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화
파프리카TV.
〔개인 방송 갤러리. 〕
─가을좌 방송 왜 안 함?
─오정환<<자숙 핑계로 휴방 꿀 빠는 중
─그래서 오정환 전 여친은 결국 뭐냐
─요즘 방송 볼 거 ㅈㄴ 없네
.
.
.
세간의 화제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
평범한 개인 방송을 즐기는 시청자도 많은 법이다.
─요즘 방송 볼 거 ㅈㄴ 없네
보라BJ들 단체로 미쳤냐
휴방 공지 존나게 때려대네 ^^ㅣX
└돈 벌기 싫나 봄
└다 사리니까 ㅋㅋ
└불똥 튈까 봐 콘텐츠 안 하고 캠방만 조용히 하는 거임└남훈 라인은 거의 전멸
그렇지 않은 이들.
보라판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그것이 테라버닝 사태로 막혀버렸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는 재밌었다.
자극도 그런 자극이 없다.
잘나가던 BJ가 하루아침에 나락행.
「Talk) 박유나♡. 시청자랑 소통하는 방송」_ ?500명 시청「야외) 김진수. 강남 야킹. 백화점 쇼핑 나옴」_ ?2, 379명 시청「야외) 최은호. 탑골공원 야킹. 바둑 배틀 구경 ㄷㄷ」_ ?2, 892명 시청
그 여파가 1차원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연관이 없는 BJ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니 X발 탑골공원 야킹 뭐냐
근데 왜 재밌냐
└살벌하다 거기
└할배들 할망구 걸고 어둠의 듀얼 중ㅋㅋㅋㅋㅋㅋ
└은근 치열함
└데이트하는 노땅 커플도 많더라
방송 통신 위원회.
약칭 방통위가 파프리카TV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반쯤 찍혀 있다.
도 넘은 인터넷 방송!
심심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기사 제목이다.
개인 방송의 양면성은 이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보라BJ들이 힘을 못 써?"
"아무래도 민감하잖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생길 바에야 사리고 있는 거죠."
그러한 상황.
남수길 대표도 보고받고 있다.
보라판은 파프리카TV 수익에 막대한 지분을 차지한다.
----------------------------+
『파프리카TV』
22, 700 ▼1000 (―4.4%)
[대충 떡락하는 그래프. jpg]
+----------------------------
보라BJ들의 활동이 제한된 건 적신호일 수밖에 없다.
실제 주가에도 반영되어 몇 달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홍 이사가 많이 난감하겠는데."
"뒷방 늙은이 신세죠."
"자네가 그런 소리를?"
"제가 그런 소리를 할 정도면 사이즈 나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회사 내 파벌 싸움.
아무리 한번 기를 눌러 놨어도 큰 불안 요소였다.
'슬슬 모가지를 쳐도 되겠는데.'
홍 이사의 인맥은 위협적이다.
재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완전히 찍어 눌러 실권을 장악해 놔야 마음이 놓인다.
테라버닝 사태는 그 건수를 제공했다.
업체 쪽 파벌을 조질 명분이 된다.
켕기는 게 많은 업체들은 자진해서 발을 빼고 있다.
"이쯤에서 세무조사 대비를 해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갑자기 왜?"
"최악의 경우 국세청이 시비거리 찾을 겸 조질 수가 있어서."
"……."
그 명분을 정부와 언론에서도 이용해서 문제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에 BJ가 연루되었다.
'남훈 이 새끼 진짜!'
역사적으로 꾸준하게 있었다.
두들겨 패면 돈과 표가 나오는 곳.
20년 전에는 TV가 '바보 상자'라고 불리며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아이돌, 만화, 게임 등도 시대를 탔다.
아이돌이 K―POP이라 불리고, 웹툰들이 영화화되는 건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연막이 안 되나?"
"전 국민이 보는데 그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 가리고 아웅이지."
