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화
이자카야집 오야스미.
"그럼 음식은 문제가 없는 거죠?"
"이렇게 계속할 수 있으면."
"아, 당연하죠. 절대 초심 안 잃습니다!"
사장인 이성덕은 골목식당 출연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 뜨기 위함.
실력에 자신이 있다.
완벽하다는 건 아니지만, 천종원의 조언 정도는 충분히 수행 가능하다.
'요즘 세상에 천종원 말 안 따르면 민심 나락이지.'
대한민국은 거의 천종원 공화국이 돼버렸다.
특히 요식업계에서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시청자 민심도 꽉 잡았다.
가끔씩 골목식당 출연자들이 대드는데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생맥주는 관리를 잘하셨다는 게 느껴지네요."
"정말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저희 집은."
아주 철저하게 수행했다.
카메라도 의식해서 호감이 되는 이미지를 쌓으려고 하고 있다.
천종원 수제자 자리를 노린다.
그렇게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장사도 대박이 날 텐데.
'너는 진짜 너무 날먹 아니냐?'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오정환.
성덕도 그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다.
주류 전문가라는 컨셉으로 나온다.
하지만 진짜 술집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면 다음도 먹어볼까요?"
"네? 뭘……."
"역시 이자카야에 오면 하이볼을 마셔봐야겠죠."
"하이볼도 딱히 문제가 없는데요."
"네, 좀 부탁드릴게요."
"일단 예……,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 정도는 기본이다.
장사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생맥주 청소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거품맥주는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실질적인 맛 차이가 없다.
진짜 거품은 오정환한테 끼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숟가락을 얹는다.
〔시청자 게시판〕
―오정환은 왜 계속 나오는 건가요?
―저는 주류팁도 은근 재밌던데
―정환 씨가 로컬푸드 때부터 종원 씨와 연이 깊었죠 ㅎㅎ―이이잉~ 기모링~!
.
.
.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나온다.
오정환이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것.
―오정환은 왜 계속 나오는 건가요?
생맥주 뭐 어쩌고 하는데
일반인도 충분히 알 법한 것 같고
거품맥주도 듣기로 별맛 차이 없다던데
└직접 맛본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확신에 차서 말하나요└가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죠└맛있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앞으로 보여주겠죠~ 뭘 그리 깐깐하신지
천종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대중에게 인정받았다.
요식업 지식은 물론,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에 반해 오정환.
여러 프로그램에서 지식 자랑은 했다.
하지만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닌지.
'장사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신뢰라는 것은 그리 쉽게 쌓이지 않는다.
의심 어린 여론.
이성덕은 그에 동조하고 있다.
꼴꼴꼴~
하이볼을 만든다.
얼음을 넣은 하이볼잔에 산토리를 소주 한 잔 분량만큼 따른다.
딸칵!
쏴아―!
그리고 토닉워터를 한 캔 따서 붓는다.
이자카야에서 하이볼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여기 하이볼 나왔습니다!"
"잘 마실게요."
"역시 이자카야에 오면 하이볼을 마셔야 하거든~"
자신의 술은 전혀 문제가 없다.
오정환이 몇 가지 사소한 단점을 짚을 수는 있겠지만.
'기껏해야 레몬 넣으라거나 하겠지.'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걸 가지고 유세를 떠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음~ 이거 재밌네."
"맛이 좀 괜찮으신가요?"
"일본에서 먹었던 거랑 다르긴 한데 신기하게 계속 땡겨."
천종원 선생님도 맛있게 잘 드시고 있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특유의 표현을 한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하이볼을 말아봐도 될까요?"
"뭐, 네……."
"이걸 만다고 표현해?"
"그게 입에 쫙쫙 붙잖아요."
"그렇긴 하지 흐흐."
그럼에도 나서고 있다.
촬영 중이기 때문에 막아설 수 없다는 게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뭔 또 얼마나 자랑을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아이스박스와 함께 말이다.
잠시 후, 하이볼 두 잔을 가지고 나온다.
꿀꺽! 꿀꺽!
시음의 시간.
얼떨결에 자신도 맛을 보게 된다.
