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화
화요미식회 녹화.
"제가 술 전문가로 나왔는데……, 잠깐 음식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네! 뭐, 안 될 거 있나요?"
"오늘 주제인 김치찌개는 물론이고, 한식에는 김치를 빼놓을 수가 없죠."
교이쿠상의 빈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시청자 게시판〕
―일본인으로서 굉장히 불쾌하므니다
―교이쿠상 계실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 화요미식회도 재밌긴 하지만
―조센징TV 교이쿠상 없이 방송 못하는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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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화요미식회는 굉장히 오래된 프로그램이고, 고정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이 나온다.
―일본인으로서 굉장히 불쾌하므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 있스므니다
교이쿠상 나와야 하므니다
한일 관계 문제 생기는 www
└동의하므니다
└한국 음식 일본에서 온 www
└교이쿠상은 팬들도 극우인가요?
└화요미식회는 한국 프로그램입니다
세간의 이슈.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다.
그것을 포함해도 방송의 재미를 우선시하는 사람도 있다.
'알고 보니 전부 일본에서 왔다면 얼마나 재밌겠어.'
그가 맡고 있는 포지션도 있다.
음식 전문가로서 흥미진진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김치가 김치 워리어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마케팅 때문에 젊은 층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되긴 했는데."
"김치 워리어 하하핳!"
"현무 씨, 진지한 얘기하는데 웃으시면 안 되죠!"
나도 그러한 역할을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기존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가 있어요."
"무슨 이유죠?"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나 중국의 파오차이도 겉보기에는 비슷한 채소 절임이긴 한데."
음식에 관해서도 웬만큼은 알고 있다.
적어도 깊게 파다가 일본 쪽 수도관을 건들지는 않는다.
'김치가 의외로 대단한 식품이야.'
Do you know Kimchi? 같은 뻘짓만 안 했어도 진즉에 세계화가 됐을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찌익―!
자료 화면.
고무장갑으로 김치를 찢는다.
그 안에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과 같은 양념만 있는 게 아니다.
"김치에는 까나리액젓이랑 새우젓이 들어가고, 지역에 따라서는 조기젓이나 밴댕이젓 같은 것도 넣잖아요?"
"아따 전라도 김치가 그런 맛이그라!"
"이렇게 동물성 재료를 쓰는 채소 절임이 세계적으로 사례가 거의 없어요."
한국인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잘 썩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춧가루랑 소금으로 버무리니까.'
동물성 재료의 감칠맛을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 맛이 변화는 발효까지 일어난다.
외국 셰프들이 김치를 괜히 흥미롭게 바라보는 게 아니다.
보글보글!
오늘의 주제.
김치찌개가 자료 화면에서 맛있게 끓고 있다.
김치 특유의 깊은 맛은 완성된 요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김치찌개는 반드시 묵은지로 만들려고 하잖아요?"
"그렇죠."
"묵은지를 안 쓰면 맛이 안 살거든~"
"그게 결국 감칠맛 때문이에요. 따라서 김치가 들어간 요리는 맛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주류 문화에도 말이다.
음식 설명을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이다.
내 캐릭터는 내 캐릭터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교이쿠상과는 당연히 차별성이 필요하다.
'김치가 맛이 복잡한 음식이지.'
똑같이 향이 복잡한 술은 맞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 음식과도 페어링을 맞추는 와인이 한식과는 유독 친하지 않다.
"김치 들어간 음식에는 소주."
"캬아~!"
"역시 찌개는 소주죠."
"기분을 낼 때는 전통주나 일품진로 같은 프리미엄 소주도 추천드립니다. 복잡한 맛을 소주가 깔끔하게 씻어줘서 질리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가 있어요."
"아, 소주 마시면 안주가 땡기는 게 그래서!"
신의 물방울 같은 데서 억지로 맞춘 것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마리아주가 되는 와인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뭐, 그런 느낌."
PPL도 겸하고 있다.
소주 회사들의 입김이 막강하다.
그것을 포함해도 실제로 한식에는 소주가 잘 맞는다.
보드카는 무미무취라 향을 씻어주지 못한다.
소주는 마치 밥 한 숟가락을 먹은 것처럼 입안을 리셋시킨다.
"오정환 씨 혹시 최근에 소주 광고 찍으신 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니겠죠?"
"소주 광고를 찍었어요? 그거 탑스타들도 잘 안 시켜주는 건데……."
"그것과 상관없이 제 소신을 건 추천입니다."
"어~?"
"지금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술과 같이 먹는 것이 정설이다.
소주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한식과 어울린다.
'원래 받은 만큼 하는 거지.'
PD도 요구를 했다.
주류 회사가 워낙 큰손이라 잘 보일 수 있으면 방송사 입장에서 정말 좋다.
혹시 나올 수 있는 의혹을 미리 차단한다.
MC인 난현무가 능청스럽게 멘트를 친다.
"어 정환 씨!"
"네, PD님."
"수고 많았어. 정환 씨 덕분에 우리 프로그램이 광고가 마르지가 않아."
미식 프로그램이다.
술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인데 뭐 어쩌겠어.'
방송 업계의 활동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전통 미디어다 보니 촬영이 꽤 빡빡하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집에 가자마자 푼다.
한가하게 누워서 TV.
"읍읍!"
"기다렸어? 착하지."
속박 플레이 중인 리아가 누워있다.
샤워를 하고 돌아와 에어컨을 틀고 꼭 껴안는다.
'이게 극락이지.'
