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논현궁>
킹쩔 수가 없다.
"블랑이요?"
"네."
"근데 모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악평을 쏟아내신 걸로 아는데."
"……."
광고주는 정말 어마무시한 존재다.
30초짜리 광고 한 편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 지불하거니와.
'업계 구조가.'
단골 고객이다.
어떤 업계의 어떤 회사든 규모가 커지면 안정적인 수입원을 원하기 마련이다.
대기업들은 그것을 충족해준다.
중견기업들처럼 광고 한 번 때리는데 일일이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는다.
"확실히 블랑이 향이 독특해서 한국 음식이랑 잘 안 맞기는 해요."
"한국 음식이요?"
"네, 하지만 어떤 술이든 마리아주라는 게 있거든요?"
그만큼 발언권도 셀 수밖에 없다.
그토록 새침한 방송사들이 유독 광고주들한테는 쩔쩔매는 이유가 있다.
'인맥으로 다 연결이 돼있어서.'
비즈니스적 관계는 물론, 사적인 관계까지 가지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방송사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을 때.
소비자들에게 퍼지는 곳도, 바로잡을 수 있는 곳도 바로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주!"
"그거 와인 용어 아닌가요?"
"네, 다른 술에도 쓰입니다. 영미권에서는 페어링이라고 부르고요."
""오오~"
화요미식회.
tvM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교이쿠상이 나간 빈자리를 내가 채우게 되었다.
'가라앉는 배이긴 한데.'
교이쿠상이 세간의 이미지가 최악이긴 하다.
일본인 맛칼럼니스트가 왜 한국까지 와서 지랄을 하느냐?
하지만 화요미식회의 인기를 그가 견인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교이쿠상이 나간 이후 시청률이 급감한다.
그를 띄워줬던 방송.
내가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더 뛰어나면서도 색다른 아이덴티티를 보여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술이랑 먹는 게 최고예요."
"음~"
"중국 음식에 고량주 엄청 맛있죠!"
"그런데 고량주가 독하기도 하고, 입맛에 안 맞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금일 주제는 마라탕과 마라샹궈다.
화요미식회는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만.
'아무래도 방송이 오래됐다 보니까.'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교이쿠상이 하차한 이후 시청률이 휘청이고 있기도 하다.
새바람이 필요하다.
PD가 나에게 요구한 부분이다.
술을 잘 알고 있지 않냐?
"그래서 저는 블랑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음……,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데."
"왜냐면 블랑의 재료에 고수가 들어가요."
"아, 고수!"
정확히는 고수 씨앗.
방송의 특성상 길게 설명하면 안 되기 때문에 생략한다.
'화장품 냄새 난다고 하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음식에도 어지간하면 안 어울린다.
"마라탕이랑 마라샹궈에 고수 무조건 들어가거든!"
"그래서~!"
"네, 고수가 입에 맞는 분들은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국 혹은 동남아시아 음식은 예외.
고수가 들어가는 음식과는 제법 어울린다.
'실제로 괜찮아.'
PD가 요구한 역할을 소화하며, 광고주의 마음도 달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본다.
"제가 차를 타고 가서 술 마실 생각을 못 했는데 다음에는 맥주 한 잔 곁들여 봐야겠어요!"
"블랑 완전 좋아하는데……, 왜 같이 먹을 생각을 못 했지?"
방송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방송을 하면 할수록 더 절실하게 느낀다.
'광고주가 왕이야 왕.'
TV 방송 자체가 그러하다.
시청자들이 알게 모르게 어마어마한 양의 PPL이 들어간다.
따라서 그것을 살려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나는 업계에서 평가가 높은 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다들~"
"어, 정환 씨!"
주류 회사가 워낙 광고 큰손이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캐릭터가 필요했다.
'정말 어른의 세계이긴 한데.'
씨지맥이라면 하루를 못 참고 할 말이 있음! 방송을 킬 수준이다.
어쩔 수가 없다.
공중파 방송은 마이웨이가 불가능하다.
