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화
BJ들의 파티.
오히려 연예계보다 화려한 측면이 있다.
'원래 졸부들이 그래.'
가진 사람은 정말 알지도 못할 정도로 드러낸다.
별 비중도 없이 걸려져 있는 접시 하나가 10억 원.
"와 저거 봐!"
"30년이야, 30년……."
"저런 거 얼마나 할까? 병만 봐도 비싸 보인다."
그에 반해 졸부는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고 싶은 졸부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비즈니스가 많다.
"우리 할아버지 집에도 30년짜리 있는데!"
"하아~ 참!"
"웅?"
"그건 발렌타인이겠지~ 이건 그냥 평범한 30년이 아니야. 싱글 몰트, 그것도 맥캘란이라고!"
들어간 집안 내부.
손님이 반드시 지나칠 수밖에 없는 거실 중앙에 술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신형 맥캘란이라.'
맥캘란은 나도 좋아한다.
아니, 안 좋아하는 애주가는 없을 것이다.
정확히는 좋아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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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캘란 제품 설명』
신형= 스페인 헤레스의 올로로소 셰리로 시즈닝한 오크통에서 독점 숙성되었을 때, 풍부한 과일 향과 풍부한 바디감의 '새로운' 정신을 상징하는 싱글 몰트로 변합니다.
구형=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에 있는 맥캘란 증류소에서 증류된 이 전설적인 싱글 몰트는 스페인 헤레스에서 선별된 오크 통에서 최소 12년 동안 독점적으로 숙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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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과 구형, 그리고 구구형의 설명이 조금씩 다르다.
맥캘란을 아는 사람들은 설명에 내포돼있는 진의를 안다.
'신형은 통으로 장난질 친 거고, 구형은 보리 원산지로 장난질 친 거지.'
신형은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올로로소 셰리 와인을 썼다고만 명시한다.
오크통이 값비싼 유럽 참나무인지 값싼 미국 참나무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구형은 보리 원산지.
원래는 맥캘란 지역에서 나는 보리를 쓴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타 지역 보리도 사용하게 되었다.
구구형은 숙성 창고도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 방식이 다르고, 위치도 다르다 보니 맛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아 정환 님!"
"안녕하세요."
"정환 님 오셨구나 정말로! 근데 정환 님 보시기엔 어때요?"
"뭐가요?"
"정환 님 술 좋아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남훈 형 양주 컬렉션 진짜 개쩔죠?"
"다 괜찮은 위스키죠."
하나하나 따지면 밑도 끝도 없다.
대량 생산을 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퀄리티 저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런 걸 명시해주면 좋은데.'
안 해준다.
이마저도 위스키 매니아들이 반추측으로 찾는 것이다.
테이스팅을 해보면 신형 맥캘란은 미국 참나무 느낌이 난다.
"드셔 본 적 있으세요?"
"네, 일단은?"
"화~ 진짜 비쌀 텐데. 역시 남훈 형도 그렇고 정환 님도 그렇고 대단하십니다!"
"그냥 맛본 정도죠."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 섞는 것이다.
위스키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일반인들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명품백으로 따지면 저질 가죽으로 바꿨는데 가격은 더 올라간 그런 느낌?'
반대로 말을 하면 장난질을 해도 팔릴 만큼 훌륭하다.
맥캘란이라는 이름 석 자가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원래의 맛을 알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뿐이다.
내 돈 주고는 사 마시고 싶지 않은 그런 퀄리티.
한 가지 확실한 건 과시욕을 충족해준다.
맥캘란이라고 하면 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비싼 술이란 걸 아니까.
짝! 짝!
이렇듯 이목이 쏠린다.
돈 자랑을 하기에는 최적화되어 있다.
그 장본인이 나타나셨다.
"여러분 즐겁게 계시고 계세요?"
""네에~!""
"먼 걸음 와주신 분들 정말 감사하고, 별거 차리진 않았지만 맛있게 드셔 주시면 좋겠습니다. 식사 메뉴는 마당에서 셰프님들이 요리를 하시고 계시니까 곧 준비될 거예요."
""와아~!!""
생일 파티의 주인공.
하얀색 슈트 차림으로 번지르르하게 등장했다.
'뭐, 그럴 수 있지.'
