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62화 (762/846)

762화

90년대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명대사는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세키구치 쇼타: 시장은 양쪽 모두 일종의 승부를 하는 세계인 거야!!

세키구치 쇼타: 나쁜 물건을 팔았다 해도 그걸 모르고 산 쪽의 잘못이 큰 거라고!!

한국 수산시장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새끼들은 일본에서도 장난질을 치고 있구나.

'세계 공통사항이었던 거지.'

물론 시대가 달라졌다.

유튜브를 조금만 찾아보면 장사꾼들의 사기 수법이 쏟아져 나온다.

개인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안 당할 수 있다.

주류 쪽은 여전히 그렇다는 이야기다.

보글보글!

닭도리탕.

사장님께서 대표 메뉴를 준비해주셨다.

식탁 위 부루스타에서 맛있게 끓고 있다.

주류와의 매칭을 따져보기 위함이다.

맛을 대충 보면서 들어본다.

어째서 추천을 받았는지.

"블랑을 추천받았어요?"

"블랑이 요즘 잘나간다고 해서……, 여성분들이 좋아한다고도 들었어요!"

"음~ 그런 포인트는 좋죠."

영업사원.

그들이 추천해주는 것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취급하는 품목 내에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소속된 회사가 있다.

한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의 개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자기 회사 상품 중에 고객이 원하는 게 없으면?

비슷한 품목으로 대체하려 한다.

"여성분들이 블랑을 선호하는 건 맞아요. 근데 음식이랑 드셔 보셨어요?"

"저는 블랑을 안 마셔서……."

"한번 드셔 보세요."

같은 맥락으로 대형 마트의 와인 코너 직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보통 마트 직원인 줄 아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업체에서 파견 나온 거라서.'

자기 회사의 제품만 추천한다.

고객이 그것을 사야 해당 마트에 더 많이 납품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따른다.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일 수도 있다.

"어, 맛이……."

"맥주 맛이 하나도 안 느껴지죠?"

"네."

"그나마 한 잔 비울 때는 괜찮은데 두 잔부터는 땡기지가 않아요."

블랑1664.

편의점에서도, 대형 마트에서 많이 보이는 한국 판매량 순위 Top 5에 드는 인기 맥주다.

'근데 그건 집에서 한 캔 홀짝일 때 이야기지.'

집에서는 괜찮다.

블랑이 굉장히 플로럴하고 향이 좋아서 간단한 안주와 마실 때는 끝내준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할 만하다.

"오~ 확실히 그렇네."

"이렇게 술집에서 진한 안주랑 마시면 느끼하고 더부룩해요."

"맥주도 페어링이 있구나?"

영업사원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해, 자신들의 사정에 끼어 맞췄을 뿐.

'그냥 능력이 없는 걸 수도 있고.'

말단 사원.

아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잘 나가는 맥주를 교과서적으로 추천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마찬가지라서 문제다.

주류 업계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일반 고객을 무시하는 경향이 상당히 짙다.

"그리고 기린 맥주 드셔 보세요."

"음……, 어?"

"시큼하네. 이게 원래 이런 맛인가?"

"아니죠. 생맥주가 오래돼서 그래요."

그 교과서가 어디서 왔을까?

회사의 기본 방침이다.

어차피 잘 모르니까 대충 팔아 치워라.

'사실 이 정도는 애교지.'

그나마 가장 아래층.

세금 문제에서 자유롭고, 경쟁 상대가 많은 보급형 맥주 시장이다.

업계 관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

죄악감 같은 건 일말도 가지지 않는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우려가 됐던 건데 장사가 안된다고 하셨잖아요?"

"네……."

"생맥주를 세 종류나 쓰시니까 순환이 더 안 돼요."

"그러게. 뭔 생맥주를 세 종류나 들여 놨어?"

그냥 솔직하게 말해서 업계 문화가 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 심지어 술을 꽤 잘 아는 매니아층마저 얕잡아 본다.

그런 사람들이 아래를 깔아줘야 장사하기 쉬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건 방송에서 못 말하지.'

주류 업체들이 이 악물고 해코지할 게 눈에 선하다.

그리고 불편한 진실.

