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23화 (823/846)

823화

나는 여자를 싫어했다.

'솔직히 좀 그렇잖아.'

힘든 일이 있으면 항상 열외.

똑같이 잘못해도 덜 혼나고, 좋은 것이 생기면 우선권을 가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녀공학만 나와봐도 느끼는 현실이다.

그 당연함에 나는 의문을 품었다.

"저기 봐봐. 저기."

"응?"

"쟤 있잖아 쟤! 전에 말했던 소문 안 좋은 애."

학생 식당.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또렷이 들려온다.

이 뒷담이라는 건 특정 데시벨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 귀에 가장 잘 들리는 데시벨.'

여자들은 틈만 나면 뒷담을 까고 견제를 한다.

그것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는 된다.

원시시대.

남성이 밖에서 사냥을 해온다면, 여성은 안에서 부족을 지키는 역할이었다.

즉, 안에서만 생활한다.

여성의 세계는 부족 내부로 한정돼 있다.

따라서 사고방식도 부족 내에서 입지를 키우는 쪽으로 발전했다.

"야, 다 들리거든?"

"뭐야, 쟤 소름 끼쳐. 우리 대화 듣고 있었나 봐."

"스토커 아니야?"

"니들처럼 못생긴 년들한텐 관심 없으니까 냄새 나는 아가리 닫고 밥이나 퍼먹어."

""…….""

뒷담과 견제라는 일종의 정치 행위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냥 ㅈ같을 뿐.

'저 도발에 넘어가면 그 레퍼토리 나오겠지.'

애당초 대화의 목적이 시비를 걸기 위함이다.

상대의 말실수를 유도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선수를 쳐준다.

할 만한 말과 듣고 싶을 말을 귓구녕에 쑤셔 박아준다.

"미, 미친 새끼 아니야! 냄새는 지가 나면서."

"아~~ 김치 존나 좋아하나 보네."

"쟤 또라인가 봐. 정신병잔가 봐. 수연아, 딴 데 가서 먹자."

"응!"

"앞니에 고춧가루 낀 거 빼고."

"꺼져!!"

다른 걸 주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뻐큐를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식판을 들고 사라진다.

'줘도 안 먹어.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양 많이 준다고 맛없는 거 꾸역꾸역 먹고 싶지 않아.'

같은 학과의 여자 둘.

작년에 다 체크를 했지만 별 볼 일 없다.

얼굴도 몸매도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무슨 오리 새끼처럼 꽥꽥거린다.

여자들 특유의 불만 섞인 뚱한 목소리는 싸대기 마렵다.

타악!

하지만 가치는 있다.

부족한 애들은 정치질에 더 적극적이다.

뒷담도 심해지고, 별의별 소문까지 나돌 것이다.

'니들 못생긴 거 열심히 자랑하고 다녀줘 꼭.'

그것이 내가 노리는 바.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지게 될수록 여자를 꼬시는 것이 더 쉬워진다.

못생긴 년에게는 관심이 없다.

즉, 내가 관심을 가진다면 예쁘고 반반하다는 방증이 된다.

"야, 그거 내놔."

"으응……."

"볼 때마다 하루 종일 걸려. 그냥 툭툭 털면 끝나는 걸."

다 먹고 잔반을 버리러 간다.

바로 앞에 줄을 서있는 여자가 잔반 가지고 씨름을 해댄다.

'저런 애들 꼭 있지.'

한 번에 못 버리겠으니 숟가락으로 모은다.

음식물 섞인 건 또 보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열불이 치솟는다.

강제로 뺏어서 짬통에 시원하게 꽂는다.

내 것까지 둘이 합쳐 5초 컷.

"수지 괴롭히지 마!"

"괴롭힌 거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얘가 잔뜩 쫄아있는데."

그렇게 좋은 짓을 해주고도 욕을 먹는다.

여자 학우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썩 좋지가 않다.

'뭐, 그럴 수 있지.'

부작용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것도 쓰기 나름이다.

"왜, 왜 싸워?"

"쟤 나쁜 애야."

"정말?"

"내가 가서 얘기해 줄게. 수지야 가자."

무관심보다는 관심이 무조건 낫다.

나쁜 짓을 해서라도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준다.

'예쁜 애들이 다 온실 속에서 자라 와서.'