BJ의 세계는 화려하다.
시청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느껴진다.
돈을 펑펑 쓴다.
특히 보라판에 그런 애들이 많다 보니 착각을 할 만도 하다.
"그리고 오늘 오정환 님이 와주셨는데."
""오~""
"정말 유명하신 분이죠. 파프리카TV 최고의 BJ셨고.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하시는 대선배십니다. 모두 박수~"
이런 애들 때문이다.
파프리카TV가 그들만의 리그, 고인물화가 돼버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셨고라.'
말에 뼈가 있다.
누가 최근 보라판의 중심인지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
생일 파티에 온 수많은 BJ들이 박수를 친다.
능력이 아닌 인맥과 정치로 최고가 결정 나는 업계가 있다면 그곳은 반드시 썩는다.
비단 한국 국회의원 얘기만이 아니다.
"정환 님이 온다고 하셔서 좋은 술들을 준비했습니다."
"어, 설마 저 술장에 있는 거?!"
"그건 안 되고요."
""하하하하!""
"물론 정환 님이 바라신다면 제 컬렉션을 오픈할 수도 있지만."
나를 향해 눈길을 보낸다.
손을 살짝 젓자 여기저기서 아쉽다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어차피 가불기지.'
여기 온 시점에서 말이다.
다 남훈의 인맥.
응하면 응하는 대로 좋은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빚은 안 만드는 편이 차악이다.
나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쪽 술장에 있는 술은 제가 아끼는 거라 오늘은 내드릴 수 없지만 훌륭한 술과 음식들을 준비했으니 다들 즐겨주세요?"
""네에~!""
이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존재감 차이를 과시하고 싶다는 생각일 게 분명하다.
'한참 신날 때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일찐이 된 고등학생처럼 한창 어깨가 뻣뻣한 그럴 시기.
아그작!
음식이나 맛있게 먹는다.
파마산 치즈가루가 뿌려진 시저 샐러드가 눈에 띈다.
'뷔페의 첫 음식으로 시작하기 괜찮지.'
깍두기 모양의 구운 식빵이 섞여져 있다.
적당한 탄수화물이 식욕을 북돋아 준다.
꼴꼴꼴!
그리고 술.
브뤼는 드라이한 계열의 샴페인이다.
식전주로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확실히 돈 좀 쓰긴 했네.'
스파클링 계열은 식사의 시작을 여는데 어울린다.
하지만 혼자 마시려고 딸 수는 없다.
탄산 때문.
우리 봄이가 술에 좀 눈을 뜨면 좋겠는데 아침 눈꺼풀도 잘 떼지지 않으니 요원해 보인다.
회도 몇 점 담는다.
이곳이 뷔페고, 이것이 첫 접시라 생각하면 잘 선택했다고 본다.
'먹을 만해.'
수준이 있는 요리사들이다.
샐러드가 거부감 없이 입에 쑥쑥 들어간다.
꿀꺽!
샴페인도.
달큰하고 시트러스한 향과 달리 맛은 브뤼답게 잔잔하다.
하지만 입안에서 굴려보면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청량한 미네랄이 느껴진다.
'좋은 샴페인의 표본이지.'
와인은 음식의 맛을 북돋아 준다.
텁텁해야 할 샐러드가 윤활유가 발라진 것처럼 술술 넘어간다.
회도 한층 신선하게 만들어준다.
숙성을 마쳤을 회가 되살아난 것처럼 입안에서 꿈틀댄다.
"이거, 이거야?"
"어, 어."
"도츠 브뤼 클래식……, X발 뭔 소린지 모르겠네."
내가 따랐던 샴페인.
몇몇 BJ들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선착순이 된 것처럼 가져간다.
'원래 그래.'
무슨 암호도 아니고 어떤 술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와인은 그런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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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츠 브뤼 클래식= 도츠에서 만든, 별로 안 단(브뤼), 기본(클래식) 모델의 샴페인 ―――――――――――――――――――――――+
읽는 법을 외워야 한다.
진입 장벽이 쓸데없이 높은 편이라는 것에는 나도 공감한다.
이곳에 온 BJ들.
대부분이 모를 것이다.
아마 집주인도 모를지 모른다.
'추천받아서 대충 샀겠지.'
주류 소매상들의 주요 호갱……, 아니 고객들이다.