"너 누구 편이냐!?"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
최근에 가장 공격받는 업종은 게임과 19금으로 웬만한 공산주의 국가 이상으로 규제가 빡세다.
'한번 얕보이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진단 말이야.'
때문에 남수길은 파프리카TV의 이미지 향상에 힘쓰고 있다.
기부, 후원은 물론이고 정부가 하는 일에도 적극 협조한다.
스포츠 사업에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
큰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이득으로 되돌아온다.
"BJ들과 함께하는 연탄 나르기라도 한번 해봐?"
"곧 여름인데 쪄죽으실 거면 하셔도 됩니다."
"니가 해! 니가!"
"죄, 죄송;;"
테라버닝 사태로 인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직전이다.
짜증이 난 남수길은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던진다.
'뭔가 긍정적인 속보 하나 안 터져주나.'
이병권 비서로서도 맺힌 말이 많다.
사내가 완전히 개판이다.
균형이 무너진 여파.
기존에는 업체에 대한 협력 여부를 두고 파벌 싸움이 벌어졌다.
그 업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업체 파벌 단톡방〕
「ㅈ된 거 같은데 어떡하죠……」
「당분간 업무에 집중합시다」
「업무는 무슨 업무? 일 커질수록 우리 책임도 커지는데」
「거 말뽄새 좀」
「막말로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평화가 찾아오긴커녕이다.
업체 쪽 파벌에서는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비업체 파벌은 서열 싸움이 한창이다.
권력에 가까워지자 욕심이 생겨나게 된다.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사장에게는 말 못 할 일.
'차라리 합심해야 할 만한 사건이 터져주면…….'
양측에서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비업체 파벌은 기본적으로 중도에 가깝다.
사내에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
비서인 자신이 조율해볼 수 있다.
계기가 필요하다.
사내는 물론, 세간의 관심까지 돌릴 수 있는 사건이 말이다.
「야외) 오정환. 시즌2」_ ?0명 시청
그럴 드라마가 시작하고 있었다.
* * *
두렵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거라는 불안이 엄습한다.
유치한 망상.
이성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는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았다.
"뭐?"
"……."
―빡쳤는데?
―돔황챠!
―눈나 나 무서버 ㄷㄷ
―둘이 화해 안 했나 보네
진짜로 무서운 언니이기도 하다.
그녀 앞에서 이성이 통제되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첫 만남부터 그랬기도 하고.'
젊음의 치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기에 저지를 수 있었다.
그만한 용기를 다시 한번 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더 이상 후회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타주세요."
"그래."
가을이 피식 웃으며 보조석에 타다.
그런 사소한 표정 변화를 관찰할 여유조차 없었다.
'보면 정말 행복한데.'
행복이라는 건 한순간의 즐거움이 아니다.
편안함.
상시 상태이기에 비로소 성립된다.
한바탕 봄의 꿈처럼 흩어진다면 그것은 악몽이다.
마주 서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벌써가을이구나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가을님 방송 안 하고 뭐 했어요!
"그냥."
―그냥?
―그냥녀 봤구나
―정환이 잘나가는데 질투하시나요??
―리아좌는 의식할 듯ㅋㅋ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요 몇 달간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방해하게 두지 않아.'
사실 알고 있다.
갑자기 여캠을 하게 된 사정도, 계약 기간이 끝나고 겪었을 일도.
BJ를 하게 된 이유였다.
그녀가 살았던 세계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고 싶었다.
"또 노래 부르게?"
"다른 데로 모실까요."
"가고 싶은 데로 가 바보야."
겨우 그 정도의 계기.
그것이 10년 넘게 이어지리라고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다.
'붕 뜬 기분이야.'
노력이라는 건 사실 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다.
공부 시간에 비례해 성적이 나온다면 누가 안 할까?
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혹은 노력에 비해 턱도 없다.
해봤자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끼익―!
그러한 생각.
아예 아무것도 떠올리기 싫다.