방송사의 요구에 맞추면서, 그 안에서 내 주장을 살려야 한다.
"진짜 수고했어 오늘~ 나도 말하고서 이게 되나 싶었는데."
"메뉴를 맞춰주셔서 가능했죠."
"정환 씨가 오늘처럼만 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존재감 말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이 돼야, 방송사도 내 말을 들어준다.
굉장히 피곤한 업계다.
〔남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주 토요일이 제 생일이거든요~」
「정환 님이 와주신다면 굉장히 영광일 것 같은데」
「당일에 결정하셔도 되니까」
「가능하시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ㅎㅎ」
그렇지 않은 쪽.
최근 소홀했던 것 같다.
워낙 바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보라판이라.'
나의 정체성과도 같은 장소다.
방송 스타일의 뿌리가 보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해탈한 지 오래.
언제까지 얽매어있지 않는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잔뿌리는 쳐내야 한다.
* * *
생일 파티.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만이 아니다.
―택수X치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남훈이 생일임?
"맞습니다! 오늘 남훈 형 생일이거든요~ 선물 사느라고 하루 종일 백화점 돌아다녔는데 맛있는 거 얻어먹으면 좋겠네."
―얼마짜리 삼?
―맛깔나게 깔아놨겠지
―파프리카 별풍선 랭킹 1등인뎈ㅋㅋㅋㅋㅋ
―기사식당이면 ㄹㅈㄷ
적어도 보라판에서는 말이다.
자신의 위치.
그리고 간접적으로 인맥 자랑을 하는 자리로 변모했다.
'남훈 형은 워낙 급이 달라서 역으로 신경이 안 쓰이네.'
BJ김택수는 중견급 보라BJ다.
그런 자신도 생일 파티를 열면 수백만 원은 가볍게 깨진다.
자존심 싸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급의 BJ들한테 밀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다.
―택수X황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작년에는 출장 요리사 불러서 야외에서 했음 ㅋㅋ
"진짜로? 그땐 내가 하꼬라 못 갔는데 아쉽네."
―와 출장 요리사
―남훈이 클라스면 씹가능이짘ㅋㅋㅋㅋㅋㅋ
―그때 여캠도 많이 옴
―돈 ㅈㄴ 많이 들었겠다
실질적인 의미도 있다.
BJ의 생일 파티는 곧 BJ들이 모이는 장소.
'그래도 내가 작년이랑은 급이 다르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필할 기회다.
평소 못 보던 BJ들에게 말이다.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BJ들 간의 친목은 방송보다는 사석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끼익―!
보라판 특성상 큰 가치를 가진다.
대부분의 방송이 합방 위주로 돌아간다.
인맥=콘텐츠.
그렇게 해석을 해도 될 지경이다.
좋은 인맥은 방송의 흥행으로 연결된다.
『330번지 김남훈』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시청자들은 모르지만, 택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
남훈의 집.
찍어준 주소에 도착했음에도 얼을 탄다.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사실인지 아닌지.
―보라충74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기 맞음 논현궁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와……. 소문으로는 듣긴 했는데 장난 아니네. 이런 집 진짜 비싸겠지?“
―왘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최소 20억?
―100평은 무적권 넘겠네
―남훈좌 클라스 보소
팻말에 이름이 안 써있다면 시청자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엄청나다.
단독 주택.
목이 당길 때까지 젖혀야 끝에서 끝이 보인다.
최소 수백 평은 돼 보이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이게 집이야, 대궐이야?'
논현궁.
남훈이 살고 있는 거처를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
본래도 넓었지만, 최근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띵♪ 디딩 띵디딩~♪ 띠디디디디디디딩♬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드는 대문의 초인종을 눌러본다.
10초쯤 흘렀을까.
대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택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들어간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
자신이 와도 되는 곳인가 불편한 마음이 쿡쿡 찌르던 찰나에.
"왔어?"
