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85화 (785/846)

785화

신입생 환영회.

"전설적인 대선배! 삼선전자 이사를 지내고 계신 황의조 선배님께서 어려운 걸음 해주셨습니다!"

"허허, 그냥 시간이 썩어 나서 온 거지."

학과의 선배들이 대선배님의 참석을 띄워준다.

유명 대기업의 이사라는 말에 테이블 이곳저곳이 시끄러워진다.

"와 삼선전자 이사면 연봉 얼마냐?"

"연봉이 문제겠냐……. 그냥 그 자체로 대단한 거지."

"응 그래 봤자 퇴직하면 치킨집~"

신입생들 입장에서는 대단해 보인다.

취준생들 입장에서는 혹시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잘 보이면 좀 꽂아 주려나? 요즘 취직도 안 된다는데.'

'아니, 나 진짜 대기업은 가야 되는데.'

'삼선 들어가면 라인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졸업 전에 일자리를 미리 알아봐 놔야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기왕 사회 생활을 한다면 당연히 대기업이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화제인데.

"너흰 신입생 중에 누구 찍어 놨냐?"

"뭐……, 신입생?"

"미쳤어??"

오직 한 테이블만이 다른 화제를 떠들고 있다.

2학년의 남학생 그룹이다.

"쟤네 얼마 전까지 고딩이었어."

"오늘 입학식 했는데 일단 통성명은 해야지."

"니들이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쟤네가 세상물정 알게 되면 우리 차례 오지도 않아."

"넌 진짜 제대로 미친 새끼다."

한창 청춘을 불태우고 싶을 때.

하지만 같은 학년끼리 사귀면 대개 남자 쪽이 손해를 본다.

정치학적인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리스크가 있는 선택보다는 귀여운 후배 쪽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당연히 그러고는 싶은데.'

그러한 로망이 없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나는 쟤야 쟤."

"뭐?"

"진짜 미쳤네."

"그래도 최소한 급이라는 게 맞아야지. 너 같으면 쟤가 너랑 사귀겠냐?"

동기 중 한 명이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나머지 친구들이 뜯어말릴 만도 하다.

'지금 아니면 평생 기회 안 와 븅신들아.'

그 당사자만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숨을 푹 쉬며 친구들을 훑어본다.

"내가 뭐 사귄데?"

"그럼 뭐."

"너 설마……."

"그 설마지."

신입생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

나름 컷이 있는 학교인 만큼 대부분 우등생이었을 것이다.

술도 처음 마셔본다.

주량 조절이 당연히 힘들다.

자신들도 다 1학년 때 한 번씩 해본 실수다.

'술을 잘 먹여서 어떻게 잘 해보는 거지.'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굳이 사귀지 않더라도 할 수 있고, 여차하면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면 된다.

"너의 장대한 꿈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아."

"비판하겠다는 거네."

"3학년에 무진 형 알지?

"모르겠냐? 그 X새끼를."

"그 선배도 OT 때 집적거리다가 개까였어."

"나도 증인임."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개쓰레기로 낙인 찍혀서 도피성 입대를 하게 될 가능성도 유의미하게 있다.

파악!

그럼에도 하겠다.

두 손으로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선다.

전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이 혀를 찬다.

"농담이 아니었네."

"쟤는 오늘만 살아."

"아니, 그래도 좀 넘어갈 나무를 고르든가."

마음 같아서는 응원해주고 싶다.

친구의 도전을 비웃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도라는 게 있다.

친구가 노리고 있는 대상을 바라본다.

이번 신입생 중에서~

그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승우는 본 적이 있다.

1주일 전, OT에 갔을 때 말이다.

올해 신입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똘똘할까?

그런 걸 신경 쓰는 선배는 없는 법이다.

그냥 비주얼.

성비는 어떻고, 예쁜 애는 얼마나 있고, 잘생긴 애는 또 얼마나 있나!

처음부터 돋보였다.

보통이었으면 대충 입었다고 생각할 점퍼와 청바지 차림조차 빛났다.

"그때 무진 형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라고 지랄염병 이단옆차기를 했지."

"먼저 체해줘서 좋더라고."

기럭지며 라인이며 예술이었다.

하지만 원래 여자는 뒷모습 보정이 200%인 법.

그리고 신입생들은 대개 꾸미는 법이 미숙하다.

이성으로 생각되기엔 아직 어리다.

'하, 진짜…….'

그렇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푹 눌러 쓴 청모자를 처음 벗었을 때의 임팩트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연예인급 비주얼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던 것 같다.

