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19화 (819/846)

819화

만남은 조용히 이루어진다.

타악!

개인 카페.

사람 한 명 없이 한산하다.

이 가게의 매출이 우려가 될 정도로 말이다.

'커피 맛도.'

맛은 손님 수에 비례하는 게 아닌지.

킹리적 갓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산화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기분 좋은 쓴맛이 혀를 자극한다.

"불렀으면 말을 하셔야죠."

"……."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가?"

상대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인상을 팍 쓴 채 억지로 목을 축이고 있다.

'내가 그날 마신 술처럼.'

커피가 안 받는 날일지도 모른다.

굳이 카페인이 없어도 정신이 또렷하다.

심익태.

한때 상전으로 모셨다.

관계만 놓고 보면 그것이 맞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무사할 수도 있죠."

"…뭐?"

"제가 대가리가 좀 많이 커버린 나머지."

달라진 지는 꽤 되었다.

애초부터 힘찍누 스타일.

말로는 설득을 못 하니 주도권을 서서히 넘겨줬다.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다.

힘이라는 것도 상대보다 강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가티 빌려주신 분 있잖아요. 말 꺼내면 아실 대단한 분입니다. 한국에 4대밖에 없는 차량의 보유자인데 말 다한 거죠."

"……."

"강남이 이번에 아주 큰일이 났더라고요. 위너와 주변 인물들이 완전히 나가리가 돼서 내세울 간판이 없나 봐요. 저한테 애걸하듯이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시비 거는 잡배가 있다면 어디서 객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겠죠?"

"……."

힘으로 찍어 누른 사람은, 힘으로 찍어 눌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뒷세계의 법칙.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내가 하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렇기에 직접 만나자고 한 것이다.

눈에 힘을 팍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할 줄 아는 게 협박뿐인 인간이다.

"시시껄렁한 협박 안 통하는 거 알잖아요. 다 아는 사람끼리 이러지 맙시다."

"……."

"진짜 하고 싶은 얘기나 털어놓으시죠."

"니가."

"네?"

"니가……!"

아메리카노가 든 도자기잔을 잡고 있는 두 손이 바르르 떨린다.

어찌나 진동 모드가 요란한지 테이블을 타고 전해진다.

내 커피 위에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끓어오른다.

"내 컴퓨터의 모든 자료가 삭제됐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상하단 말이지? 이 타이밍에. 하필! 너한테 불리한 모든 것들이!"

꽈앙!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다.

손님은 아무도 없지만 사장님은 있다.

깜짝 놀라셨는지 테이블을 닦던 행주를 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르신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안심시킨다.

"앉아서 얘기하시죠. 점잖게."

"니가 항상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뭐 어쩌게요? 판 엎게? 절 적으로 돌려도 되면 그러든가."

"으윽……!"

테이블이 더 떨리고 있을 뿐이다.

꽉 움켜잡은 두 손의 핏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이러다 한 대 치겠어.'

거기까지 도발을 하고 싶진 않다.

일을 키워서 좋은 게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

동귀어진을 한다면 상당히 곤란할 수 있다.

서은을 통해 관련 자료를 폐기했어도 말이다.

"언제부터냐."

"글쎄요."

"언제부터 일을 기획했지? 아무리 봐도……, 하루 이틀 일은 아니야. 그래, 최소 1년. 어쩌면 그보다 더! 그렇지? 그런 거지?"

그렇다.

심익태가 부들부들 떠는 이유.

자신도 모르는 새 진행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아채겠지.'

나도 목숨 걸고 한 도박이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애당초 승산은 없었다.

그럼에도 했다.

거창한 각오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미 한 번 잃었던 거니까.

"너라는 존재는 너무 이상해. 처음부터 그랬어!"

"그랬죠."

"그래! 철꾸라지를 담근 것부터 모든 것이 뒤틀렸어. 이후로도 승승장구.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손에 힘이 어찌나 들어갔는지 테이블이 들썩거린다.

그 본인도 부르르 떨면서 울분을 행동으로 토해낸다.