착용감이 좋은 베개다.
피부도 부드럽고 지방층이 고르게 퍼져 있어 촉감도 뛰어나다.
"입은 왜 막아요 진짜!"
"그래야 플레이하는 느낌이 나잖아."
조금 시끄럽다는 단점은 있다.
몇 시간이나 묶여있다 보니 꽤나 갑갑했던 모양이다.
'땀도 나고.'
매혹적인 페로몬이다.
혈액 순환에 큰 도움을 준다.
"채널도 못 돌리게 하고 진짜."
"리모콘 안 쥐어줬어? 심심했겠네."
"5시간 동안 다큐멘터리만 본 제 마음을 알아요?"
베개가 버둥거린다.
살결이 마찰을 하자 흥분감이 배가 된다.
'개지리긴 해.'
만약 힘이 들어가기까지 했다면 내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오빠가 재밌는 거 보여줄 테니까 화 풀어."
"아앙~! 진짜 지금도 오줌 마려운데……."
"베개가 말을 하네."
자극이 부족할 때는 배 위를 꽉 잡아주면 된다.
뱃살이 없어서 피부층 하나 아래로 느껴진다.
"재밌는 게 뭔데요?"
"영상, 보면서 같이 즐기자고."
"그런 플레이면 말을 하지♡"
리아는 재미있다.
나의 취향대로 개발된 몸은 어느 곳도 손을 가만 있게 두질 않는다.
'그래도 좀 많이 해서.'
자극이 부족하다.
커플 사이에서도 권태기가 올 때 영상을 보면 신선한 자극이 된다.
채널을 돌린다.
큰 TV 화면으로 감상한다.
"쟤……, 걔 아니에요?"
"누구?"
"흉가 간 애 있잖아요 여캠! 정말 못됐어! 어린 애한테 손대고."
"아니야. 쟤가 들이댄 거야."
시아.
즐겁게 보냈던 한때가 나온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삭막해도 가끔은 자급자족을 해야지.'
리아가 나를 찰싹찰싹 때린다.
잘한 것은 없지만, 잘못한 것도 없다.
"저렇게 해대면 맛 들릴 텐데."
"안 그래도 그 소리하더라. 비슷한 느낌 나려면 1시간은 해야 된다고. 좀 깨지?"
"깨는 건 오빠거든요!"
베개가 자꾸 토를 탄다.
컬렉터로서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리아는 공감대가 있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한다.
"다음은 서양물."
"어? 나 쟤 어디서 봤는데."
"비정상인회담."
"이제는 하다 하다 연예인도 건드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 내가 키운 거야."
화를 내는 이유가 비단 한 가지는 아닐 것이다.
삐진 리아를 달래준다.
'지도 저렇게 짐승처럼 하고 싶으면서.'
아나스타샤도 서양인이라 그런지 서양물에 나오는 배우처럼 리액션이 격한 편이다.
리아를 안은 채 감상한다.
이제 겨우 두 편째.
그렇게 정신이 혼미하던 리아의 눈이 번쩍 떠진다.
"저 사람 설마."
"알아?
"당연히 알죠! 코스프레……, 죠?"
"아니야, 진짜야."
어찌나 놀랐는지 움직인다.
요즘 민솔이가 꽤 잘나가고 있기는 하다.
'바빠서 만나지도 못한다면서 톡으로는 자꾸 칭얼대.'
오죽하면 폰으로까지 해줘야 한다.
생각보다 의존도가 높은 타입이었다.
"여배우는 또 어떻게 꼬신 거예요."
"다 방법이 있지."
"자랑이에요?"
"이 정도면 자랑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아 정말!"
드라마에서 나오던 지적인 현대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충격적이다.
'사람이 가끔 일탈이 필요해.'
대중이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방송인은 특히 더 갑갑한 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해주는 것이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스트레스가 쌓이다 터지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하다.
"오빠 땜에 나 드라마 못 보잖아요! 쟤 볼 때마다 생각 나서 어떻게 봐."
"그래서 더 재밌는 거 아니야?"
"그건 오빠겠죠!"
연예계는 몰라도 BJ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큰 악영향을 미친다.
'BJ이라는 일이 정말 막막하거든.'
일반적인 직업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후회를 할 때가 생긴다.
길을 잃는 것이다.
그럴 때 바로잡아주고 목표가 되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리아랑 동시기에 활동하던 여캠들 다 나락 갔잖아."
"그렇긴……, 한데."
"오빠가 리아를 잘 키워줘서 그래."
"성욕도 키웠잖아요!"
성욕도 중요하다.
특히 보라판.
얼굴 반반하고, 몸 좋은 애들투성이인데 사람인 이상 그런 마음이 든다.
'내가 잘 달래주잖아.'
성욕도 사람의 기본 욕구 중 하나다.
무시할 것도, 천시할 것도 아니다.
제때 푸는 편이 당연히 좋다.
"그냥 예쁜 애들한테 다 작업 치는 거 아니에요?"
"리아처럼?"
"아, 아앙 정말. 이러다 걔한테도 손대는 거 아닌가 몰라."
"걔가 누군데?"
조금 과격해도 말이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확실하게 풀려서 평소에 딴 생각을 안 한다.
"남훈 오빠 알죠? 오빠가 싫어할 수는 있는데."
"아는데 왜?"
"요즘 합방 하는데 엄청 핫하더라고요. 나도 시청자 뺏겨서 짜증나."
"으음~"
새로운 대상이 포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