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화
<시작과 끝>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사건에 휘말린다는 게.'
연예인들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신고를 안 한다고 한다.
보상받고, 보험금받는 것보다 이슈가 되는 게 더 타격이다.
기레기들이 자극적이고, 어그로를 끄는 방향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다소 자유롭다.
뉴데일리― 「개인 방송 켠 '오정환', 할 말 있었던 이유」
전자신문― 「부가티 내 차 아니다? '오정환' "방송 콘텐츠일 뿐"」
오마이뉴스TV― 「'오정환' 개인 방송서 폭탄 발언……, 네티즌 수사대 설전」
BJ이기 때문이다.
정식 연예인이 아니라는 부분 외에도,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지.'
역효과가 날 위험성이 존재한다.
연예인들이 괜히 입꾹닫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았고, 환기가 빠르게 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파는 없을 수가 없다.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하차 요청에서 휴식 요청으로 바꿔줬다는 게 다행인 정도다.
"오빠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제가 다 말했어요."
"잘했어."
"그러니까……, 상 주시면 안 될까요?"
인맥의 영향도 있다.
BJ 업계 이상으로 중요하다.
옆에 누운 민솔이 애교를 부리며 안겨온다.
'잘나가는 여배우니까.'
보험은 많을수록 좋다.
원래 한 사람이 주장하면 지인 실드지만, 여럿이 주장하면 그게 곧 여론이 된다.
세간의 여론도 괜찮은 마당이다.
시간만 조금 죽이고 있으면 잠잠해질 것이다.
"잘하네."
"할 수 있는 거 전부 다 했어요."
"이젠 더 가르칠 게 없겠어."
"안 돼요. 아샤 더 배우고 싶어요."
아나스타샤도 있다.
애걸하듯이 안겨온다.
'내가 가르친 년이야.'
타락.
반반하고 능력 있는 인생 아쉬울 거 없는 년을 타락시키는 건 설명할 수 없는 정복감이 생긴다.
예쁘다, 성스럽다 추앙받는 여자도 침대 위에서는 암컷에 불과하다.
하염없이 고고해도 얼마든지 떨어뜨릴 수 있다.
"솔이 촬영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마무리는……."
"아샤가 할 테니까 씻고 와."
"♡"
깊은 만족감.
아나스타샤와 함께하는 사이 민솔이 샤워를 마치고 나온다.
"너무 빨리 나온 거 아니야? 그대로지?"
"아, 들켰다."
"촬영하는데 이래도 돼?"
"따듯해서 좋아요."
"그래, 잘 가."
핏이 확실히 좋다.
옷을 입은 모습은 여배우스럽다.
부티와 기품이 있어서 말을 걸기 힘든 스타일.
딩동♪
인원 공백을 메꿔준다.
초인종이 울린다.
현관문을 열자 리아가 잔뜩 흥분한 채 호흡을 고르고 있다.
침실로 데려가 입술부터 차분히 먹는다.
"둘 다 좋았어."
"오빠 쩔었어요 완전."
"난 못 했는데……."
"장난감 줄 테니 조용히 있어."
"너무해!"
현자 타임이 온다.
그럼에도 양옆에 누워있는 비주얼이 좋아서 별 상관은 없다.
'원래 이때 예쁜 애가 진짜 예쁜 거지.'
칭얼대는 리아도 장난감을 줬더니 조용해졌다.
혼자 놀게 두고, 아나스타샤와 논다.
"아샤도 베개 해본 적 있지?"
"네!"
"서양 베개는 품질이 어떤가 안아볼까."
아샤를 끌어안는다.
땀으로 흠뻑 젖은 피부가 달라붙으며 묘한 흥분감을 선사한다.
'냄새도 맛있고.'
"나도 놀아줘요 정말."
"장난감 줬잖아."
"아앙! 오늘 엄청 기대하고 왔는데."
뒤에서는 리아가 비벼온다.
묵직한 몸은 끌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있다.
결국은 둘 다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진다.
자고 있을 때 소프트한 리아 베개로 갈아탄다.
