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화
<결승전>
SKY T1의 숙소.
"아~ 진짜 이겨서 다행이다."
"락스전 때 경기력이 이상하긴 했어."
분위기는 한층 풀어져 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BOX Tigers를 상대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이상한지 알아?"
테이커만이 긴장을 풀지 않는다.
늘어진 팀원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던진다.
"왜?"
"치약이 없어서 이가 상했어."
"아악!"
"아이씨!"
평소처럼 말이다.
"그런 쓰레기 같은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비정상적인 반응."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야!"
BOX Tigers전.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 전적이 앞선다고 해도.
'서머 시즌 우승팀이니까.'
롤판이 특히 그러하다.
전 시즌에 엄청나게 잘나갔던 팀도 1년 만에 와르르 무너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BJ 엔투스가 그러고 있다.
다행히 승강전은 넘긴 듯하지만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우리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프로 선수라면 항상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락스 무서워."
"나 그래서 락스도 유한락스 안 썼음."
"나는 무한락스~"
하지만 이겼다.
최대의 난적을 물리쳤다.
팀 분위기가 개판이 될 만도 하다.
잼구과 테이커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들아 긴장 풀지 마 진짜!"
""네~""
"특히 잼구 너!"
"저, 저요?"
"그래, 너 이 자식아."
게임은 별개의 이야기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김다균 코치가 잼구를 나무란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섬뜩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야. 이번 롤드컵도 그렇고, LCK 때도 그렇고, MSI 때도 그렇고, IEM 때도 그렇고 정말 셀 수가 없어 셀 수가!"
"……."
특유의 데시벨 높은 목소리로 말이다.
혼나는 입장이 되면 PTSD가 올 만도 하다.
'원래 그래야 되긴 해.'
일부 무관 감독의 경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청을 높여서 선수의 기를 죽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면 좋은 의미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잼구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최근 경기력.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롤드컵에서도 많은 명장면을 자아냈다.
"스킬 쓸 때 조금만 생각을 하라니까? 못해서 실수하는 게 아니잖아. 안 그래?"
"네……."
"오죽하면 커뮤니티에 잼구 스페셜이라고 돌아다녀. 너는 정말 반성 좀 해야 돼!"
"잼구는 못 말린데요."
""하하하하!""
스킬 실수.
강타 미스.
프로 레벨에서 줄여야 할 실수는 고사하고, 하지 않아도 될 플레이를 하다가 사고까지 친다.
"잼구가 개그콘서트에 취직했으면 개콘이 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개콘이 왜 망해?"
유체이탈 헤카림.
미니언 박는 헤카림.
3인 방생 그라가스.
동서남북 그라가스
도끼 던지고 노는 올라프.
테이커 블루 뺏는 시리즈~
타릭궁 풀콤 시리즈~
정글몹 처형 시리즈~
정글몹 뺏기는 시리즈~
너무 기발해서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빈도수가 높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
차후에 밝혀진다.
잼구가 어째서 그렇게 재밌는지.
테이커가 슼갈과 공모해서 잼구를 담그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잼구야."
"왜 상혁이 형."
"진짜 못생겼다 잼구야~"
"……."
라는 일은 당연히 없겠지만, 일부 영향은 있을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따지면 엄연한 사실이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남에게 평가를 받는다.
BJ든 프로게이머든 큰 틀에서 맥을 같이 한다.
안 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도 될 만한 문제가 아니다.
〔SKY 마이너 갤러리〕
―제발 잼구 새끼 팀에서 쳐꺼져라
―강잼구 정말 무시무시한 새끼 아니냐?
―잼구를 기복이라고 해주는 것도 역겨움
―잼구 솔직히 불쌍하긴 함……
.
.
.
다수에게 욕을 먹는다는 건 정말로 무섭다.
나도 익숙해졌으니 덤덤한 거지, 초기에는 정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제발 잼구 새끼 팀에서 쳐꺼져라
이 새끼 슼마갤도 눈팅 한다 아님?