천종원이 먼저 하이볼잔을 내려놓는다.
"흐흐흐, 이 맛이거든. 일본에서 먹었던 거랑 똑같은데?"
"그러실 거예요."
"……."
극찬을 한다.
완전 일본식.
오리지날에 가깝다며 야단법석을 떤다.
'맛없는데……?'
자신의 입맛에는 그저 그렇다.
목 넘김이 시원하긴 하지만 맛이 떫고 혀가 아리다.
"사실 이건 한국인들의 입맛에 좀 안 맞을 수 있어요."
"응?"
"일본에서 하이볼은 강탄산과 레몬만으로 맛을 내거든요."
그리고 이러저러 이야기를 한다.
술잘알 컨셉.
방송에서 유식한 모습으로 나올 만도 하다.
'내 하이볼이 더 맛있는 거 같은데.'
아무리 마셔봐도 그러하다.
나름대로 잡지식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실전은 맹물 같아 보인다.
"맛이 제 입맛이 아니라서 저희 가게에서 쓰긴 좀 그런데요."
"일단 원형을 보여드린 거고, 이제 파생 레시피를 보여드릴 건데."
"솔직히 하이볼은 누가 만들어도 비슷하잖아요? 그리고 복잡한 건 가게에서 못해요."
손을 저으며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럴 경우 골목식당은 대개 대결 구도를 유도한다.
'내가 오정환을 상대로 똬악 이겨주면.'
큰 이슈가 된다.
천종원과 달리 부작용도 없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좋아할지도 모른다.
자신만 해도 그러하다.
오정환에게 한 방을 먹여주면 아주 속 시원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 * *
하이볼.
이자카야에 가면 거의 반드시 있는 주류 메뉴다.
"3잔씩 만들어주세요. 3잔씩."
"알겠습니다."
"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위스키에 탄산음료를 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회전률이 중요한 술집에서도 서비스할 수 있지.'
이미 일본 쪽에서는 대중화가 되어있다.
맥주만큼이나 잘 팔리는 인기 메뉴다.
꼴꼴꼴~
때문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맛까지 챙겨야 하는 이중 과제.
'달게 만드는 편이 확실히 호불호가 적긴 해.'
단맛은 웬만한 단점을 다 덮어준다.
천종원 선생님이 괜히 설탕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서걱!
그리고 신맛.
방금 전과 다른 레시피를 선보이고 있다.
사장님이 레몬을 썬다.
"자~ 하이볼 나왔습니다!"
"여기 두시면 저희가 평가단에게 공정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어느 쪽이 만들었는지 평가단이 알 수 없게요."
단맛을 눌러서 밸런스를 잡아준다.
자신의 하이볼에 자신감을 엿보였을 만도 하다.
'훈수 두는 게 싫은 사람도 있어.'
간섭.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음식집 사장님 치고 고집 없는 사람은 없다.
그걸 증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천종원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나와도 불쾌하다.
하물며 하이볼 한 잔에 불과하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따져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꿀꺽! 꿀꺽!
평가단이 하이볼을 마신다.
먼저 사장님이 만든 이 집의 하이볼.
"어? 이거."
"먹어본 맛이다. 그치?"
"응! 응! 나도 이자카야에서 마셔봤어."
한국 이자카야에서 파는 일반적인 맛이다.
여대생 그룹이 데자뷰를 느낄 만도 하다.
"사장님 하이볼 반응이 좋은데요?"
"아~ 제가 천종원 선생님 시식 때는 깜빡 잊고 넣지 않았는데 레몬을 좀 썰어서 넣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정환 씨 따라 하신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진짜 까먹은 거예요."
실제로 평도 괜찮다.
익숙한 맛이라는 것은 큰 어드밴티지를 가진다.
'팜유 초콜릿이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한국 과자 회사들.
원가 절감을 목적으로 카카오버터 대신 기름야자를 짠 팜유를 사용한다.
어렸을 때 먹은 초콜릿이 다 그것이다.
그 맛이 익숙해져서 팜유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꿀꺽! 꿀꺽!
하지만 제대로 만든 식품을 먹어본다면 바뀔 수 있다.
