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화
연예계.
"Nice to meet you.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Oh~ Jeong-hwan!"
당연히 방송 활동도 중요하다.
예능에서 활약을 하고, 커뮤니티에서 2차적인 파급을 미친다.
'그런 것을 할 수 없었으니까.'
테라버닝 사태.
용의선상에 올라간 후로는 방송 활동이 제한되었다.
최근에는 다시 풀리게 되었다.
오늘 오후에만 해도 녹화를 하나 마치고 왔다.
혐의도 없고, 언플도 했으니 사간 문제다.
그렇다고 한사코 쉴 수만은 없었다.
"정환이 유튜브 팬이라고 하네."
"아, 그래요?"
"정확히는 봄튜브 보고 구독했다고 했지 후후."
"……."
이석현 대표.
우리 봄이를 맡고 계신 소속사 사장이다.
나도 형식적으로는 소속되어 있다.
'봄이가 힘들어 죽으려고 하더라고.'
집에 돌아오면 2시간 동안 쳇바퀴 구른 것보다 더 헥헥 댄다.
몸도 마음도 피로할 수밖에 없다.
연예계 활동.
쉽다면 더 이상할 것이다.
봄이가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잘 굴리고 계신다.
"아무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Mr. Johnson. Jeong-hwan said……."
그것은 일반적인 활동의 이야기.
나 같은 경우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다.
'대중 앞에 선다는 게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도덕적 기준이 높다.
그리고 쉽게 끓어오른다.
뭐 하나 건수 잘못 잡히면 잘못하지 않아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봄이 씨와의 콜라보도 기대해도 되냐고 물으시네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대표님이 신경을 써주시면."
"그거야 뭐 시간문제지."
이번 사태는 교훈이 되고 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바닥까지 묻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인맥의 소중함이 와닿더라고.'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더 신경 쓰기로 했다.
내 앞에 있는 외국계 펀드 매니저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면."
"네?"
"자신한테도 위스키 선물해 줄 수 있냐고 묻네요.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아~"
광고주가 그러하듯 투자자들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연예계 활동하는 사람들만 힘이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크지.'
업계인들은 내부 사정을 알고서 말을 고르지만, 투자자들은 그런 거 없다.
돈 잘 뽑히는 애 왜 안 씀?
혹은 마음에 드는 연예인이 안 나오면 기분이 상한다.
돈이 여포이기 때문에 쩔쩔매면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별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하나 가지고 온 게 있거든요?"
"Really?!"
"뭘 가지고 왔지? 나도 기대가 되네."
좋은 관계를 구축해 두면 든든하다.
그 일환으로서 만나는 분들마다 안면을 트고 있다.
타악!
위스키로 말이다.
선물 박스에서 내용물이 나온다.
그와 동시에 펀드 매니저는 표정이 활짝, 이석현 대표는 의아하다는 듯 찡그린다.
"Awesome! I really wanted this~"
"제 부족한 영어로 해석을 하건데 마음에 드신 거 맞죠?"
"정말 좋아하시고 계시네요."
"……."
본인만 좋으면 그만이다.
박수까지 치며 호들갑 떤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헤어지고 나자.
"좋아해서 다행이네만."
"네."
"저거 좀 싼 거 아닌가?"
"알고 계시네요."
이석현 대표가 본심을 꺼내온다.
상황상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위스키 매니아로서 불편했을 것이다.
'원래 이 정도 레벨의 사회에서는.'
발렌타인으로 치면 21년 미만은 선물하면 안 된다.
최소로 잡아도 21년이고, 가능하면 그 이상급을 논해야 한다.
하물며 외국인.
한국과 달리 위스키가 대중적이다.
어지간한 선물로 만족 못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닛카 사무라이가 서양권에서는 엄청 비쌉니다."
"한 5만 원 했던 걸로 아는데……."
"미국에서는 30만 원 돈 합니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나라마다 싼 게 있고, 비싼 게 있는 법이다.
