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화
<얕은 바닥>
원래 호랑이는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잡을 수 있다.
―오정환열혈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가서 뭐 별일 없었죠? ㄷㄷ
"1000개 감사합니다! 별일 없었죠. 그냥 인사만 하고 온 건데."
―와 깡다구
―방송에서 보니까 존나 맥이던데
―요즘 보라판 살벌함
―인사만 한 게 아니지 않음? ㅋㅋ
남훈의 생일 파티.
그럭저럭 재밌었다.
최근 보라판에 소홀한 감이 분명히 있으니까.
'체크하기 좋지.'
요즘 누가 잘 나가고, 파벌 싸움이 어떻게 되는지.
음식 먹으면서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파악이 된다.
사람만 바뀔 뿐 기본 생태계는 똑같기 때문이다.
남훈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은 사실 같지만.
〔개인 방송 갤러리〕
―남훈은 돈 자랑 못 해서 안달 난 게 보임
―클럽 룸 다니던 새끼 근본이 바뀌겠냨ㅋㅋㅋㅋㅋ
―오정환 vs 남훈 한 짤 정리. JPG
―오피셜) 오늘자 시아 언급 총정리. txt
.
.
.
보라판은 맨날 바뀐다.
어제까지 탑을 달리던 사람도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오피셜) 오늘자 시아 언급 총정리. txt
하꼬라서 아는 사람 없어서 찐따처럼 있었다
여기서 짜증 1스택
억울해서 비싼 술이라도 마시려고 샴페인 마심. 근데 맛없음여기서 짜증 2스택아는 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우울했는데 오정환 만남└찐따추
└짜증 많은 년이누
└하꼬가 뜨려고 발악을 하네 ㅉㅉ
└ㄴ남견 검거
그런 정치판.
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괜히 남 생일 잔치에 축하씩이나 하러 간 게 아니다.
'약점 탐방이지.'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은 구정물이 나올 만큼 썩어있는 업계다.
상위권의 BJ일수록 반드시 후벼 팔 만한 구석이 있다.
―보라는보라색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시아가 정환이 칭찬함. 로맨티스트라고ㅋㅋㅋ
"에이, 그냥 같이 술 한 잔 했을 뿐이에요."
―ㄹㅇ임
―원래 남녀 사이는 술 한 잔부터 시작인뎈ㅋㅋㅋㅋㅋ―그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현실에서……
―인생이 '보라'였누
맥주.
남녀노소 대중적으로 마시는 술이다.
그렇다 보니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하나 존재한다.
차갑게 마시려고 하잖아.
마시는 순간 뒷골이 땡길 만큼 말이다.
잔을 얼리거나 살얼음을 만드는 경우도 꽤 흔하다.
얼음칩을 띄웠던 것도 같은 맥락.
맥주는 차갑게 마시는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쏴아
그렇지 않다.
맥주를 한 캔 딴다.
그리고 잔에 천천히 따른다.
마치 먹물처럼 거무스름한 흑맥주다.
"이게 그날 마셨던 거예요. 이렇게 마시면. 예, 맛이 없습니다."
―?
―무슨 맥주가 저렇게 새까매
―난생 처음 보는 맥주네
―맛없으면 왜 먹어ㅋㅋㅋㅋㅋ
시아 씨가 이렇게 마셨다.
아니, 잔에 따르지도 않고 캔째 마셨으니 더할 수밖에 없다.
'맛이 안 느껴지지.'
콜라를 마실 때.
차가운 상태에서는 적당히 달지만, 미지근해지면 왜 칼로리 폭탄인지 깨닫게 된다.
단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이 맥주에도 적용된다.
꿀꺽!
잔을 잡아 체온으로 온도를 높인다.
그제야 슬슬 포텐셜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스타우트 계열.
다크 초콜릿향이 물씬 올라온다.
단맛도 꽤 선명해져서 초콜릿을 마시는 것 같다.
"제가 해준 건 별거 없어요. 맥주를 잔에 따라주고, 이렇게 온도를 올려주었을 뿐입니다."
―마술의 비밀ㄷㄷ
―그렇게 여캠을 꼬셨나요
―정환이 온기에 반했네 ㅋㅋ
―무슨 맥주 하나 마시는데 저 지랄을 하지
시아 씨에게 걸어준 마술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굉장히 중요하다.
'샴페인은 그래서 얼음통에 서빙하잖아.'