입맛의 장벽을 한 번 두들겨본다.
"이건 좀 맛이."
"별로 안 단데?"
"그러네. 먹어본 맛은 아니야."
여대생 평가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처음 한 입은 당황할 수 있는 노릇이다.
"B의 평가가 약간……."
"정환이 위험한 거 아니야?"
"하하."
아니면 술맛도 모르는 빡대가리년들일 수도 있다.
그냥 설탕 왕창 처넣으면 좋아한다든가.
'먹어보면 알아.'
A가 보다 자극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두 잔의 맛을 천천히 비교해보면.
"나는 A."
"그래? 나는 B."
"어, 왜?"
"별로 안 달아서 마시기가 더 편해. 그리고 더 청량감이 있는 느낌?"
"나도 B!"
알 수 있다.
공을 들여 만든 한 잔의 맛은 깊이부터가 다르기 마련이다.
"저는 B입니다."
"A는 너무 달아."
"하이볼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나는 B 쪽이면 좋겠는데."
다른 평가단도 온다.
여러 테이블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시식이 진행된다.
"첫맛은 A가 좋았는데."
"좀 물린다."
"맞아. 이렇게 달면 칼로리도 높은 것 같고."
"나는 B에 한 표.
내가 만든 B가 큰 득점 차이로 리드하고 있다.
이를 보는 사장님의 표정이 굳는다.
"자~ 정환 씨가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인 입맛에 잘 안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
"저도 레시피를 개량했거든요."
레시피는 사장님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약간의 개량 작업을 진행했다.
'간단함에는 간단함의 미학이 있어.'
하이볼도 칵테일의 일종이다.
아무리 기초적인 칵테일이라고 해도 만드는 과정의 영향을 받는다.
토닉워터 대신 진저에일을 넣었다.
생강맛이 살짝 나는 사이다로 하이볼에 잘 어울린다.
꿀꺽! 꿀꺽!
나의 승리가 결정된다.
MC들에게도 하이볼이 나온다.
직접 먹어보며 비교해보기 위함.
"그리고 탄산수를 섞어서 단맛을 좀 줄여봤어요."
"확실히 그러네요! 하이볼이 금방 물려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정환이가 만든 게 더 입에 붙네."
"……."
만장일치로 정해진다.
단 한 명, 아직까지 입을 댓발 내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 탄산이 좀 더 센 거 같아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ㅋㅋ
우리 봄이도 상황실에 있다.
이자카야 음식은 전혀 먹지 못했지만, 하이볼 한 잔의 기쁨은 허락되었다.
'봄이가 날카롭지.'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걸 꾸역꾸역 먹어 대서 나름대로 미식가다.
이 하이볼의 포인트를 잘 잡아냈다.
"사장님 결과에 승복하십니까?"
"……네."
"좀 시원스럽게 말해주셔야 정환 씨도 레시피를 전수해 드리거든요."
"아니, 근데 진짜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그걸 확 캐치하지 못하더라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장님이 하이볼을 마셔본다.
눈이 큼지막하게 떠진다.
패배를 받아들인다.
상황실에서 주방을 이동한다.
이 하이볼을 만든 레시피를 전수해주기 위함이다.
"근데 너무 복잡하면 저희 가게에서 못 쓰는데요. 제가 어찌저찌 배워도 알바한테는 가르쳐주기 힘들고."
"사장님이 아직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거의 씨지맥 급이네요."
여전히 투덜투덜대고 있다.
김정주 씨가 특유의 깐족거림으로 얄밉게 신경을 긁는다.
사장님의 말도 일리가 있다.
메인 메뉴와 달리 주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안 된다.
'이자카야의 하이볼보다 바의 하이볼이 당연히 더 맛은 있겠지.'
바텐더가 정성스레 만들어주는 한 잔.
이자카야의 것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하지만 만드는 수고.
들어가는 비용.
심지어 기술까지 필요하니 따라 할 수 없다.
승리 조건이 까다롭다.
확실한 맛 차이를 보여주며 레시피까지 간단해야 한다.
꼴꼴꼴~!
그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시킨다.
업장의 사정을 고려하며 레시피를 전수하는 것이 골목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