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화
용기.
알고 있어도 내기 힘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지.'
적어도 나는 자유로웠다.
리스크와 리턴.
저울질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
그냥 한다.
감정에 몸을 맡겼다.
성공이라는 것을 얻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야, 타."
―이걸 또 ㅋㅋㅋㅋㅋㅋㅋㅋ
―야타는 ㅇㅈ이지
―환라마 ON
―이걸 한 이유가 있었넼ㅋㅋㅋㅋㅋ
애당초 결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의식하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뭔가 좀 그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다르다.
정말로 돌아갈까?
군대 문제를 차치해도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트코인으로 떼돈 벌 생각하며 킬킬 웃는 게 아닌 이상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나는 안 한다.
"또 코노?"
"재미있었던 것 같아서."
"그랬지."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돈 한두 푼 더 번다고, 유명해진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럼 내 인생의 낙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봄이 대가리를 씹는 것이다.
인생의 재미가 그 하나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표.
잊고 지내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주 설 용기가 나에게는 도저히 없었다.
〔똘이〕
「제가 수소문해서 알아봤는데요」
「가을 언니도 오빠한테 미련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속마음을 열어보는 게 아닌 이상 100%라는 건 없겠지만요」
대학교 후배.
취미로 BJ를 하고, 이제는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소영이에게 문자가 왔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다.
추억이라는 것은 대개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땐 정말 좋았는데.
막상 다시 보면 그저 그렇다.
그 실망감을 느끼기 무서웠다.
아니, 좋다고 해도 문제다.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만큼, 그녀가 나를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
끼익―!
그래서 눈을 돌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것이 낫다.
―와 별풍도 막아 놨네
―진짜 미친 새끼얔ㅋㅋㅋㅋㅋㅋㅋ
―말 좀 해!
―둘이 뭐 멱살 잡고 싸웠냐?
―보는 내가 살 떨려……
―이 드라마 미쳤어
―왜 싸운지나 알자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정말 여러 가지를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용기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단순히 상처받기 싫은 겁쟁이였다.
"먼저 해도 되지?"
"그러든가."
"그럴게."
등을 떠미는 듯한 계기가 주어졌다.
그마저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
정말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노래를 부른다.
<♪♬♪∼♪∼♬♪♬∼♬♪∼♩♪∼♩♬♪∼>
웅장한 멜로디.
빠른 템포로 치고 올라간다.
시작한 이상 뜸을 들일 생각은 없다.
<애써 돌아가는 너의 집 앞 골목. 사람을 피해 숨은 지하 구멍.>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니시 X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리웠니?
―믿을 수 있겠니 죽어가는 이 느낌!
오늘은 미칠 생각이니까.
숨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속도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동행인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토해낼 뿐이다.
숨이 찬다.
마이크를 건네준다.
윗부분을 가늘고 날카로울 것 같은 손끝으로 톡! 톡! 두들긴다.
마이크 울리는 소리가 이토록 크게 들릴 수가 없다.
잠시 뒤, 노래를 즉석으로 예약하고 가창한다.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너는 알고 있을까."
―하
―이걸로 또 받아친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유가 뭐길래 2연타냐
―진짜 이유도 있었누 ㅋㅋㅋㅋㅋ
가슴 한편이 쿡쿡 찔린다.
단순한 노래 제목이 아니다.
수만, 수십만 개의 곡 중 굳이 이것을 고른 이유.
―가사 존나 잔인해
―와 X발ㅋㅋㅋㅋㅋㅋㅋ
―이 노래 존나 좋아하는 건데 어떡해……
―으아ㅏㅏㅏㅏㅏㅏㅏㅏ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과몰입 미치겠다
―오정환 개새끼 해봐
―처음뿐이야 니가 날 바라본 건
가사를 신경 안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을 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노래 한 곡이 이토록 긴지 몰랐다.
다 듣고 나서야 나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진다.
파악!
노래를 다 불렀는지 마이크를 던져온다.
조금만 한눈을 팔았으면 이빨이 나갔을지도 모를 거친 토스다.
예약을 하는 건 멋없는 일.
나도 즉석에서 바로 택한다.
당연히 하고 싶었던 말이다.
"콜! 하면 나와 오늘 우리 둘이 뜰 거야. 꽉 차게 번 돈 오직 너에게 쏠 거야."
―캬 직구
―널 너무 사랑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오글거림 어쩔 건데?
―이게 어떻게 전 여친이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노래를 부른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싶다.
하지 않아도 될 유치한 고민이었다.
꾸깃!
발등에 통증이 느껴진다.
좁은 공간.
우연히 발을 헛디뎌 잘못 밟은 건 아닐 것이다.
싸늘하기를 넘어 소름이 돋게 만드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순간이 되고 나서도 나는 눈치를 본다.
―?
―??
―고백 실패함?
―왜 끊는데
―본인도 오글거려서 못 부름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잘못 눌렀나
―다시 불러
―아니 흐름 좋았는데
마음이 너무 앞서버렸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내 안에서도 엉망진창 뒤섞인 것이다.
토독, 톡!
억지로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빠른 템포의 노래를 들으면 텐션이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한 속임수.
나 자신조차 속여서야 말짱 도루묵이다.
서로가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숨길 이유가 있을까.
"주위 친구에게 착한 사람이란 자랑을 되풀이할 때마다."
노래를 멈춘다.
그리고 다른 노래를 부른다.
진정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 이것일 것이다.
"나를 영원히 떠나버릴 거란! 오래된 두려움 그 때문에……."
―비밀? 뭔 비밀?
―와……
―아까 노래는 왜 끊은 거임?
