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89화 (789/846)

789화

코인 노래방.

강남에서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다.

'굳이 클럽까지 가지 않아도.'

꾸미고 다니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든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주머니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코노는 좋은 놀이터다.

예쁜 애들이 꽤 많이 와서 몇몇 곳은 정말 수질이 괜찮다.

"오정환이다 오정환!"

"오정환 떴어 미쳤어!!"

좀 어리다는 단점은 있다.

딱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신이 나서 쳐다본다.

"조용히 좀 해봐."

"꺄아악~!! 진짜야 진짜!!"

"오빠 데이트 하는 중이잖아."

"스캔들이에요?"

"대박!"

"너희들 때문에 뜰 것 같아."

―찐고딩 뭔뎈ㅋㅋㅋㅋㅋㅋㅋ

―하이 텐션 보소

―껌 좀 씹는 언니들 같은데

―옆의 누나랑 180도 다르누

다운돼있던 분위기가 강제로 끌어올려진다.

급식들의 활기를 조금 빌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갑다.

차에서 내린 후부터는 잡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거 무서운 언니."

"……."

"애들 보는데 얼굴 좀 풀고 생글생글 웃든가 아니면 평소처럼 심드렁한 표정이라도 하고 있든가."

"여친이랑 싸웠어요?"

"언니 존나 예쁘다!"

"헐 졸예. 화장품 뭐 써요?"

찐 급식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쪽도 무서운 언니겠지만 적어도 지금 가리키는 대상은 하나다.

조금 더 빌린다.

―보라보는구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심드렁한 표정 이거 씹인정ㅋㅋㅋㅋㅋㅋㅋ

"세상 모든 것이 귀찮다는 그 표정 있잖아. 이런 애들 집에 가면 방구석인지 쓰레기장인지 구분 안 되게 하고 살지."

"하거든?!"

―철벽좌 찐빡ㅋㅋㅋㅋㅋㅋㅋㅋ

―빡쳤잖앜ㅋㅋㅋㅋㅋㅋㅋ

―저러다 집에 간다

―정환이도 남훈이 방송 봤나 보네

사소하다면 사소할 계기.

어떻게 이용하냐에 달렸다.

다소의 불협화음은 오히려 조미료가 될 수 있다.

'원래 남녀 사이라는 게.'

너무 친하면 재미가 없다.

친구 같은 연인, 금술 좋은 부부가 괜히 사랑과 전쟁에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럼 오빠는 언니랑 데이트 좀 할게."

"네!"

"오빠 사랑해요!"

"하하."

"좋냐?"

"……."

급식 찬스가 끝난다.

이제는 순수 실력으로 라인전을 풀어나가야 한다.

달칵!

맞라이너의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눈에 띄는 방으로 들어간다.

"부르고 싶은 노래 있어요?"

"딱히."

"그럼 제가 먼저."

―데이트 정석 코스긴 한데

―철벽좌 든든합니다 ㅎㅎ

―표정이 그냥 빡쳐 보임

―이게 재밌는 거야?

그리고 지폐를 넣는다.

1000원에 3곡.

보통 4~5곡 하는데 강남 아니랄까 봐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한다.

'코인 노래방인데 왜 지폐를 넣냐고.'

일이 안 풀리면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고,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불안하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토독, 톡

선곡을 한다.

그 시점에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등골이 싸늘한 기분이 들지만 기죽지 않고 운을 띄운다.

"표현해 달라는 너의 투정들을, 알면서 모른 척했어."

"……."

―오오

―정환이 좀 치누

―생각보다 느낌 꽤 있는데?

―오정환 원래 노래 잘 부름 ㅋㅋ

노래를 부른다.

저렴한 장소라 난방이 되지 않아 더 춥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마지막까지 완창한다.

【89점 쓸만한 목소리를 가졌군 퐈이어~】

점수도 꽤 낭낭하게 받는다.

노래방 홍보 모델인 박명수 씨가 쌍따봉을 들어준다.

"다음 차례 하시면 됩니다."

"긴장돼?"

"……."

"멍청이."

마이크를 건네준다.

이미 마음먹은 게 있는 듯 리모콘을 망설임 없이 두들긴다.

조금 장난스러운 멜로디.