시청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내 손해 감수하고 굳이 폭로해줄 이유가 없다.

적당히 방송적으로 흥미가 갈 만한 요소만 끌어낸다.

"판촉을 좀 당하신 거 같아요."

"……."

"술집에서 술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막말로 매출이 음식에서 찍히는 게 아닐 텐데."

"그렇지! 정환이가 중요한 부분 말해줬네. 포차는 술 팔아서 남기는 거거든~"

일단 주류 메뉴를 줄여야 한다.

음식과 페어링이 맞는 것으로, 손님이 선택 장애가 오지 않도록 만든다.

'생맥주는 가장 잘 팔리니까 신경을 더 써야 되고.'

이미 기계를 들여놓았다.

회사와 계약을 한 상태일 것이다.

하이트, 블랑, 기린인 걸로 미루어봐.

"회사는 진로하고만 계약하셨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진로에서 취급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는 OB 쪽이 좀 더 풀이 넓고, 롯데가 매니아층 저격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아……."

한국 주류 회사는 크게 진로, OB, 롯데 3곳이다.

비어케이, 골든블루 등 자잘한 곳도 있지만 생맥주를 취급하는 술집은 선택지가 제한돼있다.

'보통 가격 싼 곳으로 하려고 하지.'

싼 게 비지떡.

그런 소리가 나올 만큼 요즘 맥주 수준이 낮지는 않다.

그 대신 영업사원이 신경을 덜 써줄 수는 있다.

딱 그런 케이스다.

입을 살살 잘 털었을 것이다.

가게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제품을 비치시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사장이 풀 죽은 듯 눈치를 본다.

음식은 문제가 없다.

'술은 문제가 있었지.'

천종원 선생님의 칭찬으로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현실로 돌아온다.

장사가 안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따져봅시다."

"네!"

"여기 손님 성비가 어떻게 돼요?"

"그건 알아요! 젊은 남자분들이 많기는 한데, 대부분 남녀 합석으로 와서……."

하지만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뿌노스의 핑거스냅을 피해 갈 만도 하다.

'그래서 여성 고객을 위한다고 블랑을.'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블랑은 안주와 잘 맞지도 않고, 맛도 호불호를 꽤 타는 편이다.

혼술족 여성+SNS 홍보로 판매량이 급증했을 뿐이다.

술집에 어울리는 술은 아니다.

심지어 3종류.

1통 소모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는다.

끼익―!

생맥주 기계.

사장의 허락을 받고 분리시켜 본다.

아니나 다를까 설마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보이시죠?"

"아이고;;"

"주방 관리를 워낙 잘해서 이건 좀 아차 싶은데? 정환이가 나보다 깐깐해."

"……."

사람이 없는 가게.

특히 오래된 듯한 가게.

생맥주를 시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분리한 기계의 탭 부분에 거무스름한 이물질이 끼어있다.

호스 부분은 빛을 투과시키자 노르스름한 무언가가 확실히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청소를 매일 해야 하는데.'

보통 안 한다.

세척 과정이 귀찮기도 하거니와, 맥주가 지나다니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안이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가진 환경적 특징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맥주가 그냥 물이 아니잖아요? 칼슘도 있고, 단백질도 있어서 그게 지나다니면서 조금씩 끼어요."

"지, 진짜 몰랐어요;;"

한국은 대다수 지역의 지질이 화강암 기반이다 보니 석회수가 없다.

따라서 수도관이 막히는 사고가 잘 생기지 않는다.

'비데 같은 것도 그렇고.'

왜 유럽에서는 비데 안 씀?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것이다.

수돗물이 석회수이기 때문에 좁은 관이 잘 막힌다.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애당초 맥주 문화가 발달했던 것 자체가 석회수 맛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하이트는 별로 안 끼었죠."

"네……."

"근데 블랑이랑 기린은 좀 심각해요. 별로 쓰질 않다 보니까 상태가 더 안 좋은 거죠."

"아……."

이러한 사실.

영업사원들은 설명을 잘 안 해준다.

'자기들 귀찮을 거리만 생기니까.'

기계 관리라는 게 힘들다.

눈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편이 훨씬 더 편안하고 간단하다.