위스키도 한국 가격이 외국보다 싼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있어. 꽤 많이.'
위스키 종류가 워낙 많다.
파는 매장마다 천차만별이다
잘 고르면 좋은 가격에 위스키를 살 수 있다.
물론 그래 봤자 30만 원.
펀드 매니저씩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다.
"외관이 멋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서양인들이 사무라이를 좋아해서 현지에서는 인기가 많나 봐요."
"아, 그런 이유로?"
닛카 사무라이.
컨셉이 확고한 위스키다.
사무라이 모양의 인형이 얹어져 있다.
'한국에서 사무라이는 인기가 없으니까.'
옆나라 일본의 면세점에서, 혹은 어둠의 루트로 5만 원 안팎에 구입이 가능하다.
희소성 측면에서도 별 볼 일이 없다.
태평양 건너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는 이야기다.
위스키 매니아들은 하나쯤 가지고 싶어 한다.
"맛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듭니다. 그냥 관상용이죠."
"그건 나도 알지."
"그래서 자기 돈으로 사기 아까운 위스키 1위가 된 거죠."
"아!"
그런데 비싸.
일본 갈 일은 없어.
일본이 관광대국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관광객의 90% 이상이 아시아 사람들이다.
'서양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거지.'
서양에서 '닛카 사무라이'가 희소성이 붙은 이유다.
외국인 위스키 매니아를 만날 일을 대비해 구입해 두었다.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고려해서 선물을 하다니……, 역시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아니, 빈말이 아니야. 자네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
선물이라는 건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격도 당연히 고려 요소지만, 가장 큰 건 받는 사람이 기뻐야 한다.
'기억에 남고.'
그런 부분까지 따져서 선물을 고른다.
단순히 가격이 높다고, 하이엔드라고 선물을 하는 건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다.
위스키로 인연을 트게 된 한 사람.
이석현 대표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무겁게 입을 뗀다.
"자네가 물어봤던 거 있잖아."
"아, 네. 부탁드렸었죠."
"자네 부탁이기도 하고, 나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진지하게 조사를 해봤지."
STG 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다.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를 여러 가지 꿰뚫고 있을 것이다.
'나한테 말할 수 없는 기밀도.'
가을의 소속사 선택.
그가 알아봐 준다면 이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회사의 인지도로 선택할 문제는 아니야. 기획사마다 푸쉬 가능한 여력이라는 게 있고, 특기로 삼는 분야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렇군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가을은 우리 엔터에 어울리진 않아."
기대한바 이상으로 제대로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유능한 인재가 많은 편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타 회사의 내부 사정도.'
가요계에 영향력이 있는 회사.
그러면서도 소속 연예인 수가 널널해 여력이 있는 회사.
따져야 할 요소가 많았다.
봄이를 맡고 있는 이석현 대표라면 믿고 의지해도 될 것이다.
"곤란하기도 하고."
"?"
"가을이 데뷔한다면 필연적으로 자네도 엮일 텐데, 우리 엔터가 전부 맡으면 방송 스케줄 잡는 게 힘들어져."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도 있다.
방송에 캐스팅되는 연예인이 적당히 뽑히는 것 같아도, 기획사들끼리 파이를 나눠 먹는 구조다.
한 기획사에서 전부 해먹어 버리면 곤란하다.
3대 기획사 정도면 힘으로 찍어 누르겠지만, STG는 그 정도가 안 된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따졌을 때 내가 추천하는 곳은 레코드 엔터테인먼트야. 이미 그 회사 대표의 의향도 물어 놨어."
"대표님 말씀은 항상 신뢰하죠."
"문제는 그다음이지."
세력을 연합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가장 알맞은 기획사.
이석현 대표와 친분이 있어 협업도 수월할 거라고 한다.
'금상첨화네.'
인맥은 정말 두고 볼 일이다.
가을에게 잘 설명을 하고, 레코드 엔터테인먼트 대표님께는 좋은 선물 준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녀석 술은 안 마셔."