'좋기는 한데.'
극락이 있어도 이보다 화려하진 않을 것이다.
천국에서 이런 일을 허용해 줄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매일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안는다.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극상의 쾌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 구석이 허전하다.
무슨 짓을 해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다.
'헐렁해.'
몸의 상성 문제가 아니다.
그 어느 쪽도 한순간의 쾌감에 불과한 일.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말 여러 여자를 안아왔다.
사랑도 해보고, 별별 짓을 말이다.
"아!"
"깼어?"
그에 준하는 여자는 발견했지만 마지막 한 조각이 부족하다.
그 허무함을 채워줄 사람을 알고 있다.
* * *
사건은 마무리가 되어간다.
〔개인 방송 갤러리〕
─? 테라버닝 사건 수사 결과 요약. txt
─? 남훈 솔직히 부러우면 개추
─? 이쯤에서 갠방갤 여론 한번 봐보자 ㄱ
─? 의외로 이번 사태 최대 수혜자 ㄷㄷ
.
.
.
워낙 크게 벌어졌다.
용의자가 한두세네 명이 아니다.
진위를 가리는 작업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테라버닝 사건 수사 결과 요약. txt
연예인=정준형, 위너, 최정훈 용준영, 이종연, 박무천 BJ=남훈조직=삼합회, 야쿠자, 나사팸, LA한인갱단, JM솔루션
로이킴, 에디킴 등은 아닌 듯
오정환도 사건과 무관
여배우 H씨에 대해서는 조사 중
└줄줄이 소시지네
└쟤네 팬클럽들은 손절했을까?
└와 거의 남훈 인맥이었네 개소름 ㄷㄷ
└오정환이 ^무^관이라고? 웃기지 마라
그것이 슬슬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진범과 말려든 사람.
경찰 수사에 의해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오정환에 대한 여론은 살아난다.
남훈은 그 반대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갠방갤 여론 한번 봐보자 ㄱ
남훈 복귀 절대 안 된다 개추
아니다 난 대가리 깨진 남견이다 비추
└대가리 깨진 새끼 수 좀 보자 ㅋㅋ
└조용히 올라가는 추신수
└철꾸라지 살아있었으면 복귀시켜 줬을 텐데…….
└이 정도 사건이면 사회적 매장을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님?
팬덤 간의 싸움이 일상인 개인 방송 갤러리조차 단합을 시키는 이슈다.
테라버닝 사태는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에 연관된 BJ.
남훈에 대한 민심은 좋고 나쁘고를 나눌 수준이 아니다.
'나락'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다.
─의외로 이번 사태 최대 수혜자 ㄷㄷ
[스트리머 코코망이짤. jpg]
피해자라고 난리 났던 코코망이
방송 타고 동정 여론 생겨서
팔로워 2배 늘어나고 유튜브도 잘나가고 있다고 함
└종겜비라서 타격이 적은 듯
└얘 원래 파프리카 BJ 아니었냐?
└이참에 여캠 복귀해서 즙 좀 짜면 떼돈 벌 텐데 ㅋㅋ└ㅅㅂ년 독하누
위기가 기회가 된 BJ도 있었다.
테라버닝 사태의 초기 피해자로 알려진 코코망이.
직·간접적인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코코망이♪의 토게더〕
─클럽 간 걸로 난리 피는 애들은 ㅋㅋ
─악플 다는 어그로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유튜브에서 보고 왔어요!
─이런 사건에서 증인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
.
.
여성 스트리머들은 흔히 겪는 일.
잘잘못을 떠나서 성적인 이슈에 얽히면 이미지가 손상된다.
─클럽 간 걸로 난리 피는 애들은 ㅋㅋ
클럽 한 번도 안 가본 찐따 맞지?
그냥 춤추고 노는 장소인데 안 가보고 상상으로 지껄이긴 └가봤자 입구컷 당할 듯 ㅋㅋ
└팩트) 코코망이는 합석했다가 원나잇까지 갔다
└만갤 네임드입니다. 용납 못 합니다
└고소당할 애들 많네
초기에는 어그로가 들끓었다.