"청소 열심히 해야 돼유? 시청자들 다 보고 있어!"

"네, 네! 아무렴요."

"그리고 다음은 맥주를 선택하는 과정인데."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술집의 생맥주.

가게 규모가 크지도 않다.

종업원을 많이 써봐야 2명이다.

'그러면 그냥 한 맥주만 쓰면 돼.'

생맥주는 종류보다 신선함이 우선시된다.

왜냐하면 신선함이 곧 맛이기 때문이다.

갓 입고된 생맥주를 깨끗한 호스로 받아낸다.

그것만큼 맛있는 생맥주는 없다.

"그럼……, 어떡하죠?"

하지만 엎질러진 물.

이미 업체와 계약을 마쳤다.

이제 와서 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류 업체가 여러 가지 목줄을 많이 매놔서.'

굉장히 많다.

방금 마신 맥주잔만 해도 주류 업체에서 대여해준 것이고, 가게의 냉장고도 그러할 것이다.

그 외에 빚도 있다.

가게를 창업하려면 목돈이 든다.

주류 업체가 '주류 대출'이라는 것을 꽤 쉽게 해준다.

사장님의 낯빛이 어둡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 가지 계약이 얽혀있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꼬치꼬치 물어보기도 뭣한 부분이다.

"일단 계약하신 게 있으니까."

"네……."

"진로가 취급하는 맥주 중에서 해결 방안을 잡아보도록 하죠."

"방법이 있을까요?"

사장님 사정에 맞춰서 솔루션을 진행해본다.

진로가 취급하는 수입 맥주 풀이 적기는 하지만.

'술을 잘 알면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 있어.'

가게의 입지도 들었다.

주변에 회사들이 있고, 대학생들도 많이 온다.

회식 자리가 많아서 여성 쪽 입맛도 무시할 수 없다.

생맥주는 한 종류.

대신 병맥주를 종류별로 비치한다.

그러는 편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지금은 아직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잖아요?"

"네, 아직 좀 그렇죠."

"한 종류만 써서 회전률을 높이는 걸 추천해요. 말씀드렸다시피 생맥 중의 생명은."

"신선함!"

"맞습니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맥스다.

진로 제품이기도 하고, 국산 맥주 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다.

'이상한 거 섞지도 않았고.'

한국 맥주들은 옥수수나 쌀 전분 같은 것을 섞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원가 절감을 위함이 가장 크다.

맥스는 유일하게 100% 보리.

잡맛이 느껴지는 것이 흠인데 신선한 생맥주에서는 그러한 단점이 가려진다.

"그리고 병맥주는 반품이 가능해서 여러 가지 들여놔도 돼요."

"아, 네 근데 혹시 여성분들께는……."

"저는 파울라너 추천드립니다."

"파울라너요?"

"호불호가 안 갈리는 맛이고, 무엇보다 음식이랑 잘 어울려요."

술집이기 때문에 술맛이 중요하다.

밥집에서 밥맛이 중요한 것처럼, 사실 가장 중요한데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술집 맥주는 대중성이 우선시된다.

블랑처럼 자체적으로 맛있는 것보단, 음식의 보조 역할을 하는 맥주가 적합하다.

'내가 살면서 파울라너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맥스生과 파울라너.

대중적인 입맛과 퀄리티를 둘 다 잡은 제품이다.

관리만 잘하면 손님들의 입맛을 한층 북돋아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음식 맛은 천종원 선생님이 인정을 하셨고, 방송으로 홍보도 될 테니 손님이 찾아오는 건 시간 문제다.

"정환이가 한 건 제대로 해줬어."

"하하."

"매출에서 술 비중이 크잖아? 앞으로는 술이 더 잘 팔리면 장사도 잘되겠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밋밋할 수는 있다.

방송은 컨셉.

이 가게가 잘 나가고 말고는 까놓고 말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복귀 방송인데.'

파급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사장님 SKY T1 팬이라고 하셨죠?"

"네! 네! 저 진짜 테이커 선수랑 정환 선수 너무 좋아해서……."

"잠깐 대깨맥이 되어주실 수 있나요?"

"?"

대가리 깨지는 맥스를 선보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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