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화
<유종의 미>
서울 왕십리의 번화하지 않은 골목.
"술 한잔해요. 날씨가 쌀쌀하니까~"
한 호프집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가게 안쪽의 라디오가 너무 크게 틀어진 것은 아니다.
"저기 봐, 저기."
"실연했나 봐……."
야외 테이블에서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민폐.
의미 없는 고성방가였다면 누군가 진작 말렸을 것이다.
혹은 사장님이 장사가 걱정돼서라도 나온다.
"따끈따끈 국물은 못 참지……."
"아줌마 여기 오뎅탕 하나!"
"네~"
"소주도 한 병이요!
"네, 네~!"
그럴 일이 없다.
쌀쌀한 날씨에 듣는 감성 있는 노래는 알코올이 땡기게 만든다.
그런 노래를 부르는 여자.
말 걸기 힘든 분위기가 감돌아 불량배도 꼬이지 않는다.
"해물짬뽕에 먹태도 하나 주세요 흑……."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달라니까요?"
주인 입장에서는 계속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걱정이 된다.
'아이구, 서비스라도 줘야겠네. 뭘 줘야 마음이 달래지려나.'
말 한 마디 섞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노래로 전해지는 감정은 그 무엇보다 솔직하다.
"이거 마른 안주인데."
"이거 안 시켰는데요?"
"아줌마가 쏘는 거야. 어떤 놈팽이인지 몰라도 이거 뜯으면서 잊어!"
―헐
―오정환 놈팽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줌마 입담 찰지누 ㅋㅋ
―자 드가자~
그렇게 느껴진다.
가을로서는 딱히 의미를 담아 부른 게 아님에도 말이다.
찌직!
공짜로 받은 거 안 먹을 이유는 없다.
오징어 대가리를 송곳니로 쭉 잡아 찢는다.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린다.
입에서 질겅질겅 씹고 있자 기분이 나쁘지 않다.
─몽글이님, 별풍선 5000개 감사합니다!
서비스 미션 성공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응? 그런 거 없었는데?"
―와 5천 개
―그냥 대충 받으면 됨 ㅋ
―큰손이 그렇다면 그런 거짘ㅋㅋㅋㅋㅋㅋ
―라이브가 개쩔긴 한가 봐 ㄷㄷ
그리고 개인 방송.
그냥 심심해서 틀었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딱히 고민도 없는데.'
돈 문제는 해결되었다.
귀찮게 달라붙을 거라고 생각했던 심익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별풍선으로 받은 돈도 있다.
어째선진 몰라도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쏴주고 있다.
─난만주의자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취한 밤에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ㅇㅅㅇ
"부르지 뭐."
―천 개도 됨??
―무지성 열혈들이 컷 높인 거임
―이 노래 짱 좋은데
―진짜 취한 밤이네 ㅋㅋ
시청자들의 신청곡.
그중에서 부르고 싶은 것으로 한 곡씩 입에 담으면 된다.
지지난 달 말부터 환전을 할 수 있었다.
가끔씩 방송을 켜면 생활비 걱정은 없다.
"취한 밤에~, 니가 생각 나. 너와 나의 뜨거운 날을 기억하니~"
집에서도 나올 수 있었다.
집안의 돈 문제.
심익태 건을 끝으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불편한 건 없는데.'
자취 생활도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적응을 하니 그럭저럭 살 만하다.
과거에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몸은 편하다.
정신도 부족한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끼익―!
그 한 조각이 대체 무엇인지.
그와 만나면 알 것 같은 기분이다.
* * *
차를 타고 도착한다.
─야야잠깐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기 맞음 ㅇㅇ
"이 기지배는 무슨 이런 음침한 데서 혼자 퍼마시고 있냐."
―가다가 담벼락 보이면 우회전 하면 돼요!
―어둡긴 하네
―곧 팬들 몰려올 듯 ㅋㅋ
―부가티 어디 감?
왕십리 먹자골목.
그것도 외곽 쪽에 위치해 인파가 듬성듬성한 곳이다.
