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화
한국병원.
'거동만 보면 아직 정정하신데.'
레코드 엔터테인먼트의 이민형 대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딱히 자신이 아파서가 아니다.
병실을 방문하기 위함.
10층의 VVIP 요양실에 아버지가 계신다.
정밀 검사를 위해 벌써 꽤 장기간 입원 중이다.
똑! 똑!
그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연세가 연세.
정정하면 정정한 대로 걱정이 되는 나이대다.
차라리 검사 확실히 하고, 몸 관리하면서 조심조심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진짜 걱정스러운 건.
"접니다."
"그래."
"오늘은 좀 괜찮으세요? 밥은 다 드셨고?"
"아마 먹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리는 것.
몸만 아프신 게 아니다.
외부에는 공표를 하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 초기라.'
기억에도 손상이 있으신 모양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고, 발견도 굉장히 조기에 했다.
전신 검사 중에 겸사겸사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오늘 손님이 한 분 올 겁니다."
"또 그 얘기냐?"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위스키에 굉장히 해박한 친구고."
"대체 몇 번째인지 쯧……."
오로지 아버지의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하고 있다.
그 본인마저도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완전히 잊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찾아낼 수 없다.
아버지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려야 한다.
그것이 가장 걱정된다.
끼익―!
그 말을 듣기라도 했다는 듯 문이 열린다.
기다리던 손님의 등장에 반색하려던 찰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또 자넨가?"
"제가 저번에 틀렸던 게 마음에 걸려서 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
다른 사람이었다.
40대 초반의 남자.
안면 정도는 튼 사이다.
"대표님도 계셨군요~ 저희 애들이 항상 신세 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그게 선생님이 애타게 찾고 계신 위스키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제가 선생님께 워낙 신세진 게 많다 보니 헤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다.
이 업계에는 진정한 적도 아군도 없는 법이다.
'대체 뭘 가지고 온 거지?'
그냥 궁금.
자신으로서는 오정환이 맞춰주는 게 더 좋지만, 이 남자가 맞춘다고 해도 아쉬울 건 없다.
아버지가 미련을 떨쳐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려놓는 내용물이 낯이 익다.
"자네 맥캘란에서 생각을 분리해보는 게 어떤가?"
"그래도 이건 진짜 귀한 1950년대 맥캘란으로……."
지난번에 마셨던 것.
그 내용물을 알고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뭐, 보진 않았겠지.'
아버지와의 대화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사정사정하는 그를 위해 한 입 마셔준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아니야."
"그, 그런가요? 그래도 비슷한 느낌이라거나……."
"자네."
"네, 선생님!"
"수고해준 건 고맙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역시나 아니다.
자신이 그날 밤 썼던 수백만 원.
다음 날 일어나서 현타가 왔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걸 보틀로 샀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만.'
오히려 돈을 아낀 셈이 되었다.
오정환 덕분에 여러 가지 안 것도 많다.
추억의 위스키를 찾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무려 50년 전이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으로, 1인당 국민 소득이 겨우 1천 달러에 불과했다.
그 시절에 일어난 일?
학창 시절 교과서로 배운 것 혹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건 백분지 1도 되지 않는다.
"그러실 줄 알고!"
"또 뭔가."
"제 차에 더 있습니다. 그중에 분명히 하나는 있을 거예요!"
이제 와서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요원한 일이다.
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내려놓으셨다.
'얻어걸릴 가능성은 아마 없겠지?'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도 바에서 확인했다.
그렇게 체계적으로 찾은 오정환도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네가 부른 손님이 저 멍청이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 MJ 스튜디오의 대표로……."
"저런 놈들 수도 없이 봐왔어. 본인 능력 이상으로 과분한 자리를 얻은 놈."
일일이 새기도 힘들 만큼 바에는 보틀이 많았다.
그중에 하나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탁! 탁! 탁!
차에 갔다 온 김종인.
위스키가 든 상자를 마치 벽돌처럼 하나하나 쌓아 놓는다.
터억!
진짜 박스까지 가지고 왔다.
6병이 들어가는 큰 박스의 등장에 어이를 상실한다.
"다 아는 위스키들이구먼."
"헥, 헥, 헥……. 네?"
"소싯적 바에 다닐 때 다 마셔본 것들이지."
"이, 이걸 다요?!"
바에서 다 마셔본 것들이었다.
아닌 것도 있지만, 큰 차이가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
아버지도 마셔봤던 모양.
이 중에 없으리란 것은 실전 테스트까지 갈 것도 없다.
'또 대체 뭐가 있는 거야.'
그렇기에 더 알쏭달쏭하다.
오정환은 분명 구해오겠다고 했다.
똑! 똑!
병실의 문이 두들겨진다.
정기 검진이 아닌 이상 십중팔구 그가 도착했을 것이다.
"선객이 있으시네요."
"오정환!"
"안녕하세요 오정환입니다 선생님. 그쪽 분은……, 누구셨더라?"
"나, 나를 기억 못 해?!"
이 시간쯤에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분위기가 조금 안 좋네.'
사정은 모르겠지만 김종인과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아무리 추억의 위스키를 찾는 게 급해도 이곳은 병실이다.
환자의 안정이 최우선.
너무 많을 술을 마시게 할 수도 없다.
오늘은 일단 둘을 보내려고 마음먹은 민형의 어깨를.
"후후."
"석현 형?"
"두고 봐. 정환이가 아주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까."
이석현 대표가 턱 하고 잡는다.
오정환과 함께 찾아온 모양이다.
믿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기대감이 있다.
오정환이라면 뭔가 보여줄 것 같다.
자신이 직접 본 그는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 새끼가 왜.'
김종인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던 대상.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옛날 속담이 틀린 말 하나 없다.
