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41화 (741/846)

741화

대한민국의 연예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더 얕잡아 보는 감이 있다.

'보통 연예계가 이렇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옆 나라에게 먹혀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할리우드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오히려 그 반대.

다른 나라에서 한국 콘텐츠를 열성적으로 찾아서 본다.

과장 조금 포함하면 아시아의 할리우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중심이 맞다.

"그 친구가 콤플렉스가 심해."

"네."

"구형, 신형 나눈 게 역린이었나 봐."

"신세대 언어로는 발작 버튼이라고 합니다."

"발작 버튼 크킄……, 그 친구한테 말하면 발작할 모습이 눈에 선하구만."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일본도 영향을 엄청나게 받는다.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통하면 아시아 전역에서 통한다.

연예계와 패션계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너무 지나치게 커져 버린 거지.'

판이 엄청나게 커졌다.

듣기만 해도 감이 안 잡힐 정도인데 업계인들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그냥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왕년에 잘 나갔던 사람들도 목에 힘주고 다니기 애매해졌다.

"깐깐한 게 아니라 그냥 히스테릭이야 히스테릭."

"전무님과 많이 닮아 보이던데."

"뭐 임마?"

물로켓 찌익~!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문화 산업이 후진국이던 시절에 꿀을 빤 것이다.

'물론 재평가되는 경우도 있어.'

복고 열풍.

다시 들어보니 괜찮다!

콘텐츠가 가진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한국 음악이 대중성에 치우쳐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옛날 음악이 괜찮은 경우도 실제로 많다.

"그래서?"

"네?"

"아니, 뭐 좋은 술 선물해준다며? 나도 안 받은 지 오래됐는데 흠흠!"

"……."

반대로 그렇지도 않은 경우.

대중성은 대중성대로 떨어지고, 예술성도 특별히 차별점이 없다.

본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만도 하다.

주위에서 아무리 치켜세워 줘도 말이다.

'뭐, 인터넷 악플이라도 봤나 보지.'

그런 콤플렉스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대중에 노출된 모습에서는 그러했다.

지인들만 아는 콤플렉스.

방송이 아닌 현실에 사는 스타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한때 스타였던 히스테릭 노친네를 달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여길세."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기획사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아니, 빌딩이라는 표현이 옳다.

『STG 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 3대는 아니어도 7대 기획사에는 든다고 한다.

본사 건물이 으리으리하다.

10층 높이에 외관도 반짝반짝하다.

모르긴 몰라도 신축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전무님! 그리고……."

"내가 데려온 아이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안내를 붙여드릴까요?"

"괜찮아. 개인적인 용무로 온 거니까."

안내 데스크.

원래는 여러 가지 절차를 밟고 들어가야 한다.

사생팬들 대책이다.

기획사인 만큼 소속 연예인이 정말 많다.

사생팬 관련 사고가 심심찮게 터진다.

지금까지 가본 다른 기획사들도 전부 그러했다.

심하면 경비원들에게 붙잡힌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잘나가는 사람과 함께 다니니 프리패스다.

직원의 마스터 키로 열린 출입구를 통과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간다.

본 기획사의 대표 이사실이 위치해 있다.

"나 왔다."

"음……, 정말 올 줄은 몰랐군."

문을 열자 이석현 대표가 보인다.

술자리에서의 모습과 달리 위엄 있고 정숙하다.

"정환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대표님."

"어제는 실례가 많았네. 잊어주게."

중역 의자에 앉은 채 점잖게 말을 한다.

금속테의 안경이 지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 꼬장을 어떻게 잊어?"

"자넨 닥쳐.'

동일 인물이 맞는지.

혼자서 왔다면 헷갈렸을지도 모른다.

윤청호 전무가 초를 친다.

'뭐, 확실히.'

과거가 어찌 됐든 지금은 성공한 기업인이다.

거대 기획사를 이끌고 있는 대표.

사무실 내부도 점잖게 화려하다.

앤티크한 명품 가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딱히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네만."

"자네는 취해있을 때가 본성이지."

"크흠! 선물받은 술들은 많네. 나도 혼자 있을 때 즐기는 편이고."

벽장 한쪽은 완전히 컬렉션이 전시돼있다.

척 봐도 어중간한 수준은 아니어 보인다.

'맥캘란 30년, 헤네시 파라디, 깔바도스도 보이고 여러 가지 많구만.'

윤청호 전무와 친할 만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개인 장소에는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덜컥!

단순히 좋은 술로는 의미가 없다.

비싼 술로 만족하지 않으리란 건 당연한 것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뭐, 경험이 없는 건 아니네만."

"나도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전무님."

윤청호 전무 때도 그러했다.

단순히 가격만 따지면 블랑톤 SFTB의 스토어 픽보다 더 좋은 것이 산처럼 많다.

'스토리텔링.'

애주가들은 원하기 마련이다.

술에 담긴 것은 영혼.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한 병의 술이 있었으면 좋겠다.

딸칵!

바이알을 따서 유리잔에 따른다.

작은 유리병에 소분해 놓은 것으로, 귀한 술을 오픈해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가지고 왔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의의를 살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위스키는 병 모양만 봐도 경우의 수가 꽤 좁혀진다.

"프루티, 그리고 피트. 아일라 위스키일 가능성이 높겠군."

"동의하네."

그리고 맛.

그중에서도 피트는 특징적이다.

오감이 전력으로 거부하는 그 독특한 향은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아일라 지역 위스키의 특징이지.'