'그거밖에 눈치를 못 챘나 보네.'

이상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불킥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하나둘 떠올리면 된다.

테이블에 손을 쫙 펼쳐 올려놓고 누른다.

"진짜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뭐?"

"나이 처먹고 젊은 사람들 방송하는 데 기웃거리면서 빨대 꼽으려는 늙은이 새끼죠. 뭐, 댁도 포함되네."

"뭐, 이 새끼……."

뚜두둑!

손가락 관절에서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

테이블을 움켜잡을 기세로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하는지 모르겠다.

진동은 적다.

내가 꾸욱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힘의 발산을 분이 풀릴 때까지 지켜봐 준다.

"어쩌자고 자꾸 입이 아니라 손으로 말하시나. 빨리 정하기나 해요."

"이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노가다 인생으로 돌아갈지, 그나마 할 줄 아는 유흥업으로 근근이 먹고 살지 말입니다."

"……."

나와 달리 각오가 덜 돼있다.

심익태는 자신의 손에 움켜쥔 것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짖어 대는 거고.'

약한 개가 크게 짖는 법이다.

나한테 으르렁대는 목적도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기 싫다.

유흥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이제 와서 다른 일은 죽어도 불가능하다.

"그 자료. 위험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역시 니가!!"

"어디 새나가면 이쪽 세계에 발도 못 붙일 거 같은데. 아니, 살해 협박이라도 받으시려나? 어느 쪽이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죠."

"……."

나에게 뺏긴 것.

기록된 자료는 사무적인 것만이 아니다.

뒷세계의 여러 가지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을 테니까.'

여차할 때 쓸 수 있는 카드를 쌓아 놓은 것이다.

만에 하나 유출되면 수많은 적을 만들게 된다.

최소로 잡아도 유흥업계의 일은 할 수가 없다.

심익태로서는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하겠어?"

"이제야 테이블에 똑바로 앉으시네."

"끝까지 해보자고? 너도 무사치는 못할 거 알지?"

"그건 댁이 걱정할 게 아니고."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

물론 그 선의 위치는 내가 정한다.

'궁지에 몰리면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지금은 심익태가 쥐.

자신의 처지를 파악했는지 더 이상 테이블 진동권을 쓰지 못한다.

주눅 든 어깨는 초라해 보인다.

처음 만났을 때.

그토록 크게 보인 사람이었던 만큼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넌 나보다 더 악독한 녀석이야."

"그럴 수도."

"끝이 절대 곱지만은 못할 거다."

"걱정 고맙고."

희열 말이다.

이를 갈고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만이 마지막 자존심이다.

'물론.'

심익태 같은 인간은 한둘이 아니다.

먼지는 아무리 털어도 시간이 지나면 수북이 쌓이는 법이다.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매듭을 확실하게 지어 놓고 싶다.

"앞으로 절대 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BJ 업계는 물론이고."

"더러워서! 내가 더러워서 니 있는 판엔 다신 안 간다. 너도 유흥계에 오기만 해봐."

"나락 갈 예정은 없어서."

"젠장 맞을!"

의자에서 일어난다.

욕지거리를 하며 밖으로 나간다.

침을 퉤! 뱉고 사라지는 모습에 사장님이 기겁을 하신다.

"실례 많았습니다."

"아이고, 네……."

"여기 빵 맛있어 보이네요. 깜빠뉴 3개랑 수제 살구잼 하나, 아니 두 개 주세요. 깜빠뉴는 건포도 없는 걸로."

"포장으로 해드릴까요?"

눈치껏 매상을 올려드린다.

본의치 않게 가게가 다소 소란스러웠다.

'사실 알고 온 거긴 하지만.'

굳이 사람 없는 매장을 고른 이유.

심익태가 난리를 칠 거라는 게 불 보듯 뻔했다.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게 넘어간 편이다.

만에 하나의 경우도 상정을 했으니까.

"빵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혹시 선물용……."

"가서 먹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살펴가세요!"

그럴 경우에 생길 피해.