―가사가 대박인데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나에게는 더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도, 변명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3분이 되지 않는 짧은 노래.
그럼에도 지금까지 부른 그 어떤 노래보다 힘들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토독, 톡!
나의 노래를 끝까지 들어줬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전보다 조금 힘이 없어진 손끝으로 리모콘을 두들긴다.
"나는 너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어. 진심을 원했어."
"……."
―끝났는데?
―ㅈㅈㅈ
―니가 싫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슬슬 포기해야 한다 ㅇㅈ?
그렇게 골라온 한 노래.
더 이상 제목에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지금부터는 감정 싸움이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인류가 단 한 쌍밖에 안 남아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남녀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물을 수밖에 없다.
언어가 아닌 감정.
노래는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더 진심이 담긴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
한껏 울음을 터트리는 것보다 속이 더 시원해질 때가 있다.
욱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까지 완창한다.
치이익……!
3분의 시간.
어느새 뽑아온 듯한 맥주를 따고 있다.
몰입해 있다 보니 나갔다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꿀꺽! 꿀꺽!
너무나 맛있게 마신다.
광고까지 찍어본 내 입장에서 봐도 식도를 울리는 맥주 한 모금이 그리 탐나 보일 수가 없다.
"불안하게 엮여버린 너와 내 사이. 어디부터 어떻게 널 풀어야 할까?"
한 캔을 깡그리 비우고 노래가 시작된다.
그 가사의 내용은 희망 쪽에 무게가 기울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맥주가 맛있네. 화이트진로에서 수입한 파울라너라 그런가."
―이걸 고민하게 만드넼ㅋㅋㅋㅋㅋㅋㅋㅋ
―달다 달아
―킹 와중에 맥주 광고 ㄷㄷ
―방송인 척 ^^ㅣX아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미련.
일방통행일 가능성은 세상 모든 헤어진 연인이 상상해봤을 것이다.
꿀꺽! 꿀꺽!
목이 마르다.
내 몫의 맥주를 마신다.
500ml에 달하는 큰 캔맥주가 한 손에 감기는 박카스처럼 순식간에 비워진다.
"때릴래?"
"……."
남이 부르는 노래는 금방 끝난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혹시 몰라 말을 꺼내보자.
'그냥 혹시 했지.'
빈 맥주캔이 날아온다.
너무나도 맛있게 마셔서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
차라리 맞고 싶은 것이다.
혼이 나고 끝이 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이를 먹으면 깨닫는 순간이 있다.
'사실 맞아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맞고 나서 알기를 바라는 건데.'
왜 어렸을 때는 맞는 것만 죽도록 피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용서란 받는 쪽보다 하는 쪽이 더 어려운 건데.
"난 니가 싫어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
―캬
―정환이도 진짜 잘 부른다
―와…… ㅅㅂ
―왜 알 것만 같지
2000년에 출시된 곡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던 노래.
수록된 앨범의 후속곡인 촛불 하나는 지금도 거리 공연에서 자주 불린다.
'이 시절 지오디 노래가 그래.'
H.O.T와 쌍벽을 이뤘다.
당시의 나는 강타를 좋아했다.
앞머리를 염색해 꽁지처럼 내린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g.o.d의 노래가 머릿속에 남는다.
진심과 경험을 담은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잘 가."
"……."
"행복해."
"……."
그렇다고 한다.
데뷔 전, 빈털터리는커녕 한 치 앞의 미래조차 안 보이는 생활을 2년간 했던 g.o.d 멤버들의 연애사를 담은 노래.
'사람이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가 있지.'
유행은 한참 뒤처졌을 것이다.
특유의 후렴구도 현 시점에서 보면 유치하고 오그라들지 모른다.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 줘."
"나를 잊지 마."
그럼에도 부르고 싶었다.
건네는 마이크.
차갑게 굳어있던 입술이 생기가 돌아온 것처럼 움직인다.
* * *
오정환의 합방.
〔개인 방송 갤러리〕
―선곡 돌았네
―틀딱 감성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짓말은 ㅇㅈ 또 ㅇㅈ이야
―오정환 안 나갈 때 사귄 애인임?
.
.
.
예고된 대로 노래만 부르는 방송이다.
파프리카TV에는 꽤 흔히 있는 포맷이다.
그냥 노래를 잘 부르는 일반인.
혹은 생활비가 필요한 인디 가수.
하지만 내용이란 면에서 근본부터 다르다.
―오정환 안 나갈 때 사귄 애인임?
대충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거 같은데
└나도 그런 느낌이던데
└god 거짓말이 딱 그런 노래잖아 ㅋㅋㅋㅋㅋ
└오정환 처음부터 잘나가지 않았나? 메이플 네임드였던 걸로 기억└그보다 더 이전인 듯
보이는 라디오.
파프리카TV에만 있는 콘텐츠다.
여러 가지를 내포하는 개인 방송계의 예능으로 정의된다.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고작 노래를 불렀을 방송에 수많은 팬들이 과몰입을 하고 있다.
"실력이……, 상당한데?"
"나도 이거 듣고서 깜짝 놀라긴 했어. 남자 쪽은 몰라도 여자 쪽은 확실히 원석이야."
그 대상은 일반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가요계 관계자들도 SNS를 중심으로 퍼지는 소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저 비주얼에 저 가창력이라니 탐나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 개인 방송인이 나타났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BJ, 스트리머, 유튜버 등.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불러 영상을 게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것이 인기를 얻는 일도 말이다.
수백만 조회수, 수십만 구독자를 얻는 경우까지 생긴다.
대개 편집을 이용한 기교에 불과하다.
고작 코인 노래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