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화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은 날이 있다.
"후회~~~ 하고 있어요!!"
―속보) 오정환 응급실
―ㅄㅋㅋㅋㅋㅋㅋㅋ
―응급실은 ㅇㅈ 안 할 수가 없지
―후회해 ^^ㅣX아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쥔 마이크.
그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버리는 성대.
'이 악물고라도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설명이 필요 없는 명곡이다.
지금도 수많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응급실에 실려간다.
그래서 더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
하지만 이게 아니면 속이 안 풀리는 순간이 있다.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게워낸다.
일단 감정을 비워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덮죽먹는봄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할 말이 있음?
"논문 쓰고 싶지 않습니다."
―논문ㅋㅋㅋㅋㅋㅋ
―할 말 무지 많은가 보네
―씨지맥 그리핀도르라는 듣보팀 들어갔대요!
―소드라는 선수랑 친하다던데
여러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 그래.'
추억이라는 건 자세하게 기억하면 아름답지 않다.
특히 여자와 관련된 쪽은 흐릿한 편이 옳다.
젊은 날의 치기.
용기 있는 행동.
딱 그 정도로 생각하면 그땐 그랬지 하며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팩트만말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님 전 여친이 과거썰 푸는 중 ㅋㅋ
"……."
―ㄹㅇ?
―아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ㅋㅋㅋ
―좌표 가을 ㄱㄱ
―둘이 뭔 일이 있던 건데
옛날에 썼던 일기장을 굳이 다시 펴볼 이유가 없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
'이 미친년이.'
그리고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다.
어렸을 때는 감정 조절이라는 게 더 안 된다.
<뭔데.>
―오정환 왔다
―오정환 ㅎㅇㅇ
―이걸 진짜 오넼ㅋㅋㅋㅋㅋㅋㅋㅋ
―???: 월척이다!
가을의 방송.
그날의 합방 이후 잘되고 있다.
애매했던 방송에 콘텐츠가 생기며 진행이 편해졌다.
'사실 여캠이 하는 게 뭐 있겠어.'
열혈들 비위 맞추고, 새 열혈 유입에 열과 성을 다하는 정도다.
유흥업소에서 남자 꼬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이 맞지 않으면?
당연히 방송 진행이 차질을 빚는다.
가을은 거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 모양이다.
<왜 와.>
―아닙니다. 평안하세요
―아니긴 뭔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추하고~
―과거 썰 푼다니까 허겁지겁 달려옴<<<
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지.
사실 짐작 가는 바는 있다.
그녀의 사정도, 업계의 사정도 다 아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뭐.'
미련이 있다.
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시 가까워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내 용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아~ 아항? 그러고 보니 너 진짜 웃겼는데. 병신 같았는데.>
―병신ㅋㅋㅋㅋㅋㅋㅋㅋ
―네다병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병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실?
그냥 X발년이다.
저년만큼 인생 ㅈ대로 사는 년은 살면서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될 것만 같았고.'
만약 옛날에, 정말 100년·2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왕비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품격이라는 것은 후천적인 교육에 의한 것도 있지만, 선천적인 타고난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와 지내다 보면 좋든 싫든.
―안녕하세요. BJ오정환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특정성이 충족되며 추가 발언 시 허위 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 합의는 없습니다.
―너고소ㅋㅋㅋㅋㅋㅋㅋ
―응 사실 적시야^^
―아 공백의 1년 빨리 밝히라고ㅋㅋ
―추환아 정하다
―무슨 무슨 죄로 고소 ㅋㅋㅋㅋㅋ
―마침표까지 꾹 찍은 거 봐 개찌질해
―엘리전 가면 누가 이김?
마음이 경건해진다.
사소한 말 한 마디마저 귀중해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장난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
히죽거리는 미소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썬죽돌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털리는 게 더 고소함 ㅇㅈ?
<인정.>
―장난 아닙니다
―코 악물고 아닙니다 ㅇㅈㄹ
―정환아 니가 졌어
―와 웃으니까 너무 예쁘네……
1초라도 더 보고 싶어 같잖은 짓을 저질렀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흑역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게 다 니가 목석처럼 멀뚱멀뚱 있으니까 한 건데.'
어렸을 때는 다 짓궂은 장난을 친다.
동창들과 만나면 그런 이야기는 술 들어가기 전까지 하지 않는다.
인간 관계에서의 기본적인 배려라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에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얘 좀 귀여운 게 뭔지 알아? 내가 놀려서 삐져도 뽀뽀 한 번 하면 다 풀린다?>
―아
―ㅇ
―ㅇ
―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
―도배 뭔데
―개추해서 개추 ㅋㅋ
―ㅇ
―이건 진짜다
―뽀뽀 ㅓㅜㅑ
오정환(ojh6974) 님이 무분별한 도배로 블라인드 되었습니다. 2분 동안 채팅과 방송화면을 볼 수 없습니다.