길 양보를 받으며 겨우 겨우 지나간다.
그 끝에 호프집이 하나 보인다.
"Goodbye, goodbye~ 이젠 널 놓아줘야 하는데."
그리고 들린다.
솜털이 곤두서는 그 가늘게 떨리는 멜로디는 달리 부를 사람이 없다.
"아니, 여기서 술 퍼마시고 있으면 어떡해."
"고민이 있어서……."
"무슨 고민인데."
"들어줄 거야?"
호프집 야외 테이블에서 혼자 적시고 있었다.
내부도 한적해 안쪽에서 마셔도 될 텐데 말이다.
그 모습.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혓바닥도 꼬여있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사람이다.
아무리 전 여친이라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닐 수는 없다.
옆에 앉자 머리를 기대온다.
술 냄새와 함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긴다.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며 심장이 빠르게 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나."
"응?"
"집에 지갑을 놓고 왔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진짜 오누
―오정환 소환 성공!
―방금 지갑 도착해서 ㄱㅊ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정말 별 볼 일 아니었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되찾으며 한참을 웃는다.
"아하하, 아하하하!"
"좋냐?"
"좋은데?"
"난 너 때문에 중복 할증으로 택시비 5만 원 나왔다고!"
"꺄하하하!"
뭐가 그리 좋으니 싱글벙글하다.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되었다.
'심란할 테니까.'
가정 사정.
주위의 환경 변화.
절대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녀답게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어이가 없어 가지고 증말. 치킨이나 먹고 가야지."
"구래? 내건 다 먹었는데."
"……."
―가을좌 먹성 좋누
―맥이눜ㅋㅋㅋㅋㅋㅋㅋ
―돌아갈 때도 5만 원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란다고 진짜 오는 남자 ㅁㅌㅊ?
과한 오지랖일 수도 있다.
자기만족.
추억은 아름답게 남아있길 바라는 것이 사람이다.
타악!
치킨이나 시킨다.
기왕 왔고, 방송각까지 잡혀있다.
그냥 돌아가기도 뭣하니 먹고 가려고 했는데.
"아니, 먹는 거 구경하지 말라고."
"싫은데?"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부끄럽잖아!"
취해서 반쯤 감겨있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주제에 말이다.
─취한밤에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왤케 귀여움? ㅋㅋ
"그쵸? 왜 사겼는지 알 거 같죠?"
"……."
―정환이 다루는 법을 아누 ㅋㅋㅋㅋㅋ
―'전 여친'
―근데 진짜 부담스럽긴 하겠다
―난 너만 바라봐
서로가 원하는 거리감이 달랐다.
그것이 오해를 만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튕기게 생겨서 이렇게 치근덕거리면 인지부조화가 온다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닷하고 좋다."
"야, 취했어."
맥주를 계속 마시더니 취했다.
기대고 있던 몸이 쓰러지며 자연스럽게 안긴다.
'내가 좋아하는 체온.'
적당히 식은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 같다.
물속에 녹아버린 듯한 느낌.
가을과의 포옹도 그러했다.
상체뿐이지만 안고 있자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보라는뭐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러려고 왔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얘 상체 개무거워. 왜 무거운지는 굳이 안 말할게."
―ㅓㅜㅑ
―역시 전 여친
―오길 잘했눜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취한 거임 아무튼 취한 거임!
다소 무겁다는 단점은 있다.
의자에서 받치면 내 몸까지 휘청일 지경이다.
'진짜 혼내주고 싶은데.'
침대에서 꼭 안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늑해서 사람을 글러 먹게 만든다.
다시 한다면 리아처럼 만들어줄 것이다.
더 이상 걱정할 짓을 하지 않게 말이다.
"부가티는?"
"반납했어."
"차도 없는데 택시 타고 온 거야?"
"너 때문에."
"헤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치근덕거린다.
취해있을 때에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부가티 좋더라. 그렇게 좋은 차 태워줘서 고마워."
