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화
아버님의 추억의 위스키.
꼴꼴꼴~
조니워커 레드라벨이 인연을 만들었다.
최적의 기획사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게 나머지 2병이라고?"
"네."
"아, 그래서 1/3이었어! 자네가 확신을 할 만도 하군."
일이 생각 이상으로 수월하게 풀렸다.
가져갔던 위스키는 드린 것을 포함해 세 병이었다.
'그때 쓰지 못한 나머지 두 병.'
이석현 대표가 바라는 눈치라 가지고 왔다.
조니워커 블랙과 조니워커 스윙이다.
"맛이 엄청……, 달아. 셰리 느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꿀, 아니 흑설탕이 녹아있는 느낌이야."
"블렌디드니까요."
최근에는 싱글 몰트다 뭐다 하지만, 처음 위스키 시장을 견인한 건 블렌디드다.
맛이 달달해서 마시기 편하다.
'그레인 위스키가 섞여서.'
개성이 강한 몰트 위스키와 가볍고 부드러운 그레인 위스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마실 만도 했다.
"구형 특유의 꿉꿉함이 거슬릴 수 있지만 전체적인 풍미는 싱글몰트에 필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퀄리티가 지금 나오면 대박이겠는데?"
"절대 나올 일 없겠죠."
당시에는 블렌디드 위스키도 퀄리티가 높았다.
적당한 피트와 이 달달함은 호불호가 없는 맛이다.
꼴꼴꼴~
다음은 조니워커 스윙.
1930년대 호화 여객선 여행이 취미인 부유층을 저격해 만든 위스키로, 흔들리는 배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 같은 모양이 특징이다.
"이건 좀 많이 답니다."
"진짜 설탕 넣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죠. 개인적으로는 하이볼을 추천합니다."
미국이 금주법으로 시끄러웠던 시기다.
술을 마시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부유층이 많았다.
'알고 먹으면 좀 더 맛있긴 해.'
실제로 말이다.
음식은 맛이 30%, 그리고 분위기를 포함한 무언가가 70%를 차지한다.
부자들이 마셨다.
과거 최고의 고급 술이었다.
그 정보가 하나의 맛으로 녹아 난다.
"천천히 음미하니 조니블루 같은 깊이도 느껴지는데?"
"스윙이 사라지고 조니블루 생기게 되니까요."
"음~ 재밌어. 이건 내가 고맙게 마시지."
이런 올드 보틀의 가치.
모르는 사람은 정말 모른다.
그래서 몇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인맥 관리를 위한 투자 비용으로 꽤 싸게 먹힌다.
재래시장에서 각각 5만 원 내외로 구한 보틀이다.
'물론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구형 보틀을 알아보는 눈도 필요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위스키의 상자.
조니워커를 상징하는 정장 입은 신사가 그려져 있다.
그 신사가 바라보는 방향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이다.
구형 조니워커의 상징과도 같다.
현행 보틀은 오른쪽 방향을 본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다.
"아무튼 이건 이거고."
"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인데."
중요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선물을 발라 놓으면 이야기가 수월해진다.
술도 들어가서 분위기도 한결 풀린다.
"들었나? 아니, 말할 것도 없나."
"뭐가요?"
"전 여자친구 말이야. 아니, 현 여자친구이기도 하겠지."
"그건 아닙니다;;"
가을의 소속사 문제.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오갔다고 한다.
찌라시 기사들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KBS― 「화제의 이별송 인디 가수 '가을' MJ 스튜디오로 간다?」
MBC― 「BJ가을 '오정환'과 한 식구 된다! STG 엔터테인먼트曰 "사실무근"」
연합뉴스― 「'오정환'의 전 여자친구를 두고 일어난 연예계 쟁탈전……, '가을'이 누구길래?」
생각 이상으로 많은 기획사가 영입전에 참여한 모양이다.
영입 의지도 본격적이었는지 한동안 불똥이 튀었다.
'정작 본인은 별생각이 없었지만.'
떨떠름했을 것이다.
원래 BJ도 아니었고, 연예계라니 너무 갑작스럽다.
이쪽 생태계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그냥 뭐……, 부X친구 같은 거죠."
"후후. 젊구만 젊어."
"진짜 아니라니까요."
글자 그대로 말이다.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개인 방송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겠지.'
그녀로서는 억지로 끌려온 것이다.
심익태에 의해 하고 싶지도 않은 여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직업으로 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BJ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만나봐서 알겠지만 믿을 수 있는 친구고, 보컬 트레이닝은 나 이상이야."
"예, 당연히 신뢰하죠."
"나도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울 생각이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까놓고 나 정도의 거물 둘이 움직이는데."
"……."
더 화려한 세계에 있으면 싶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장소에서 말이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내가 하는 건 딱 판을 깔아주는 정도.
오지랖이긴 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는 진짜 자신을 마음껏 드러냈으면 좋겠다.
"정환이가 로맨티스트 기질이 있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냥 적절한 인재를 추천했을 뿐이에요."
"후후, 그렇다고 치지.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러한 희망.
대한민국 청소년의 상당수가 꿈꾸고 있을 것이다.
현실이란 벽은 당연히 높다.
'내가 추천한다고 다 됐겠어.'
기획사 입장에서도 될 만하니까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획사들의 영입전에서 증명이 됐다.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윤청호 전무를 통해 최근 업계 동향을 대략적으로 들었다.
〔윤청호 전무〕
「이신형 선배님 위스키 구해다 드렸다며?」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야」
―??
이민형 씨의 아버지.
이신형 선생님은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 잔뼈가 굵다고 한다.