그가 들고 온 박스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뭘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여기 있는 것 중 하나일 텐데."
"와~ 귀한 술들을 가지고 오셨네요."
"크흠! 보는 눈은 있네."
포장이 되어 외관으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온 것에 뒤처지는 위스키일 것이다.
'내가 이거 사냐고 얼마를 들였는데.'
정말 올해는 연봉 반납한다는 생각으로 샀다.
오래된 보틀이다 보니 한두 푼이 아니다.
이 중에 반드시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말이다.
타악!
오정환은 과연 뭘 갖고 왔을지.
최소한 자신이 산 것보다는 비싸야 인정을 할 수 있다.
그런 김종인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진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그렇게 귀한 술을 살 돈은 없어서 이걸로."
"지금 장난해?"
"무슨 말씀이시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따위 술을……!!"
가격을 논할 것도 없다.
싸구려.
콜라나 타서 해치워야 할 저급한 술을 가지고 왔다.
이신형 선생님도 못마땅해할 것이다.
으름장을 놓아서 경쟁자를 몰아내려고 했는데.
"마셔보지."
"선생님!"
"뭐, 못 마실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호들갑인가."
"아니, 선생님 몸도 안 좋으신데 이런 저급 술로 몸 상하시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저걸 굳이 맛을 보려는 생각이다.
김종인으로서는 깊은 짜증을 느낀다.
'조니워커 레드라벨 따위를……!'
자신이 사온 건 병당 최소 수백에서 천만 원 단위를 호가한다.
그 정도의 정성이 드러난 물건이다.
그에 반해 오정환의 것.
요즘은 편의점에도 있다.
화가 난 김종인은 오정환의 손에서 병을 낚아 챈다.
"아."
"이따위 것을. 이따위 것을……."
이미 오늘내일하는 노친네다.
언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무리를 하는 것이다.
소중한 한 잔의 시음 기회.
싸구려 술 한 잔에 빼앗기고 있으니 열불이 뻗칠 만도 하다.
툭!
힘이 너무 들어갔다.
위스키의 뚜껑이 결합부와 분리돼있다.
당황해서 뚜껑을 쳐다보고만 있는 김종인에게.
"1970년입니다."
"뭐?"
"스크류 캡이 발명된 시기는 말이죠."
오정환이 차분히 설명을 시작한다.
* * *
올드 보틀(Old bottle).
오래된 위스키는 그야말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60년대에 나온 이 조니워커 레드라벨은 마개가 코르크로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오~ 레드라벨이?"
"그래서 거칠게 다루면 안 되는데."
"……."
병실에 있는 사람들.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를 쳐다본다.
김종인 씨에게 날카로운 시선이 꽂힌다.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부숴진다.
사고를 대신 쳐준 덕분에 병을 딸 시간을 벌 수 있다.
톡!
칵테일 핀.
쇠로 된 송곳 같은 것이다.
부숴진 코르크 양쪽에 2개씩 총 4개를 비스듬히 꽂아 넣는다.
"매, 맥캘란은 스크류 캡이었는데……."
"1960년대와 50년대를 가져오셨죠?"
"그, 그래!"
"거기 써있는 건 릴리즈가 아니라 빈티지입니다. 1970년대 이후 생산물이에요."
"……."
스크류 캡이 개발된 건 1970년도다.
그 이전까지는 소주조차도 코르크 마개를 썼다.
워낙 획기적이어서 보급 속도는 빨랐다.
맥캘란도 70~90년대에는 스크류 캡이었다.
"1960년대 술도 아니었던 거네. 참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잠시만요."
"응?"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부분이라."
오래된 와인은 아소 나이프와 와인 오프너로 개봉한다.
하지만 위스키는 코르크가 짧기 때문에 방법이 다르다.
칵테일 핀을 지렛대처럼 써서 조금씩 끌어올린다.
자칫 실수하면 코르크가 부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끼익!
끼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올라온다.
어느새 병실 안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뽀옹!
분리에 성공한다.
다들 몰입을 한 듯 박수까지 친다.
이 작업은 몇 번을 해도 긴장이 된다.
'코르크를 빠뜨리기라도 하면.'
바로 걸러낸다 하더라도 맛이 변한다.
아버님의 추억이 담긴 위스키를 가능한 좋은 상태로 맛보여드리고 싶다.
"이건가?"
"네."
"내 추억이 담긴 위스키가?"
"아마 한 1/3 확률로."
""…….""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100%란 게 어딨을까?
생각지도 못한 예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33%면 해볼 만하지.'
메이플스토리 주문서도 30%가 은근히 잘 붙는다.
60% 실패할 때쯤에 30% 바르면 붙고는 한다.
"자네 이름이."
"……김종인입니다."
"자네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네."
"그, 그냥 선생님 건강이 걱정돼서;;"
"건강이 걱정됐으면 술을 가지고 오지 말았어야지."
"……."
"나도 조니워커는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전부 실패였다는 걸 생각하면 현실감이 있는 확률이다.
겨우 조니워커.
'레드라벨은 굳이 말을 안 한 거겠지.'
조니워커는 발렌타인, 로얄 샬루트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위스키다.
어른들 술장에 무조건 있다.
그중에서도 레드라벨.
가장 낮은 등급의 위스키로 편의점에서도 몇천 원이면 작은 병을 하나 살 수 있다.
"오정환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위스키를 가지고 왔어. 하지만 앞서 들은 대로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만약 아니라면 실망을 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나?"
어이가 없을 만도 한 일.
그럼에도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들었다는 듯 술잔에 담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아."
70대의 노인.
백발이 성성하고, 수분기 없이 깡 마른 피부를 가진 노인에게서 눈물이 거짓말처럼 흘러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