사건이 워낙 크게 터지기도 했고, 피해자라는 사실도 의심받았다.
그리고 남훈 팬덤의 공격.
자신이 좋아하는 BJ가 지목당하자 괘씸함을 느끼고 달려들었다.
─이런 사건에서 증인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아몰랑 하고 도망갔으면
증언 부족해서 시간 질질 끌렸겠지
위너 그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걸 생각해 봐
용감하게 총대 멘 것에 박수 칠 생각은 안 하고 어그로나 끄는 쓰레기 새끼들 ㅉㅉ└개추└진짜 첫 단추가 중요한 건데 코망이 덕분에 사건 해결이 빨라짐└악플 단 놈들은 2차 가해라는 걸 모르나?
└응원하는 팬도 많아요!
하지만 진실이 알려졌다.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
사건의 중요성도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장난을 쳐도 될 만한 일이 아니다.
드러나고 있는 스케일은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다.
─유튜브에서 보고 왔어요!
나쁜 일 안 당하셨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정말 트라우마 남으실 것 같아요 ㅠㅠ방송 켜시면 꼭 후원하겠습니다
└나도 222
└코망이 우리가 지켜주자……
└앞으로 꽃길만 걷길
└원래도 팬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찐팬 됐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는다.
시간이 지나며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난다.
방송 어그로.
신규 팬들이 엄청나게 유입된다.
기존 팬들도 대동단결하며 BJ를 지키고 있다.
〔유튜브〕
「메이플맨. 테라버닝 복잡하셨죠? 테라버닝 정리 이것만 보세요」 ― 조회수 105만 회 · 1달 전 「5분 핫이슈. 코코망이 님의 용기에 박수를 쳐야 하는 13가지 이유」 ― 조회수 61만 회 · 2주 전 「이슈 충전소. 코코망이 말고 더 있다?! 드디어 입 연 피해자 BJ들」 ― 조회수 20만 회 · 1주 전
「YTZ news. '정준형 카톡방'에서 오고 간 끔찍한 대화 / YTZ」 ― 조회수 120만 회 · 1달 전
시대가 시대이기도 하다.
유튜브는 정통 미디어인 뉴스가 하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훨씬 더 빠르고, 접근성이 높으며 전 연령층을 아우른다.
정보가 거짓일 수 있다는 단점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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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1주 전 乃 3.6천
위너, 정준형 다 처벌받아야 하지만 이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YK와 경찰의 유착, 강남 클럽들의 조사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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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 1주 전 乃 2.5천
첫 피해자 코코망이 님 감사합니다 ㅠㅠ
덕분에 위너부터 시작해서 등등 다 밝혀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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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매니아 1주 전 乃 2.1천
이거 파보면 더한 비리도 나올 거 같던데
진정한 언론이 되고 싶으면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취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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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상쇄하고도 남는 장점들.
정보 통제가 불가능하고,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및 감시하에 정의가 구현된다.
그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전화.
갖은 고민 끝에 건 것이다.
연결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가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귀찮을 일은 없겠지.'
예상을 하고 있었다.
심익태.
그가 깔끔하게 떨어질 리 없다는 사실 말이다.
대가가 높아도 너무 높다.
3달간 방송을 하는 것만으로는 받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무언가 더러운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알고 있음에도 받아들여야 했다.
"봤어? 이 스카프 봤어?"
"네?"
"너희 아빠가 이번에 프랑스 출장 가서 엄마 준다고 사왔잖니~"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부모의 낭비벽으로 인해 집에는 엄청난 액수의 빚이 잡혀있다.
"실망하지 마. 가을이 네 것도 있어. 어머, 잘 어울리겠다!"
"내 건 필요 없다니까."
"니가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니까 그렇지! 예쁘게 낳아줬더니 정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고 싶은 생각은 당연히 없고, 사치도 특별히 하지 않는다.
'정 하고 싶으면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하든가.'