'그리고 그쯤 되면.'
웬만한 방송국에는 인맥이 있다.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엄청난 힘이 되는 모양이다.
「이번에 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거든」
―그래요?
「협조 좀 해달라고 연락망을 한번 돌렸나 봐」
「살다 살다 방송국들이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경우는 처음 보네」
연예계는 BJ업계와 비교도 할 수 없게 크다.
기껏해야 대기업BJ 몇 명이 파벌 싸움 하는 보라판과는 다르다.
'격이.'
방송국과 기획사들 간에 신경전이 치열하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얽혀있어서 풀 엄두가 안 난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
오랜 경력과 인맥을 가진 이신형 선생님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가을을 오디션 프로그램에요?"
"그래. 요즘 그게 가장 트렌디한 방식이니까."
"아."
"아직 설레발 칠 단계는 아니지만 성사만 되면 대국민급 프로그램이 될 거라고 하네."
가을도 참가를 한다.
이 정도 이슈에, 그 정도 외모, 하지만 가창력은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당사자라서.'
세간에서는 수요가 있다.
이별.
누구나 경험을 하고, 언젠가 해야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감성을 긁어내는 목소리는 흔하지 않다.
방송적으로 큰 가치가 있으니 진행되는 프로젝트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지."
"문제요?"
"너 말이야 너."
"……."
그 정도의 프로젝트.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집중된다는 것은 결코 축복만이 아니다.
'별의별 찌라시가 다 돌겠지.'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그것이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
"최근 방송 활동이 뜸하잖아."
"네, 일단 복귀는 했는데."
"아니, 옛날 같은 느낌. 잘 나가고 있었는데 하필 그런 사건에 발목이 잡혀서……."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 내 입지로 결정된다.
이석현 대표의 말도 일리가 있다.
'방송에 나오긴 나오는데.'
대중의 관심은 흐름이 존재한다.
똑같이 방송을 해도 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진다.
반대로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커리어가 중단된 연예인의 재기가 쉽지 않은 이유.
나는 파프리카TV라는 본진이 있고, 애초에 방송인으로서 큰 욕심이 없다.
그래서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만.
"다시 시동을 걸어볼까요?"
"오~ 그럼 나는 환영이지. 환츠비가 정말 캐릭터성 좋게 잡혔는데 아쉽네."
"뭐, 안 될 거 없겠죠."
"?"
뿌려 놓은 씨앗을 거둘 때다.
* * *
테라버닝 사태.
그 여파는 연예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꽈앙!
한 남자가 테이블을 세차게 내려친다.
그것은 딱히 위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대표 때문에 왜 피해를 봐야 하냐고!"
""옳소! 옳소!""
분노로 치를 떨고 있다.
가오리라멘의 점주들.
최근 장사가 지지리도 되지 않는다.
라멘이 맛이 없어서?
유행이 꺼져서?
아니다.
대표인 위너가 대형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대표님의 재판은 진행 중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마음을 누그러……."
"우릴 병신으로 알아?!"
"너 말고 대표 나오라고 대표!"
위너의 영향력 때문에 빠르게 세를 확장시킨 가오리라멘이다.
위너가 나락에 떨어지자 반작용도 세게 온다.
매출이 반에 반토막.
일반적인 음식점이라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가오리라멘은 프랜차이즈다.
요식업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가맹비와 로열티를 내고 있다.
위너라는 브랜드를 바라보고 말이다.
"이, 일단 가맹비 대해서는 저희가 보상을……."
"이 새끼들 정신 못 차렸구만?"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그것이 대몰락.
결백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점주들이 바보가 아니다.
당장 생계가 위태롭다.
수억 원을 들여 가게를 열고, 매달 수백만 원씩 월세를 낸다.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손님이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영영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하, 진짜 어떡하지.'
'위너 형은 왜 책임지지도 못할 짓을 저질러서…….'
'우린 어쩌라고!'
이는 이사들도 마찬가지다.
가오리라멘의 모든 사람들이 위너의 실상을 알고 있던 게 아니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빤스런한 지 오래.
나머지만이 어떻게든 회사를 지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벤트라도 열어볼까요?"
"언 발에 오줌 누기일걸."
"제대로 물린 거지. 투자한 돈 회수는커녕 이대로 말라 죽게 생겼어."
점주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 본사.
임원들은 회사를 살려보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나오는 결과물은 없다.
어떻게 손을 쓰기에는 상황이 심각해도 너무 심각하다.
'위너만 한 간판이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위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
역풍까지 불자 회사의 존립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점주들의 불만도 언제까지 누를 수 없다.
이미 매장을 접는 지점이 생기고 있다.
"대표가 사임을 하게 만드는 게 급선무겠지."
"그 정도로 될까? 까놓고 말해서 지금 가오리라멘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은데."
"뭐, 이 자식아?!"
"앙?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임원들 사이도 날이 갈수록 뒤틀린다.
서로 말만 안 할 뿐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위너의 사업에 투자한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덜 손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자, 자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후우……."
"하아……."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회의를 해봅시다. 뭐라도 방법이 하나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마음 자체는 모두가 같다.
사업이라는 건 본인 자금만으로는 어림없다.
대개 대출이라는 형태로 빚을 끌어 쓴다.
임원들은 본전이라도 건지고 싶은 마음이다.
"위너를 대신할 스타 오너가 들어온다든가."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아재요 정신 차리소. 가오리라멘이라는 간판을 내려도 모자랄 형국이야."
그조차 꿈에 지나지 않다.
가오리라멘의 재건은 그 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