증류소마다 소독약 냄새, 모닥불 냄새, 갯벌 냄새 등 차이는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인 건 사람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굳이 청국장, 홍어 등을 먹는 것처럼 매니아 층이 형성된다.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리운 맛이 되는 것이다.

꿀꺽!

하지만 위스키는 향이 전부가 아니다.

입안에서 굴려보고, 식도로 넘겨봐야 비로소 마셨다고 할 수 있다.

"자네는 어떤가?"

"나는 알겠네."

"나도."

"하, 유치하게 경쟁 심리라도 느끼는 모양이지?"

"자네가 못 맞힐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두어 모금 마신 끝에 확신을 한 모양이다.

윤청호 전무와 이석현 대표가 유치하게 다툰다.

'애주가들의 자존심이 달린 일이기도 해서.'

내가 술맛을 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만큼 확실한 증명의 기회가 없다.

보틀까지는 몰라도 지역이나 증류소 정도는 압축할 수 있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럼 나부터 말해도 되겠지? 먼저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고."

"자네가 맞출 일이 없으니까 상관없지."

"오~ 그 여유가 언제까지 유지되나 보자고."

맞추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소믈리에 등 테이스팅 전문 직업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라가불린이군."

"아닙니다."

"……."

"라가불린? 라가불린이라는데~? 이게 라가불린이었구만."

그렇게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들고 오지도 않았다.

윤청호 전무가 그만 틀렸다.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이석현 대표는 한참을 놀리다 잔을 다시 빙글빙글 돌린다.

"자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

"아일라에서 스모키하고 프루티한 피트면 라가불린이지. 하지만 피트가 있다고 반드시 아일라 위스키인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더니 나를 보며 싱긋 웃는다.

자신은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 유황맛은 스프링뱅크……, 그중에서도 킬커란이겠군."

"뭐? 거긴 아일라가 아니잖아."

"쯔쯧, 자넨 지도도 안 보나? 바로 옆이잖아. 영향을 받는 거지."

"……."

"그리고 내가 확신을 내린 건 이 검은 가루."

유리잔을 들어서 살랑살랑 흔든다.

잔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검은 가루들이 떠오른다.

'논칠필터링이라.'

냉각 여과를 하지 않았다.

대량 생산되는 위스키들은 품질 안정화를 위해 이 과정을 거친다.

소량 생산하는 위스키들은 하지 않는다.

그러는 편이 맛에 차별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스키계의 유기농이다.

그 대가로 오크통 나무 가루들이 조금 거슬릴 뿐.

"굉장한 통찰력이시네요."

"내가 괜히 기획사 대표를 해먹고 있는 게 아니지~"

"하지만 틀렸습니다."

"……."

그런 걸 하는 증류소가 한둘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유기농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킬커란! 스프링뱅크! 크하하핰!"

"됐네, 됐어! 바빠 죽겠는데 시답잖은 걸 가지고……."

"하루 종일 지도 보느라 바쁜 기획사 대표라니 참."

이번에는 이석현 대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놀리기까지 하고 말했는데 틀렸다.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틀릴 만도 하다.

그도 그럴 게.

"두 분의 통찰력에 정말 놀랐습니다."

"입 바른 소리 집어치워! 지난번의 앙갚음을 하려고 했겠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없어진 증류소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셨으니까요."

"없어졌다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트 엘런.

1980년대 닥쳐온 위스키 업계의 불황으로 문을 닫아버린 증류소다.

하지만 그 이후로 맛을 인정받고, 매니아 층이 생기며 유명해졌다.

더 이상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전설의 증류소라 불린다.

"킬커란을 말씀하셨는데 논칠필터링과 유황맛."

"그래! 그거 때문에 내가……."

"그리고 라가불린은 포트 엘런과 같은 원료를 사용합니다."

"어쩐지 비슷한 맛이 나더라고!"

이전에 생산된 위스키가 아주 가끔씩 시장에 풀린다.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으며,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 거면 최소한 힌트라도 줘야지……."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잖아요."

"뭐라고?"

"대표님 이미지에 맞는 한 병을 가지고 오겠다고."

"……."

그런 것 치고 그저 그렇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설적인 수준은 결코 아니다.

'기획사 대표 정도의 통찰력이면.'

어련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빗대서 가지고 온 술이라고.

"그렇군. 이름값 못하는 위스키. 그게 바로 나였어."

"그런 의미로 가지고 온 술이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

"저는 미화가 된 과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

옛날 가수들 댄스 영상 보면 학예회 수준인 게 허다하다.

노래도 립싱크를 당연하다는 듯이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조차 힘들었다.

"이 위스키를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해서 사는 건 아니에요."

"……."

"포트 엘런이 가진 포텐셜. 만약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얼마나 엄청난 증류소가 되었을지 느껴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거죠."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전설이 되었던 것이다.

너도 나도 최고의 레슨을 받을 수 있는 현재와는 다르다.

'라고 본인도 생각하겠지.'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게 사람이다.

확신과 위로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쓸데없는 참견이야."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신선한 의견도 들을 만하군. 자네가 이 친구를 어째서 아끼는지 알겠어."

"이제야 알았나?"

티격태격해도 친구 사이다.

오랜 세월 같이 지내왔다면 단순한 친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님 말고.'

아재들의 우정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술 한 병으로 환심을 샀다면 그걸로 족하다.

"정말 못된 선물을 줬어. 그럼 나는 이 술을 평생 못 딸 것 아닌가?"

"맛을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추억으로 족해. 족하고 말고……."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선물 받은 포트 엘런을 볼 때마다 앞으로 나를 기억할 것이다.

콤플렉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훨씬 더.

술에는 영혼이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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