유쾌한 듯 유쾌하지 않은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나 화나 있는 데도, 넌 끼부리지 매력, 있어 너도 아는 듯 나를 갖고 놀지 마~"

"조금 치네요."

―아닌데? 개잘 부르는데?

―와

―목소리 너무 곱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네

노래방이든 코노든 마찬가지다.

노래가 끝나고 나오는 점수.

묘한 경쟁 심리를 일으킨다.

'그래서 막 소리 지르기도 하고 그랬지.'

100점 맞으면 보너스 시간!

옛날 노래방 기계는 그냥 무조건 목청 터져라 소리 치면 점수가 높게 나왔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전해서 여러 가지를 체크한다고 한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경쟁 심리가 싹튼다.

유치한 감정이다.

이 곡은 듀엣곡.

남자 파트를 내가 소화해주면 분위기가 돈독해질 것이다.

"다음 남자 파트인데 내가."

"꺼져."

"……."

내미는 손을 툭 치며 뻐큐를 한다.

그러더니 바이브레이션을 올린다.

남자도 반할 것 같은 허스키한 목소리다.

【93점 매력적인 목소리에 감동했다 전해라~】

기계도 반했는지 어처구니없는 점수가 나온다.

간발의 차이로 승부에서 패배하게 된다.

―노래제목뭐임님, 별풍선 2929개 감사합니다!

진짜 너무 잘 부르신다 ㅎㅎㅎ

"아부풍 감사합니다."

―코 악물고 아부풍ㅋㅋㅋㅋㅋㅋㅋㅋ

―추환아 정하다……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누

―소름 돋게 잘 부르는데

겨우 두 곡,

맺힌 응어리를 풀기에는 미약하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다음 곡을 선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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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곡 리스트〕

↑↓[MY) 12638 Timeless SG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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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 불러본 게 아니다 보니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

―보라큰손옴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분위기 띄워야 하는데 신나는 것 좀 부르자 ㅠㅠ

"죄송합니다. 곡 추천 안 받습니다. 오늘은 몇 개를 쏘셔도 안 돼요."

―만 갠데?

―선 넘는데요……

―큰손 서운하겠다 ㄷㄷ

―아니 병신아 몇 개인지 확인하라곸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선호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음과 동시에 바로 노래를 시작한다.

"어쩜 살아가다 보면 한 번은 날 찾을지 몰라. 난 그 기대 하나로 오늘도 힘겹게 버틴걸."

"……."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다.

기분 탓일까.

한기가 뚝뚝 떨어졌던 그녀의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내 노래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렇듯,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듯 아무래도 상관없다.

민심이 뭐라 하던 끝까지 부른다.

"어느새, 낙엽은 지고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도. 쓸쓸하게~ 남아 있어. 잘 지내는 거니."

그녀도 부른다.

노래가 시작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언제부턴가 얘기 나눌 때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던 너~ 그래 난 알고 있었어."

나도 다시 부른다.

감정이 복잡해져서인지 나 스스로 생각해도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촉촉한초코칩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철벽좌 표정 화난 거 아님?

"제가 점수가 앞서서 그런가 보네요. 개발려서."

"아니거든?"

―진짜 빡쳤누 ㅋㅋ

―팩트) 노래방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쟤 또 집 간다

―왜 성질 긁는데……

점수도,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말이다.

답답하기를 넘어 갑갑하기까지 했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노래 많이 부르니까 목이 좀 당기네."

"동감."

"앞으로도 많이 부를 거 같으니 맥주 한 캔 때릴까?"

"때려."

서로 묵은 이야기가 많다.

* * *

때아닌 새벽.

〔개인 방송 갤러리〕

―오정환 선 존나 잘 타눜ㅋㅋㅋㅋㅋㅋㅋㅋ

―???: 쟤는 왜 안 까임?

―오늘 자 오정환 카이팅. txt

―이왜진?) 실시간 오정환 레전드 발언 갱신

갑작스레 켜진 오정환의 방송은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시작은 바톤을 넘겨받았기 때문이지만.

―오늘 자 오정환 카이팅. txt

"야, 타."

"처자 우유통이 마음에 드오."

"이런 애들 집에 가면 방구석인지 쓰레기장인지."