"고마우면 걱정될 일 좀 하지 마."
"너도 날 탔으니까 됐나?"
"……."
―했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을좌 돌발행동 ㅋㅋㅋㅋㅋㅋ
―아니 철벽 어디 갔냐고!!
―돈 벌어서 부가티 사야겠다 ㅇㅅㅇ
요망하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사귀고 있을 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가슴만 뒤집어 놓는다.
'나도 소유욕이 있어서.'
마음 같아서는 어디 묶어 놓고 빠뜨리고 싶다.
내 냄새만 맡아도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말을 잘 듣게 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100%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말이다.
"그런 말을 굳이 왜 하는 건데."
"뭐, 어때."
"뭐가 어떻긴!"
"니가 내 거라고 광고를 해놓고."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그런 고고함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겠지.'
본래의 세계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일 거라고 추측된다.
그 강인한 에고가 제대로 꽃피었으면 좋겠다.
최고로 빛나는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
─거울의뒷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왜 안 사귐? 왜 안 사귐? 왜 안 사귐? 왜 안 사귐? 왜 안 사귐?
"아니, 얘 그냥 장난치는 거예요. 성격이 좀 짓궂어."
―그냥 사귀라고 ㅋㅋㅋㅋㅋㅋㅋ
―너보다?
―연인은 닮는다는 게 ㄹㅇ이네
―철벽좌는 대체 어떻게 붙은 별명일까
지금도 예쁘다.
BJ업계는 물론, 연예계에서도 먹힐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말이다.
'그때는 정말 너밖에 안 보였거든.'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보라판을 뒤집어 놓았던 그녀지만, 과거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건배!"
"또 마셔?"
"마시고 죽일래."
"누굴?"
지금은 주정뱅이가 되어있다.
오징어와 땅콩을 안주로 맥주를 벌써 세 잔째 해치우고 있다.
'관리가 필요한 나이지.'
알코올은 물론이고 식단도 조절해야 한다.
우리 봄이처럼 쳇바퀴도 열심히 돌아야 한다.
회사 측에서 나보다 더 빠듯이 할 것이다.
전문 트레이너가 붙어서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들었다.
그녀의 포텐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다.
"자."
"저희가 시킨 거 아닌 거 같은데요?"
"아줌마가 서비스하는 거야. 둘이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지만 남자가 여자 울리면 못 써. 자기 많이 좋아하는 거 같은데."
"……."
―아줌마 또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집 서비스 좋누
―족집게인데?
―진짜 지들만 빼고 다 안다니까 ㅋㅋ
노래는 어떻게 될지.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전문가처럼 세세하게 따질 지식은 없지만.
'대중성이라고들 많이 하잖아.'
이렇게 서비스까지 받고 다닐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골뱅이 소면이 꽤나 맵다.
"아직도 요리해?"
"뭐, 하지."
"네가 해주는 요리 좋았는데."
"그냥 싸구려 재료 대충 먹기 그러니까 이것저것 추가한 거지."
"그런 게 좋았다고. 사랑이 들어간 것 같아서."
골뱅이만 건져 먹을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소면은 소스가 얇은 면 사이사이에 스며든다.
간을 조금만 잘못해도 매워서 눈물이 나온다.
'…간을 좀 잘못하셨네.'
그런 맛에 먹는 요리이기는 하다.
나라면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를 좀 더 넣었을 것이다.
양파랑 대파도 물에 담가서 매운맛을 빼놓는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사랑하지 않는 우리. 그래서 No no no no no no."
―이 노래 좋은데
―가을좌도 감성 취했나 보네 ㅋㅋㅋ
―캬 역시 잘 불러
―정환이 방금 운 거 아니었음?
내가 매운맛에 심취해있을 때.
가을은 어느새 시청자들과 놀고 있었다.
가게의 손님들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서비스 받을 만하네.'
가게 한편이 무대가 돼버렸다.
시각에 따라서는 민폐, 혹은 주정으로 보일 수도 있는 행위가 그녀이기에 성립한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룻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