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화
<사라진 전설>
올스타전.
롤드컵과 MSI를 제외하면 유일한 글로벌 대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참 심심할 시기라.'
모든 대회가 끝났다.
소위 말하는 비시즌이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까지 롤드컵이 열렸어.
달아오른 열기를 발산할 만한 곳이 없다.
그러한 와중에 전 세계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고작 이벤트전임에도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시청자층도 글로벌이니 인지도를 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다른 친구들은 괜찮은데……, 그 친구는 좀 주의를 해야 돼."
"그런가요?"
한 달 후에 예정되어 있다.
투표 시기와 대회 시기에 차이가 상당히 있다.
한 달가량의 공백.
연예계 복귀 일정을 밟기로 했다.
작품 촬영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은.
"나는 술 취향만 좀 그렇지. 다른 부분은 너그럽잖아? 그 친구는 성격적으로 문제가 좀 많아."
"하하……."
바로 인맥이다.
윤청호 전무.
여전히 가끔 얼굴을 보고 있다.
'남 말할 처지냐.'
CBS에서 한자리하고 있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어지간한 일은 그의 이름을 대면 다 해결이다.
하지만 방송국이 CBS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혼자만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오~ 윤 전무가 젊은 친구를 데려왔네?"
"인사해. 소개 안 해도 다들 정환이 알지?"
"알지!"
"봄이 씨의 친오빠라고 했나?"
다른 인맥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윤청호 전무를 징검다리 삼아 술자리에 초대받았다.
방송 관계자들만이 모인 사석.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업계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친목질하는 자리지.'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연예계.
폐쇄적이기로 정계와 재계 못지 않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정계와 재계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섞여 들어오지만, 연예계는 수십 년 된 고인물들이 그대로 한 자리씩 꿰찬다.
"요즘 애들이 하~도 많아서 누굴 써야 될지 모르겠어."
"끼 있는 애들은 꽤 있는데……."
"싸가지가 없지 싸가지가. 걸핏하면 사고 쳐서 방송 터트리고."
"잠깐! 너 그 말 실수한 거야?"
"아, 미안 박 감독 최근에 사고 하나 겪었지? 크킄."
각 기획사의 대표들.
방송국의 높은 사람들.
기타 등등 대부분이 연예계에서 수십 년 굴러먹은 사람들이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거지.'
그 사람들이 잘나서.
그리고 경력이 길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 자기들끼리 해먹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준다.
연예계 최신 정보와 좋은 일거리를 독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환이 봐 정환이."
"정환이?"
"방송 좀 쉬지 않았나 이 친구?"
"행실도 바르고 능력도 참 좋아. 이번에 휴식 기간 동안 권위 있는 게임 프로그램 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별건 아닙니다."
"뭔데? 어떤 대회인데 그래?"
연예계 관계자들을 그렇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 톱니바퀴 안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신용.
믿고서 밀어주면, 잘됐을 때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적폐짓 같이 하자고.'
나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이쪽 업계가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야 한다.
그 대상이 내가 된다면 괜찮다.
내가 하면 서포터고, 남이 하면 도구이듯이 세상 모든 일은 관점만 조금 바꾸면 해결된다.
"요즘 애들은 다 찾아보면 클럽에만 있던데."
"그래서 내가 정환이를 좋아하는 거지."
"윤 전무 눈에 들 정도면 말 다했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더 깐깐하잖아?"
"뭐 임마?"
""하하하!""
시청자들이 보는 것은 연예인뿐이지만, 그들도 방송에 출연해야 연예인이다.
그리고 방송 분량이 받쳐줘야 뜰 수 있다.
그 권한을 쥔 것이 방송 관계자들.
친하게 지내두면 적어도 나쁠 것은 없다.
아니,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경험했다.
'스타를 자기들이 만든다고 생각하더라고.'
개인 방송 쪽에서도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연예계에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많다.
아니, 따라 했을 것이다.
보라판 초기 권력을 잡고 있던 김군.
연예계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옮겼다.
"방송을 좀 알긴 하더라고. 아직은 배워야 할 게 많은데."
"정진해서 따라가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요즘 시대가……, 실력도 실력인데 사고 안 치는 게 더 중요해."
"하~ 정말."
"요즘 애들이 문제긴 해. 정환이 같은 애들이 없어."
나쁜 부분만 말이다.
노란 싹을 골라내다가 친목질이 깊어진 건데, 친목질을 하면서 노란 싹까지 키우는 우를 범한다.
'그래, 적폐짓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어느 업계든 고인물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윗물이 최소한 썩지는 않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정환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네! 어떤 거죠?"
"나도 술에 관심이 많거든. 자네는 어떤 술을 좋아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주류가 되는 것이 먼저.
주류 이야기가 나온다.
아저씨들치고 술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 싱글몰트 유행하잖아. 그거겠지."
"그게 맛있나?"
"재테크 용도로도 좋대! 가지고 있으면 주식처럼 가격이 막 올라."
""오~""
그리고 돈.
고급 양주는 투자 자산으로의 가치가 있다.
아저씨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화제다.
'근데 이게 양날의 검이라서.'
방송 관계자들이다.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중에는 반드시 위스키와 같은 양주도 있다.
열에 아홉은 블렌디드 위스키.
가격이 별로 안 올랐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싱글몰트가 유행이긴 하죠. 마시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뭐가 좋아? 종류가 많던데?
"저는 역으로 조니 블루나 로얄 샬루트도 굉장히 괜찮다고 생각해요."
무슨 대답을 듣든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듣는 사람이 편안할 말을 해주는 것이 접대의 핵심이다.
