이건."
"됐어요. 됐어요……. 제가 의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네."
그런데 직업이다.
평균적으로 잘해야 한다.
미각 하나에 의지해서는 소믈리에를 해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 이런 식으로 외운다고 하더라고.'
와인은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매년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기 때문에 직업으로 해나가야 하는 스케일이다.
그에 반해 막걸리.
그중에서도 편의점에서 파는 대중성 있는 픽이면 맛이 균일화가 되어있다.
브랜드별 포인트만 잘 기억하면 끝이다.
"진짜 쉽지 않을 텐데 잘 맞추네!"
"술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정환이 부르길 잘했어! 사장님이 나를 못 믿어 가지고."
"……."
사실 못 맞춰도 딱히 상관은 없다.
블라인드 테스팅으로 확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자기 막걸리 맛이 뛰어나냐?
'불을 지핀 사람이 있어서.'
일부 시청자들은 기획 의도를 곡해할 수 있다.
그럴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제가 여기 온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정환이가 말 좀 해줘 봐. 나도 궁금해서 그래!"
"예, 저도 1차 회담을 봤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진행한다.
2차 막걸리 회담.
1차의 내용을 되짚는 것부터 시작해본다.
'어차피 대부분 편집이 되겠지만.'
술은 제육덮밥과는 다르다.
설사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사람마다, 장소마다 맛이 다르다.
천종원 선생님이 설득에 실패한 이유가 있는 것.
시청자들도 이해를 하기 힘들 수 있다.
"저한테는 어떻게 들렸냐면 라면 끓일 때 면부터 넣어야 맛있냐, 스프부터 넣어야 맛있냐."
"흐흐흐."
"네?"
"사실 대답은 간단해요. 그냥 처음 끓일 때 맛있는 라면 쓰면 돼요. 신라면 블랙처럼 비싼 거."
설명을 최대한 압축한다.
그리고 방송사가 좋아하는 PPL을 넣어준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라면.
'막걸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막걸리 재료는 크게 물, 누룩, 쌀이다.
물과 누룩으로 논쟁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큰 건 누가 뭐래도 쌀이다.
"쌀은 좋은 거 쓰고 있어서……."
"멥쌀과 찹쌀 비율이 어떻게 되세요?
"차, 찹쌀이요?"
"정미보합 비율은 어떻게 되세요?"
"……."
"아~ 그 니혼슈처럼!"
"예, 막걸리도 프리미엄 라인은 그렇게 신경 쓰거든요."
기성품 막걸리.
국산쌀을 안 쓰는 곳도 많고, 밀을 섞어 채산성을 높이기도 한다.
'단가 낮추기에는 그게 최선이니까.'
하지만 소형 브루어리(양조장)에서는 쓸 수 있다.
주재료인 쌀의 퀄리티를 높이면 맛도 충실하게 올라간다.
일반 백미에 찹쌀을 섞어 고급스러운 단맛을 넣는다.
그리고 정미보합을 통해 맛이 깔끔하게 한다.
"쌀을 깎아내면 잡맛이 덜해지고, 숙취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어요."
"숙취?"
"예, 이건 설명이 복잡해지는데……."
편집팀이 알아서 적당히 자를 것이다.
쌀의 바깥쪽에 단백질을 비롯한 여러 성분들이 많고, 속심으로 갈수록 순수한 전분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깎아내면 맛이 획일화 돼버리고.'
역사가 오래된 브루어리일수록 자신들만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고퀄리티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는 그냥 누룩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데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에요."
"네?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달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
막걸리집 사장님이 집착하는 누룩.
전국 수많은 양조자들이 괜히 잘 안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맛이 컨트롤이 안 돼.'
누룩은 살아있는 균이다.
그것도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섞여 있다.
"지금 사장님이 말씀하신 걸 업계에서 기도메타라고 부르거든요?"
"기도메타?"
"누룩이 술을 맛있게 만들어주길 물 떠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
사실 전통주도 찾아보면 맛있는 게 꽤 있다.
하지만 이 누룩이라는 것이 워낙 컨트롤이 힘들어서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진다.