누군가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 라는 상황을 거의 겪어본 적이 없다.

그것에 1차적으로 놀란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게 2차.

처음에는 욕을 하고, 뒷담을 같이 깔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포함한 전략이다.

그토록 나쁜 사람이 왜 자신한테는 잘해줄까?

저 수지라는 애에 대해서도 분석이 끝났다.

푸슉! 푸슉!

학생 식당을 나가는 길.

수지가 손 소독제를 손바닥 위에 한 움큼이나 담는다.

'존나 깔끔 떨더라고.'

대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받쳐줘야 한다.

잔반을 버려준 걸 내심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빌드업을 쌓다가 기회가 올 때 받아먹는다.

골은 노리고 있던 자에게만 슛 찬스가 찾아온다.

끼익―!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마음에 드는 애.

한 명씩 노려서 즐기다가 질렸을 때 버린다.

나쁜 소문이 퍼진 과정이기도 하다.

결과만 따지고 보면 나의 잘못도 상당 부분 있다.

'내가 싫어하는 타입인 걸 어떡해.'

몸은 마음에 드는데 정신머리는 역시 싹이 노랗다.

인생을 쉽게 쉽게 살아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몹시 짜증 난다.

쉬운 일 하나 자기 손으로 하지 못한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뭐가 그리 엄살인지 모르겠다.

특별하다고 보여지는 애들도 결국 똑같다.

여러 여자 거치면서 내린 결론은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뿐이다.

"야!"

"어."

"밥 혼자 먹었냐? 나 부르지."

"그냥 먹고 싶어서."

"오다가 들었는데 여자애들이 너 보고 쓰레기래!"

"……."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힘들다고 하면 기꺼이 호구를 자처해야 한다.

'난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런 애랑 만나서 힘들고 싶지도 않아.'

왜 고생을 자처해야 하나?

남자니까 참으라는 소리와 남자니까 그래야 한다는 소리는 그만 듣고 싶다.

나도 여자애들처럼 인생 개꿀로 쉽게 살고 싶다.

까놓고 말한다면 속마음은 그것이다.

"못생긴 년들이 뭐라고 떠들든 관심 없어."

"수연이 못생긴 편은 아닌데……."

"세상을 잘생겼다, 못생겼다 이분법으로 나누면 어디겠냐?"

"그러면 후자겠지."

부럽다.

원피스라는 만화에 나오는 천룡인의 삶을 현실에서 산다면 그런 느낌일 것이다.

'X발 나는 군대도 가야 하는데.'

가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굳은 뇌로 복학할 생각까지 해야 한다.

인생을 2년[email protected]가 뒤처진 상태에서 재시작.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온다.

그것이 먼 일이 아니고 바로 앞의 미래다.

같은 학번의 동기들도 과반수 이상이 군대에 가있다.

"근데 너 어떡하냐."

"신경 안 쓴다니까."

"나까지 입대하면 너 그냥 아싸 되는 거 아니냐?"

"……."

복학생들에게도 들은 바가 많다.

인생 난이도가 Eazy부터 Hell까지 있다면 최소 Hard 이상을 살고 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어.'

스타팅 포인트가 조금 구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정도는 컨트롤 차이로 극복하면 되겠지.

"여친이라도 한 명 진득하게 사귀어봐."

"이미 있다니까."

"아니, 진득하게. 좀 사귀었다 싶으면 바꾸잖아. 그러니까 쓰레기 소리 듣지."

"……."

그런데 치트 치고 게임 하는 애가 옆에서 부심을 부린다.

이걸 어떻게 열이 안 뻗치고 배겨.

'내가 왜 쓰레기인데.'

치트키 유저들을 혐오할 뿐이다.

나는 뭐 인생 ㅈ대로 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사귀고 있다고 했잖아. 곧 있으면 100일이야. 100일 선물이나 해줘."

"누구랑?"

"가을이."

"웃기지 마."

"아, 진짜로."

"니가 올해 한 농담 중에 최고로 웃기다."

"……"

그런 법이 제정이 될 수도 있지만 이제는 딱히 알 바 아니다.

그렇게 분노를 토해내던 것도 옛날의 일.

"그래, 노리고 있는 건 아는데."

"아니."