"어? 나 그거 많은데!"
"그래도 그건……, 좀 흔하지 않나?"
"예, 말씀하신 대로 최근에 싱글몰트 가격이 좀 올랐어요. 블렌디드 위스키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죠."
블렌디드 위스키.
대중성을 위해 무난한 맛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애주가들은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있는데.'
싱글몰트 가격은 오른다.
블렌디드 가격은 안 오른다.
맛은 옛날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말이다.
"좋은 술을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면 그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가격도 고려의 대상이니까."
"음! 음!"
"그래서 저는 구형 블렌디드 위스키에 최근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구형?"
오히려 싸졌다.
조니 블루, 발렌타인, 로얄 샬루트 등은 선물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포장이 화려한 신형이 더 비싸다.
'구형은 값이 20% 정도 싸고.'
케이스가 없는 것은 30% 이상 더 저렴하다.
그런데 맛은 구형이 신형보다 압도적으로 좋다.
"진짜?!"
"나 옛날에 받아 놓은 거 꽤 많은데……."
"구형이 도수가 3도 높아요. 아, 여기도 있다! 조니워커 블루 43도라고 써있는 것 보니까 구형 같은데 하나 시켜볼까요?"
"시켜! 시켜!"
"더 맛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지!"
위스키 회사들이 양아치다.
어차피 선물용으로 사는 거잖아?
지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퀄리티는 줄이고 포장은 더 화려하게 만든다.
'물도 더 타고.'
위스키는 종류가 정말 많다.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치품 및 수집품으로도 분류가 돼서 시장이 기형적이다.
알고 있으면 같은 가격에서 훨씬 더 맛있는 술을 즐길 수 있다.
그 지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친분을 쌓는다.
뽀옹!
그리고 얻어먹기.
아재들과 놀 때 좋은 점이다.
체면을 따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더치페이는 안 한다.
강남의 소고기집답게 주류 메뉴가 알차다.
조니워커 블루의 구형 보틀인 것을 확인하고 한 잔씩 따라서 대접한다.
"이게 구형이 아니네요."
"아니야?"
"구구형이라고 2000년대 초에 나온 거예요. 이건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진짜 오래된 건가 보네."
"술은 오래된 게 맛있지!'
그중에서도 더 구형인 것은 맛이 좋다.
위스키라는 술이 고급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과 2~30년밖에 되지 않았다.
'위스키가 안 팔릴 때는 좋은 원액을 블렌디드 위스키에 때려 박았거든.'
구구형 이상의 올드 보틀은 싱글몰트에 뒤지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눅진한 바디감과 함께 다채로운 향이 피어오른다.
이러한 테이스팅.
위스키를 자주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설명을 마친 참이라.
"뭔가 진한데?"
"맛있네. 구형일 만하네!"
"구관이 명관이죠."
"화~ 숨을 내뱉을 때마다 향기가 하아~"
"입 냄새 나 이 아저씨야."
"뭐 임마?"
고급이라는 것은 분위기가 절반이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모르는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강박 관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맛도 있고.'
자체적으로 평가해봐도 만족스럽다.
이보다 더 구형인 것은 수집 욕망까지 들지만, 구구형 정도면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다.
그 까다로운 윤청호 전무도 만족하며 마시고 있다.
그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이 있어서 문제다.
"구관이 명관은 개뿔."
"야 술 챘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다 늙어 빠진 퇴물에 환상을 부여하는 건 아니고?"
도착하기 직전.
윤청호 전무가 주의를 준 사람이다.
잠잠하더니 술이 들어가야 입이 풀리는 타입인 모양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긴 하죠."
"너 임마."
"네?"
"나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ST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석현.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친분을 쌓고 싶던 사람이기도 하다.
'능력 하나는 확실하다는데.'
그가 프로듀싱한 연예인은 반드시 뜬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는 전설적이다.
우리 봄이도 언제까지 소속사 없이 활동할 수는 없다.
적절한 소속사를 찾는 중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어렸을 때 부모님이 대표님 곡을 엄청 좋아하셔서 공연에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흠……."
성격이 까탈스럽다.
보는 눈이 굉장히 높고, 기분파라서 자신이 마음에 든 대상에게만 신경을 쏟는다.
'인터넷으로는 알 수가 없었는데.'
연예계에 있기에 알 수 있는 고급 정보다.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정환이에 대해 통화 때 말했잖아?"
"뭐, 대충."
"니가 그렇게 요즘 애들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딱딱하다는 이야기 듣는 거 아니야."
"지는 뭐 좋은 이야기 듣는 줄 아나."
"뭐 임마?"
윤청호 전무와의 사이도 말이다.
티격태격 다투고 있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친하다.
'만난 지 오래 됐다고도 하고.'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잘 나가는 가수로 한국 가요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했다.
과거의 명성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콤플렉스로 남았다.
"너는 정말 이게 더 맛있다고 생각해?"
"예,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신형이 훨씬 더 대중성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더 비싸게 팔리는 거고."
"그런 관점도 있네요. 대표님의 통찰력에 크게 개안합니다."
대중성은 있었지만, 예술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과거에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말이다.
'그럴 수 있지.'
가요라는 것이 블렌디드 위스키와 마찬가지다.
예술성? 그런 것보다는 대중의 취향이 먼저다.
인기 있으면 장땡.
그래서 나보다 많이 벎?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표님을 이미지하는 술이 하나 생각났는데."
"뭐?"
"괜찮으시다면 선물로 꼭 드리고 싶습니다."
"흠……?"
그런 역치 0의 민감쟁이들도 상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