'QC, Quality Control이 안된다는 비판이 많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슨 뽑기 하듯이 사기가 싫다.
맛없는 것을 뽑으면 배신감을 느껴서 다시는 안 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양조장들이 일본식 누룩, 입국을 쓴다.
입국은 한 종류의 균만 있어서 맛이 균일하게 뽑아진다.
"저는 정말 한국식 전통주를 만들고 싶어서……."
"사장님, 다른 양조장들도 전통을 지키기 싫어서 입국을 쓰는 게 아니에요. 취미가 아닌 상품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타협을 한 거지."
물론 성공한 양조장도 있다.
PPL이 아니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만강에 비친 달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자신들만의 비법을 쓰기도 한다.
밀누룩, 개량누룩, 섞어쓰기 등.
"그걸 경력이 10년도 안 되셨을 사장님이."
"10년이 뭐예유. 이제 막 차렸는데!"
"맛없는 건 안 팔면 되잖아요."
"그러면 채산성이 안 맞잖아요. 고객한테 원가 부담 다 씌우실 거예요?"
"……."
그런 노하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정말 긴긴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그런데 걷지도 못하면서.'
꿈이 큰 건 좋다.
응원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골목식당의 취지 자체가 현실적인 조언이다.
"누룩은 사장님이 앞으로 연구를 해나가야겠지만, 당장은 상품으로 써먹을 레벨이 아니에요. 직접 마셔보고 비교해봤으니 알겠죠?"
"……."
"블라인드 테스트를 그래서 한 거거든! 기성품 막걸리보다 맛있는 게 아니잖여."
"예, 수제 막걸리를 표방하려면 천종원 선생님 말씀대로 이 집에서 사마실 이유를 만들어야 돼요. 경쟁력을."
천종원 선생님의 주장.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큰 뼈대를 놓고 봤을 때 틀린 말이 아니다.
'누룩, 물, 쌀 중에 물과 쌀은 확실하게 컨트롤이 되니까.'
골목식당의 흔한 레퍼토리다.
기본도 안 되는 사장이 자신만의 특별한 레시피를 고수한다.
막걸리집 사장도 똑같다고 보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막걸리는 맛이 없다.
딸랑♬
딸랑♬ 딸랑♬
3차는 시식.
주위 가게의 청년 사장님들이 와서 방금 전 12종의 막걸리를 마셔본다.
그 광경을 모니터 너머로 지켜본다.
"아……."
"아무래도 개인 취향이니까."
"대중의 입맛이지! 사장님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돼유."
사장님 입장에서는 씁쓸할 것이다.
그나마 이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동료들마저.
'근데 원래 그래.'
기성품이라고 무시할 수 있지만, 대중의 선택을 받은 터줏대감이다.
소위 말하는 ㅍㅌㅊ는 된다.
어중간한 전통주는 그 기준을 넘지도 못한다.
단순히 정성 들여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솔루션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받는 것이 먼저.
드디어 첫 단추를 채운 모양이다.
'사실 내가 솔루션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다.
천종원 선생님처럼 음식점 대표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보고 온 것은 있다.
2020년 이후에는 제법 활성화가 된다.
맥주와 막걸리의 소규모 브루어리.
대표적으로 편의점 맥주인 곰표가 있을 것이다.
"또 라면의 예를 들자면."
"라면……."
"사장님은 본격적인 돈코츠 같은 걸 만들고 싶겠죠. 근데 그전에 맛있는 라면부터 끓여보자는 거예요."
"정환이가 정리를 잘하네!"
그렇게 흥행한 크래프트 발효주들의 특징.
나는 기억하고 있고, 재현도 충분히 가능하다.
'커리어는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되는 거지.'
맥주가 아닌 막걸리지만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이른바 '인싸픽'의 주류는 말이다.
"근데 라면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혹시 자신만의 라면 레시피 있어요?"
"뭐, 있죠."
"막걸리도 똑같이 생각해봐요."
"?"
막걸리계의 김치라면, 대파라면을 만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