OT에서 최대 화젯거리가 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부 선배들은 계획까지 짰다.

아무리 예뻐도 신입생.

한참 파릇파릇할 때는 벽이 비교적 낮다.

"난 그때 느꼈어. 사람은 주제 파악을 하고 살아야 되는구나."

"그 형 아직도 재입대 한다고 설치고 있냐?"

"무진어택이라고 놀림 받는 건 확실해."

그조차 터무니없이 높았던 것이다.

술은 또 어찌나 잘 마시는지 허튼 개수작도 통하지 않는다.

《선배, 그거는 달고 있어?》

깊은 마음의 상처.

이상형의 입을 통해 들은 역성추행은 상상 이상으로 대미지가 깊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1주일간 안 잡혔는데.'

자존감이 푹! 바닥까지 꺼져 버린다.

소주잔을 까딱까딱 흔들던 표정까지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예쁜 여자를 볼 때마다 겹쳐 보인다.

야동 속 배우도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 같아서 꼬무룩해진다.

완전히 트라우마.

그 선배는 어떻게 됐을지.

짐작을 해보는 것이 더 잔인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어차피 실패할 거니까? 1% 확률을 노려보겠다 뭐 그런 거?"

"아니, 쟤 어지간히 껄떡대고 다니잖아. 그러다가 선배들한테 찍히고."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전부 헛소리였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OT에 참석하지 않았던 저 친구는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이유도 여자 문제로 찍혀서.

"애들아~"

"왔냐?"

"그러게 내가 뭐랬냐……. 차라리 좀 현실성 있는 도전을 하든가."

원정을 나갔던 친구가 돌아온다.

빈손인 걸로 봐서 역시나 예상대로 돼버린 모양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왔을지.

괜히 추측해서 같이 마음의 상처를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거기 존나 커!"

"리얼?"

"헐렁한 거 입고 있어서 잘 모르겠던데……."

"난 보면 알지. 저건 그냥 우주의 신비야."

억지로 밝은 척을 한다.

보나 마나 개까이고 성희롱이라도 하려는 걸지 모른다.

'딱한 녀석.'

밉살스러운 짓을 하기는 해도 친구다.

슬플 때는 같이 한 잔 적셔줘야 하는 법이다.

소맥 한 잔을 말아준다.

안주도 집어서 앞접시에 준다.

챙겨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됐고, 나 먼저 간다."

"어?"

"어딜?"

"친애하는 후배께서 잔뜩 취하셨는데 선배 된 도리로 바래다줘야지. 난 간다 븅신들아~"

""…….""

다른 것을 적시러 떠났다.

생구라를 내뱉는 게 아닌지.

아니면 무슨 착오가 있는 게 아닌지.

'말도 안 돼!'

OT 때 임팩트가 오죽했으면 입학을 하기도 전부터 소문이 쫙 퍼졌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신입생이 있다고.

아예 신포도가 돼버렸다.

좋은 소문, 나쁜 소문.

연예인 준비생이라든가, 회장님 손녀라든가, 남자를 후리고 다닌다든가 별의별 소리가 다 생기고 있다.

친구가 그 장본인의 어깨를 부축하고 음식점 밖으로 나가고 있다.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 사라질 때까지 입을 떼지 못한다.

"진짜……, 뭐 된 거야?"

"그러게."

"모텔 데려가는 건 아니겠지?"

"쟤는 그러고도 남기는 한데."

홈런을 치러 간 걸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렇다면 부러워 죽을 노릇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어서 뜨뜻미지근하다.

저렇게 쉽게 됐다면 짜고 쳤던 선배들이 그렇게 된통 당했을까?

떨떠름한 승우의 머릿속에 문뜩 무언가가 떠오른다.

'저 신입생 술이 저렇게 약했었나……?'

* * *

남훈은 칼을 갈고 준비했다.

딸칵!

화려한 조명.

여캠다운 의상.

그녀의 매력을 백분 끌어 올려줄 것이다.

'여캠년들이 괜히 그런 걸 하겠냐고.'

보정 효과가 엄청나다.

가끔 보면 사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년들도 있다.

다 알고서 아닌 척해주는 것이다.

여자 뽕 보고 실망을 할 만큼 적게 벗겨 보지 않았거니와.

―여캠흑우님, 별풍선 2828개 감사합니다!

진짜 너무 고우시다……

"왜 반응이 없어. 예쁘다는 소리 너무 들어 가지고 질린 거야?"

"고맙다."