제발 좀 팀에서 꺼져라 X발놈아
그렇게 처말아 먹으셨으면 그만할 때도 됐잖아
└잼트킼ㅋㅋㅋㅋㅋㅋㅋㅋ
└속이 다 시원하네
└진짜 사회 생활 못할 타입. 눈치코치가 없음
└얘는 슼 아니면 프로나 했으려나?
사람의 악의.
정말로 소름 끼친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섬뜩한데, 그것이 한두 명이 아니라 수천수만 명이라면?
'내가 딱히 미신 같은 걸 믿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나쁜 기운이라는 게 있다.
무관귀신 퇴치하신 도사님도 그렇고, 영험하신 분들이 존재한다.
그런 주술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잼구를 기복이라고 해주는 것도 역겨움
브실골 초딩 야스오가 10판 중 한두 판 캐리하면 그건 기복 있는 야스오냐?
잼구도 딱 그 꼴인데 포텐 있다고 지켜보자는 게 참……
할말하않이야
└이미 다 말해 놓고 뭐 ㅋㅋ
└살인갈들도 같은 심정이야!
└걘 진짜 김다균 아들임?
└알아서 나갈 것이지 잼구는 정말 양심도 없나 봐 ㅠㅠ
심리적으로 큰 압박을 받는다.
누가 나를 욕하는 걸 아는데 신경이 안 쓰이는 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보통.'
관심을 많이 받는 직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가 세다.
혹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뻔하다.
잼구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간단히 아물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잼구 솔직히 불쌍하긴 함
노력해도 안 되는 자식 새끼 보는 느낌
근데 그거랑 별개로 경기 볼 때마다 화딱지 남
개ㅈ같음 진짜
이쯤 되면 잘할 때 되지 않나 싶은데 늘 여전함
오히려 더 못해진 거 같음
울팍은 메타가 변한 거라 변명거리라도 있지 이 새낀 진짜 └비유 뭔데 ㅋㅋㅋㅋㅋ└발전이 없어……
└그냥 울팍이 정글 가면 안 되냐?
└울팍이 포변해도 잼구보단 잘할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에도 잼구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산더미처럼 나온다.
'얼마나 많이 힘들겠어.'
현재 잼구의 나이가 19살이다.
아직 성인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악플과 비난에 면역이 없을 만도 하다.
실제로 선수들이 심리 상담을 받는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니 팀적으로 케어를 해준다.
―ㅋㅋㅋ잼구 정신병원을 슼팬들이 보냈겠냐?
그냥 팀 차원에서 심리 상담 받은 거라는데 왜 지랄임?
└맞아 날조야
└그냥 선수들 단체로 심리 상담 받은 거라며 병원도 아니고 심리 코치한테 └진짜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살인까지는 한 적 없는데 살인갈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겨!
그럼에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잼구를 향한 비난의 수위는 내가 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서 그래.'
마음이 여린 사람일수록 더 그러하다.
악플 하나하나가 가슴에 못처럼 박힌다.
"울지 마 잼구야. 그럴 수도 있지."
"상혁이 형."
"그렇게 태어날 수도 있지."
"……."
그러한 악플.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심지어 테이커잖아.'
평범한 팀에서 못한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남탓이든 뭐든 자기 합리화의 여지가 남아있다.
그런데 테이커.
이견의 여지 없이 가장 잘하는 선수다.
팬들의 반응도 하나같으니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잼구야."
"형도 저 놀리게요?"
"아니야. 너처럼 태어날 수도 있지."
"……."
롤판 역사를 통틀어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재능이다.
세계 최고의 천재와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결코 축복만이 아니다.
'잼구도 재능이 뛰어나지.'
재미와 실력,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선수는 결코 흔치 않다.
다만 현재는 재미 쪽에 치우쳐진 감이 있다.
그 이유.
다 알고 있는 입장이다.
현재의 잼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
잼구로서는 억울하다.