"무진 형 아직도 질질 짜더라. 엊그제도 내가 술 상대해 주고 왔어. 트라우마 오래 가더라고."

"내가 그 새끼 사정을 왜 알아야 돼?"

지금은 그냥 순수한 취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저기 찔러나 보자.

'어차피 믿어주지도 않는데.'

절친한 친구까지 안 믿을 정도면 나를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튼 응원한다. 언젠가 정착할 날이 오겠지."

"ㅈ대로 생각하렴."

"니 같은 애가 한 여자한테 빠지면 의외로 순정남 될 거 같거든."

"……."

팩폭을 꽂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부들부들.

말투가 거의 비슷하고 사용하는 단어도 겹친다.

'단체 생활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여자애들이랑 말싸움을 하면 그리도 재미없을 수가 없다.

사귀기라도 하면 끔찍하게 재미없을 것이다.

그런 주제에 불만이란 불만은 다 달고 사니 호감이 싹 트는 게 더 힘들다.

현실의 여자는 최악이다.

철컹!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때려 죽여도 진심으로 여자를 사귈 날은 오지 않는다.

'그 녀석이 가끔씩 예리한 부분이 있다니까.'

신입생 환영회.

그날 밤 있었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

무진을 포함한 선배들도 겁을 먹은 가을에게 들이댔다.

아니, 들이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녀를 데려갔다.

"오."

"왔다."

"먹을 거 사왔어?"

"옜다."

"땡큐~"

그 결과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다.

가을이 침대에 누운 채 손만 쭉 뻗는다.

'사랑이라.'

내가 건넨 비닐봉투.

부스럭부스럭 대더니 용케도 먹을 것만 쏙 빼내 입에 넣는다.

동거를 하고 있다.

그녀를 데려갔던 게 아이러니하게도 사귀는 계기가 되었다.

"오 이거 졸맛."

"조금만 먹어. 곧 저녁 시간이니까."

"닌 밥 만드는 거 안 귀찮냐?"

"오빠라고 해라."

"으쁘르그 흐르~"

사실 이성적으로 따지면 신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다못해 당한 게 있다면.

'불발로 끝났는데.'

침대에 눕힌 그녀는 아름다웠다.

내가 지금까지 안은, 아니 본 어떤 여자보다 말이다.

그런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며 처음 맛보는 고양감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

모텔방에 비치된 화장된 거울을 통해 비춰졌다.

한 마리의 짐승처럼 추악한 몰골이었다.

"바압~"

"거의 다 됐어."

지금은 한량 백수처럼 침대에 엎드려 있지만, 그때는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매력적이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왜 안 할까.'

동거를 하게 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화장을 생각보다 거의 하지 않았다.

맨 얼굴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여자들의 사기 같은 화장과는 천지 차이다.

"두부조림이야?"

"싫음 말고."

"내가 언제 안 먹는 거 봤냐?"

가을의 미소를 마주하기 1초.

나도 모르게 눈을 꾹 감는다.

최악의 상상을 하게 된다.

'어쩌겠어. 이게 내 최선인데.'

만만한 것이 두부랑 팽이버섯이다.

마트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식품이다.

다진 냉동육으로 심심한 맛을 덜고, 두껍게 썬 대파로 악센트를 넣었다.

맛을 낸 방법.

그래 봤자 재료비 2000원이 안 되는 음식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마디로 싸구려다.

"흐흥."

"…왜."

"매일 맛있는 밥 해주니까 너무 좋다."

"겨우 두부조림이?"

그녀와 달리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좋은, 드라마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와 사귀고, 동거까지 하고 있는 것인지.

"니가 해주니까 좋은 거야."

"이딴 게 뭘."

"이딴 거라고 하지 마.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부담스러운 나날이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돼 이해가.'

하지만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갑자기 마음이 변해 신고라도 한다면 큰일 나는 정도로는 안 끝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다.

삼시세끼 밥을 챙겨주는 것도 그 일환.

"설거지는 맡겨줘."

"됐어, 가서 쉬어."

"꺼져."

"……."

언젠가 만족할 때까지 말이다.

딱 그때까지만 이 소꿉장난 같은 짓을 하면 된다.

자기 일은 하고 있으니 특별히 불편한 동거는 아니다.

한 가지 곤란한 게 있다면.

'…미치겠네.'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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