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화
예빈은 BJ 일은 완전히 그만두었다.
쥬아라는 예명으로 여캠을 하던 건 이제 옛일이다.
"언니, 이번 달 정산 말인데……."
"뭐?"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
30대 중반.
여캠을 하기에는 너무 많다.
젊은 애들은 치고 올라온다.
스스로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토이치TV에는 염치도 없이 구독냥이 하는 아줌마도 있다곤 하는데…….'
자신은 도저히 나잇살 먹고 그러기가 힘들다.
유흥업계로 되돌아왔다.
"저 진짜 이번에 급한 일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니까 좀……, 당겨주시면 안 될까요?"
아가씨가 아닌, 마담으로 말이다.
가끔씩 테이블에 나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관리 일을 하고 있다.
'얘 또 남자한테 호되게 물린 거 같은데.'
직접 일을 해봤기 때문에 업계 사정은 빠삭하게 안다.
아가씨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사정까지.
"다는 안 되고 절반만."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출근 열심히 해야 돼?"
"네~!"
일일이 설득을 한다고 될 리가 없다.
남자한테 눈깔 뒤집히면 보이는 게 없어진다.
'그렇게 데이면서 배워가는 거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조절이다.
한 번에 다 출금해주지 않고,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진짜 나쁜 마담들은 다 알면서 준다.
첫인상만 착한 고리대금 업자 같은 느낌.
목줄을 걸어 놓고 일을 더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업계의 관행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어, 누나.>
"…왜 전화했어."
유흥업에 다시 종사하게 된 이유.
그것은 겉포장일 뿐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
방금 전 동생에게는 잘난 듯 말을 했지만, 자신도 남자에게 얽매여 있는 입장이다.
오정환.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뭔데? 알고 있는 선에서는 대답해 줄게."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봐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현업이 되는 것.
그 이상으로 업계 일을 자세하게 알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미스코리아는 얼마 들어요?>
"…뭐?"
<아니, 진지하게.>
가끔씩 시답잖은 것도 물어본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일단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다.
'미스코리아 출신이 유흥업은 웬만하면 안 하지.'
모델 일이든, 연예계 일이든 일거리가 많이 쏟아질 것이다.
아나운서 쪽에도 가산점을 받는다.
인생이 승승장구.
재벌가에서도 러브콜이 오니 은퇴 이후에도 걱정할 일이 없다.
"보통은 할 이유가 없지? 진짜 무슨 빚 잘못 진 게 아닌 이상."
<그래서 얼마?>
"VVIP들에게 공문 돌리면 5천만 이상부터 시작할걸?"
<오~>
유흥업계에서 일을 할 이유가 없다.
뭔 바보 같은 질문인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얘 설마 또…….'
얼마 전에는 탑급 여배우나 아이돌은 얼마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헛소리 마라며 일축했다.
연예인 성매매.
당연히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B급 혹은 나이가 들어서 인지도 대비 돈을 못 버는 연예인이다.
A급만 돼도 나올 이유가 없다.
있다고 해도 워낙 비밀리에 진행돼서 자신도 간신히 소문을 접하는 정도다.
오정환이라면 또 몰라서 문제다.
그렇게 귀하냐며 자신의 개인사를 보여줘서 당황한 기억이 있는데.
<미스코리아 진은요?>
"그건 더 말도 안 되지. 1년에 한 명밖에 안 나오는……."
<그래요? 지금 내 거 됐는데.>
또 기상천외한 짓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스피커 너머로 여자의 소리가 들려온다.
꿀꺽!
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다.
그녀가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등골이 오싹하다.
전 여친이 미스코리아 진에 선정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들었죠? 지금 조교 중.>
"…그래."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지금 전화하는 무서운 언니 보고 나쁜 오빠들한테 팔아버리라고 한다?>
재밌게 즐기고 있는 듯하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예빈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긴.'
말은 천박하게 해도 마음씨는 상냥하다.
그래서 별별 짓을 다 해도 밉지가 않은 것이다.
"건당 억 단위로 시작할 거 같은데. 사후 처리 깔끔한 VVIP로 알아봐 줄까?"
<들었어? 억이래.>
<이 X발 새끼야아앙! 아앙!>
자신에게 페티쉬를 만들어버렸다.
여자 취급이 험하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플레이를 할 때 얼굴 화장이 안 벗겨지게 신경을 써준다.
만 나이 30대에 접어들게 된 이후로 말이다.
'버리지만 말아줘.'
결혼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평범한 인생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
이런 일을 이해해주는 남자는 없다.
속이는 것도 싫다.
돈만 많은 아저씨와 결혼하는 것도 사양이다.
남은 인생은 오정환을 위해 평생을 할애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다.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니까 질문 있으면 알죠? 게시판에 올려주면 쌤이 답변할게요?"
채이도 BJ를 그만뒀다.
강사라는 직업은 업무 난이도가 높다.
BJ와 병행을 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빡세다.
"네~!"
"쌤 가기 전에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뭘?"
""토끼녀! 토끼녀!""
인기 강사가 돼버리기도 했다.
유명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 스카웃되어 1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강의를 진행하며, 녹화된 영상이 온라인으로도 송출된다.