연장자의 깊은 도량.
배려와 이해를 그런 식으로 얕잡아 보면 안 되는 것이다.
'호이가 계속되니까 둘리인 줄 알아 이년이.'
언제 한 번 만나서 혼쭐을 내줘야 한다.
강제로 꺼매진 방송 화면을 끈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 연애 ㅈㄴ 찌질하게 하는 타입인가 보네 ㅋㅋ
"제가 봐준 거예요. 저랑 만나는 여자들이 다 사랑앓이를 하니까 절 너무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해서 만나준 겁니다."
―혀가 길다
―허겁지겁 뛰어간 이유가 있었누 ㅋㅋ
―진짜 사귀었던 건 맞는 거네?
―뽀뽀는 부러운데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타인의 과거를 비웃는 것이 훨씬 유치하고 찌질하다.
'한 살이라도 많은 내가 참는 거지.'
기분이 몹시 불쾌하다.
방송을 종료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만한 사람을 부른다.
끼익―!
오늘 스케줄이 없다고 한 게 기억났다.
아나스타샤가 현관문을 닫고 들어온다.
"오빠!"
"왔어?"
"너무 오래 못 봤어요. 어째서 불러주시지 않는 거예요."
이제는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가 더 유창하다.
슬라브계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도 다채로워졌다.
뾰로통했던 표정도 잠시.
사랑스러운 눈길을 마주치며 부드러운 입술로 나를 유혹한다.
'진짜. 응?'
몸은 좀 크다.
굽 있는 신발을 신자 실제로 나보다 더 크다.
그것이 시원시원한 몸매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쪼옥!
가볍게 입을 맞추자 오똑한 콧날이 닿는다.
누가 코쟁이 아니랄까 봐 코가 정말 날카롭다.
"오빠 집 오면."
"하려고 했어요."
"옳지. 키스 하면서 해."
그래서 더 좋다.
다른 인종의 아름다움은 몇 번을 즐겨도 질리지를 않는다.
'피부도 정말 잘 관리하고 있고.'
백인은 피부가 좋지 않다.
사진으로 보면 새하얘서 선망하게 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점 같은 것도 많고 지저분하다.
백인들이 동양인 피부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흑인들이 오히려 잘 다듬어진 도자기처럼 맑고 깨끗하다.
"예쁘네?"
"근데 에스테틱 돈도 많이 들고……."
"돈 걱정하지 마. 오빠가 키우는 거니까."
"♡"
관리를 요한다.
석회질이 없는 한국의 깨끗한 물은 피부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 온 서양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다.
'그리고 돈도.'
피부는 돈을 바르는 만큼 예뻐진다.
아나스타샤는 아직 방송 수익이 많지 않지만, 내가 투자를 해서 예쁘게 가다듬고 있다.
그 성과는 나오는 중이다.
방송 출연도, 출연비도 올라간다.
인기도 상당히 늘어서 예쁜 서양인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되었다.
"꿇어."
"네, 오빠."
그런 여자를 무릎 꿇린다.
다소곳이 앉은 아나스타샤가 탱탱한 살결을 나에게 비비듯 파묻는다.
'교육을 잘 시켰지.'
코가 닿아서 간지럽다.
금색 머리채를 잡고 흔들자 알아들었다는 듯 흐트러진다.
"오빠가 오늘 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어요? 누가 그랬어요."
"나쁜 년 있어."
"아샤가 오빠 위로해 드릴게요."
내 팔을 끌어안듯이 잡고 비빈다.
크진 않지만 탄력이 있어서 좋아한다.
'그랩감이 좋지.'
침대 위에 넘어지듯 눕는다.
부둥켜 꼭 끌어안고 체온과 살결의 부드러움을 즐긴다.
아나스타샤는 아직 거칠게 다뤄보지 않았다.
고통과 쾌락.
아직 잘 모르는 몸을 내 마음대로 인식시킨다.
민솔은 보여주는 직업이라 흉을 내면 안 된다.
아나스타샤는 코디가 마음대로니 약간 정도는 괜찮다.
손자국과 약간의 멍이 들 만큼 압력을 가하며 논다.
"아프지?"
"아파요."
"아플 때마다 오빠 생각해. 알겠어?"
"네, 오빠. 그러니까 뽀뽀 키스."
잘 관리한 백옥 같이 투명한 피부.
나의 흔적을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긴다.
성숙해지는 외모와 달리 아직 어린 정신은 애정을 원한다.
입맞춤도 어울려준다.
쪼옥! 쭈웁!
새하얀 피부 이곳저곳에 키스 마크를 새긴다.
완전히 내 것이 된 아나스타샤가 품 안에서 아양을 떤다.
'이렇게 그냥.'
그 요망한 년도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이렇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
새로운 관계.
이전에는 조금 끌려 다닌 감이 있었다.
다시 만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겨줄 것이다.
두 번 다시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