자신의 할아버지.
큰 사업체를 여러 곳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손에 들어간 후 쇠망의 길에 접어들었다.
사업 노하우가 없었던 건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건지 자신은 모른다.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허울뿐인 사장이었다.
어린 자신을 사업에 이용해야 했을 정도다.
그렇게 해서라도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사정이 나았겠지만.
"허허허."
"당신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친구가 필리핀에 골프장을 냈는데."
"어머~! 사업 잘되나 봐. 우리도 한번 초대해 달라 하지."
"안 그래도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와달라고 하네."
그렇지 못했다.
사업체는 타인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
그것을 대체할 지위나 다른 직업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부모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최악인 건 씀씀이는 그대로라는 부분이다.
"우리 딸도 같이 갈 거지?"
"저는 친구랑 약속 있어서."
"어우~ 가족 여행을 가는데 딸내미가 없으면 섭하지."
"곧 결혼기념일이잖아요. 두 분이서 갔다 와요."
"그럴까?"
"호호."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
더 이상 유지할 품위가 어디에 있는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집안 살림을 이것저것 팔아왔다.
종국에는 빚까지 져 사실상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여러 가지 해볼 수 있는 건 전부 해봤다.
대화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죽겠다는 협박까지 말이다.
애초에 닿지 않는다.
지난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라왔다.
"주말에 가면 딱 좋겠는데……, 당신 요즘 사업은 괜찮아?"
"허허, 자금 융통해 준다는 친구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내가 평소에 사업을 덕 있게 해왔으니까."
"그럼 문제없겠네! 이번 불황만 지나가면……."
현실 감각은 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얄궂은 자신이 있었다.
그때 찾아온 것이다.
"그 심익태라는 양반한테 준 지분은 회수했어? 어우~ 볼 때마다 시끄러워 가지고."
"허허, 돈이라는 건 피처럼 흐르는 건데 그 친구가 사업을 잘 몰라."
심익태의 제안.
수차례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하는 것을 택했다.
딱 3개월만 참으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다.
"저 나갔다 올게요.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어머~ 그러면 우리 딸 얼굴 다음 주는 봐야 보겠네."
"네."
"엄마랑 아빤 필리핀에서 오붓한 시간 보내고 있을 테니 주말에 집 비었다고 놀라지 말고."
가을은 자신의 가방에 최소한의 채비를 마치고 나온다.
나름 으리으리하다고 할 수 있는 주택.
그조차 담보로 묶여 올해가 지나면 청산될 것이다.
그다음의 일은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
철컹!
대문을 닫고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길고 긴 인연의 끝.
자식 된 도리가 있다면 이것이 한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수없이 했음에도 이제야 결심이 선 이유가 있다.
'나만의 인생이라.'
인생의 의미.
다른 사람들에게는 있어 보인다.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라는 것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는 없다.
텅 비고 허전한 마음은 무언가를 이룬다고 채워질 것 같지 않다.
터벅, 터벅
길거리에 듬성듬성 나있는 잡초에게도 역할이 있다.
땅에 뿌리를 내려 비바람에 쓸려 가지 않도록 한다.
자신은 그조차 없다.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고 즐거울 것 같지 않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기분이다.
끼익―!
아직 끝나지 않은 것도 있었다.
* * *
가을.
그녀와 만나는 것은 여전히 떨떠름한 일이다.
'워낙 오래된 인연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선뜻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로서는 6년.
나로서는 족히 10년이 더 지나갔다.
그 정도 시간이면 서로를 잊어도 이상하지 않다.
끼익―!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과거의 연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 점일 것이다.
'똥차 취급 받는 거.'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더더욱이다.
최소한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망설임이 이유였다면 진즉에 마음을 다잡고도 남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그 어떤 것도 희석시킬 시간이다.
단 한 가지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야, 타."
"……."
―야타족 ON
―이걸 또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믿고 있었다고 쥐엔장~!
한 번 사라진 사람.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다시 이어질 수 없는 인연.
'…그랬지.'
나는 아직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