얼음통에 샴페인이 담겨있는 광경.
거의 상식 수준이라 처음 마시는 사람도 그렇게 한다.
크래프트 맥주도 다를 거 없다.
맥주도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발효주고, 일부 크래프트 맥주와 람빅은 샴페인 가격 뺨친다.
그것을 차가운 상태로, 심지어 캔에 입을 대고 마셨으니 맛이 안 느껴진다.
쓴맛만 강조돼서 맛이 없었을 것이다.
―골목식당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왜 예능에선 이런 얘기 안 해줌??
"전국에 다 나가는 프로그램인데 대중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야죠."
크래프트 맥주가 굉장히 마이너한 취향이다.
특히 2020년 전에는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과세가 종가세.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면 가격이 2~3배 뻥튀기된다.
1천 원짜리도, 1만 원짜리도 똑같은 세금이 붙는 종량세로 변한 이후로는 즐길 만한 취미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입 장벽이 있다.
'그게 뭔데 씹덕아ㅋㅋ 이런 소리밖에 더 들어?'
그냥 취미.
그렇게 생각해주면 그나마 좋지만, 사치를 부린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손해다.
실제로 사치이기도 하다.
비싼 술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마시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성공을 마신다.
―저런 맥주는 마시는 방법이 있구나
―비싼 건 틀리긴 하네……
―남훈이는 왜 그냥 마셨지
―마시는 법을 모르니까 남견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는 카스처럼 마시던대ㅋㅋ
―캔째로 마시면 ㅄ이라는 거 맞죠?
―남견만 모름
―보라충 들어오니까 채팅창 개판 됐누
그거야 본인 마음이지만 맛없으면 억지로 마실 필요 없다.
남들에게 강요하는 건 더더욱.
'뭐, 알아서들 치고받고 싸우겠지.'
보라판은 확실히 그립다.
특유의 감성은 다른 어느 플랫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의 진행.
살 떨리는 줄타기도 재미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병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히 기강만 세운다.
약점을 터트려줬으니 심심하게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까톡!
한 가지 필연적인 부작용은 있다.
* * *
역풍이 들이닥친다.
―진우vs지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우 갠방갤 봤음?
"여기서 갠방갤 얘기하지 마세요. 눈치 한 번 드립니다."
―저걸 대놓고 말하네
―강퇴 안 하누
―ㅋㅋ 본 거 같은데
―갓직히 꼬시다 ㅇㅈ?
일련의 소식.
안 퍼질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게 오정환의 방송이다.
'어쩐지 존나 맛없더라 X발.'
BJ김진우는 보라판의 상위권 BJ다.
개인 방송 갤러리의 파워 랭킹으로 따졌을 때 칠무해에는 반드시 들어간다.
하지만 남훈보다는 아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은호의이모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은호 님 저번에 맥주 맛없다고 하신 이유 알았음!
"나도 알아요 닥쳐요."
―ㅋㅋ
―갠방갤 봤구나?
―아니 X발 장금이도 홍시 맛이 난다고 말은 하는뎈ㅋㅋㅋㅋㅋㅋㅋ―은호도 개빡쳤네
지가 돈 많이 번다고 대놓고 자랑한다.
그런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위세.
보라판이라는 게 정치판과 똑같다.
마음에 안 들어도 겉으로는 웃는 척해야 한다.
'그 새끼는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풍 좀 더 받는다고 온갖 꼴값은 다 떨어대.'
뒤로는 칼을 갈면서 말이다.
그 도화선이 불 지펴진 것이다.
보라판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개인 방송 갤러리〕
―요즘 남훈이 민심 왜 이러냐?
―은호는 남훈 진짜 개싫어하는 거 같은데
―'그 새끼'는 그냥 돈 자랑하고 싶어서 명품 사는 거임―오정환이 진짜 조용히 엿 잘 먹임
.
.
.
눈꼴 시려웠던 게 사실이다
잘나간다.
많이 번다.
그것을 선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꼬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새끼'는 그냥 돈 자랑하고 싶어서 명품 사는 거임오정환이 돈 없다고?
그럼 유재석, 강호동 이런 애들은 돈이 없어서 라면에 환장하는 척하냐?