"남훈 형! 아, 진짜 여기 뭐예요. 진짜 무슨 궁궐도 아니고 으리으리해."
초대한 당사자와 만난다.
그는 마당에서 처음 보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사할 때 좀 무리를 해서 올해 생파는 집에서 조촐하게 열려고."
"아, 조촐하게……. 근데 이분들은 누구예요?"
"배달 음식 시켜 먹기는 형이 가오가 있잖아? 와주시는 BJ들한테도 실례고. 그래서 아는 분들 좀 불렀어.“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킹프네 ㄷㄷ
―나도 조촐한 생파할래……
―진짜 남훈좌는 전설이다
출장 셰프.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 친분까지 있다.
격이 다르다는 사실에 인정이란 과정도 필요 없다.
'클라스가 다르긴 하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옷도 완전히 명품만 입고,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 그렇게 놀라야지.'
그런 택수를 보며 남훈의 입가가 살짝 벌어진다.
아주 살짝.
카메라를 클로즈업하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을 미세한 차이다.
"저 도와드릴 거……, 있을까요?"
"아니, 손님인데! 손님한테 일을 시키면 형 체면이 뭐가 되냐."
"네……."
"들어가서 적당히 쉬고 있어. 메인 말고 나머지는 다 깔아 놨으니까."
"깔아 놔요?"
인스타 감성.
모름지기 자랑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생일 파티를 겸해서 자신의 새로운 집을 알린다.
파티의 퀄리티도 신경 써서 준비했다.
호텔 뷔페가 생각나는 광경에 지금쯤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을 것이다.
띵♪ 디딩 띵디딩~♪ 띠디디디디디디딩♬
들러리가 되어줄 BJ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초대한 인원이 대충 30명은 넘는다.
그것을 수용하고도 남을 장소다.
집안 내부는 물론, 마당까지 아우르는 스케일의 파티를 진행한다.
"오빠!"
"대박이다. 여기 남훈 오빠집이에요?"
"초정이랑 채화구나. 방송하면서 왔어?"
"저만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파프리카TV 모든 시청자에게 알려질 것이다.
각자 자신의 방송에서 이 논현궁을 홍보해준다.
'좋아, 다 좋은데.'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파프리카TV 최고 BJ가 누구인지.
누가 가장 잘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띵♪ 디딩 띵디딩~♪ 띠디디디디디디딩♬
그래야만 한다.
이 정도의 집.
이 정도의 파티.
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재벌이 아닌 이상 없다.
그 오정환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남훈은 딱 하나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있었다.
"정환 오빠 왔대!"
"헐, 진짜?"
"대박이다, 대박. 아, 인사 어떡하지!"
활짝 열린 폴딩 도어를 타고 집안 내부의 소리가 들린다.
워낙 시끄럽게 떠드는 년들이다 보니 안 들릴 수가 없다.
'오정환 네 녀석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초대했다.
주위에 자랑만 하는 것보다, 본인에게 확인을 시키는 편이 더 기를 죽일 수 있다.
"안녕하세요."
"와, 정환 님! 다들 박수!!"
"무슨 박수까지."
"굉장히 바쁘실 텐데 어려운 걸음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거거든요~"
그리고 인지시킨다.
최근 보라판.
오정환이 활동을 않고 있던 사이에 자신은 인맥을 크게 넓혔다.
'진짜 와줄 줄은 몰랐는데.'
본인이 바쁘다.
요즘은 BJ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간의 인지도는 다 허울뿐인 것이다.
자신이 훨씬 잘 생겼고, 훨씬 더 많은 수입을 번다.
오늘의 파티를 보면 확실하게 알아갈 것이다.
"별로 차린 건 없지만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가주세요."
"네, 먹을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서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네요."
그러한 기류.
오정환이라면 읽고 있을 것이다.
이 집에 도착한 시점에서 이미 말이다.
'늦었어.'
논현궁이다.
집과 물건은 물론, 초대된 BJ들 하나하나까지 자신의 입김이 안 들어간 게 없다.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건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