지금 내 머리는 복잡한 사고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아니뭐야대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적셔?
"목도 축일 겸 이야기하려고 왔죠."
―오
―역시 술정환 ㅋㅋ
―가을님 의사는??
―어휴 이러니까 까이지 ㅉㅉ
방송을 켠 이유이기도 하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앞에 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도.'
BJ로서의 자신을 연기한다.
그러지 않으면 말 한 마디도 입에서 내뱉기 힘들다.
방송이기에 가능한 일.
카메라가 꺼지기 전까지는 이어질 거라고 최면을 건다.
"마스터, 늘 마시던 걸로 두 잔."
"아……, 네! 알겠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마스터 ㄷㄷ
―자주 오는 단골 바임?
―주문 느낌 있네……
―하이 고슈진사마!
바에 왔다.
적당히 두 잔 시키고 메뉴판을 펼쳐 든다.
바의 메뉴판은 술이 아닌, 안주를 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어차피 봐봤자 이해도 못 하고.'
물론 싱글몰트 바의 경우 편의성을 위해 바틀 리스트를 내준다.
하지만 칵테일은 바텐더의 실력과 기주에 따라 달라져서 크게 의미가 없다.
"간단한 치즈 안주로 세팅하고, 스테이크 같은 건 보면서."
"너 아직도 그래?"
"뭐가."
"여기 처음 온 거잖아."
"……."
보통은 먹힌다.
바에 자주 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주 왔던 척을 해야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다.
"너 부가티도 니 거 아니라며?"
"……."
"왜 똥폼 잡어? 맨날 들키면서."
"크흠! 대, 대체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사장님이 맞춰준 거였눜ㅋㅋㅋㅋㅋㅋ
―코 악물고 아님 ㅋㅋ
―악 내 손발
―부가티 렌트한 거 맞았네?
그러한 허세.
안 해본 남자는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 폼을 잡아보고 싶은 게 남자라는 생물이다.
'뭐,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지만.'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반드시 알아챈다.
만약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꿈.
꿀꺽!
복잡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죽인다.
식도로 내려가는 알코올은 곧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질 것이다.
"아니면 나 재밌게 해주려고 그랬어?"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너 진짜 웃기다. 생긴 것도 웃겨."
"나 생긴 게 뭐 어때서!"
술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의 마약성 물질이다.
취해있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다.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지.'
그녀는 말이다.
항상 곯아떨어지는 건 나.
오늘만큼은 절대 그래줄 생각이 없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555개 감사합니다!
둘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나요??
"어땠더라. 얘가 나 취했을 때 덮쳤지."
"웃기지 마! 너 안 취했잖아!"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논란
―와 이건 진짜 기사감인데
―팩트) 웃긴 건 오정환 얼굴이다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비몽사몽하다.
절대 취하지 않을 주량임에도 반쯤 정신이 끊겨있다.
'그게 나아.'
비몽사몽한 편이 대화를 진행할 용기가 난다.
그게 아니라면 대꾸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 그때 엄청 귀여웠던 거 알아?"
"내가 연상이야."
"오빠라고 해줘?"
"해."
"지금도 귀엽네."
마주 보는 것도 말이다.
그제야 겨우 눈에 들어온다.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의 입꼬리.
하지만 뻗어오는 손은 나도 모르게 피하고 만다.
닿지 않은 걸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철렁하다.
여전히 손을 댈 수가 없다.
그 순간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방송이니까.'
CG 영상에 지나지 않더라도 마지막까지 해야 한다.
진짜든 가짜든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방송이다.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이 귀여움??
"얘 얼마나 귀여운데. 귀여우니까 내가 사귄 거지."
"취했네. 취했어. 여기 계산해 주세요."
―옛날에 어땠길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 고슈진사마!
―채팅창 환진요 결성
―옛날 지인이 흑역사 밝히는 것만큼 두려운 게 없지 ㄹㅇ
오늘 하루가 꿈으로 끝난다 해도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