있어도 없는 척해야 하는 게 공인이고 연예인이지
그 새끼처럼 ㅈ도 아닌 새끼들이 더 있어 보이고 싶어서 명품에 집착함└조용히 올라가는 추신수
└아 그 새끼는 ㅇㅈ이지
└별풍 구걸해서 사는 별창 새끼가 뭐 그리 꺼드럭거리는지 몰라 └남훈이 명품 집착은 좀 심하긴 하더라
일반 시청자 중에서도 말이다.
여론이라는 것은 대개 한쪽 방향으로 확 기울어져 있다.
반대 방향은 애초에 목소리를 못 낸다.
개판 싸움이 일상인 보라판에서는 더더욱.
―요즘 남훈이 민심 왜 이러냐?
왜 갑자기 나락 감
└비싼 집+명품으로 고급 이미지 포장했는데 알고 보니 마시는 법도 모르면서 자랑한 거였음글쓴이― ㅇㅎ
└태생이 삐끼인데 뭘 알겠냐? ㅋㅋ
└오정환한테 개발렸지 뭐
그 계기가 생긴 것이다.
오정환.
명실상부한 파프리카TV 최고의 BJ다.
그의 발언은 파급력을 가진다.
보라판에 퍼지는 건 시간 문제에 불과했다.
'…….'
남훈도 일련의 사실을 전해 듣는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생일 파티의 여파.
자신을 최고의 BJ로 올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정환 vs 남훈 한 짤 정리. JPG
[오정환+샤코 합성. jpg]
마술 하나 보여줄까?
└환샤코 씹캐리 ㄷㄷ
└이 새끼는 존나 자연스럽게 보라 찍는 게 개지림ㅋㅋㅋㅋㅋ└나락 보내는 마술└공중파 진출 안 했으면 지금도 보라의 神이었을 텐데
판정패.
보라판 시청자들은 그렇게 떠들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일일이 반박을 해주고 싶지만.
"오늘 좀 기분이 별로네. 내일 보자."
―헐
―방금 부회장님이 만 개 쐈는데
―남훈이 컨디션 안 좋은갑다 내일 봐!
―팩트폭행이 아프긴 한가 보네 ㅎ
그러는 것도 꼴사납다.
어차피 자신의 주요 지갑인 여자 열혈들은 개인 방송 갤러리를 보지 않을 것이다.
'X발놈들이 진짜.'
긁어 부스럼.
사태를 키우면 안 된다.
하지만 열불이 나는 속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전쟁을 선포할 수는 없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던 BJ들이 괜히 깝죽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발끈해봤자 나만 우스워져.'
만에 하나 오정환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거야말로 최악이다.
명분도, 민심도 넘어가 있다.
지금 당장은 속을 삭이는 게 최선.
남훈은 평소 자주 들르던 클럽에 간다.
"형님, 오늘 좀 많이 드시네요."
"뭐쩌라고."
"그냥 그렇다는 거죠 헤헤. 형님 취하면 얘네들이 실망하잖아요."
클럽에서 일을 하던 자신이 클럽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상석.
VVIP 테이블에서 여자를 끼고 말이다.
"여캠들도 좀 부를까요?"
"그래 봐. 물이 별로다."
""우우~!""
"닥쳐, X발. 머리가 다 웅웅댄다."
그런 클럽녀.
다 질린 지 오래다.
어디 한두 번 놀아봤어야 망정이다.
최근에는 여캠들을 데리고 노는 게 취미다.
자신이 가지고 놀았던 애가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큼 희열이 없다.
'콘텐츠도 되고.'
X팔이는 메인 콘텐츠다.
물소 시청자들도 좋아하고, 여자들도 자신이 저 여자라고 몰입을 하며 지켜본다.
물론 선을 긋기에 가능하다.
너무 썸 쪽으로 가면 열혈 미친년들이 지랄발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 오는데?"
"형님이 마음이 드셨다는 애들 다~ 작업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누구?"
"일단 시아랑요."
"……."
하지만 사석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자신의 얼굴로 꼬시는데 안 넘어올 년이 없다.
'이 X발년이.'
그럴 작정이었다.
시아는 꽤 눈여겨보고 있었다.
예쁘장하고 때가 별로 안 탄 년들.
맛을 보는 것이 제법 즐겁다.
하꼬 여캠인 시아라는 년도 마음에 둔 대상 중 하나였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본인이 의도했단 안 했든 거슬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년 있지."
"네?"
"철저하게 왕따시켜."
"……네?"
"귓구멍에 구멍 뚫어줄까?"
"아, 아닙니다. 알아들었습니다!"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