학생들이 귀여운 질문을 한다.
'진짜 정말…….'
흑역사임과 동시에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줬다.
BJ로 활동하던 시절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강의 끝났어?"
"응."
"왜 웃고 있어?"
"아니~ 학생들이 토끼녀 얘기하잖아."
소희도 말이다.
섹시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그녀도 자신과 같이 스카웃되었다.
쪼옥! 쪼옥!
사귀는 사이다.
휴게실에 들어간 둘은 바로 문을 잠그고 키스를 나눈다.
"나도 자기 바니걸 모습 다시 보고 싶어."
"집에 가면 해줄게."
"응."
오정환이 요구했던 플레이를 하다 보니 그쪽 세계에 눈을 뜨고 말았다.
원래부터 사이가 좋기도 했다.
립스틱이 번지지 않는 선에서 물고 빤다.
"채이 아기 가지고 싶다."
"난 씨가 없어."
"나도 없어."
요즘 세상에 별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아이.
여자 사이에서는 당연히 생기지 않는다.
보통은 씨앗을 기부받거나 대리부를 구하지만.
"정환 오빠한테 부탁해볼까?"
"정환 오빠면……, 나도 낳고 싶은데."
"그럼 둘 다 가질까?"
"응!"
오정환은 아직도 두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다.
그와의 관계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쪼옥!
쪼옥!
그래서 서로 달래주다 보니 사랑이 싹 튼 것이다.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인 것을 안다.
'그래도 아기는…….'
작은 보상을 원한다.
그 염원이 이루어지길 꿈꾸며 더 격한 키스를 나눈다.
"아~ 그런 일이."
"시청자분들은 데뷔 한 그룹만 보니까 연습생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올라오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죠."
"정말 그래요."
수빈은 여전히 BJ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케이블 방송에도 출연 기회가 생겼다.
"데뷔 기회를 얻는 연습생이 5%가 안 되고, 그중에서 뜨는 그룹은 또 소수라고 하죠?"
"와~ 그 정도씩이나."
"저는 데뷔도 못 해서……."
"그래도 인터넷 방송인으로 성공하셨잖아요?"
실패한 연습생이라는 꼬리표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방송 출연 제안이 오고 있다.
그녀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나날이 의미가 있었다는 소리니까.
'정환 오빠 덕분에.'
오정환의 푸쉬를 받아 뜰 수 있었다.
TV에 나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영향이다.
개인 방송.
자신이 처음 방송을 할 때만 해도 좋지 않았다.
오정환에 의해 개선됐다.
"지금도 연습생 시절의 식단과 운동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계시다고."
"네, 맞아요."
"개인 방송 시청자분들이 외모를 신경 쓰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고……, 약간 습관? 그리고 연습생 출신으로서 나태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오~~!""
그녀는 모르지만 인플루언서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이 드물다.
방송가에서는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
수빈은 탐이 난다.
연습생 출신이라 과거도 깨끗하고, 기본적인 방송 예절도 깍듯이 갖췄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수고했어."
"애가 착하네."
"그 엔터 알잖아? 거기 출신 애들이 개념 있어."
성공하고 나서도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호감이라는 평을 받는다.
전 소속사에서는 이미 연락을 취했다.
다른 기획사들도 수빈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좋기는 한데…….'
하지만 수빈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따로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7평 남짓한 원룸이 아니다.
그럴듯한 집을 빌려서 월세로 살고 있다.
사라락~
몸은 편해져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을 훌렁 벗는다.
군더더기 없는 육체가 드러난다.
방송에서 말했던 대로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다.
'예쁜 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다르다.
시청자들을 위함, 연습생 시절의 습관, 프라이드 등도 분명 있기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기 힘들다.
풀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 ……!
정환 오빠를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
혼자 스트레스를 풀며 기다린다.
언젠가 그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말이다.
─멜론머스크님, 별풍선 892개 감사합니다!
떡춤 보여줘요!
"멜론 오빠 892개 땡큐! 함 시동 걸어볼까?"
―892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복채 모임 ㄱㄱ
―유라방은 이거지
―이년 허리 졸라 잘 흔듦 ㅋ
유라는 BJ 활동을 하고 있다.
파프리카TV에서 잘 나가는 여캠으로 손에 꼽힌다.
<♪♬♪∼♪∼♬♪♬∼♬♪∼♩♪∼♩♬♪∼>
아이덴티티는 떡춤.
글자 그대로 야시시한 댄스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어레인지 버전이 많다.
지금 추고 있는 것은 오토바이 댄스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흔든다.
꿀꺽! 꿀꺽!
방송을 마친 유라는 물을 마신다.
춤이라는 게 당연히 체력 소모가 많기 마련이다.
그 이상으로 힘든 것은 성욕.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다시 오토바이 댄스를 춘다.
'나 이렇게 야한데.'
과거 김군의 크루에 속해있던 그녀다.
뜨고 싶어서 오정환을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역관광.
그때 개발된 떡춤을 방송의 아이덴티티로 쓰고 있는 것이다.
오정환과 실전 연습을 하니 안 늘 수가 없다.
약간의 부작용은 생겼다.
'더 야해질게요, 제발 날 가져줘요.'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연습하게 된다.