―고맙대 ㅋㅋ

―캬 개쿨하누

―철벽좌는 너무 예뻐서 그래도 됨ㅋㅋㅋㅋㅋㅋㅋ

―표정만 좀 펴면 ㅠㅠ

합당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맡기려는 업체.

대주겠다는 화끈한 제안.

'하고 싶다는 년들이 줄을 섰다니까?'

후자는 정말 어지간한 경우 아니면 관심이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직접 꼬실 자신이 있다.

받는 것은 대개 돈이다.

여캠들의 수익 상승률을 생각하면 자신이 받는 건 큰 액수도 아니다.

"나도 솔직히 좀 생겼잖아? 아니, 까놓고 말해서. 그래서 아는데 너무 잘생기고 예쁜 애들은 들어도 덤덤해. 상황에 따라서는 안 좋은 쪽으로 해석이 될 때고 있고. 그렇지?"

"……."

―관심 없다는데?

―남훈이 외모는 ㅇㅈ하지

―여자가 피해망상이 좀 있나 보네

―남훈이 같은 남자 어디서 못 만나요!

그만한 걸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찐텐으로 조명과 의상까지 챙겨주며 띄워준다.

순풍가도.

자신의 인생은 술술 풀렸다.

가을은 처음 만나보는 시련과도 같은 존재다.

'나처럼 이해심 깊은 남자 어디 없다니까?'

그렇기에 반드시 넘어서고 싶다.

이 합방을 성공시킨다면 그녀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철벽♡참치님, 별풍선 10002개 감사합니다!

철벽아 회장 왔다 인사 좀 해줘라 ㅋㅋ

"안녕하세요."

―오

―이건 해주넼ㅋㅋㅋㅋㅋㅋㅋㅋ

―회장이라고 존댓말 써주는 거봐 대박

―1만 개 리액션 실화냐 ^^ㅣX

돈맛.

일반인들은 1년을 노예처럼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 단 하루만에 통장에 찍히기도 한다.

'그런 하찮은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받아보면 알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고정 시청자가 붙었다.

큰손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금만 해도 1만 개를 받았다.

일반인이 1주일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을까 말까 한 돈이 한순간에 꽂힌 것이다.

"아니, 이런 거 받으면서 최소한 춤이라도 춰야지. 골반은 존나 잘 흔들더니 춤은 못 춰?"

"추고 싶으면 추겠지."

무성의한 태도.

그조차 하나의 컨셉으로 해석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워낙 얼굴이 받쳐주다 보니 그렇게 되고 있다.

'알고 나면 고마움을 느끼겠지.'

심익태도 말을 했다.

이쪽 세계에서 한번 살아보면 사고 구조가 바뀔 거라고 말이다.

"진짜 왜 이렇게 까탈스러운 거야? 나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그렇고 너의 마음을 열어주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그래."

―진짜 좀 심하긴 함ㅋㅋ

―몇 만 개 쏴야 빵댕이 흔들어줌?

―이쯤 되면 진짜 구제가 가능한가 싶다

―독한 년

시간 문제.

그녀가 안고 있는 사정도 파악했다.

가정 사정뿐만 아니라 추측 가는 바가 있다.

'보통 콩가루 집안인 애들이 남친한테 집착이 쩔거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본다면 그러하다.

가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반응이 있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묻는 건데."

"그래."

"전 남친 때문에 남혐에 걸렸다! 이 부분 반박하실 말 있습니까?"

"신경 꺼."

이렇듯 말이다.

시청자들의 눈에는 잘 안 보였겠지만 자신의 눈에는 보였다.

긴 속눈썹 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래, 얘도 사람인데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진 않겠지.'

확실하다.

과거의 상처를 자신이 케어해준다면 그녀의 마음도 서서히 열릴 것이다.

꼴꼴꼴~

입이 가벼워지는데 술만 한 것이 없다.

알딸딸해졌을 때 타이밍을 봐서 물어본다.

"구체적인 사연을 말하라는 게 아니라 감정 정도는 토해낼 수 있잖아. 욕 같이 해주는 거 씹가능!"

"……."

―도대체 뭔 일이길래

―전 남친 문제로 몰아가네 ㅋㅋ

―반응 보니 진짜 같은데

―얼마나 존잘이길래 이런 여친을 사귀지 ㄷㄷ

방송도 말이다.

시청자들도 대단히 궁금해하고 있다.

아니, 자신이 더.

반응이 굼뜨다.

하지만 이전까지와는 다르다.

아예 대놓고 무시하진 않고 있다.

5초쯤 기다렸을까.

가을이 위스키를 벌컥 들이키며 내뱉는다.

"정말 빌어먹을 X새끼긴 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