상품의 가치나 맛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인간들.
명품 업계는 그런 졸부들의 과시욕을 노린다.
그나마 장신구나 의류는 쓰는 법을 몰라도 상관이 적지만.
"어……, 어떡하지?"
술은 모르고 사면 낭패를 본다.
큰마음 먹고 산 예쁘장한 술이 알고 보니 봄베이였다든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처자가 보인다.
주류 코너.
선택 장애가 온 듯 이것저것 둘러보기만 하고 있다.
"뭐 찾아요?'
"아니, 그냥. 안녕하세요!"
"제가 고개 숙여 인사받을 나이는 아니에요."
요즘 애들답게 예쁘장하다.
허리를 숙이자 가슴골 양옆에서 무언가가 보인다.
"오면서 보니까 두리번두리번하고 있길래."
"하하하……."
"저라도 괜찮으면 도와드릴까요?"
"이런 얘기 들으면 웃으실 수도 있는데."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을 우물쭈물거린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을지는 눈에 선하다.
'아직 어려 보이니까.'
차라리 좀 때가 탔다면 클럽 느낌으로 마셨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많지 않다.
샴페인에 대한 환상이 있다.
막상 마셔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겠지.
"제가 기대하던 맛이 아니라서."
"어떤 부분이?"
"전에 마셨던 건 달아서 맛있었거든요."
"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풀 죽은 표정이다.
BJ시아.
내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것 보면 인지도가 있는 BJ는 아닐 것이다.
'아직 친목판에 끼지 못한 거겠지.'
보통 보라판 친목질은 중소급부터 시작한다.
그때부터 라인을 타면서 방송 안팎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그건 남자BJ의 이야기.
여캠들은 예쁘고 반반하면 알아서 연락이 온다.
물론 그 의도가 절대 곱지는 않다.
"에이, 뭐 그렇게 실망할 부분인가."
"저만 좀 붕 뜬 거 같아서."
"아~"
"사실 이런 자리 온 적이 없거든요. 아는 오빠가 오면 좋다고 해서 온 건데."
당연히 수작질하려고 부르는 것이다.
친목질 집단에 처음 끼면 당연히 붕 뜬다.
'그래야 꼬시기 좋잖아.'
그런 마음을 가진 애들이 한둘일까?
밀어주고 당겨주는 좋은 선후배 관계가 생긴다.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간 여대생처럼 되는 것은 그나마 좋은 결말이다.
방송까지 걸려있기 때문에.
"샴페인이 마음에 안 들면 평소에 마시던 거 마셔요. 굳이 격식 차릴 필요 없으니까."
"근데……."
"네?"
"맥주도 처음 보는 것들만 있어서."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
특히 여자 입장에서는 얼굴이 팔리는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게 부담이다.
'그런 썩은 문화가 사라지면 좋겠는데.'
윗물.
나름대로 맑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범죄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최근 보라판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뒤편에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쏴아―!
하나 골라서 유리잔에 따라준다.
음식점에 꼭 있는 냉장고처럼 내부가 훤히 보여서 고르는 게 간단하다.
'다 크래프트 맥주만 사다 놨구만.'
정말로 취미를 붙인 걸 수도 있고, 나를 의식해서 구비해둔 걸 수도 있다.
덕분에 좋은 거 잘 마신다.
"마셔봐요."
"네. 콜록콜록!"
"맛없죠?"
"……."
마셔보지 못한 사람은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
아니, 기필코 그럴 수밖에 없는 맥주다.
'크맥은 워낙 마이너해서.'
와인은 그래도 조금씩 유행하고 있고, 위스키는 마시진 않아도 구경은 한다.
아버님들이 거실에 전시해두신다.
크래프트 맥주는 보통 볼 일이 없다.
차후 곰표나 진라거 같은 게 유행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크래프트 맥주는 아니다.
"저 놀리신 거예요?"
"예쁜 얼굴 구기고 있길래."
"아……, 감사합니다."
"제가 마술을 하나 걸어드릴까요?"
"?"
맛과 향이 굉장히 강하다.
맥주라는 사실을 연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알콜 도수도 10도가 넘어가서 먹기가 부담스럽다.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마술.'
적절한 음용법은 술을 반드시 맛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