이 모든 걸 성공시키고 살아남음

└와 이걸 사네

└롤드컵 우승할 만했눜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보라지 ^^ㅣX

└이 새끼는 필터링이 없눜ㅋㅋㅋㅋㅋ

오정환 특유의 방송 진행.

한때 최고의 보라BJ라 불렸던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갑작스러운 방송.

늦은 새벽 시간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싹틀 꽃은 핀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왜진?) 실시간 오정환 레전드 발언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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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 철벽좌가 너 존나 싫어하는 거 같은데?

정환: 나도 가슴만 크고 멍청한 년은 싫다

(채팅창 대충 고소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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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좌 개빡쳐서 맥주캔 던짐 ㅇㅇ;

└이러고 계속 방송하는 게 레전듴ㅋㅋㅋㅋㅋㅋ

└의외로 분위기 ㅈ창 안 낢;;

└이걸 피1로 산다고?

└티키타카 (매운맛)

개인 방송 갤러리를 의문으로 물들였던 여캠이다.

그 남훈과 방송을 해도 반응이 없다.

오정환과는 다른 의미로 반응이 있다.

보라판 시청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

<언제부턴가 불쑥 내 습관이 돼버린 너.>

특유의 감성 때문도 있다.

통칭 '오정환식 보라'는 한때 보라판 팬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취하니까 이거 부르는 거임? ㅋㅋ

<취기를 빌려~! 오늘 너에게 고백할 거야!>

―혀 꼬여서 옥타브 조절 안 되누 ㅋㅋ

―이건 이거대로 좋다

―진짜 고백하고 까이면 ㄹㅈㄷ

―왜 분위기가 좋은 거 같지? 신기하네

말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중독성.

오직 '보이는 라디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이며 감성이다.

<이른 노을 지던 그 하늘 아래~ 가로수 길을 따라 걷던 우리들.>

순수하게 감탄스럽기도 하다.

노래.

말이 아닌 멜로디로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철벽좌 노래 존나 잘 부르지 않음?

은근히 이슈가 안 되네

└다들 감상 중이라

└소름 쫙 돋았음

└거의 가수급이던데? 성악 전공했나

└술 들어가니까 더 미침 ㅋㅋ

잔잔하다.

자극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더 깊이 파고드는 힘이 있다.

잘 부른 노래 한 곡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연설보다 사람을 설득시킨다.

강정이 실려있다면 더더욱.

―프로보팔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본업이 가수세요? 너무 잘 부르시는데 ㅎ

<그냥 스트레스 풀다 보니.>

―와 타고 났나 보네

―취미로 부르는데 이 수준 ㄷㄷ

―농담 아니고 진짜 가수 수준으로 잘 부르심!

―물소들 난리 났누

듣고 있는 시청자들.

어느새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제대로 된 사정 하나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앞선다.

―아름다운은하수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무슨 아픔이 있으신진 몰라도 꼭 잘되시길 ㅠㅠ

―타이밍이중요님, 별풍선 424개 감사합니다!

전남친 욕하는 거 같아서 더 울리네

―명곡판별기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노래만 부르셔도 성공하실 듯!

그녀가 표현하는 노래 속 세계에 빠져든다.

어느새 늪처럼 얽혀 들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든다.

―철벽좌 전 남친 문제 맞는 이유

[우리가 헤어진 이유 노래 클립. avi]

아무튼 맞음……

└이거 듣고 납득 못 하면 원숭이지

└상처 많이 받았나 봐

└인디곡이 제일 와닿는 거 보면 뭔가 있긴 함

└오정환도 못 부르는 편이 절대 아닌데 철벽좌가 너무 넘사벽이야

철벽좌.

예명이 아닌, 시청자들이 만들어낸 별명이다.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그렇게 불리고 있다.

비록 노래라 하더라도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오정환은 왜 뜬금 야방 킨 거지?

그것도 철벽좌랑

절대 우연은 아닌 거 같은데

└남훈 방송 보다 답답했는 갑지. 존나 못 꼬셔서

글쓴이― ㅋㅋㅋㅋㅋ이거다

└남훈은 얼굴 원툴이라 오히려 여자를 잘 모름

└간만에 오정환 보라 꿀잼이더라

연기가 화제로 일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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