무덤덤했던 걸 보면 심익태의 말처럼 나도 어지간하다.

'심연이라.'

너무 깊이 들여다본 걸지도 모른다.

BJ업계에 있어온 기간이 10년은 아득히 넘었다.

변해도 너무 변해버렸다.

나 스스로도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부터 계획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 * *

테라버닝 사태.

조속히 진행되고 있다.

익명 제보자의 정보가 구체적이고,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개인 방송 갤러리〕

―? 남훈은 처음부터 수상했지 [519] +1556

―? 영화 '테라버닝' 캐스팅 떴다ㄷㄷㄷ. jpg [377] +892―? 자신이 오열하고 있는 남견이면 개추 ㅋㅋ [238] +1024―? 대충 보니까 남훈이 채홍사짓 한 듯 [407] +771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연루된 BJ.

오정환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다.

― 자신이 오열하고 있는 남견이면 개추 ㅋㅋ

[시무룩한 개구리짤. jpg]

일단 나부터……

└왜 너부턴데 ㅅㅂㅋㅋㅋㅋㅋ

└남견 대표 고닉 '루리웹만렙' 현타 왔누

└코코망이가 구라핑 찍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년 오정환 라인이라서 수상한 거투성이인데 └↑↑남견 검거

남훈이 자신을 위너에게 소개했다.

입이 싼 기자들을 통해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수사는 이제 막 시작한 참.

하지만 개인 방송 갤러리의 여론을 뒤흔들어 놓긴 충분했다.

―남훈은 처음부터 수상했지

부가티: 빌린 차. 오정환 인맥이 빌려줬다고 인증도 함파가니: 돈 주고 산 자차. 30억을 대체 어디서?

심지어 집도 사고, 람보르기니도 바꾸고, 명품도 존나게 밝힘해외 큰손들이 퍼주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

└해외에도 남견이 있었눜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큰손 든든합니다

└외화벌이 ㅆㅅㅌㅊ

└팩트) 벌어서 외국 명품 산다

오정환의 해명 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질 수 있었던 불씨가 조기 진화된다.

의혹이 있는 나머지 한 명.

커진 관심은 남훈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대충 보니까 남훈이 채홍사짓 한 듯

클럽 가면 부킹 하지?

그걸 VIP한테 해주는 게 채홍사임

가끔 기사 뜨는 여자 연예인 성매매가 채홍사 통해서 이루어짐근데 비싸기도 하고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위너가 남훈이 꼬셔서 해처먹었다는 게 클럽 죽돌이 9년 차인 내 소견임└그런 직업도 있어?

└재밌네 썰 좀 더 풀어봐라

└사스가 갠방갤 고닉 '루리웹정회원'좌 ㄷㄷ

여론은 기울어졌다.

남훈의 이미지는 실시간으로 지하를 향해 처박히고 있다.

'…….'

그러한 상황.

남훈도 인지하고 있다.

보라BJ가 커뮤니티 여론을 살피는 건 드문 일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오정환처럼 할 말이 있음!

할 말, 못 할 말 다 떠들면서 방송 어그로를 끌고 싶다.

덜덜덜

그럴 수가 없을 뿐이다.

어떻게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몸이 떨린다.

사색이 된 남훈은 가쁜 숨을 간신히 진정시킨다.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위너의 말대로 자신은 송사리다.

세간이 그렇게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 아직 자신에게는 별다른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문제다.

저지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들이 파헤친다면 어떻게 될지.

꿀꺽!

모른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통보가 올 때까지 집안에서 덜덜 떠는 것뿐이다.

논현궁.

성대한 별칭까지 붙어있는 장소다.

매일매일 BJ들이 찾아오며, 보라판의 중심부격의 역할을 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로는 고요하다.

누군가 찾아오기는커녕 위로 문자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

모두가 자신과 거리를 둔다.

세상에서 고립된다는 감각이다.

사치스럽게 먹던 식사도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결과가 나올 거면 차라리 빨리 나오지. 그래야 속이 편할 텐데.'

죄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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