'나도 열심히 하는 건데…….'
자신의 플레이.
스스로 봐도 웃겨 보이는 순간이 있다.
세간에서 잼구는 못 말린다고 떠들 만도 하다.
하지만 웃기려고 하는 플레이가 아니다.
한 끗 차이로 아귀가 맞지 않아 웃픈 장면이 연출되었을 뿐이다.
"결승에서도 또 재밌는 플레이 보여줄 거야?"
"아니에요. 저 진짜……."
"그래. 롤드컵 결승인데 제발 좀 진지하게 해! 재미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알았지?"
다균 형의 말대로 잘하고 싶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라는 사실을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하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라이너가 아닌 정글러.
무작정 사리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없는 포지션이다.
"잼구야."
"왜 또! 이렇게 태어났는데 뭐 어떡해."
"바람 좀 쐬러 갈래?"
"?"
다행히 정환 형이 들어오며 사정이 나아졌다.
바텀이 주도적으로 게임을 이끌자 머리 굴릴 일이 적다.
'내 경기력이 나아져야 하는데.'
하지만 그뿐.
근본적인 해결된 건 아니다.
스스로도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상혁이도."
"나도?"
"……."
라이너 입장에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형들이 자신에게 은근한 압박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테이커 인성 논란 반드시 터트릴 거야.'
그런 장난스러운 생각까지 떠오른다.
오만 가지 생각이 들 만큼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
"헐."
"우리 봄이야. 그리고 아나스타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 앞 카페.
바람 쐬러 나온 장소에 연예인 같은 여자들이 있다.
'나 TV에서 봤어!'
골목식당과 비정상인회담.
워낙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특별히 까먹은 게 아니라면 매주 챙겨본다.
"잼구랑 상혁이."
"안녕하세요."
"상혁이는 봄이랑 동갑이고, 잼구는 두 살 어려."
"후후, 제가 누나예요!"
그런 TV 속 연예인을 현실에서 보게 된 것이다.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거니와.
'와…….'
예쁘다.
방송에서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실물로 보니 정말 인형을 갖다 놓은 것 같다.
똘망똘망한 눈동자.
주먹만 한 작은 얼굴.
목소리도 청초하면서 발랄하다.
"잼구는 내 동생시켜 줄게!"
"네, 누나……."
"그리고 우리는 다 친구야!"
"우리?"
"?"
"?"
그리고 나머지 한 명.
비정상인회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나머지 11명의 멤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21살이라고??'
유일한 여성 멤버.
현실로 강림한 엘프라는 평가를 받는 아나스타샤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방송 속 모습보다 피부톤이 살짝 어둡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한 것이 맞았다.
"봄이 뭐 하고 놀았어?"
"후후, 후후후!"
"해수욕장 간 거 아니야?"
"맞아요. 저는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움을 잔뜩 만끽한 거예요."
"누구 맘대로?"
"꾸웩!'
미국에 휴가를 왔다고 한다.
정환 형이 친분이 있어, 이렇게 잠깐 자리를 마련했다.
"지, 진짜 머리를 왜 깨무는 거예요!"
"스트레스 받을 때 특효약이야. 잼구도 깨물어볼래?"
"아, 아니요……."
"맞아, 잼구야. 이런 거 배우면 안 돼."
"상혁이도 해볼래?"
"어떻게?"
미국에 놀러 온 것도 아니고, 말도 안 통해서 대부분 숙소에서 지냈다.
그게 아니면 경기장에서 다른 팀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 정도였다.
"꾸웨엑!"
꿈만 같은 시간이다.
연예인들과 놀 수 있다니.
그것도 길 가다 마주칠 일도 없는 엄청 예쁜 누나들이다.
"잼구야, 너까지 이러면 안 돼."
"저, 저는 안 해요."
"잼구 착한 아이구나!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밥까지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정말 정신없긴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헐!"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네……."
"잼구 열심히 하면 누나가 또 맛있는 거 사줄게!"
의욕 또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