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28화 (828/846)

828화

위스키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어, 정환이!"

"박운 형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내지~"

비유가 아닌 글자 그대로의 설명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맛이 정해진다.

'거기에 +로 운.'

금수저로 태어나 서울대 졸업했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듯 운적인 요소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배경으로 유추는 가능하다.

"저번에 내가 부탁했던 건? 혹시 기대해도 되나?"

"안 그래도 형 온다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오~! 어디 봐봐."

대충 어떤 맛이 나는 위스키인지.

가지고 온 선물 박스 하나를 건넨다.

그것을 건네받은 그의 동공이 확장된다.

「George Dickel Tabasco Barrel Finish」

놀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마셔본 사람일수록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글자가 적혀있다.

"이건……, 이건……."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가져갈까요?"

"이건 너무 재밌잖아! 기대 이상이야. 상상도 못 했어!"

조지 디켈사에서 만든 타바스코 배럴을 쓴 위스키다.

재미있는 위스키를 마시고 싶다고 하길래 선물해줬다.

'타바스코 소스.'

타바스코 소스는 오크통에서 숙성이 된다.

타바스코 소스에 오크향이 묻어나듯, 오크통에는 타바스코향이 점점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다른 음식을 숙성시키는 데 사용된 오크통을 위스키를 숙성하는 데 쓰기도 한다.

그에게 선물한 위스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체 무슨 맛이 날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맛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도 재밌겠지?"

"그건 확실합니다."

"그럼 됐어!"

물론 사도(邪道)다.

아무리 그래도 타바스코처럼 강렬한 소스맛이 위스키에 배어들기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규정 같은 것도 있고.'

위스키도 해외의 전통주다.

제조 규정이 굉장히 팍팍해서 '데킬라 캐스크'를 쓰는 것도 최근에서야 풀렸다.

그것만 가지고도 논쟁이 뜨거웠는데 타바스코?

당연히 허락해줄 리가 없다.

그래서 분류상으로는 위스키가 아니다.

"형이 밥 한 끼 사야겠는데?"

"저는 됐고, 봄이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주세요."

"그래, 그래. 형이 오후 스케줄 있어 가지고 먼저 갈게~"

받는 사람이 만족하니 되었다.

위스키가 든 박스를 매니저에게 맡기고 서둘러 주차장 방향으로 뛰어간다.

'가끔 특이한 위스키 마시면 재밌지.'

그렇게 별일은 아니다.

매운맛 매니아들도 캡사이신 범벅인 디진다 돈까스 열심히 먹으러 간다.

위스키 매니아도 특이하고, 재밌는 걸 원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충족시켜 주었다.

"뭐, 별걸 다 가지고 있네."

"그런 걸 원하시는 매니아들도 가끔씩 있어서."

"내가 이따 뺏어 먹어야겠군."

"하하."

박운은 STG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다.

간판 중 한 명으로, 회사 수익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 입장에서 보면 그래 봤자 꼬봉이겠지만.'

선물받은 위스키는 특별한 날 열고 싶은 법인데 오늘 바로 뚜따를 당할 예정이다.

대표의 폭거에는 저항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부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겠지?"

"하하……."

"그 녀석이 어렸을 때 철이 좀 없었거든. 그래서 아직까지도 아버님한테 죄송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나 봐. 맺힌 응어리는 풀어드리는 게 자식된 도리 아니겠나?"

나도 말이다.

레코드 엔터테인먼트 대표분의 아버지가 원하는 위스키가 있다.

그것을 찾아 달라고 안달이 나셨다.

'대표님도 많이 없었을 것 같은데.'

두 분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건 알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적어지는 법이다.

이석현 씨 성격도 안 좋다.

그럼에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면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게 추측된다.

"좀 실례긴 한데 아버님도 만만치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크흐흐……. 본인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말게."

아버님의 추억이 담긴 위스키.

년도를 생각한다면 표본을 꽤 많이 좁힐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이라.'

수학여행을 갔다고 한다.

당시에도 경주로 가는 것은 국룰이었던 모양이다.

술을 숨겨 가는 것도 말이다.

보통은 물병에 소주를 담아서 가지만.

"아버님이 아끼는 위스키를 훔쳐서 가져갈 정도면."

"그래서 그렇지."

"?"

"아버님의 아버지는 정말 고생만 하다가 가셨다고 해."

찬장에 위스키가 한 병 있었다.

불량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며 술맛을 배우던 아버님의 눈에 띄었다.

'그럴 만하지.'

아버지 컬렉션에 관심 안 가져본 남자는 없을 것이다.

살짝 노시던 아버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맨날 꺼내서 보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는다.

뭐가 저렇게 귀한 건지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수학여행 때.

며칠 동안 집을 비우게 된다.

들켜도 당장은 혼나지 않는다.

"만약 대표님 자식분이 위스키 마시고 보리차로 채워두면 어떻게 할 거예요?"

"뒤지게 맞아야지."

"그렇죠. 미성년자가 음주를 하면 안 되니까."

"내 컬렉션이 얼마나 귀한 건데."

"……."

물병에 옮겨 담고 보리차로 채워두었다.

어차피 보기만 하고 안 마실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위스키를.'

그렇게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집에 들어온 아버님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당연히 혼날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의외로 아버지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풋고추를 반주 삼아 위스키를 비울 뿐이었다.

"위스키의 풍미는커녕 보리차 맛밖에 안 나는 걸 말이지."

"풋고추랑 먹으면 아무 맛도 안 나긴 할 걸요."

"그렇긴 해."

어머니는 또 술 퍼마시냐며 한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아버님은 내용물을 안다.

그 자리가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그대로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척했다.

당시의 사건을 까맣게 잊은 채 수십 년이 흘러갔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기억이 난 거지.'