"그래요? 그러면 다른 선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마시지."
알고 지낸 지 굉장히 오래되었다고 한다.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고, 그의 아버지에게도 신세진 바가 많다.
'가요계의 큰손이라.'
영향력이 상당했다고 한다.
과거형.
이석현 대표만 해도 나이가 70대를 바라본다.
아버님이면 최소 80대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2년 전 은퇴를 끝으로 현장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었다.
"이건 강요는 아니야. 그냥 선택 사항인데."
"알겠습니다."
"다만 나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고, 절친한 지인 아버님의 마지막 부탁이니 들어줬으면 하는 욕심이야."
"……."
건강 상태도 썩 좋지가 않다.
요양을 하고 있어서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언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협박 맞잖아.'
그런 아버지에게 한 가지 미련이 있다.
어렸을 때 마셨던 위스키를 죽기 전에 한 번만 다시 마셔보고 싶다.
* * *
한국 병원.
<10층, 10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병원침대에 실린 급한 환자들은 밑층에서 전부 내렸다.
10층은 요양실.
그것도 1인실이 가능한 VVIP만 있다는 사실은 일반 환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해?"
"100%야."
"그 말 저번에도 들어본 거 같은데……."
두 명의 남자가 묵직한 선물을 들고 걸어간다.
텅 빈 복도는 두 사람의 소리만으로 매워지고 있다.
'아니, 이게 얼마짜린데.'
MJ 스튜디오의 대표 김종인.
그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병원에 찾아왔다.
한 가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요계의 대부가 기거하고 있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
진즉에 은퇴를 한 뒷방 늙은이로 평소라면 신경도 안 쓰겠지만.
"1960년대에 나온 맥캘란이야."
"엄~청 오래된 거네?"
"가격도 엄~청 비싼 거야. 한두 푼이 아니지."
소문이 있다.
한 병의 위스키를 찾고 있다.
옛날에 마셔본 추억의 물건이라고 한다.
'그것을 찾아주면 웬만한 부탁은 들어주겠지?'
뒷방 늙은이라고는 해도 한때 연예계를 호령했던 큰손이다.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의 한마디면 한국 연예계에서 안 되는 게 없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다.
때문에 절실하다.
MJ 스튜디오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새 걸그룹을 런칭했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이런 술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다~ 조사를 한 거지."
"조사까지 했어?"
"그래, 술 한 병 사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니까?"
맥캘란 1963년 릴리즈를 구해온 이유다.
과거 윤청호 전무에게 로얄샬루트 38년을 선물하고도 망신을 당했던 그지만.
'덕분에 내가 위스키에 빠삭해졌어.'
높은 숙성 연수와 값비싼 가격.
당시에는 그 두 가지밖에 몰랐다.
오정환에게 망신을 당하며 깨달았다.
위스키에도 정말 여러 가지가 있고, 알아야만 제대로 된 선물도 가능하다.
그것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활용한다.
"근데 막 1961년이나 5년이면 어쩌지?"
"설마 그 정도까지 요구하겠어? 대충 비슷하면 만족하겠지. 귀한 걸 구해온 내 정성을 봐서라도."
어떤 위스키인지 단서도 잡았다.
지금까지 시도해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정보도 있다.
'셰리 위스키라.'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년도를 따져보면 1960년대다.
그때 나온 셰리 위스키라는 사실이 추정 가능하다.
아는 바 사장님들한테도 물어봤다.
당시에는 셰리 위스키로 대표되는 브랜드가 많지 않았고,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캘란일 확률이 높다.
똑! 똑!
끼익―!
면회 요청은 해뒀다.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침대에 앉듯이 누워있다.
'가요계의 대부는 개뿔. 곧 골로 갈 노친네가. 어……?'
순간 얕보려던 김종인은 흠칫한다.
비록 노쇠해 있지만 또렷이 살아있는 두 눈의 안광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