사람의 뇌는 이기적이다.

잊고 싶은 정보는 삭제한다.

젊은 날의 아버님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끼익―!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당시에는 위스키를 살 형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평생 소주만 마시다가 돌아가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었던 아버지의 위스키를 자신이 마셨다.

"여길세."

"아, 여기 계시는군요……."

"성묘 때마다 독한 위스키를 뿌려 대서. 봐봐, 여기 풀 죽은 거."

차를 타고 도착한다.

아버님의 아버지가 묻히신 묘지.

딱히 오고 싶진 않았지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절하지 말라고 오지게 돌려 말하네.'

연세가 연세시다.

이뤄 놓은 것도 많고, 돈도 아쉬울 일 없을 만큼 많이 벌어두었다.

유일한 미련은 그 위스키.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터벅!

당사자가 도착한다.

얼핏 30대로도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훤칠한 중년의 남성이다.

"제가 좀 늦었죠?"

"괜찮아. 우리도 방금 왔어."

"아~ 참 불러 놓고 면목이 없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연예계 사람이다 보니 관리를 잘하고 있을 것이다.

"반갑습니다. 레코드 엔터인먼트 대표 이민형이에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표님. 오정환입니다."

40대 중반으로 추정이 된다.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검색해본 결과도 그러했다.

'대표님과는 나이 차이가 꽤 되니까.'

아버님도 80대가 아닌 70대일 가능성이 높다.

고등학생 시절이면 1960년대.

맛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 느낌이 남아있다.

건포도와 초콜릿 같은 맛이 났다.

"셰리군요?"

"셰리지."

"아마 다른 느낌도 났을 거라 생각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니까요."

타바스코 배럴 피니쉬가 있었듯, 위스키에는 여러 가지 오크통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셰리다.

'주정강화 와인.'

옛날에는 냉장 기술이 좋지 않았다.

배와 열차의 속도도 느려서 운반 중에 상하기 쉬웠다.

그래서 주정강화 와인.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서 유통기한을 크게 늘렸다.

서양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이었다.

따라서 셰리 와인이 담겨있는 오크통도 흔했다.

"포트나 마데이라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셰리라고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 있죠."

"그래?"

"당시 한국에는 위스키가 별로 없었을 때니까요. 유럽에서도 희귀한 포트나 마데이라 배럴 위스키를 드셨을 확률은 낮죠."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데 많이 쓰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는 말린 과일과 초콜릿 같은 맛이 난다.

'물론 천차만별인데.'

위스키는 살아있다.

숙성이 되는 십수 년 동안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기본 방향이라는 게 있고, 건포도와 초콜릿 같은 맛이라면 십중팔구다.

셰리 위스키.

그것도 가장 대중적으로 마시던 올로로소 셰리일 확률이 높다.

적당히 달고 산미가 있어 인기가 높았다.

"맥캘란이죠."

"맥캘란이지."

"잠시……, 일단 정환 씨가 위스키에 해박하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이러한 분석.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바 사장님만 돼도 이 정도는 상식선에서 알고 있다.

'그토록 열심히 찾았다면.'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짚이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저도 지금까지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네."

"어제도 손님이 한 분 오셨어요. 두 분이 말씀하신 맥캘란을 들고 말이죠."

"결과는?"

이석현 대표가 궁금하다는 듯 다그친다.

그도 그럴 게 맥캘란.

그것도 이전 세기의 구형.

'애주가의 로망이거든.'

우리 봄이의 성인식 때 괜히 한 병 딴 게 아니다.

당시 딴 건 1996년도의 릴리즈다.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지금 구하려면 최소 몇백, 비싸면 천 단위까지 내야 할 수 있다.

"아니었습니다. 마시지도 않았어요."

"하긴……."

"어째서? 1963년도의 것이면 최소 근접은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기회비용.

없을 만한 분이 아니다.

본인의 영향력도 어마무시하다.

'향기 나는 꽃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니까.'

시도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자기 돈으로 사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거쳐본 선택지.

적어도 맥캘란은 아니라는 것이 확정된다.

"맥캘란이 가장 대표적인 셰리이긴 한데, 다른 증류소도 시험을 해봐야겠죠."

"그렇지."

"왜 저를 보세요."

이석현 대표가 능글맞게 쳐다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협조를 해준다.

'원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은.'

남이 사주는 돈으로 먹는 술이다.

아무리 부탁이라고 해도 위스키를 찾아주는 입장이다.

법카 한번 시원하게 긁어주길 바란다.

체념을 했는지 한숨을 푹 쉬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어디 추천하는 바 있나?"

"글쎄요. 가장 좋은 것은 비행기 타고 도쿄 긴자에 가는 건데."

"오~ 당일치기 일본 여행 재밌겠구만."

"……."

"서울이라면 마포구의 K바랑 마띠아바자르 둘러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올드 보틀.

가격이 단위가 하나나 둘 정도 다르다.

돈이 있어도 먹기가 참 애매한 가격대의 술이 많다.

'한국에서는 주세 때문에 더블로 뛰어 가지고.'

과장 없이 비행기 표 끊는 게 더 싸게 먹힌다.

하지만 두 분 다 회사의 대표인 만큼 스케줄을 오래 비우긴 힘들 것이다.

"수십만으로 안 끝날 텐데 괜찮겠어~?"

"후회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오."

"저는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니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나는 아니야~ 저 친구지."

"……."

여차할 때의 변명도 되고 말이다.

한국에 없는 술이어서 고멘나사이~ 하는 선택지도 있다.

'물론 가능하면 찾아야겠지.'

나로서도 궁금하다.

1960년대의 셰리 위스키.

그것도 맥캘란과 궤를 달리하는 맛.

분명히 마셔볼 가치가 있는 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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